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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15화 (15/106)

〈 15화 〉 15. 같은 처지, 다른 방식

* * *

용사를 따라 내 일행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도착하니, 마야를 비롯한 다른 용사 파티원들이 전투에 지친 듯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주변에 산산이 조각난 채 무더기로 쌓여 있는 리빙 아머들의 파편이, 방금전 까지만 해도 격렬한 전투가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리빙 아머들을 아주 작살을 내 놓으셨구만. 힘도 좋아."

나는 괜스레 능청을 떨며, 나를 향해 눈을 흘기는 그녀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드리엔과 그레이시는 어딘가 못마땅해 보이고... 애초에 나라는 인간 자체를 싫어하는것으로 보였으니, 당연하겠지.

사실상 저 두년이 제일 못된 년들이다. 독한년들.

"마야, 좀 떨어져라. 앉아 있기 불편 하잖아."

"...싫어."

"아, 제발 좀. 진짜."

내 옆에 딱 붙어 앉은 마야를 억지로 밀어내며 이사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처음 보는 남자 아이가 이사벨의 치료를 받으며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야. 저 꼬맹이는 뭐야?"

"......"

"...왜 대답이 없어? 말 한 사람 무안하게."

어째선지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시선을 슬쩍 피하는 모습에, 나는 더욱더 의문을 가지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너희들 척후를 새로 뽑았다고 들었는데... 어째 코빼기도 안보인다? 뭐, 정찰이라도 하러 갔어?"

조용한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애써 대화의 물꼬를 트려고 함에도, 그녀들은 내 질문을 듣곤 대답은커녕, 그저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대답하기 싫어?"

"......"

...아니 근데, 이 미친년들이.

아가리에 보리빵을 쑤셔 박았는지, 얘기 좀 하자면서 이렇게 어거지로 데려와 놓고 혓바닥이 움직일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얘들아 대화좀 하자며. 몸의 대화를 원하는거니? 씨팔, 이 집 손님 대접이 왜 이래?"

내가 짐짓 짜증을 내며 언성을 높이려 하자, 내 맞은편에 앉아서 입을 우물거리던 용사 대신, 마야가 입을 열었다.

"...저 애가... 우리 파티의, 새로운... 척후야."

"어? 누구?"

그래도 대답은 해 주는구나.

마야의 행동에 활짝 웃으며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

"...야. 새로 뽑았다는 척후는 뭐 투명화 능력이라도 있냐? 내 눈에는 저 꼬맹이랑 이사벨밖에 안보이는데."

설마... 아니겠지. 씨팔...

...물론 내가 아는 그녀들이라면, 콧구멍에 통나무가 들어가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만약 저렇게 새파랗게 어린 꼬마 아이마저 척후랍시고 집어넣고 잡일꾼으로 부려 먹었다면, 난... 정말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사벨의 옆에 누워 있는 저 아이가... 우리 파티의 새... 척후야."

그러나 내 바람이 무색하게도, 내 오른편에 앉아 있던 마야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ㅁ... 뭐? 내가 잘못 들었나. 뭐라고?"

"...저 애가 우리 파티의... 새로운 척후야."

참으로 오래간만에 만난 용사와 똘마니들은, 기껏해야 15살쯤 됐을 법한 어린 애새끼를 척후랍시고 데리고 다니고 있었다.

"...이거 완전 또라이 새끼들 아니야."

* * * * *

"으... 아... 여긴...?"

눈이 부실 정도로 따가운 빛이 화악­ 하고 시야를 가득 메우는 바람에, 나는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사람이 들어 있지 않은 채 움직이는... 살아 있는 갑옷들과 싸우던 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 이었다.

...빛이 손을 관통하며 보이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주홍빛이 불안한 내 심신을 조금이나마 안정시켜 주었다.

그런 따스한 색감과 분위기에 심취한 나머지, 차마 눈을 가린 손을 내리지 못하며 그저 멍하니 누워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왔던, 나를 향해 매섭게 몰아친 살아 움직이는 갑옷의 번뜩이는 칼날.

여기는... 사후세계일까.

"...난, 죽었... 구나."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았는데... 용사님께 거짓말을 해서, 파티에 폐만 끼쳐 드려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엄마와 아빠를, 단 한 번이라도 더 볼걸.

"죽긴 누가 죽어. 재수 없는 소리를 하지 말고 일어나라, 꼬맹아."

그러한 상념에 잠긴 와중에 느닷없이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기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벌떡, 상반신을 일으켰다.

환한 빛에 눈을 찡그리기도 잠시, 점점 또렷해지는 내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누워 있는 내 옆에 쭈그려 앉은 채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조금 껄렁해 보이는 이름 모를 남자의 얼굴 이었다.

"...아저씨는 누구... 세요...?"

나는 여전히 쭈그려 앉은 채 나를 빤히 쳐다보는 남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저기..."

"......"

침묵.

...어쩐지, 엮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아저씨다.

하지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알고 싶었기에, 나는 다시금 이름 모를 아저씨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 아저씨... 실례지만, 누구... 세요...?"

"......"

여전히 침묵을 지키며 나를 내려다보는 아저씨의 태도에, 나는 살짝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아저씨, 귀가 안 들리는 분... 이신가...?

...아냐. 방금은 내 말을 들으시고 죽긴 누가 죽었냐고, 일갈 하셨으니까.

어째서인지, 여전히 나를 빤히 바라보는 아저씨의 눈에 분노가 서린 것이 느껴졌기에, 나는 더욱더 몸을 움츠리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아저씨는 누구..."

"...이 씨발럼이, 언제까지 그러나 가만히 보고 있었더니."

갑작스레 내 귀를 때리는 욕설에,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아 이름 모를 아저씨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 쥐방울 만한 새끼가... 야, 니 눈에는 내가 아저씨로 보이냐? 어?"

"네, 네...?! 저기, 그게 무슨..."

이게 무슨 소리지...?

눈앞의 아저씨가 뭐라고 말씀하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가뜩이나 어지러운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 버렸다.

삐죽빼죽 솟아나 까슬까슬 해 보이는 수염과, 어딘가 퀭한 눈동자... 방금까지 대체 뭘 하다 온 건지, 이리저리 헝클어진 밝은 갈색의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

"...아저씨 맞는데...?"

"나 스물 한 살이야. 형이라고 불러야지, 누굴더러 아저씨라고... 너 지금 나 돌려 까는 거냐?"

"아... 아뇨...!! 죄송합니다, 아저... 아니, 형..."

"...시팔, 좆같네. 면도를 일주일 넘게 못해서 그런가..."

어쩐지 억울해 보이는 아저... 이름 모를 형의 표정에 눈치를 보며,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주변의 상황을 둘러보았다.

용사님과 일행분들은... 무사 하시구나.

주변에 산산이 조각난 갑옷 파편들을 보아하니, 다행히도 살아 움직이는 갑옷들을 이긴 것 같다.

"형은 대체 누구... 세요?"

어쩐지 조금 기분이 안 좋아 보이지만, 그래도 나쁜 형은 아닌 것 같기에, 나는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가 아닌 형 이라고 부르자, 이름 모를 형은 드디어 대답할 마음이 생긴 건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네 전임자."

* * * * *

한바탕 얼굴을 붉히며 분노를 표출하니, 당황한 용사와 파티원들이 나를 붙잡고 화를 가라앉히게 하기 위해 다분히 노력했다.

덕분에 화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역시 그녀들이 이런 어린애를 위험한 곳에 데리고 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저기... 어... 오스틴형...?"

방금까지 나를 아저씨라 부르던 녀석에게 욕을 박으며 일갈을 했더니, 어느새 태도가 굉장히 공손해진 꼬마, 맥스가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어, 왜."

"저는... 그... 여기 앉아 있을까요...?"

우물 쭈물하는 맥스의 태도에, 나는 내 일행들이 쉬고 있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잠깐 저기로 가 있을래? 가면 웬 이상한 사제 아저씨가 한 명 있을 텐데, 그냥 오스틴 형이 보내서 왔다고 하면 될 거야."

"어... 네..."

지금부터 나눌 이야기는, 아직 어린애가 듣기에는 이른 어른들의 어두운 이야기니까. 굳이 들려 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게 맥스를 잠시 다른 곳으로 보내고, 나는 얼굴을 굳히며 용사와 파티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할 얘기가 뭔데."

맥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잠시 일단락되자, 용사는 이제야 입을 열 마음이 생긴듯하다.

"...예전처럼...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하고 싶었어."

"그 말을 꺼내기에는, 너희가 나에게 한 행동들이 양심에 걸리지 않아?"

내 말에 정곡을 찔렸는지, 입을 오물거리다가 그대로 고개를 푹 숙여 버리는 용사.

"...미안해."

"...나는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 했다.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심지어 안마도 해주고. 아무리 나를 향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욕을 해도 웃는 낯으로 대하려고 진심으로 노력했어."

"......그건...... 응..."

"물론, 너희를 완전히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3년이 지나도록 질질 끌고 있는 마왕군과의 전투에 지쳤겠지. 그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나였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어."

그래. 3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죽이고, 피를 봐 오는 생활을 하다 보면, 심신이 피폐해지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든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 어느 정도 이해는 해. 그래도..."

나도 한때는 마왕을 처단한다는, 어찌 보면 무모한 꿈일수도 있는 꿈을 꾸곤 했다.

용사를 비롯한 파티원들과 함께 마왕을 처단하고, 세상을 구한다.

이 얼마나 가슴뛰는 영웅담인가.

한때는 용사, 이유정 역시 정말로 동화책에 나오는 용사처럼 정의롭고 선량하던 시절이 있었다.

항상 남을 돕고, 불의를 무시하지 않으며, 언제나 선봉에 서서 정의를 부르짖는 용사.

나는, 그런 용사의 선량한 행보가 영원할 줄 알았다.

웃기는 소리였다. 어떻게 사람이 3년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돼지를 도축하듯 마물들을 죽여대는데, 맨정신으로 멀쩡할 수 있겠는가.

단순히 모험가들처럼 무언가를 사냥하고, 던전을 탐험하는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피가 튀고 살점이 튀는 전투의 연속.

용사였기에 언제나 선봉에 섰으며, 용사였기에 언제나 가장 위험한 곳에 던져졌다.

그래. 점점 정신이 피폐해지고, 무언가를 죽이는 것에 질렸겠지.

매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이 두려웠겠지.

...그런데 말이야.

"...너희가 나한테 그랬으면 안 됐어."

나는 안 그랬겠냐?

"이 씨발년들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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