〈 13화 〉 13. 사냥개들의 사냥 방식
* * *
"야 이 개 또라이 새끼야!!!"
저 미친놈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곧바로 풀숲을 뛰쳐나온 우리는, 리빙 아머들에게 둘러싸인 채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로이먼을 향해 내달렸다.
부웅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플레일 철퇴에 얻어맞아 찌그러지는 리빙 아머들의 사이로, 다른 한 손에 들린 채찍으로는 데팔을 상대하고 있는 로이먼의 모습이 보였다.
"알렉시스 공녀님! 저기 용사 파티 쪽에 있는 리빙 아머들 좀 붙들어 주세요! 로빈!!! 와서 가세해!!"
"네..! 해볼게요!"
"갑니다, 선배님!!"
사방에서 쇄도하는 칼날을 튕겨 내며 리빙 아머들의 틈바구니로 끼어들어간 나와 로빈은, 금세 로이먼과 데팔이 혈투를 벌이는 현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으음..!! 얌전히 그분의 뜻에 따른다면,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것이다! 사악한 존재여!"
"크으윽...!! 이런 무식한 놈이..!!"
로이먼이 큰 소리를 치며 데팔을 채찍으로 몰아 넣고 있기는 했지만,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리빙 아머들의 칼날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던 로이먼의 몸에서는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니미, 환장하겠네."
나는 로이먼의 등 뒤를 공격 하려는 리빙 아머의 오금에 숏 소드를 꽂아 넣으며 외쳤다.
"야 로이먼!! 너 씨발 진짜 미쳤어!!! 일단 빠져서 상처좀 치료하고, 저쪽에 있는 용사랑 똘마니들부터 회복시켜!!!"
로이먼이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나는 리빙 아머의 오금에 박힌 숏소드를 손에서 놓고, 투구를 붙잡아 그대로 힘을 주어 돌려 버렸다.
꾸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투구가 분리된 리빙 아머의 몸이 허물어지고, 동시에 클로와 단도를 움켜쥔 로빈이 뒤로 물러서려는 로이먼과 데팔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챙!
"하등한 족속들 주제에, 이만 죽어라..!"
"끄응...!! 선배님!! 조금만 거들어 주세요!!"
이 씨발, 로이먼 이 광신도 새끼 때문에.
조용히 습격을 감행 했더라면, 이렇게 무식하게 싸우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나는 급박한 전투 상황으로 한계까지 수축된 근육을 터트리며, 로이먼을 뒤로 밀쳐 내고 데팔을 향해 달려들었다.
끼기기긱!!
절묘하게 맞물린 숏소드와 데팔의 창날이 서로 마찰하며 기묘한 소리를 내었다.
잠시 데팔의 창을 막고 있던 나는, 숏소드에 가해지는 힘이 어느 정도 강해짐과 동시에 창날을 흘려내며 자세를 낮췄다.
갑작스럽게 장애물이 사라진 창날이 부웅 하며 허공을 가르고, 자연스레 데팔의 몸이 한쪽으로 기우뚱 기울게 되었다.
"로빈!!!"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온 로빈의 발차기가 데팔의 오금을 정확히 노리자, 데팔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자세가 무너져 내렸다.
그런 놈의 목덜미를 노리고 로빈의 단도가 번개처럼 내리꽂혔지만, 또다시 칼을 휘둘러 오는 리빙 아머의 공격에 의해 그 시도는 무산되어 버렸다.
"이 씨발..."
대인 전투가 특기라지만, 이렇게 중갑을 갖춘 적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는 그닥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는 없다.
갑옷 틈새의 관절을 노리면 이길 수 있지만, 다른 리빙 아머들과 데팔이 바보도 아니고 자신들의 갑옷 이음새를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을 정직하게 맞아줄 리가 없다.
급히 볼트통에서 연막 볼트를 찾아 움켜쥔 나는, 방금까지 주문을 영창하던 마야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마야는 주문을 영창 하다가 리빙 아머의 공격으로 중간에 끊긴 모양인지, 아예 데팔은 우리에게 맡긴 채 리빙 아머들을 요격하고 있었다.
"개좆같은..."
리빙 아머들 역시 아가일이 직접 만들어 낸 것들인지, 마야의 마법을 직격으로 맞고도 대부분 조금 금이갔을 뿐,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법 저항력을 높인 건가?
나는 다시금 데팔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주 작정을 하고 오셨구만. 이 허수아비 새끼들, 꼴에 마법 쳐맞고 나가 떨어지지는 않네."
"네놈은... 용사와 연을 끊은 것이 아니었나?"
"그건 네 알 바 아니고, 마야!!!"
로이먼과 이사벨이 나머지 일행들을 치료해주는 동안,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나는 마야를 향해 연막 볼트를 보이며 눈짓을 주었다.
내 눈짓을 보며 잠시 멍 하니 나를 바라보던 마야가 급히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주저없이 연막 볼트를 장전했다.
마야가 눈치가 있다면, 특기인 바람 마법으로 연막 정도는 가두어서 유지시킬 수 있을 터.
눈치가 좋은 로빈이 내 몸짓을 보고 잽싸게 데팔과의 거리를 벌리는 찰나, 나는 빠르게 쇠뇌를 들어 데팔을 향해 연막 볼트를 쏘았다.
* * * * *
"오스틴...?"
용사, 이유정은 자신을 향해 다가온 피투성이의 사제가 치료를 해 주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뭉개 뭉개 퍼져 나가는 연막속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오스틴을 다시금 떠올렸다.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오스틴이다.
오스틴이 파티를 멋대로 나간 뒤 부터, 용사는 오스틴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되먹지 못한 정신머리를 단단히 고쳐 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틴을 다시 만난 지금, 그녀의 내면에 자리 잡은 감정은 분노가 아닌, 반가움과 슬픔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체 이 묘한 감정은 무엇일까.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용사에게, 이사벨이 다가와 쓴웃음을 지으며 치유의 빛을 쐬어 주었다.
"...용사님."
"이사벨, 나는..."
"지금은 우선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어떨까요..? 해묵은 감정은, 잠시 가슴속에 묻어 둬요."
...그래. 이사벨의 말이 맞다.
용사, 이유정은 멀쩡히 회복되어 다시금 힘이 넘치는 몸으로 성검을 거머쥐었다.
"...그래."
지금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그저 오스틴과 속내를 털어놓으며 가감없는 대화를 하고 싶었다.
이제 와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뻔뻔하고 추해 보일 것이나, 지금의 그녀는 자존심 따위는 내던지기로 결심 했다.
"나는 용사니까."
성검을 꼭 움켜쥐며 일어난 용사는, 곧바로 리빙 아머들을 상대하고 있는 아드리엔과 그레이시, 마야에게 달려 나갔다.
이사벨과 이미 기절해버린 맥스는 오스틴의 동료로 보이는 여기사가 지켜주고 있으니, 연막안에 가둬지지 않은 리빙 아머들 부터 정리해야 한다.
* * * * *
...시야가 차단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데팔은 그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막 속에서 창을 거머쥔채 묵묵히 정면을 노려 보다가,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는다면, 몸으로 느끼면 된다.
느껴지지 않으면, 귀로 들으면 된다.
하지만.
"...역시 보통이 아니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력의 파동도, 리빙 아머들과 전투를 치르느라 거칠어졌을 터인 숨결의 떨림도, 진한 연기 사이를 파헤치고 움직이고 있을 터인 그들의 움직임도.
어느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유령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그 남자가 파티를 떠났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때, 곧바로 용사를 노렸어야 했다.
오스틴이 빠진 용사 파티를 유인해 내기 위해서, 인간들의 보급 부대들을 계속해서 습격하며 그들을 끌어들인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꼴이다.
데팔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금의 상황에 조용히 분노를 짓씹으며, 감았던 눈을 천천히 열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아직도 시야를 가리고 있는 연막의 회색 연기와, 볼트의 폭발로 너덜너덜해져 덜렁거리는 자신의 왼손 뿐.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볼트를 어렵사리 손으로 잡아 채기는 했지만, 설마 잡아채는 순간 볼트가 터져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쐐애액!
리빙 아머들의 절그럭 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연막 속에서, 또 다른 볼트가 공기를 찢으며 날아들었다.
급히 몸을 돌려 볼트를 피해 내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빠르게 달려드는 두 번째 볼트는 피하지 못했다.
"크하...!"
쇄골을 관통하며 살을 비집고 들어온 볼트는 여간 아픈 게 아니었다.
비록 인조인간 이라지만, 아가일의 첫 번째 작품이었던 데팔은 고통 이라는 감각과, 인형으로서 가져서는 안 되는 '감정' 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한없이 인간에 가까운 실패작이었다.
비록 감각은 없지만 감정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던 바커스 역시 실패작이었으니, 그리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아니다.
다만 두려운 것은, 자신 같은 실패작이 언젠가 대체될 것이라는,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역시 감정이라는 것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쇄골을 비집고 들어오는 고통과 함께 수면위로 떠오르는 쓸데없는 잡념들에, 데팔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창을 고쳐 잡았다.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야 한다.
챙!
순식간에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숏소드의 찌르기를, 묘기에 가까운 기묘한 몸놀림과 창술로 막아 낸다.
그러나, 숏소드를 막자 마자 오른쪽에서 날카로운 단도가 연막을 가르며 갈빗대를 노려 오는 것은, 막지 못할 것이다.
막지 못한다면 피할 뿐.
데팔은 조금 전 오스틴이 자신의 창을 흘렸듯이, 그대로 오스틴의 숏소드를 뒤로 흘리며 로빈의 번개 같은 찌르기를 간신히 피해 냈다.
시야가 가려져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평등한 악조건이지만, 저 둘에게는 아니다.
관통당한 쇄골과 찢겨진 손의 상처는 인조 인간 특유의 재생 능력으로 인해 천천히 수복되어 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껏 바닥에 흩뿌려진 피 까지 되돌릴수는 없는 것이었다.
피 냄새.
그것이, 저 두 마리의 사냥개들에게 눈이 되어 주고 있었다.
몇 차례 합을 주고받은 뒤, 사냥개들은 다시금 짙은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우읍.... 퉤!"
데팔은 창을 움켜쥐며, 별안간 목구멍을 넘어 울컥하고 올라온 피를 뱉어 내었다.
검붉은 피가 섞인 침이 바닥에 떨어지며 철퍽 하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미간을 겨냥하며 날아드는 볼트와 정확히 폐가 자리한 위치를 노리고 난폭하게 날아오는 투척용 단검을 가까스로 피하며, 데팔은 눈에 핏대를 세우고 자세를 고쳐 잡는 것이었다.
대체 연막은 언제쯤 사라지는 것일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연막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필시 마법사의 짓일 것이다.
그때, 데팔의 등 뒤로 새로운 인기척이 별안간 불쑥, 몸을 드러 내었다.
"여기에 있었군."
손에 움켜쥔 리빙 아머의 투구를 우드득 우그러 뜨리며, 로이먼 사제는 붉은 눈을 흉흉하게 빛내곤 데팔을 직시했다.
"그분을 부정하는 추악한 뿌리를, 오늘로 뽑아내겠다."
"...신앙심에 눈이 멀었구나.어리석은 사제여."
데팔이 다시금 로이먼을 찌르기 위해 창머리를 돌리던 찰나, 로이먼의 옆쪽에서 날아드는 가시 채찍을, 데팔은 옆구리를 스치는 정도로 간신히 피해 내었다.
"...돌아버리겠군."
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