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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34화 (34/106)

〈 34화 〉 34. 여왕을 경배하라

* * *

“크흐흐... 그래서 그 미친 새끼가 바지를 홀딱 벗고 괴상한 춤을 추기 시작 하는데... 그때 마침 딱 기숙사에서 여자 대원들이 나오는게 아니겠습니까?”

“푸하하!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아니, 내 말 못 믿으시나? 나 참. 이렇게 섭섭하게 나오면 풀던 썰도 뚝 끊기는데.”

“푸흐흐... 알겠소. 내 속는셈 치고 믿을 테니까, 계속 말 해 보시오.”

“거 이 양반 참 속 좁네... 하여간, 그래서 그놈이 춤을 추면서 거기를 덜렁 거리니까는, 마침 기숙사에서 나오던 여자 대원들이 그걸 딱 보고 꺄악­! 소리를 지르다가 얼떨결에 돌멩이를 팍! 던져 버려서...”

음습하고 어두운, 오직 쇠창살로 막혀 있는 작은 창 만이 빛을 허락하는 이곳은 벨리온 수비대 구치소.

교도관으로 보이는 한 수비대 병사가 낄낄 거리고, 그 옆에서는 쇠창살을 붙잡고 기대어 같이 웃어 재끼는 한 남자가 있었다.

연갈색의 머리카락과, 맑은 파란 눈을 가진 날렵해 보이는 남자.

그렇다.

놀랍게도, 깜빵에서 교도관과 시시덕 거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나, 오스틴 (21세, 무직). 졸지에 예비 범죄자가 되어 버린 인생.

이런 씨발.

“푸하하하하!!! 그래서, 그 친구는 어떻게 되었소? 의가사 제대 했나? 그래도 아랫도리에는 문제 없겠지?”

“아쉽게도 한쪽에만 문제가 생겨서... 거, 교도관 아재는 알 지 모르겠는데, 남자는 한쪽이 없어도 다른 한쪽이 그 역할을 대신 해주거든. 의가사 제대는 커녕 부대 내 음란 행위로 개쪽만 당했지.”

“커흠... 그, 그거는... 어... 음...”

“...그 친구가 나름 아랫도리에 자신이 있던 친구였는데...”

“...안타깝구만. 젊은이 하나가 그렇게 가 버리네. 그래도, 그쪽 기능은 제대로 한다면서?”

“그게... 그 일 이후로, 그 친구가 자신감이 없어져 버려서... 하필이면 그걸 애인한테 들켜 버리는 바람에 그만...”

“...크흠...! 그... 어... 음. 정말 안타깝구만... 젊은이가 어찌 그런...”

한순간에 가라앉은 분위기.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나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교도관에게 그동안 참고 있었던 말을 토해냈다.

“거... 교도관 아재요. 우리가 어제 잡혀 들어온 처지라서 기다려야 되는 건 알겠는데, 조사관 이라는 양반은 언제 오신답니까?”

“으음? 조사관? 아... 그쪽 담당 수사관 말하는 거요?”

“뭐, 여기서는 그렇게 부르나? 아무튼. 그 담당 수사관이라는 양반은 대관절 언제 온답니까? 아실지는 모르겠는데, 저희가 조금 바빠서...”

내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머리를 긁으며 묻자, 교도관이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으며 어림을 잡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어제 잡혀 들어 왔는데... 알렉시스 공작가와 연이 닿아 있다고 했나?”

“예. 그쪽 영애 님께서 제 일행분 이십니다.”

“으흠... 듣기로는 그 영애 님께서 그쪽 빼내려고 힘 쓰고 있다던데. 아마 조만간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싶소만.”

염병. 대체 그 조만간이 언제인데.

“아, 슬슬 교대 시간이구만. 다음 근무는 덱스터요. 그 친구 요즘 마누라랑 대판 싸워서 신경이 날카로우니까, 나처럼 서슴없이 대했다간 얻어맞을지도 모르니 조심하쇼.”

“아... 예. 살펴 가십쇼.”

나의 혼신어린 야부리 털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와 쿵짝이 잘 맞던 교도관은 다음 근무자와 교대하기 위해 구치소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래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어떻게 된 일이긴. 화염석 때문이지.

기껏 목숨을 걸고 화염석을 폭발시켜 갱도를 탈출한다는 계획 하나만큼은 박수 갈채를 받아 마땅할 정도로 완벽했으나, 나는 그 후폭풍을 제대로 생각지 못했다.

목숨을 건졌다는 기쁨에 겨워 서로 끌어안고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갱도가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달려온 수비대와 딱 맞닥뜨려 버린 것이었다.

하필이면 우리가 무너뜨린 갱도에서는 모레 화염석을 사용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고, 무너져 내린 배기관 사이로 엄청나게 뿜어져 나오는 매연으로 인해, 화염석을 허가도 없이 사용 했다는 사실을 빼도 박도 못하고 들켜 버리고 말았다.

허가 없이 화염석을 사용 하면 깜빵에서 수십년을 썩어도 할 말이 없다는 모그단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우리는 곧바로 연행되어 이 차가운 구치소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물론, 알렉시스 공녀는 중간에 신원을 보증 받아 따로 이번 일에 대한 '협조' 를 받기 위해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혼자 다른 곳으로 가 버렸고.

“히잉... 선배님... 저 배고파요오...”

허탈한 표정으로 쇠창살을 붙잡고 있자니, 옆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로빈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배고파서 돌아가시겠다. 여긴 씨팔 빵 한조각 안 주나?”

참고로 우리는, 어제 아침 겸 점심을 먹은 이후로 한 끼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구치소에 질질 끌려 오자마자 너무 피곤한 나머지 냅다 잠들어 버렸으니, 아마 하루는 지난 상태 일 것이다.

“저... 다른 건 다 버텨도... 바위 메뚜기랑 배고픈건 못 참는 거 아시잖아요...”

“후... 로빈. 레인저 극기 훈련이라고 생각 하고 버텨라.”

내 말에 더욱더 울상이 되어 버린 로빈이 내 팔을 붙잡고 징징대기 시작 했지만, 나도 별수가 없는걸.

뭣하면 저기 기어 다니는 벌레라도 잡아서 먹여 줘야 되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모그단이 돌멩이를 벽에 휙 던지며 입을 열었다.

“나 참... 그러게 내가 쓰지 말자고 했잖아. 화염석을 멋대로 쓰는 건 군법으로도 즉결 처형이라고. 심지어 지금은 전시상황인데 말이야.”

“그래도, 만약 그 때 화염석 안 썼으면 우리는 아마 맛있는 고기 경단이 됐을거다.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지.”

“...너희랑 같이 다니던 귀족 아가씨가 어떻게 해 주는 거겠지? 응?”

“어... 아마도?”

“아마도... 젠장. 난 벌써 죽기 싫다고. 청색 동원령이 선포 된 전시 상황에서, 무더기로 쌓여 있는 화염석을 멋대로 써 버리다니... 공작가 에서도 힘든 거 아니야? 더군다나, 가주도 아니고 딸내미 라며?”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금방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재수 옴 붙을 소리 그만하고 가만히 있어.”

알렉시스 공녀도 우리를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하니, 꾹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설마 뒤지기야 하겠어?

나는 그딴 사소한 문제 보다, 압수당한 쇠뇌가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거 씨발 비싼 건데... 아마 못 쓰게 되면 다시는 못 구할 텐데, 제대로 보관이나 하고 있는 걸까? 어디 바닥에 굴러 다니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이미 수비대의 높으신 분이 내 쇠뇌를 보고 홀라당 꿀꺽 한 건...

“전능하신 정의의 빛으로 이 땅에 남아 있는 사악한 자손들을 몰아내어 주옵시고...”

오늘 아침부터 내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로이먼을 보며 혀를 찬 뒤, 나는 저쪽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는 루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루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몸을 흠칫 떨더니 그대로 무릎에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쟤는 또 왜 저런대.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모그단이 심심풀이로 던져대는 돌멩이 소리만이 구치소 안에 울려 퍼졌다.

“하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창문의 쇠창살 너머가 어두워지는 것을 보니, 저녁 시간쯤 된 것 같은데.

이제는 힘없이 축 늘어진 로빈도 그렇고, 나도 슬슬 공복을 참는 데 한계에 달할 때였다.

­ 탕! 탕!

“이봐! 수사관 님께서 오셨다! 다들 허튼짓 하지 말고 얌전히 따라 나와!”

* * * * *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깊고 어두운 땅속.

천으로 꽁꽁 싸맨 원 형태의 거대한 물건을 등에 짊어 진 장신의 남자가, 삐죽 삐죽 솟아난 석순들을 피해 둥지로 다가갔다.

언뜻 보기에는 커다란 원형 방패에 지나지 않는 물건은, 이따금씩 남자의 광기를 그대로 표현해 놓은 듯한 붉은빛을 약하게 발했다.

“...일어나라.”

남자의 무거운 음성이 동굴의 벽에 부딪치며 메아리 치고, 이윽고 커다란 바위가 부스스­ 흙을 떨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의 키의 다섯배는 될 법한, 커다란 덩치의 바위가 쩌저적­ 갈라지며 서서히 본래 모습을 갖추어 나간다.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갖춘 그것은, 수백개에 달하는 겹눈을 반짝이며 눈앞의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훌륭하게... 탈피 했구나.”

[ 키이이익... ]

“너희들의 존재가 들통났다. 마침 때가 되었으니, 지금 실행하면 되겠지.”

[ 키이익... 키이익...! ]

남자의 말에 대답하듯, 거대한 바위 메뚜기가 조용히 울었다.

남자는 흡족한 듯 고개를 두어차례 끄덕이곤, 팔을 들어 올려 천장을 가리켰다.

“가라. 위대한 진화의 산물을, 우매한 하등 생물들 에게 선보여 주어라.”

그 말과 함께, 거대한 바위 메뚜기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앞다리로 벽을 파내기 시작했다.

[ 키에에에엑!!! ]

사사삭­ 사삭­

수십, 아니. 어쩌면 수백마리에 달하는 바위 메뚜기들이, 새로운 여왕의 탄생에 기뻐하며 째지게 울었다.

천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여왕을 경배하라.

* * * * *

“옴뇽뇽뇽... 너무... 너무 마시써요...”

“천천히 드세요.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음식을 우겨넣는 로빈의 옆자리에 앉은 나는, 싱긋 웃고 있는 수사관을 보고 한숨을 푹 내뱉으며 먹는 둥 마는 둥 고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우리 같은 수감자들한테 이런 고급진 음식을 준다는 건, 알렉시스 공녀의 입김도 있겠지만... 아마 사건이 사건이다 보니, 은연중에 수사에 협조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심리전 일 테지.

“흐음... 식사 중에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식사가 너무 길어져서 말입니다. 지금 이야기해도 될까요?”

하긴, 로빈은 벌써 세 접시를 비웠는 데도 멀쩡히 입안으로 음식이 들어 가니, 더 기다려 달라고 하기도 뭣하다.

“네. 그러죠 뭐.”

접시를 거의 비운 나는, 그대로 포크를 내려 놓으며 수사관에게 어서 시작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제야 탁자 밑으로 손을 내린 그녀는, 이윽고 얇은 종이 뭉치를 꺼내어 천천히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으음... 로빈 씨, 그리고... 오스틴 씨? 맞나요?”

“우물 우물... 네! 맞아요!”

“하아... 네. 맞습니다.”

펄럭. 펄럭.

촤르르륵.

“저는 벨리온의 범죄자 전담 수사관, 밀라 라고 합니다. 으음... 오스틴 씨. 용사님과 공식적으로 파티를 맺고 계신걸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저희에게 뭔가 착오가 있는 걸까요?”

한참 동안 종이를 넘기던 수사관 밀라의 눈빛이, 어쩐지 날카로워졌다.

이 씨발. 어떻게 변명해야 할까. 뭐라고 말 하지?

‘걔네랑 다니기 개 좆같아서 그냥 때려치우고 나왔수다. 꼬우면 한 판 붙던가.’

아니다. 이건 좀 아니고...

‘사실 3년 동안 따라 다니느라 지쳐서 말입니다. 그냥 멋대로 탈영 하듯이 빠져나왔수다. 꼬우면 한 판 붙던가.’

이 씨발! 머릿속에서 온갖 경우의 수를 계산 해 봐도, 결국은 수비대와 맞붙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입을 우물거리며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밀라의 표정이 더욱더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대답하지 않으시면, 조금 곤란해 집니다만... 아실지 모르겠지만, 왕국 전시 상태가 선포 된 상황에서는 각 수비대의 재량권과 즉결 처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되어서 말입니다.”

저 눈빛은, 사람을 의심하는 눈빛이다.

“설마, 불손한 의도를 가지고 수비대에 귀속된 화염석을 터뜨리신 건 아니시겠죠?”

“어... 음... 그게 아니라... 사실 제가 잠시 파티를 나와서, 따로 해야 할 임무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 일만 끝나면, 바로 파티에 복귀할 예정입니다.”

“...흐음. 따로 맡은 임무...”

“예. 제가 따로 맡은 임무가 있는데, 이게 용사가 저한테 직접 맡긴 일이라서 말입니다. 하하!... 말씀드리기는 조금 뭐 하고... 어떻게 이해 좀 해 주세요. 저희가 조금 바빠서...”

어색하게 웃으며 로빈의 팔을 툭 치니, 무거워진 분위기를 눈치채고 조용히 밥을 먹던 로빈이 화들짝 놀라며 내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ㄴ... 네! 오스틴 선배님은 레인저에 있을 때 제 직속 상관 이셨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임무를 도와 드리고자... 헤헤...”

펜 끝으로 테이블을 두들기기 시작한 밀라의 침묵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 탁. 탁. 탁.

“...수사관님. 저희는 진짜 별다른 의도로 화염석을 터뜨린 건 아니구요. 그냥 일 좀 하다가, 바위 메뚜기들이 튀어나와서 탈출 하다가 그런 겁니다. 진짜 별 이상한 생각은 없었구요...”

­ 탁. 탁.

...저 펜 두들기는 소리 좀 멈춰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우리를 쳐다보는 밀라의 시선이 너무 날카로웠다.

“...뭐, 용사님의 행보에 제가 딴지를 걸 수는 없는 노릇이죠.”

한참의 침묵 끝에, 밀라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려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알렉시스 공녀님의 보증도 있고... 오스틴 님께서 악의적인 의도로 한 일이 아니라고 믿어 드리겠습니다.”

“아... 아이고!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사관 나으리!”

뭐야.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는걸.

한층 더 겸손해진 교도관의 안내를 따라 바깥으로 나온 우리는, 각자 압수당했던 장비들을 돌려받은 뒤 무사히 구치소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벌써 밤이네.”

어제부터 연달아 귀찮은 일에 엮인 탓인지, 우리는 모두 축 늘어져 지쳐 있는 상태였다.

지금은 따뜻한 목욕과 맥주, 푹신한 침대가 무엇보다 그립다.

“으음... 나는 이제 피곤해서... 보수는 내일 길드에 달아 둘테니까, 길드에서 보자고.”

모그단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뒤를 돌려는 찰나.

­ 콰아앙!!!!!!

“뭐... 뭐야 또?!”

갑작스레 굉음이 난 방향을 돌아 보니, 광산 부근에서 엄청난 양의 흙더미가 공중으로 분수처럼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곳곳에서 치솟아오르는 불길.

­ 쾅! 콰앙!

동시다발적으로 귓가를 때리는 폭발음에, 우리는 귀를 틀어막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 키이이이이익!!!!!! ]

“...아. 지랄.”

솟아오른 흙더미가 가라앉고, 광산이 있는 방향에서 쩌렁 쩌렁한 바위 메뚜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발 내 인생에서 좀 꺼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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