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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27화 (27/106)

〈 27화 〉 27. 살면서 조심해야 할 세가지

* * *

앞으로 뻗어 나온 짧은 오른 다리는 몸의 무게를 지탱한다.

비틀어지는 허리, 근육이 꿈틀거리는 왼쪽 어깨.

일련의 과정이 이어지는 모습을 눈으로 포착하고, 그 짧은 시간에 다음 동작을 예상한다.

왼주먹. 너클 파트도 생각지 않고 날리는 것을 보아하니, 상대는 주먹 싸움을 한 경험이 거의 없다.

타이밍은... 지금.

­ 쾅!

“쥐 새끼처럼 피하기나 하고... 크아악!!!”

“이 좆만한 새끼들. 뭘 믿고 그렇게 깝쳐댄 거야?”

왜 이렇게 말들이 많은 걸까. 나는 그대로 멱살을 틀어 잡고 아까부터 거슬렸던 주둥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크학...! 이...이거 놔!”

“야이 씹년아. 날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무... 무슨 개소리야!”

“근데 이 새끼가...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 퍼억!

“커헉...!”

이번에는 명치를 향해 주먹을 날리자, 내 팔을 붙잡은 손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왜 나를 화나게 해! 왜!!! 내가 무슨 죄를 졌어!!! 대체 왜! 왜!! 왜!!!”

“자... 잠깐... 내가 사과...”

“내가 화병 걸려 뒤져 버렸으면 좋겠어!!! 어!!! 그런 거야!!! 만약 그렇다면, 난 너를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릴 수밖에 없어!!!”

“아... 아니... 나는 그런... 우아아악!!!”

“내 말에 말대답 하지 마!!!!!!”

안 되겠다. 이 새끼는 말이 안 통하네.

나는 멱살을 잡은 손을 들어 올려, 난쟁이 새끼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 우당탕탕!

“저런 미친놈이...! 고트렉이 당했어!”

“주인장! 당장 수비대 불러! 저 미친 새끼가 우리한테 주먹질 하는거 똑똑히 봤잖아! 주인장!!!”

하지만, 로빈에게 입막음 비용을 건네받은 여관 주인은 이미 주방으로 피신한지 오래였다.

조금 전 내 쇠뇌를 채간 놈부터 주먹을 갈겼는데, 그 땅딸보 새끼의 이름이 고트렉인 모양이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키고, 고트렉을 일으켜 세우는 난쟁이 새끼들을 향해 사자후를 질렀다.

“이 씨발 난쟁이 똥자루 새끼들아!!! 다 덤벼!!!.”

내가 난쟁이라는 말을 입에 담자, 별안간 나를 노려보는 드워프들의 눈빛이 싹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저 새끼가... 야! 그냥 죽여 버려!”

“엘프 년들처럼 비실비실한 새끼가! 감히 난쟁이라고 이빨을 까!”

다 덤벼주라. 제발.

그냥 싹 다 복날 개패듯이 패버리게.

나를 향해 덤벼드는 드워프 무리들을 바라보며, 나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끓어 오르는 사나이(나만 해당됨) 들의 주먹다짐!

“오늘 니들 다 불구로 만들어 버릴 거야아악!!!”

* * * * *

“끄응... 그러니까. 오스틴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 말이지?”

마야의 질문에, 일행들을 급히 불러 모은 아드리엔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분명 연갈색의 머리카락과 맑은 하늘 같던 눈빛은 기억이 나는데... 그 뺀질이의 얼굴을 전부 기억해내려고 하면, 얼굴이 흐릿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언제부터... 그랬어?”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억해 내려 하면 기억이 났다는 거야.”

아드리엔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마야는 다시한번 끄응­ 신음을 삼키며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어쩐지 난감해 보이는 마야의 태도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아드리엔의 몫이었다.

아드리엔이 연신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애타는 눈빛으로 마야의 입이 열리길 기다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레이시가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참, 사람 여럿 심란하게 만드는 놈이로군. 아드리엔을 제외한 나머지는 별 이상 없나?”

그레이시가 나머지 일행들을 둘러보며 묻자, 아드리엔을 제외한 인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직 기억이 나는데...? 그것보다, 오스틴은 대체 어디로 간걸까...”

“응. 3년이나 함께 했는데. 한순간에 얼굴을 잊어 버리는 건. 확실히 이상해.”

“저도 아직 오스틴씨의 얼굴을 잊어 버리지는 않았어요...”

“자... 잠깐만! 그럼 나한테만 문제가 있다는 거야?!”

아드리엔을 제외하고 모두 문제가 없는 모습을 보이자, 아드리엔은 그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은근히 두려움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니, 애초에 기억이 안 난다는 것뿐만이 아니야! 오스틴이 우리 파티에 있었을 때, 내가 왜 오스틴을 그렇게 못되게 대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아드리엔의 다급한 외침에, 마야는 조금 차게 식은 눈빛으로 아드리엔을 바라보았다.

“...아드리엔. 너는 파티에서 오스틴에게. 못되게 굴었던 것까지... 이걸 핑계로 돌리는 거야?”

“피... 핑계라니! 나는 그런 게... 아니, 그것보다! 그래서 대체 내가 이러는 이유가 뭔데!”

“으음... 사실, 단순히 아드리엔. 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원인은. 너무 많아. 단순히 스트레스같은 이유로 인해 기억력에 외상을 입었거나, 단기적인 기억 상실증... 일수도 있어.”

마야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두 모호한 대답이었으나, 그 대답들도 그리 심각한 상황을 야기하고 있지는 않았기에, 아드리엔은 안심한듯 한숨을 푹 내뱉으며 풀썩 주저앉았다.

“휴우... 난 또, 무슨 큰 병이라도 걸렸거나, 저주라도 걸린줄만 알았는데... 별로 심각한 건 아니잖아?”

“보통 이럴 때는... 오스틴의 얼굴을 다시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이나, 얼굴을 그린 그림... 같은 것들을 보여주면 기억이 원래대로 돌아오기도 해.”

마야의 말이 끝나자, 모두의 시선이 은연중에 이사벨을 향했다.

“...이사벨. 너 그림 잘그리지 않았어?”

“ㄴ... 네? 저요?”

“음. 이사벨의 그림 솜씨는 나도 높이 평가하니까, 아드리엔의 기억을 찾아주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어느새 이사벨의 앞에는 얼굴 크기의 종이 한 장과 펜이 준비되었다.

“으음... 한 번 노력해볼게요...”

모두의 기대를, 특히 아드리엔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이사벨의 손이 들어 올려지고, 손에 들린 펜의 끝이 종이와 맞닿았다.

그렇게 5초.

10초.

30초.

“...어... 이사벨? 안 그려?”

1분.

펜을 쥐고 있던 이사벨의 손은, 어느새 덜덜 떨리며 애꿎은 잉크만을 낭비하고 있었다.

“여... 여러분...”

펜촉 만큼이나 떨리는 이사벨의 목소리에, 아드리엔은 절로 불안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분명히 기억이 나는데... 어째서인지 그려지지가 않아요...!”

마야는 생각했다.

‘개 좆됐...’

좆됐다고.

* * * * *

­크으윽... 카학...! 사... 사제좀...

­ 내 팔...! 으아악!!!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 신음하는 드워프들 사이에서,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돌렸다.

역시 이런 주먹 싸움도 오랜만에 하니까 힘들다. 씨발 칼로 후볐으면 한대만 때려도 누울텐데.

“히익...! 저리가! 저리가아!!!”

“뭘 저리가야. 이 씹새야.”

마지막 남은 싸가지 드워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니, 뒤로 벌러덩 넘어진 채 황급히 팔다리를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노린 것은 아닌데, 그냥 어쩌다 보니 길거리에서 내게 싸가지없이 대했던 드워프가 마지막으로 남게 되었다.

방금 싸움 중 얼핏 듣기로는, 이름이 모그단 이라 했던가.

“이름이... 모그단 이었나? 모그단. 이건 운명이야. 음. 내가 너의 성질머리를 교정시키도록, 하늘이 주선해준 운명적인 만남 이라는 거지.”

“이 괴물 같은 놈...! 우... 우리한테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것 같아?!”

주변을 둘러보면, 내게 얻어맞은 드워프들은 하나 같이 신음을 내며 어디 하나가 부러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모그단은 어떻게 두들겨야 신명나는 소리가 나올까.

“...근데. 이 새끼가 끝까지 반말이야. 반말은.”

순간 열이 뻗친 나는, 모그단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려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야 이 새끼야. 너 나 본적 있어? 우리 언제 만난적 있냐고.”

“내... 내가 너 같은 미친놈을 언제 봤다고...”

“근데 왜 자꾸 반말이야!!! 너 씨발 진짜 나 미치게 만들래!!!”

“으... 으아아아!!!”

크아아악!!!

이 새끼는 정말이지 사람을 화나게 하는데 천재였다!

금방이라도 꼭지가 돌아버릴 것 같았지만, 이 이상으로 소란을 피우면 여관 주인에게 민폐가 될 듯 싶었기에, 나는 성을 내던 입을 뚝­ 닫고 멱살을 잡은 손을 들어 올렸다.

드워프인 모그단은 나보다 훨씬 키가 작은 탓에,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 땅과 작별하게 된 짧은 다리가 버둥거리게 되었다.

“자. 우리 이제 건설적인 대화를 한번 해보자고. 응?”

“아... 알겠으니까... 일단 이것부터 좀... 커억...”

“...아, 미안.”

참. 나도 모르게 멱살을 너무 강하게 쥐었네.

그대로 멱살을 쥔 손을 놓으니, 콰당탕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모그단은 입을 크게 벌린 채 소리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후우... 모그단.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단 말이지? 응? 사람이 살아가면서 조심해야 할 세 가지가 뭔지 알아?”

“끄어어억... 내... 내 엉덩이...”

“손모가지, 주둥아리, 그리고 눈. 이 세 가지만 조심하면 천수를 누릴 수 있다고. 알고 있어?”

“그게 무슨 개소리야...!”

“...네가 자꾸 이렇게 싸가지없게 대답하고, 나를 깔보니까 이렇게 된 거 아냐. 응? 내 쇠뇌도 마음대로 만지작거리고 말이야. 그러면 내가 화가 나겠어, 안 나겠어.”

원래는 곤죽이 될 때까지 패버리려고 했지만, 나는 곧바로 생각을 고쳐 먹었다.

이 새끼는 맞아도 안 고쳐질 놈이다.

“그래서 말이야? 원래는 너를 패서 반 죽이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건 너무 물렁한 처벌 아니겠어?”

어느새 나를 바라보는 모그단의 눈빛에서 두려움을 느낀 나는, 주먹을 탈탈 털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걸로 받아야겠는걸?”

“다른 걸로 받... 받겠다니... 무슨...”

뭐긴 뭐야.

“돈으로 갚으라고. 이 씹년아.”

돈 내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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