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19. 인간관계, 삶의 이정표
* * *
“그래, 그게 다야?”
“...내가 아는 한에서는... 이게 최선이다...”
내 질문에 고분고분 성실히 대답한 데팔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팔의 말을 종합해보자면.
첫째, 보급부대의 습격을 명령한 것은 아가일이 아닌, 마왕과 마왕의 참모진 이었다.
이로써, 아가일과 마왕군의 본대와의 연락선은 아직 끊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롬팔리아 습격대원은 아가일의 7군단에 아직 조금 남아 있다. 라이칸슬로프와 헬하운드를 탄 홉고블린들로 구성된, 속도에 중점을 둔 부대.
아마 숲 초입에서 로이먼이 상대했던 네 마리의 라이칸슬로프들도, 데팔의 습격대에 속하는 놈들이 아니었을까.
이번에 리빙 아머를 데리고 온 것은, 용사 파티를 습격하려면 조금 더 단단한 마물들이 적합 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셋째, 이게 가장 중요한데, 아가일은 또 다른 인조 인간을 만들고 있는가? 하는 질문 이었다.
“그래서, 그건 모르시겠다?”
“저... 정말로 모른다! 나라고 해도, 창조자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전부 아는 것은 아니다!”
로이먼의 플레일과 가시 채찍을 몇 번이고 들이댔지만, 데팔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결 같았다.
...자기가 모른다는데, 뭐 어쩌겠나.
내가 대답을 들은 뒤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자, 데팔이 슬쩍 눈치를 보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네놈 아니, 너는 용사 파티를 나오지 않았나? 그런 것은 왜 물어보는...”
“아... 그거?”
생각해 보면, 데팔의 말이 맞았다.
용사 파티를 나온 마당에, 아가일이 또 다른 인조 인간을 만들던 말던 딱히 내 알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물어보는 것은, 그냥...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내 대답을 들은 데팔은, 잠시 벙찐 표정을 짓다가 어이없다는 말투로 되물었다.
“......뭐?”
“아니, 왜... 그냥 궁금해서 물어볼 수도 있는 거 아냐? 솔직히, 아가일이 직접 만든 인조 인간은 존나게 잘생겼거나 존나게 예쁘던데, 또 만들고 있을지 궁금한 걸 어떻게 참아.”
“지금까지... 겨우 그딴 이유로, 내게 이런 협박과 굴욕을...”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만은 아니다.
일단 아가일이던 마왕이던 나와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고, 심지어 아가일은 본래 내가 죽이려던 상대였다.
적에 대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 아니겠는가?
애초에, 데팔을 사로잡은 시점에서 아가일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해 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하지만, 나는 굳이 이러한 이유를 데팔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데팔은 내가 그녀에게서 들은 정보로 아가일을 어떻게 해 보려는 줄 알고 끝까지 버팅겼었나 보다.
“아니... 난 또 왜 이렇게까지 대답을 안하나 했지. 뭐 자존심 때문인가? 싶었는데.”
“...크읏... 빌어먹을놈...”
“자... 그럼. 이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누구 맘대로 그만한다는 것이냐! 네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추태를...”
데팔의 징징대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모닥불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남은 건... 데팔, 너야.”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긴? 너에 대한 처분이 아직 남아 있다는 말이지.”
여전히 시선은 모닥불을 향한 채로, 허벅지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어 오른손에 거머쥔다.
“이... 이봐... 나는 하라는 대로 했...”
“으흠... 그런데, 딱히 나한테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런 억지가...!”
솔직히 생포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데팔에게서 정보를 뽑아낸 뒤에는 곧바로 퀼른으로 데려가 영주에게 떠넘길 심산이었다.
애초에 그게 본래 목적이기도 했고, 그냥 내버려 둬봤자 내 목숨만 위태로울뿐 더러, 데팔이 굳이 아가일에게서 마음을 돌려 우리 파티에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글쎄.
과연 그럴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가일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다고 하는 데팔은 상당한 미인이었다.
만약 이런 데팔을 꽁꽁 묶어서, 영주에게 넘겨 주었다고 생각해보자.
깔끔하게 목을 뎅겅 당하면 그나마 나은 처지 일것이다.
만약 죽이지 않고 살려 둔다면, 데팔은 어떻게 될까?
영주가 호색한이라는 소문은 들은 적이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 예쁘장한 포로를 그냥 내버려 둘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첩이나 성노예로 부려 먹히다가 비참히 죽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좋은쪽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마굿간 똥치우는 하녀 신세가 되지 않을까?
비록 데팔이 밥이 되든 떡이 되든 내 알 바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그건 좀...
“...선배님.”
그때, 천막에서 알렉시스 공녀와 나란히 누워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던 로빈이 내 옆으로 슬쩍 다가왔다.
“어, 왜.”
“꼭... 죽여야 하나요?”
“...글쎄. 생포 해서 넘겨 주면, 어떻게 될지 알잖아?”
포로로 넘겨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여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내 뜻을 알면서도, 로빈의 눈빛은 어쩐지 처연해 보였다.
아가일에게 버림받은 데팔의 처지를 보면서,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지금은 레인저에 있을 때와는 달라, 로빈.”
“알아요, 선배님. 하지만...”
“그만. 알겠으니까.”
나는 로빈에게서 시선을 돌려, 데팔과 눈을 마주하였다.
“후우... 데팔.”
“나를... 죽일 건가?”
“네게 선택권을 주겠다.”
나는, 내 말을 듣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데팔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대로 너를 영주에게 넘겼다가는, 아마 좋은꼴은 못볼거다.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한다고 해도... 솔직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아마 끝은 좋지 않겠지.”
“...”
“...나는 네 의사를 존중해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너를 죽이거나 생포해서 끌고 오라는 의뢰를 받은것 뿐이니까.”
내 말을 들은 데팔은, 잠시 나를 향해 입을 우물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뚝 떨궜다.
“내 말은 대충 알아 들었으리라고 믿는다.”
찌르르르
밤공기에 고즈넉이 울려 퍼지는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비집고 들어왔다.
“창조자께서는... 나를, 버리신 건가?”
“...글쎄.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걸 보면... 아가일이 너를 구하려는 것 같지는 않은데.”
“...감정이라는 것은, 확실히 가져서는 안 되는 것 이었구나.”
그리 말하며, 데팔은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내가... 실패작이라서... 그런 것이다.”
촉촉이 젖어든 눈가와, 떨려오는 목소리.
“...데팔.”
“내가 실패작이라서... 그분의 그릇을 채우지 못해서...!”
실패작이라.
너는 실패작이다, 오스틴. 썩 꺼져라. 다시는 레인저에 발을 들일 생각도 하지 말아라.
“...실패작, 말이지.”
헛웃음이 나온다.
“내 모든 걸 그분께 바쳤는데... 목숨을 다 해 맡은바를 완수 했는데...!!”
저는 사람으로서 살고 싶습니다, 단장님. 일말의 감정도 없이, 그저 기계처럼 무언가를 죽이며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누가 네게 바람을 넣었는지 모르겠군. 랜버트인가? 로빈? 아니, 네놈과 함께 있던 년놈들은 죄다 쓸데없는 생각을 품었으니, 네놈이 원인이었겠지.
세상을 돌아보고 싶다는 것은, 거짓말 이었으니까.
실패작. 한때 나를 가리키던 단어.
그리고 이번에는... 이 죄많은 여자가 짊어지고 있는 단어.
그 단어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기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데팔.”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나는 인간도 아닌 주제에... 인간을 닮은, 추한 존재다.”
“그게 뭐, 어떻다는 건데.”
대체 이 감정은 뭘까.
이 감정은... 언젠가 느껴본 적이 있다.
로빈이, 레인저에서 나가겠다고 했을 때 였을까.
“데팔. 네가 인간이 아닌 것 같나? 천만에.”
데팔은 내게 '감정은 가져서는 안 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생각을 깨부숴주마.
“감정과 지성은 인간의 전유물이다, 데팔. 네가 아직 그것을 모르겠다면...”
데팔은 그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로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헤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냥 받아들여라. 아무도 너를 인외의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아. 너도 한 명의 인간이고, 감정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다.”
인간을 만들어놓고, 인간이 아닌 괴물로서 행동하게끔 명령하는 놈은, 창조자따위가 아니다.
애초에 감정을 심어 버린 것은 아가일이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실패작 치고는 알차게 쓰고 버렸다며 좋아라 하고 있을 테지.
어쩌면, 데팔에게서 감정의 편린을 확인했을 때부터, 이미 다음 인형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찢어 죽일 놈이다.
데팔은, 그런 감정을 마음속 깊이 잠궈두고 묵묵히 할 일을 해왔겠지.
그녀에게, 아가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그곳마저 없어졌다면. 돌아갈 집이 사라졌다면.
“그동안 고생 많았다, 데팔.”
내가 기꺼이, 너에게 새 보금자리를 선사해 주겠다.
단검의 예리한 날에 닿은 밧줄이 투둑 하며 힘없이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데팔이 가지고 있던 마음속의 응어리들이 하나 둘 떨어지는듯 했다.
“...원래는 죽이려 했는데 말이야. 너도 한 명의 인간이었구나.”
밧줄이 풀리자, 엉겁결에 자유의 몸을 가지게 된 데팔은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 이게 무슨...”
“아까는 풀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정작 풀어 주니까 아무것도 못하네.”
그런 데팔에게 필요한 말은, 한마디면 충분했다.
“이제부터 네 좆대로 살아가라, 데팔.”
아가일에게 보란 듯이, 엿먹이면서.
“그거면 된 거다.”
내 말을 들은 데팔은, 나를 꼭 끌어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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