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30화 (30/106)

〈 30화 〉 30. 기구한 운명으로 엮인 사람들

* * *

짤랑...

손잡이 끄트머리에 달린 작은 종이, 음산한 빛을 발하며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짤랑­

망자들을 위한 진혼곡. 육체라는 껍데기를 내던져 버린 그들에게, 이 이상의 대접은 사치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꼭 들어 맞으리라.

짤랑­ 짤랑­

피 냄새가 흐릿하게 남아 있는 곳으로 다가갈 수록, 종이 더욱더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장신의 외투에 손바닥을 문질러 축축한 흙자국을 남겼다.

부스스­ 떨어지는 흙 알갱이들의 소리가, 진혼곡에 화음을 더해주는 것이었다.

비릿한 물 비린내도, 쿱쿱한 흙 냄새도, 남자에게는 익숙한 향기였다. 언제나 해 오던 일이었으니까.

“뼈, 피, 살갗, 장기, 심장, 뇌...”

콩팥. 안구. 식도. 성대. 혀. 근육. 지방. 그리고...

점점 걷는 속도에 박차가 가해지던 발걸음은, 마침내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푸르른 손 앞에서 멈추어 섰다.

“...혼을 가두는 감옥이다. 허나...”

남자는, 초점없는 눈동자를 또르르­ 굴려 시선을 내렸다.

이미 죽은지 시간이 꽤 지난 탓에, 여기저기 까마귀들에게 파 먹힌 싸늘한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현생을 살기 위해서는, 죄인이 되어야만 한다. 칼라스.”

­ 푸욱!

너덜너덜해진 장화로 삽머리를 밟으면, 뼈로 이루어진 흉흉한 삽이 흙 알갱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별의 기사가, 그를 육체에서 해방 시켜 주었다고 했던가.

­ 팍!

...내가 할 일이건만.

내 일이다. 망자들을 인도하고, 그들에게 안식을 주거나 또 다른 기회를 선사 해준다.

갈 놈은 보내고, 오는 놈은 굳이 쳐 내지 않는다.

육체는 혼을 현생에 붙잡아두는 족쇄이고, 감옥이니까. 그들을 해방 시켜 주고 혼을 인도하는 역할은 내가 되어야만 한다.

내가 아닌,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당연한 진리이고,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이 세계의 법칙이다.

그러나, 눈 앞의 축 늘어진 이 남자는.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내 손을 거치지 않았다. 감히.

그 티없이 맑게 빛나던 오른눈을 점 찍어 두었건만, 이미 검흔으로 깊게 파여 있는 오른눈은 힘없이 물러진 채 터져 있다.

쯧쯧. 남자는 연신 혀를 차며 묵묵히 삽질을 이어나갔다.

세간에서는 혼의 무게가 마치 깃털과도 같이 가벼워, 혼이 육체에서 해방되는 순간 드높은 천상으로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다.

헛소리.

멍청이들의 도를 넘은 집착. 광신도들의 지식. 무지의 부산물이다.

혼은 그 존재가 품은 힘의 척도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진다.

그런 주제에 딱히 형체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혼란스러운 전장 속 역전의 전사 같은 자들의 혼을 회수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눈앞에서 볼품없이 썩어가는 육체의 주인은 어떤가.

마왕군의 제 2 군단장, 차원을 찢는 칼라스.

놈의 오른눈은, 언제나 탐스러운 과실처럼 유려하게 반짝이며 남자의 탐욕을 부채질했다.

그 눈을 보며, 얼마나 군침을 삼켰던가.

빠드득­ 이를 악물고, 남자는 묵묵히 삽질을 이어나갔다.

“...없군.”

허나, 혼은 없다.

별의 기사에게 패 했으니, 혼을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한것은 당연지사.

한계를 뛰어 넘은 존재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그런 것을 의미 하니까.

아직 힘을 다루는 것에 어수룩한 인간들의 희망인 용사는, 다른 넷을 베어 넘기고도 혼을 취하거나 갈무리하지 않았건만.

역시, 오랜 세월을 살면서 축적해온 경험과 힘은, 같은 초월적인 존재 이더라도 그 격이 다르다.

되살릴 수도, 그렇다고 그 아름답게 반짝이던 오른눈을 취 할 수도 없는 작금의 상황에, 남자는 삽을 번쩍 들어 올려 분노를 담아 내리쳤다.

“내가!”

­ 쾅!

“네놈이 해방되는 날만을!”

­ 쾅!

“손꼽아 기다렸건만!!! 칼라스!!!”

­ 콰앙!!!

“헉... 헉... 후우...”

칼라스의 감옥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것으로, 남자는 곧바로 평정을 되찾고 가쁜 숨을 내뱉었다.

배와 가슴 언저리는 이미 터져 나갔고, 사지는 너덜너덜해진 몸과 연결된 채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머리는 건드리지 않은 상황.

아가토의 말마따나, 칼라스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알아내려면 뇌는 필수 불가결의 요소이다.

그래도, 뇌는 아직 쓸 만할 터.

­ 부스럭.

휙­ 하고 돌아간 남자의 머리는, 핏기 없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소리가 난 방향을 가늠했다.

­ 찍 찍

“...쥐.”

미간을 좁히며 쥐를 노려보다가,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칼라스의 목을 삽으로 찍어 머리를 떼어냈다.

창백하게 축 늘어진 머리를 자루에 넣고, 남자는 자루를 덜렁이며 처참한 현장을 유유히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바위뒤에 은신해 있던 레인저 출신 척후병, 덴버는 참고 있던 숨을 파하­ 내뱉으며 늘어졌다.

“푸흐... 씨이발... 진짜 뒤지는 줄 알았네...”

덴버는, 조금 전 그 살기 어린 시선에 조마조마했던 가슴을 움켜쥐고 크게 심호흡했다.

“지랄... 좆 같은... 장의사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그 소름 끼치는 삽질을 다시금 떠올린 덴버는, 몸을 부르르 떨곤 황급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시체 수집가. 전장의 장의사.

헌틀리가 움직이기 시작 했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알리기 위해서.

* * * * *

“열셋... 열넷... 열다섯...”

꼭두새벽에 모그단과 추격전을 벌였던 통에, 우리는 이른 점심이 되어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스물 하나... 스물 둘... 스물 둘... 아니, 셋... 스물셋?... 니미, 씨팔.”

염병할 거. 까먹었네.

그래서, 지금 뭘 하고 앉아 있느냐고 묻는다면...

“선배님. 뭐 하세요?”

때 마침, 1층에서 식사를 받아온 로빈이 입에 빵을 물고 내게 다가왔다.

“남은 돈 좀 세고 있어.”

“돈이요?”

입에 빵을 물고 우물거리던 로빈은, 내 앞 테이블에 빵과 스프를 내려 놓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 너도 알다시피,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지갑에서 돈이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건 아니잖아?”

내 말에, 로빈은 빵을 스프에 푹 찍고 입에 욱여넣으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우물 우물... 그렇죠.”

“...다 먹고 얘기할까?”

“아뇨 아뇨. 꿀꺽...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말씀 하세요.”

“...그래. 하여튼, 남아 있는 돈을 계산하고 있었어. 하르만을 거쳐서 수도까지 가는 데, 경비가 모자라면 곤란하니까.”

나는 처음부터 돈을 다시 세며, 은화와 금화, 동화를 각각 따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메텔 동화 58닢에, 메텔 은화 13닢.

금화는... 두 닢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마 생필품과 보존 식량을 구매 한다면, 하르만에 도착했을 때는 바닥이 날 듯싶다.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용사 파티에서 나올 때 금전좀 더 챙겨서 나오는 건데.

“...로빈.”

“쩝쩝... 네?”

“우리 좆됐다.”

“왜... 왜요? 돈이 그렇게 모자란가요? 별로 크게 돈 쓴 적도 없는 것 같은데...”

“그건 맞는데... 하아...”

용사 파티에 속해 있을 때 잡았던 군단장들의 현상금을 받을 수만 있다면 숨통이 좀 트이겠지만... 아쉽게도, 군단장들의 현상금을 관리하는 메텔하임의 길드 본부까지 가지 않는 이상, 현상금을 수령받는 쪽은 어려울 것 같다.

“...로빈. 여기 하루 숙박비가 얼마였더라?”

“음... 보자... 방 하나를 대실 하면, 하루에 12실버가 들어요. 저희는 방이 두 개니까... 하루에 24실버씩 빠져나가고 있네요!”

“아, 진짜. 거짓말하지마.”

내가 혀를 내두르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대자, 별안간 로빈이 상체를 숙여 내게 불쑥 다가와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선배님. 그냥 알렉시스 공녀님께 돈 좀 빌리죠? 그래도 공작가의 영애님 이신데, 돈 때문에 궁하다는 건 좀 말이 안 되지 않을까요?”

“공녀님도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셔. 애초에 방학 기간에 현장 실습을 목적으로 게이트를 타고 넘어 오셨는데, 돈을 많이 챙겨 오셨을 리가 없지.”

“쩝... 그런가요...”

듣기만 해도 힘이 쭉 빠지는지, 로빈은 내 말을 듣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물러났다.

우리가 퀼른에서 너무 헐레벌떡 뛰쳐나온 탓일까? 금전적인 문제로 골머리를 썩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퀼른에서 돈을 좀 더 벌고 나올걸 그랬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르만까지 도착하고 거렁뱅이 신세를 면치 못 할 것 같은데... 싫다. 길거리 노숙은 죽어도 싫어. 용사를 따라다니는 3년 동안, 노숙은 충분히 겪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일...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씨발.”

뭐긴 뭐야. 길드에서 의뢰를 받는 것밖에 없지.

칼밥 먹고 사는 놈들이 그거 밖에 더 있겠어?

“안 되겠다. 로빈, 다들 잠깐 내 방으로 좀 모여 달라고 전해 줄래?”

* * * * *

“꼭 일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건가?”

“당연하지. 일을 안 하면 돈을 어떻게 버는데?”

“음... 이상하군. 내가 보급 부대들을 습격했을 때는 인간들의 돈을 쉽게...”

“오케이. 스돕. 거기까지.”

모그단의 자발적인 기부 덕분에 더욱더 든든하게 무장한 우리는, 애석하게도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길드로 발걸음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다행인 사실을 꼽자면, 우리 파티는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아주 잘 맞는다는 것이다. 비록 마법사가 없으므로 상급 마물 토벌이나 3급 이상의 던전 탐색은 무리겠지만, 우리가 물불 가릴 처지는 못 된다.

루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딱히 불만은 없었기에, 우리는 곧장 여관을 나와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선배님. 용병 길드쪽이 낫지 않을까요? 용병일을 하는 게 더 한탕 크게 벌 수 있을 텐데요.”

“우리야 용병 길드 쪽에 익숙하니까 상관없겠지만, 로이먼이나 알렉시스 공녀님께서 불편하실 수도 있잖아. 어차피 돈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그냥 적당한 토벌 의뢰나 던전 탐색 한 두 번만 하면 돼.”

내가 로빈을 다그치자, 내 뒤에서 꼭 붙어 따라오던 알렉시스 공녀가 조금 안절부절못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 저는 괜찮은데...”

“공녀님. 공녀님께서 용병 길드를 아직 안 가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아... 그런가요?”

용병 길드에 모인 놈들은, 할 줄 아는 것이 몸 쓰는 일밖에 없어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인 버러지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곳에 이런 미녀 군단을 데리고 간다? 미래가 뻔한걸. 로이먼이 살인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그냥 적당한 의뢰 몇 개 하고 후딱 돈받아서 하르만으로 가죠. 어차피 별로 어려울 것도 없을 테니까...”

의뢰 게시판 앞에 선 우리는, 적당한 의뢰를 찾기 위해 바쁘게 눈알을 굴렸다.

“쓰읍... 고블린 토벌은 너무 보수가 짜고... 자이언트 앤트? 곤충형 마물은 좀 그런데.”

“어... 하지만 오스틴. 보수는 꽤 괜찮아 보이는데요...?”

“그게 왜 그러냐면요... 알렉시스 공녀님. 곤충형 마물들은 대부분 피가 산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어제 막 무기를 새로 받은 참인데, 날이 상하면 조금 곤란하잖아요?”

“그렇군요...! 역시 오스틴은 아는 게 많네요.”

그렇게 눈짓으로 의뢰들을 걸러가면서 게시판을 보고 있자니, 저편에서 혼자 의뢰를 둘러보던 로빈이 의뢰서 한 장을 손에 들고 다가왔다.

“선배님! 이건 어때요?”

“네 안목은 조금 못 미더운데... 이리 줘 봐.”

너무해요 선배님­ 이라고 하며 볼을 조금씩 부풀리는 로빈을 뒤로한 채, 나는 로빈이 건네준 의뢰서를 펼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음... 광산 안쪽에서 광부들이 실종되고 있습니다... 마물의 울음소리로 추정되는 미상의 소리가 계속해서 들립니다. 광산 내부 탐사와 미상의 소리의 원인을 밝히고, 마물이라면 제거 해 주세요. 길드 랭크 3급 이상으로 제한. 보수는 금화 두닢...?”

아니, 이런 개 혜자 의뢰가 왜 여태껏 게시판에서 썩고 있던 거지?

광산 내부에 있다는 마물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 봤자 산악 코볼트나 아이언 리자드 정도이다. 광부들이 계속 실종되고 있다는 말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금화 두 닢은 못 참지!”

우리는 곧바로 의뢰서를 챙겨 들고 길드 창구로 다가갔다.

의뢰서를 건네주자, 길드 조합원은 곧바로 화색을 띄우며 신나게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아! 광산 탐색 의뢰군요! 몇 달째 골머리를 썩고 있던 의뢰인데, 받아주신다니 다행입니다.”

“저희도 돈 받자고 하는 일인데요, 뭐.”

“그런데... 실례지만, 길드 랭크가 어떻게 되시는지 말씀 해 주실수 있나요? 의뢰인께서 3급 이상의 인재를 원하셔서요.”

아무래도 용사 파티에 3년 동안 몸을 담으면서 온갖 마물들과 싸워 온 탓에, 내 길드 랭크는 1급으로 갱신된 지 오래였다.

내가 1급 뱃지의 상징인 미스릴 뱃지를 꺼내어 슬쩍 보이니, 별다른 문제없이 의뢰를 담당받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의뢰인이 누구일지 궁금하군. 고작해야 산악 코볼트 수준으로 보이는데... 고작 이런 곳에 내 새로운 창을... 궁시렁 궁시렁.”

루나의 투덜거림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길드에서 기다리다 보니, 저 멀리서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짧은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수북한 수염과, 자르지 않고 뒤로 땋은 갈색 머리카락에, 특유의 빨간 스카프를 두른...

“...아. 씨발.”

“이 죽일놈아!!! 내 칼 돌려줘!!!”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의뢰인, 모그단을 바라보며, 나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뱉었다.

벌써 피곤하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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