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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14화 (14/106)

〈 14화 〉 14. 사냥개는 솥에 삶아진다

* * *

연기 속에 숨어 데팔을 중심으로 천천히 돌며 틈을 노리고 있자니, 공기를 찢어 발기는 듯한 흉악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채찍 소리."

로이먼이 가세 한 건가.

슬슬 힘이 빠졌을 터인 데팔의 숨통을 최대한 빨리 끊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짧은 시간 동안 무리하게 사용한 숏 소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내렸다.

"쯧..."

데팔의 창과 격하게 부딪쳐 날이 꽤나 상해 버린 숏소드를 보곤, 절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숏소드를 계속 쓰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기에.

빠르게 판단을 마치고, 숏소드를 허리춤에 달린 칼집에 집어넣은 뒤, 허벅지에 달려 있던 단검을 꺼내 쥐었다.

"로빈."

여전히 채찍이 휘몰아 치고 있는 쪽을 노려보며 조용히 입을 열자, 로빈이 소리 없이 안개를 뚫고 나왔다.

"...선배님."

"슬슬 끝내야겠다. 데팔의 체력도 적당히 빠졌고, 로이먼이 가세했다. 할 수 있지?"

"네."

로빈이 다시금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단검을 역수가 아닌 정수로 쥐었다.

위에서 아래로 찌르기보다는 아래에서 위로 찌르는 것이, 공격이 막혔을 때에 대처하기 빠르기 때문에.

나는 소리와 기척을 지운채 조용한 걸음걸이로, 피 냄새가 진하게 퍼지고 있는 곳을 향해 묵묵히 걸어나갔다.

얼마 안 가 보이는 것은, 자욱한 연기를 찢어 발기며 가시 채찍과 플레일을 휘두르고 있는 로이먼과,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처를 가진 채 허겁지겁 로이먼의 공격들을 막아 내는 데팔의 모습.

내가 단검을 든 채로 무작정 난입하면 로이먼 저 미친 새끼가 휘두르는 채찍에 얻어맞을 수도 있으니, 나는 망설임 없이 단검을 집어넣고, 나의 영원한 친구인 쇠뇌를 들어 볼트를 장전했다.

채찍같이 다루기 어려운 무기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후우..."

오리하르콘 볼트촉과, 미스릴 합사로 만들어진 현의 힘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밀하고 폭력적인 무기.

급소를 맞는 순간, 운 좋게 얕은 상처로 끝난다는 희망적인 상황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천천히. 볼트의 촉 끝으로 시야를 좁히고, 숨을 가다듬는다.

목표는,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데팔의 목 언저리.

볼트의 촉 끝과 데팔의 뒷 목이 교차하기 직전의 순간.

"......잡았다."

­ 투웅!

미스릴로 꼬아진 현을 떠나간 볼트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엄청난 속도로 데팔의 목을 향해 빠르게 날아 갔다.

볼트가 쏘아져 날아가는 그 순간에도, 데팔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볼트를 눈치채고 피하려 했지만, 로이먼의 채찍과 플레일을 피하면서 상처를 입은 몸으로 내 볼트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크하악...!! 끄르륵..."

목에 볼트가 틀어박힌 데팔이 숨 넘어가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오른쪽에서 튀어 나온 로빈의 단도가 데팔의 옆구리를 난폭하게 물어뜯고, 로이먼의 강철 채찍이 기다렸다는 듯이 데팔의 다리에 휘감겨 당겨졌다.

궁지에 몰린 사냥감이 창을 놓치며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곧바로 달려 나간 나는 데팔의 창을 멀리 걷어차버린 뒤, 아직도 연막의 연기를 가두고 있을 마야를 향해 외쳤다.

"마야! 이제 그만 해도 돼!"

마야의 위치를 가늠하기 힘들어 큰 소리로 내지른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얼마 안가 뭉쳐 있던 연기가 화악­ 하며 사방으로 퍼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카학...!!! 끄륵... 끅..."

연기가 걷히고, 사냥이 끝났다.

* * * * *

로이먼이 데팔에게서 볼트를 뽑아 치유의 빛을 쐬어 주는 모습을 본 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긴박한 전투로 잔뜩 긴장된 몸을 늘어뜨리곤, 알렉시스 공녀와 용사 파티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산산조각이 나서 주변에 흩뿌려진 리빙 아머들의 잔해 들 사이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숨을 돌리고 있는 그녀들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으며 인상을 팍 구겼다.

"...뭘 꼬나 보는 거야, 좆같은 년들."

내가 인상을 구기자, 지지 않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는 아드리엔과 그레이시를 보니, 어째 괜히 구해 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냥 로이먼만 쏙 빼와서 도망갈걸 그랬나.

...아니, 진심으로.

그런 식으로 한동안 그녀들과 눈싸움을 하고 있자니, 알렉시스 공녀가 흙투성이가 된 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오스틴...! 걱정했어요, 정말. 상처는 없으신가요?"

흙이 묻어 지저분해진 자신의 갑옷 상태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안부를 물어오는 알렉시스 공녀의 태도에,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공녀님께서 저년들... 아니, 용사 파티와 로이먼을 지켜 주신 덕분에, 걱정없이 마음껏 싸울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보다, 로이먼 사제님께서는 괜찮으신지... 심하게 다치신 것 같던데요..."

알렉시스 공녀의 걱정어린 물음에, 로이먼은 데팔의 목구멍을 죽지 않을 정도로만 치유 해 주던 것을 멈추고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 또한 정의로운 빛으로 이 세상을 올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한, 그분께서 내려 주신 하나의 시련 입니다. 이런 상처 따위는 굳건한 정신력으로 가뿐히..."

"오케이, 그만. 거기까지. 넌 씨발 뭘 잘했다고 떠들어?"

"선배님! 저놈, 창이 꽤 비싸 보이던데요? 가져가서 팔고, 돌아가면 한 잔 하시죠!"

화기애애해진 파티원들과의 분위기 속에서, 나는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한 미소를 띄우며 용사 파티가 있는 방향을 등졌다.

이거다.

이게 내가 바라던 동료들과의 유대감이고, 내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파티원들과의 정상적인 의사소통이다.

"그나저나..."

데팔, 저 새끼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의뢰 대로 라면 숨통을 끊어 버려야 하지만, 로이먼은 사지를 자른 뒤 산 채로 박제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진짜, 로이먼의 또라이 기질은 알아줘야 한다.

"로이먼, 잠깐 비켜봐."

"...형제님. 죄송하지만, 사지를 절단하는 것은 제가 해야 할 일..."

"아, 제발. 그딴 짓 하려는 거 아니니까. 내가 넌줄 아냐?"

나는 그대로 로이먼을 밀쳐 내고, 의식을 잃은 채 팔다리가 묶인 데팔의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어딘가 오묘한 색감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푸른색의 전신 갑주와, 특이하게도 입을 보호하는 비버 파츠가 없는 샐릿 투구.

"갑옷이... 뭐랄까, 묘하게 생겼네. 뭐 이런 빛깔이 난다냐. 비버는 또 어따 팔아 먹었는지."

"확실히 신기한 색이긴 하네요... 선배님, 이 갑옷도 벗겨다가 팔아 버릴까요? 돈 좀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데팔의 갑주를 손가락으로 뽀득 뽀득 문지르며 로빈과 잡담을 떨고 있자니, 별안간 내 등 뒤에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오스틴. 우리 얘기좀 해."

꼭 눈치가 없는 애들은 대화에 끼는 타이밍도 못 잡더라.

쭈뼛거리며 말을 걸러 온 아드리엔에게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나는 로빈과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럴까? 확실히, 이 새끼 갑옷 팔면 짭짤하게 벌겠는데."

"영주님께 진상하는 건 어떤가요? 군데 군데 부서지긴 했지만..."

"그런데, 아가일 그 새끼는 자기 심복이 뒤지는데 가만히 있네. 얘도 참 짠하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솥에 삶아지는 법이죠."

그리 말하는 로빈의 얼굴은, 어쩐지 조금 울적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 괜한 얘기를 꺼냈네."

"아뇨. 괜찮아요... 레인저는 이제 나왔으니까."

한편, 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로빈과의 대화를 이어가며 개무시를 하자, 아드리엔은 조금 짜증이 난 듯 무언가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다시금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오스틴. 우리 잠시만 얘기 좀 하자, 응? 용사도 너에게 할 말이 있다고..."

에이 시팔, 상대가 대화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는 데 눈치도 없이 계속 말을 걸어대네.

나는 마른침을 퉤­ 뱉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실례지만, 누구세요?"

"...그러지 말고, 잠깐이면 되니까."

내가 용사 파티에 있을 적에 매번 짓던, 주름이 패일까 걱정될 정도의 찡그린 표정과 비아냥 거리는 태도가 아니라 그런 건지, 아드리엔의 태도는 나에게 굉장히 어색하게 다가왔다.

"아니 잠깐이고 자시고, 누구시냐구요."

"오스틴...! 말장난을 하려고 온 게 아니야...!"

"말장난은 무슨. 웃기고 자빠졌네."

아드리엔의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니, 성미가 불같은 아드리엔은 짜증이 치솟는 것을 참고 있는 것 같다.

"미안한데... 아니, 사실 좆도 안 미안 하고, 나는 이제 너희 같은 사람들 모르거든. 그러니까 말 걸지 말아줄래?"

"오스틴. 제발...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이야기 좀 하자..."

...이 씨발, 근데 듣자 듣자 하니까.

"야. 그전에, 너 나한테 할 말 없냐?"

"어, 어...? 할 말이라니, 무슨..."

"대화하자는 둥, 얘기 좀 하자는 둥, 이딴 소리 하기 전에 말이야. 네가 해야할 말이 있지 않아?"

이 건방진 깐프년은, 아직도 사과를 해 오지 않고 있었다.

진정성이 있던 없던, 적어도 이사벨과 마야는 내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알아서 사과를 해 왔다.

아드리엔 역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아는지, 잠시 입을 오물거리며 망설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그건... 아! 됐고,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왜, 평소처럼 싸가지 없는 아드리엔으로 돌아온거야?"

"...이... 이익...!!"

"애초에, 너희가 부르면 내가 예~ 하고 달려가야 하냐? 별 좆같은 경우를 다 보겠네. 누굴 종놈으로 아나."

내가 평소의 아드리엔처럼 빈정거리는 태도를 고수하자, 결국 아드리엔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나를 노려보며 씩씩대다가, 이내 발을 쿵쿵 구르며 용사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용사 파티 쪽을 쳐다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용사가 직접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 제발. 씨발 오지 마."

용사는, 내 표정이 썩어들어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오스틴. 잠깐 이야기 좀 하면 안 될까? 다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래. 정말 잠깐이면 되니까..."

"너... 아니, 됐다."

용사의 면전에 대놓고 욕을 내뱉으려니, 어쩐지 용사의 눈이 구슬퍼 보였다.

"로빈, 나 잠깐 쟤들이랑 얘기 좀 하고 올게."

"...선배님. 괜찮으세요?"

"괜찮... 아니, 솔직히 안괜찮은데, 그래도 확실히 끝을 내야지."

나는 옆에 있던 로빈과 다른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서 걸어가는 용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너희도 참 징하다. 나한테 그따위 푸대접을 할 때는 언제고, 무슨 낯짝으로 이제 와서 붙잡아?"

"...미안해."

"염병..."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들어나 보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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