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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32화 (32/106)

〈 32화 〉 32. 양이 곧 질이다

* * *

나의 유년 시절은 언제나 탐험과 모험, 그리고 온갖 새로운 것들로 반짝였다.

새벽에 가까운 이른 아침에 비몽사몽하며 눈을 뜨면, 대륙에서도 유명한 사냥꾼이셨던 어머니의 장비 점검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장비 손질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모험가 길드의 유망한 지도 제작자이자 탐험가셨던 아버지는, 지도를 갱신해야 하는 때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셨다.

집에 혼자남아 심심했을 나를, 언제나 마을 근처의 숲으로 데리고 가서 이런저런 유용한 정보들을 알려 주셨더랬지.

‘아들. 여기 보라색 가시가 삐죽 솟아난 나무 보이지?’

‘엉! 이게 뭔데?’

‘이 가시에 닿으면 엄청나게 아야 해! 그러니까, 앞으로 친구들과 숲에서 놀 때는 이런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 조심히 살펴보고 놀아야 한다?’

‘응! 알았어!’

나는 그때,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들을 배웠다.

어린 시절 내게 검술을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께서는, 상처가 가득한 갑주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언제나 다정하고 올곧으셨다.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면 한 번은 봐준다. 하지만 두 번은 없다.

만약 아무런 면식도 없는 사람이 이유 없는 친절을 베푼다면, 필시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니 조심해라.

무슨 일이던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항상 두 번, 세 번씩 생각하고 행동해라.

나는 스승님의 말씀을 군말 없이 따랐고, 내 주변에서는 나와 관련된 잡음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때, 삶을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배웠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4살이 됐을 무렵이었다. 내가 레인저 입단 시험에 지원하고, 막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였다.

어머니는 나의 합격 통보서를 보시고는, 아무 말없이 나를 껴안아 주시며 나를 위해 기쁨의 눈물을 흘려 주셨다.

청초하신 외모와 반대로 괄괄한 성격을 지닌 어머니는 평소에 우는 일이 일체 없으셨다.

당시의 나는, 우습게도 처음 보는 어머니의 눈물에 당황한 나머지, 어머니께서 편찮으신 건 아닌지 안절부절 못 했더랬다.

‘우리 오스틴. 내 아들. 엄마는 우리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나는 그때, 가족 간의 정에 대해 배웠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레인저에 입단한지 3년이 지난 17살 무렵.

내가 메텔하임으로 상경한 뒤, 매일 같이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한 명의 어엿한 레인저로 거듭날 때였다.

고된 훈련을 받고 여느 때처럼 취침에 들려던 찰나, 나를 비롯한 몇몇 대원들을 소집하는 교관에 의해 나는 얕은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 투덜투덜 하며 기숙사 바깥으로 나와 보니, 단상 위에 올라서서 눈을 반짝이며 우리를 둘러보는 교관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실전 배치란다. 나더러 축하한단다.

당최 뭘 축하한다는 것인지. 전선에 투입되어 마왕군에게 갈리는 미래를 암시하는 것인가?

당시의 나로서는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하였으나,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기쁘다는 마냥 얼굴을 두껍게 포장 했었다.

첫 실전 배치는, 마왕군의 중간 간부가 숨어 들었다는 작은 마을이었다.

지나가던 나그네같은 꾀죄죄한 몰골로 마을에 방문해서, 의심을 사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마을에 스며들고, 행여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히 마왕군의 중간 간부를 처리하라는. 아주 단순명료 해 보이는 임무였다.

생포를 우선으로 하되,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사살하라는. 새내기들에게 맡기는 임무답게 중요도가 그리 높지 않고, 나름의 재량권을 주어 판단력을 시험하는 임무 였으리라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인원은 나를 포함한 셋. 모두 한솥밥을 먹던 동기들 이었다.

이름이... 기억이 풍화된 탓에, 그나마 떠오른 이름들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아마 꽁지머리를 한 여자아이의 이름이 알렌, 짧게 친 쟂빛 머리의 남자아이 쪽이 카슨 이었을 것이다.

카슨과 알렌은 레인저에서 나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믿음직한 전우였다. 그 둘을 통해서, 나는 타인과의 인간 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 둘은 마나 코어 자체가 없는 나와 다르게 조금이나마 마법을 쓸 줄 알았고, 마법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확실한 결과를 보여 준다. 마나 회로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빛은 길을 밝혀주고, 강력한 보조 마법은 나무 화살도 강철을 꿰뚫을 수 있게 해준다.

...임무가 점점 어긋나게 된 원인이 그것 때문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왕군의 중간 간부는, 우리가 마을에 들어선 순간부터 우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오밤중에 일어난 습격이었다. 뭣도 모르고 마왕군의 중간 간부를 받아주었던, 선량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마물들의 갈퀴에 무참히 베이고 찢겨졌다.

잠결에 헐레벌떡 일어난 우리는 겨우 무기를 쥐어 잡고 달려 나가 싸웠으나, 적들이 너무 많았다.

바위 메뚜기들 이었다.

갑각은 견고한 석재로 덮여 있고, 앞다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단단한 갑각으로 이루어져 삽처럼 쉽사리 땅을 파고들어가는. 그런 주제에, 수는 일반 메뚜기떼처럼 끝없이 쏟아지는 무서운 마물.

알렌과 카슨은 각자의 무기를 이용해 바위 메뚜기들을 상대하다가, 이내 격렬한 전투를 이기지 못하고 손상되어 버린 무기를 버리고 마법으로 보조하며 전투를 지속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나를 애타게 부르는 둘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찢고 들어왔지만, 나는 숏소드를 휘두르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마물들의 파도는 끝이 없었다.

나는 마치 폭풍우와 거친 파도 속에 던져진 조각배처럼, 필사적으로 노를 저어야만 했다.

정신없이 휘두르고, 칼을 모로 세워 찔러 넣었다.

어느덧 산등성이 사이로 해가 빼꼼­ 고개를 내밀 때가 되어서야,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중간 간부는, 우리를 습격한 마물들에게 가세하여 함께 싸우다가 카슨의 강궁에 머리가 날아갔다.

따지고 보면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뻐할 수 없었다.

내 이름을 부르짖으며 도망가라고 외치던 알렌과 카슨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고개를 돌리려는 내 머리를 강하게 붙잡아 주고 있었다.

처절한 전투가 끝나고, 이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는 나를 포함해 두 명뿐이었다.

잔해속에 끼어 있다가 내게 구출된, 여름날의 햇살처럼 밝은 주황색 머리가 인상적인 소녀였다.

이름은 로빈이란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또래였다.

훌쩍이는 로빈을 품에 안아주며 다독이고 동료들의 시신을 묻어 주는 일은, 슬픔을 느끼기에 앞서 나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하였다.

대체 왜. 그 많던 사람들 중에서, 나와 이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소녀만 살아남았단 말인가.

카슨과 알렌이 죽어 버린 이유는 뭔가. 그들은 나 못지않게 혹독한 훈련을 받아온 인간병기들 이었으며, 질 좋은 무구들을 갖추고 있었고, 장갑에 그려진 마법 회로 역시 고급의 장비였다.

레인저라는 소수의 정예들이 받는 보급품들은, 하나 같이 이런 질 좋은 고급품들 이었다.

한 대머리 교관은, 우리에게 항상 말버릇처럼 질 좋은 장비들을 소중히 다루라고 말 했었다.

나는 이가 다 나가 버린 채 칼날이 덜렁거리는 숏소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잘 훈련된 레인저 셋과, 수십마리에 달하는 바위 메뚜기떼.

생존자는 한 명.

사실 수십의 단위도, 바위 메뚜기떼에 한해서는 소규모의 떼거리 였다.

질이 중요한가?

물론 질도 중요하다. 하지만... 만약, 우리보다 노련한 레인저 대원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셋. 아니, 둘 만 더 있었어도. 카슨과 알렌은 평소와 다름없이 웃는 낯짝으로 내게 다가와, 볼품없게 변한 내 숏소드를 가지고 놀려댔을 것이다.

나는 그때,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진리들 중 한 가지를 깨우칠 수 있었다.

질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숫자라는 폭력.

양이 곧 질이다.

* * * * *

“...ㅂ님... 배님...!”

어... 꿈이었나?

그런데, 뭔가 안 좋은 꿈을 꾼것 같은...

“선배님!”

“어머 씨발 깜짝아!”

“꺄윽?! 노... 놀래라... 아니, 왜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고 그러세요!”

“아니, 네가 갑자기 눈앞에 불쑥 튀어나오니까 그랬지. 어우 심장 떨려라.”

내가 가슴께를 움켜잡으며 과장된 몸짓으로 숨을 고르자, 나를 바라보는 로빈의 눈빛이 한심한 것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변했다.

거참. 진짜 놀랬는데.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해 보이고는, 그대로 팔을 들어 올려 기지개를 켜며 굳어 버린 몸을 풀어 주었다.

“으그그극... 뭐. 다 쉬었으면 슬슬 움직일까? 로빈 너도 알렉시스 공녀님이랑 다른 애들 깨우고...”

“어... 선배님?”

“어? 왜?”

나를 바라보던 로빈은, 별안간 손을 들어 올려 내 뺨을 슬쩍 쓸어 올렸다.

“아 씨.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선배... 울어요...?”

“어... 어?”

이게 뭔 개소리야.

하는 마음으로 손을 들어 올려 눈가를 매만지니, 정말로 촉촉한 물기가 손을 적셨다.

“...허, 참. 허허허...”

순간 어이가 없어져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아니, 씨팔 고작해야 몇 년 전에 있었던 일로 꿈 좀 꿨다고 후배 앞에서 질질 짜고 앉았으니, 얼굴이 달아오르고 어이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이었다.

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확실히, 그때 그 일이 나름의 트라우마 비슷한 것으로 남은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아주 간혹 그 꿈을 꾸긴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꾼 적도 없고 생각도 한 적 없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씨이팔... 카슨 개 같은 새끼... 오랫동안 애써 잊고 지냈건만, 그리운 그 얼굴이 내 머릿속의 기억들을 파헤치고 재조립 되어가고 있었다.

알렌은 단발머리를 모아 묶은 꽁지머리가 잘 어울리는 털털한 여자였다. 아, 카슨이 알렌을 좋아 했는데. 둘 다 죽기전에 고백은 했는지 모르겠다.

...그만 생각하자. 더 생각해봐야 좋을 것도 없다.

나는 손바닥을 들어 올려 양 뺨을 짝 짝 때리고, 간간이 흐르는 눈물들을 소매로 훔쳐 내었다.

그리 앉아 있으니, 로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선배님. 왜 우셨어요? 안 좋은 꿈이라도 꾸셨어요?”

“아서라. 알면 다친다.”

“아, 뭔데요. 뭐 무서운 꿈이라도 꾸셨어요? 귀신 꿈이라도 꾸셨나요?”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로빈을 보며, 나는 피식하고 바람새는 웃음을 흘렸다.

아마 나를 위해 일부러 저러는 것일 테지. 순간 로빈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로빈의 머리에 손을 올려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서... 선배님?!”

“넌 진짜 달라진 게 없구나.”

페리도트처럼 영롱한 초록빛을 발하는 로빈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퍽 웃겼다.

“아... 아이 참... 제가 달라질 게 뭐가 있겠어요... 으으읏...”

그건 그렇고, 와... 머릿결 진짜 미쳤네. 여자들은 머릿결을 관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붓는 다는데.

눈물을 글썽이며 맑은 초록색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던 꼬꼬마 로빈도, 어느새 성숙한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어색하게 다가왔다.

“아우우... 그... 그만 쓰다듬으세요!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옛날에는 좋아했잖아. 쓰다듬어 주는 거.”

“갑자기 왜 옛날얘기를... 우으으...”

“잠깐만 이러고 있자. 옛날 생각 나서 그래. 응?”

내가 싱긋 웃으며 로빈을 살살 달래자, 별안간 로빈이 내 허리를 껴안고 품속으로 파고들어왔다.

“뭐... 너 지금 뭐 하는...”

“저도 옛날 생각이 나서요.”

내가 당황한 나머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 벌리고 있자, 로빈이 나를 올려다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복수예요.”

* * * * *

“모그단. 정말 여기에 마물이 있는 거 맞아? 별 씨발 마물 흔적은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

“마물이 아니면, 사라진 광부들은 귀신이 잡아가기라도 했겠어? 당연히 마물들의 짓이겠거니 한 거지.”

우리는 일자로 된 갱도를 쉴 새 없이 걸었으나, 사라진 광부들의 안전모는 간간이 발견 되었어도 마물들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우. 또 걸려 넘어질 뻔했네. 염병할 거.”

나는 갱도 바닥 중간중간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흙더미를 훌쩍 뛰어 넘으며 투덜거렸다.

아니, 아무리 땅 파고 흙 뒤집는 광산이라도 그렇지, 이렇게 사람 지나다니는 길목에 흙더미를 그대로 두고 방치한다니. 명색이 갱도 관리자라는 모그단이 승진에서 누락될 위기에 처한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조금 전 한 번 넘어졌을 때 모그단에게 투정을 부렸으나, 모그단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었다.

“후우... 이제 곧 갱도 최심부야. 조금만 더 힘내서 걸으라고. 보수는 내가 넉넉히 쳐 줄 테니까.”

“너, 그 약속 꼭 지켜라.”

몇 시간에 걸쳐 길도 험하고 좁은 갱도를 걸었으니, 내 심정이 오죽 할까. 드워프들이 환기구와 배기관을 꼼꼼하게 깔아 두었기에, 숨을 쉬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애초에 석탄을 캐는 탄광도 아니었고.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별안간 맨 앞에서 앞장서서 걸어가던 모그단이 걸음을 뚝 멈추고 섰다.

“...야. 뭐 해? 여기가 끝이야?”

“...자... 잠깐... 갱도 최심부는 여기가 맞는데... 이 이상으로는 작업이 중단된 탓에 판 적이 없는데...!”

대체 뭔 지랄이 났길래, 모그단이 어깨를 흠칫 떨어대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걸까.

나는 랜턴을 비추고 서 있는 모그단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지보로 견고하게 짜여 있는 갱도의 최심부와,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단단한 흙벽이 눈에 들어왔다.

“이 구멍은 대체...”

모그단의 손가락을 따라, 나는 시선을 더욱 아래로 내렸다.

“...이게 뭐야?”

마치 누군가 삽으로 무작정 파낸 것처럼, 불규칙하고 비스듬히 파여 있는 크고 깊숙한 굴이 우리를 반겨 주고 있었다.

구덩이 양 옆으로 쌓여 있는 흙더미를 보면, 확실히 누군가 인위적으로 파낸 구덩이가 맞는 것 같은데...

“...뭐, 들어 가 봐야 하지 않겠어? 실종된 광부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 응. 그래. 들어가 봐야지.”

조금 굳어 있는 모그단의 어깨를 툭툭 쳐 주며, 우리는 깊숙한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크기가 은근히 큰데? 이거 마물이 아니라 사람이 저지른 짓 일수도 있겠어.”

“확실히... 산악 코볼트들이 파낸 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네요.”

그렇게 또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저 안쪽에서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사사삭... 사삭...

“...이게 씨벌 무슨 소리여.”

내가 슬그머니 쇠뇌를 빼어 들며 저 안쪽의 어둠 속을 노려보고 있자니, 귀를 기울이며 소리를 듣고 있던 로빈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뭔데. 로빈 너는 이게 무슨 소린 지 알고 있어?”

“아직 확실하지는 않은데... 어...?”

고개를 뒤로 돌려 로빈을 보고 있으니, 로빈의 안색이 이제는 창백하다못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ㅈ... 저... 저기...!”

“뭐, 뭔데 그렇게 덜덜... 떨어대... 는...”

로빈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천천히 앞으로 돌리자, 우리를 향해 무언가 다가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삽머리 처럼 펑퍼짐하게 생긴 앞다리와, 빠르고 기동성 높은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단한 뒷다리.

돌처럼 딱딱한 갑각 속에서, 수백 개로 이루어진 겹눈이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바위 메뚜기.

이제야, 여기까지 오는 동안 쌓여 있던 의문의 흙더미들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리고 이놈들은, 단독 행동을 하지 않는다.

“씨... 씨벌...”

저 안쪽에서, 콰드득­ 하고 굴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사삭­ 사삭­

“돔황챠!!!!!!!!!!!!”

우린 좆됐다.

살기 위해서는, 뛰어야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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