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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20화 (20/106)

〈 20화 〉 20. 불편한 동행

* * *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밤이 지나고, 새벽녘에 일찍 일어난 우리는 퀼른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일단 데팔의 목을 따 오겠다는 의뢰를 받고 숲으로 들어온 것 이었기 때문에, 나와 로빈 사이에서는 퀼른으로 돌아갔을 때 영주에게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토론이 오가고 있었다.

“하, 씨발. 뭐 어떻게 해야 되냐? 데팔을 잡긴 했는데, 이렇다 할 증거가 없네.”

“음... 그렇다면 차라리 갑주만이라도 넘기는 것이...”

“그게 통할지 모르겠다, 나는... 갑옷은 있는데 시체가 없다? 이건 뭐 누가 봐도 의심이 가는데.”

“그... 그래도... 선배님은 전 용사 파티원 이셨는데, 영주 님께서도 믿어 주시지 않을까요?”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다. 데팔을 갱생시켰으니 일이 잘 해결된 것도 맞고, 그로 인해 아가일의 전력이 약화된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만약 의뢰를 성공하지 못했다고 따져온다면, 당장 게이트를 이용해 수도로 가겠다는 내 원대한 꿈이 무너지게 된다.

데팔을 잡아 죽였다는 것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씨발. 기다려야지, 뭐.

만약 안 된다면, 알렉시스 공작 으로부터 게이트 이용 허가서를 발급받을 때까지 2주 정도는 참고 기다릴 수 있다.

용사 파티와 마주치는 문제는 뭐... 그냥 여관에만 틀어박혀 있거나, 정 뭐 하면 여관을 옮기면 되는 문제니까.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그나저나...

“...데팔.”

“음? 날 불렀나?”

“그럼 여기 데팔이 너 말고 누가 있는데?”

얘는 대체 왜 나를 따라오는 거지?

“야, 데팔. 우리 지금 퀼른으로 가고 있는 건 알고 따라오는 거냐? 어제 내가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줬잖아. 알아서 잘 살아가라니까?”

애초에 데팔의 맨얼굴을 본 사람은 없겠지만... 데팔의 창을 보고 그녀의 정체를 알아채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다.

“갑옷은 우리가 영주한테 증거품으로 제출하던, 전리품으로 진상을 하던, 아예 팔아버리던 할 건데... 네가 들고 있는 창을 보고 정체가 들통 날 수도 있단... 표정이 왜 그래?”

내가 잔소리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데팔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보니, 데팔은 볼을 조금 부풀린 채로 뱀눈을 뜨곤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나는 데팔을 생각해서 해 주는 말인데, 내 잔소리가 그렇게 아니꼬왔나?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과자 빼앗긴 애새끼마냥 표정에 심술이 가득하구만.”

데팔에게 불쑥 다가가 표정을 살피려하자, 데팔은 얼굴을 휙 돌리며 나를 밀쳤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런대?

“야. 뭐 나한테 삐졌냐? 갑자기 왜 이래?”

“너... 너무 가깝... 잖나...”

뭐...

“...어... 미안... 그래. 음.”

갑자기 풋풋한 소녀같은 말투로 저렇게 얼굴을 빨갛게 달구고 앙탈을 부리는 꼴을 보니, 어쩐지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어젯밤 이후로 데팔이 조금... 바뀐 것은 대충 알고 있었는데, 아예 사람이 달라졌네.

데팔이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나도 조금씩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기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크흠... 하여튼, 퀼른으로 가면 네 정체가 들통 날지도 몰라. 네가 이제 마땅히 갈 곳이 없어져서 우리를 따라오는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데팔로서 살았던 흔적을 전부 지우지 않는 이상, 우리를 따라오는 건 조금 곤란해. 마왕군으로서 행동했던 일도 조금 그렇고...”

생각해 보니, 창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예 이름부터 바꾸지 않는 이상에야...

“...지우겠다.”

“그래 그래. 이제 네 마음대로 살... 뭐라고?”

“창의 인형 데팔로서의 과거는 지우고 싶다. 그리고... 보급 부대들을 습격했던 것은, 정식으로 사죄하지.”

“그건, 뭐... 그런 걸로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지. 전쟁은 그런 거니까.”

데팔과는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왕군으로서 했던 일들도 결국 아가일의 명령을 따른 결과다.

애초에, 전쟁에서 이건 된다, 저건 안 된다. 이런 게 어딨겠는가?

“인간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를 바꾸어 줄 수는 없겠나?”

그리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 데팔의 눈빛과 말투에는, 어쩐지 간절한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얘가 도시를 이렇게까지 구경하고 싶어 할 줄은 몰랐네.

“괜찮겠어? 물론 너를 갱생시킨건 내가 맞지만, 아무리 어두운 과거라고 해도 그걸 떨쳐 내는 건 쉬운 일이...”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데팔은 자신의 창을 불쑥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무릎을 찍어 올려 창을 두 동강 내버렸다.

“이러면 되겠나?”

“아니, 이 또라이 같은...”

데팔이 원래 이렇게 결단력 있는 캐릭터 였나?

대체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나를 따라오려 하는 거지?

그녀의 무력은 인정하지만, 나는 더 이상 마왕을 무찌르려는 용사 파티의 일원이 아니기에, 무력은 딱히 필요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데리고 다녀 봤자 메리트가 없는데...?

좋은 점이라고 하면... 얼굴이 예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정도?

내가 이렇게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결국 데팔 쪽에서 먼저 답답한 듯 입을 열었다.

“네놈이 나를 책임져 준다고 하지 않았나...! 나더러 이제부터 인간으로서 살라는 둥, 내가 책임져 줄 테니 안심하라는 둥...”

이 미친년이 뭐라는 거야.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만한 발언을, 데팔은 서슴없이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목적은 이뤘으니, 이제 꺼지라는 말인가!”

“아니, 씨발 내가 언제 그딴 말을...”

“책임져라! 나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네놈이 책임지란 말이다!”

이제는 아예 얼굴이 터질 것처럼 시뻘개진 데팔은, 푸른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눈물 맺힌 눈으로 내 멱살을 붙잡고 나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다른 일행들이 말려주길 바라며 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이 씨발. 아예 건빵을 씹으면서 나와 데팔의 촌극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케헥... 자... 잠깐만... 이것 좀 놓고...”

“책임져! 책임지란 말이야!”

“알... 알았어!!! 씨발 책임질게!!! 내가 너는 책임지고 사람 구실 하게 만들 테니까...! 케헥! 이것 좀...”

내게 확답을 들은 데팔은, 그제야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을 풀어 주었다.

이 미친년... 미노타우로스도 아니고, 힘이 왜 이렇게 센 거야?

“선배님... 저는 이래도 될련지 모르겠네요.”

“너는 나중에 보자.”

나의 독기어린 말에, 로빈은 흠칫 어깨를 떨며 내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내 멱살을 잡았던 데팔은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방실 웃음꽃을 띄우며 내 등을 꾹꾹 밀었다.

“흐흥... 자, 그럼 어서 퀼른으로 가지!”

“씨발... 내 인생... 아주 소설같은 인생이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젠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 * * * *

메르덴 숲 깊은 곳에 있는, 철통 같은 방비를 자랑하는 요새.

마왕군의 문양에 7 이라는 숫자가 적힌 깃발아래, 두 명의 남녀가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온 것이냐.”

마왕군 제 7군단을 지휘하는 꼭두각시의 아가일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재수 없는 놈.'

언제나 아가일의 일에 하나하나 딴지를 걸며, 아가일을 메르덴 숲으로 보낸 것은 이 남자가 저지른 일들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과거 눈앞에 있는 남자와의 좋지 못한 기억으로 인해, 그녀는 도무지 그를 좋게 볼 수 없었다.

“아가일. 데팔은 폐기 한 것 같더군?”

“...그 아이는 언젠가 놓아줄 생각이었다. 바커스와 다르게, 아직 인간들에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저런, 어련하시겠어. 그 마음 여린 데팔이 어떻게 그렇게 인간들을 찢어 죽이나 했더니... 아주 비열한 방법을 썼더군? 은근슬쩍 세뇌 마법까지 써가면서 인간들을 도륙 시키더니, 이제 와서 부모 행세인가? ”

­ 쾅!!!

아가일의 주먹이 큰소리를 내며 탁자를 내리치자, 탁자의 한가운데에 큰 구멍이 뚫렸다.

“...그 이상 혓바닥을 놀린다면, 네놈도 밀랍틀에 넣어 주지.”

“어이쿠, 밀랍 인형 신세는 사양인데. 하하...”

지금 당장 눈앞의 남자를 죽여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이 숲은 놈의 '영역' 이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아가일이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까스로 가라앉히자, 남자는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가일.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껏 네 뒷바라지를 해 준 것을 잊은 건 아니겠지?”

“...원하는 게 뭐지?”

“후르릅... 아냐 아냐. 딱히 뭘 원해서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고... 가족끼리 왜 이렇게 거리를 두실까.”

아가일은 뿌드득­ 주먹을 쥐며, 손에 들어 있던 밀랍 펜을 가루로 만들었다.

가족은 무슨, 이 깎아 죽일 놈이.

“...한 번만 더 가족이라고 들먹였다가는, 그 사지를 찢어서 샐러맨더 밥으로 던져 버리겠다.”

“많이 예민하네~ 으흠... 좋아!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어느새 찻잔을 텅 비워 낸 남자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아가일을 향해 입을 열었다.

“데팔의 신호가 완전히 끊겼어. 아마 마나석을 빼앗긴 모양인데... 지금까지는 네 실책을 어느 정도 덮어줬지만, 마나석을 잃은 것은 죄질이 커. 내가 다 덮어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데팔에게 걸려있던 네 세뇌도 풀렸을 테고, 어쩌면 인간놈들에게 홀라당 넘어갔을지도 몰라.”

“...내 실책이다. 그에 대한 죗값은 받겠다.”

“그런 뜻이 아니라... 하아...”

아가일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남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최근 철의 고원 쪽 전선도 고착화 되어 가고 있어. 지지부진한 전선 때문에 마왕님께서 조금 골치가 아프신 모양이던데... 뭐, 헌틀리가 다른 4명의 시체를 수집해준 덕분에, 전력이야 다시 보충되겠지만.”

“헌틀리가 그놈들의 시신을 수거했나?”

“음, 뭐... 용사가 그 네 명의 시체를 아주 걸레짝을 만들어 놨더라고? 그래도... 헌틀리의 실력은 확실하니까. 의식에 필요한 물건이 모자라서 네 명 전부 살릴수는 없을지라도, 둘 정도는 확실하게 되살릴 수 있다던데?”

“...넷 모두를 되살리지는 못하는 건가... 본대의 상황도 그리 좋지는 않은 모양이군.”

“그 네 명이 당해 버리는 바람에, 전력이 약화돼서 그래. 그러니까... 너도 빨리 메르덴 숲을 돌파해야 할 거야. 이번 데팔 일은 내가 어떻게 무마시켜 볼 테니까.”

“...고맙다.”

“하... 그래. 바쁜데 와서 미안하다. 내 얼굴도 보기 싫을 텐데.”

그리 말한 남자는, 마족 특유의 자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가일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등을 돌려 게이트를 열기 시작했다.

“오빠는 간다. 조만간 지원 병력이 올텐데, 너무 험하게 다루지는 말고. 용사한테 죽지 마라.”

이윽고 남자가 게이트 속으로 사라진 뒤, 게이트가 남아 있던 허공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가일의 입이 나지막이 열렸다.

“...오빠는 무슨...”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지 않은 채로, 아가일은 그녀의 참모진들이 모여 있는 천막을 향해 걸어갔다.

용사에게 당하면, 오빠에게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도 없을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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