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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37화 (37/106)

〈 37화 〉 37. 마지막 승부수

* * *

“이사벨, 정화! 그레이시! 이사벨은 내가 지킬테니, 너는 마야를 보호해!”

“네!”

“크윽...! 알겠다!”

용사는 이사벨을 향해 달려드는 밀랍 인형을 베어넘기고, 아직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하는 자색 머리칼의 소녀를 노려보았다.

꼭두각시의 아가일. 정체불명의 능력을 사용하는, 베일에 싸인 군단장.

이리 힘든 전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무턱대고 싸울게 아니라, 조금 더 침착하게 정보를 모았어야 했다. 오스틴이 있었다면 그리 했을 것이다.

“...씨발...!”

이번에는 양옆에서 달려드는 밀랍 인형들을 촤악­! 두 동강 내어 버리고, 곧이어 이사벨에게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사벨의 정화의 빛이 용사의 몸을 감싸고, 곧이어 몸에 슬금슬금 달라붙어 오던 밀랍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고마워! 그레이시도 정화해 줘!”

“용사님! 조심하세요!”

­ 카가가각!!!

용사를 향해 쇄도하는 오크 인형의 검격을 가까스로 막아 낸 용사는, 성검을 꽉 쥐고 온 힘을 다해 횡베기를 가했다.

“으아아아앗!!!”

­ 콰과과광!

그녀들을 빽빽하게 애워싸고 있던 밀랍 인형들이, 용사의 검격 한 방에 우수수 쓸려 나가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하지만 아가일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그저 바쁘게 밀랍펜을 끄적일 뿐이었다.

“...리자드맨 인형 30기. 용사파티를 공격한다.”

아가일의 밀랍펜이 마침표를 찍음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수많은 리자드맨 밀랍 인형들.

아드리엔이 쉴 새 없이 활을 쏘며 빠르게 놈들을 눕히고 있지만, 화살은 무한정 있는 것이 아니다.

마야의 마나가 바닥을 보이기 전에, 이 상황을 타파할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하아... 하아...! 아가일...!!!”

거친 숨을 내쉬며, 용사는 지금 상황을 뒤집을 만한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바쁘게 눈동자를 굴렸다.

놈들은 밀랍. 살아생전에는 마물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그저 밀랍으로 이루어진 인형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밀랍. 액체 기름. 양초의 원료.

“마야!!! 불 마법으로 쓸어버려!!!”

용사는, 다시금 다리를 타고 올라오려는 밀랍 덩어리를 떼어 내고, 승부수를 띄웠다.

* * * * *

“좋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설명할게!”

나는 지도에 그려져 있는 기중기를 가리키며 일행들에게 작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모그단의 말에 따르면, 광산 곳곳에는 화염석들이 나무 상자로 포장된 채 쌓여 있어. 화염석은 마력과 감응해야 폭발하기 때문에, 지금 이 개판이 났는데도 터지지 않은 거야. 우리는 이 화염석으로, 여왕을 죽인다.”

“이봐, 오스틴. 내가 아는 바위 메뚜기의 여왕 개체는 일반 개체들보다 크기가 크긴 하지만, 저렇게 극단적으로 거대하진 않다. 저 여왕은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거지?”

루나가 의문에 찬 표정으로 내게 물어왔지만, 애석하게도 나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아는 선에서도, 저만큼이나 거대한 여왕 개체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루나. 어디 음침한 마법사가 마법 실험 하다가 저 지랄판 만들기라도 했나 보지.”

“어쩌면, 이 사건의 배후가 따로 있을지도 모르겠군. 저렇게 거대한 개체는, 확실히 비정상적이다.”

“그건 이번 일이 해결되고 나서 생각해보자고. 급한 불부터 꺼야지.”

“으음...”

나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진 루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지도로 시선을 내렸다.

“기중기를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마나석이 필요해. 다행히 모그단이 마력석의 위치를 알고 있으니, 그건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내 설명에, 루나에 이어서 이번에는 로빈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 가뜩이나 마력이 잘 통하는 벨리온 강철로 만든 기중기에 마나석을 꽂으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화염석을 싣자마자 폭발하는 건 아니겠죠...?”

로빈의 질문에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모그단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너무 강한 충격만 주지 않으면 돼. 애초에 저 기중기는 화염석을 옮기는 용도로도 써서, 충격 감소 인챈트가 걸려 있기도 하고.”

모그단의 설명에, 로빈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설명하자면... 나와 모그단이 기중기를 작동 시키는 동안, 알렉시스 공녀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화염석을 최대한 긁어 모아서 기중기에 실어 줘. 기중기를 돌리는 동안 떨어지면 큰일 나니까, 넘쳐흐를 정도로 담지는 말고.”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일행을 둘러보며 내 설명을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한 뒤,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저 여왕도 바보는 아닐 거야. 우리가 수작질을 하는 동안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을 거란 말이지. 그리고... 알렉시스 공녀님. 여기서는 공녀님께서 나설 차례입니다.”

“...어... 네? 제가요...?”

“공녀님께서는 저희 파티에서 유일하게 방패를 쓰시니, 놈의 시선을 끄는 역할로는 알렉시스 공녀님께서 제일 잘 버티실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보르댕 후작님께서 수비대 병력도 일부 지원해 주시니, 그리 어려울 것은 없을 겁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놈은 움직이지 못하기에, 알렉시스 공녀에게 안심하고 이 역할을 맡길 수 있었다.

알렉식스 공녀 역시 내 말에 납득한 모양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정리하자면... 나와 모그단이 기중기를 움직이고, 알렉시스 공녀님께서 놈의 시선을 끄는 동안, 나머지 인원들은 화염석을 삽으로 퍼 담아서 기중기에 싣고, 루나와 로빈이 마나를 흩뿌려서 화염석을 준비한다. 그리고... 쾅.”

나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했다.

“저 덩치만 큰 여왕은 끝장나는 거야. 아마 파괴력 면에서 걱정할 건 없을 것 같다. 걱정해야 할 건, 여왕과 화염석을 충돌 시켰을 때 화염석이 불발하는 상황일 텐데... 뭐, 그때는 내가 쇠뇌로 화염석을 쏘면 되니까. 다들 이 계획에 동의하는 거지?”

내 말을 듣던 일행이 모두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 역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쇠뇌와 칼을 뽑아 들었다.

“일단, 광산까지 가는 길에 있는 잔챙이들부터 뚫고 지나 가자고. 로빈은 또 얼어 버리지 말고.”

“아... 안 그래요! 선배님이나 조심하세요!”

“그래, 그래... 조심해야지.”

나는 로이먼과 루나 사이를 지나쳐, 저 멀리 흙먼지가 일어나는 광산을 바라보았다.

“...조심해야지.”

* * * * *

“와! 진짜 개 크네 씨팔!!!”

코앞에서 바라보는 여왕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했다.

단단한 바위로 둘러싸인 몸은 일체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는 난공불락의 요새같았고, 육중하고 긴 세 쌍의 다리들은 움직일 때마다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천지사방을 진동시켰다.

덕분에, 우리는 기중기를 향해 뛰어가는 도중 넘어지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후우... 후우...! 지금부터 각자 위치로 이동한다! 산개해!!!”

내 외침과 동시에, 여왕의 고개가 덜컥­ 돌아가며 그 시선이 우리에게로 향했다.

저 새끼... 나를 보고 있다...!

“알렉시스 공녀님!!!”

“알고 있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간 알렉시스 공녀는, 방패를 치켜 세운 채 그대로 여왕의 다리를 들이 받았다.

­ 쿵!!!

“쏴라!!!”

그와 동시에, 광산 저편에 숨어 있던 수비대가 일제히 활을 쏘았다.

밤하늘을 가르며 별똥별처럼 떨어지는 불화살들이 여왕의 갑각을 때리고, 그중 몇 발이 여왕의 갑각 사이로 파고드는 모습이 보였다.

[ 키에에에엑!!! ]

여왕의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울려 퍼지고, 곧이어 꿈틀거리는 지반 속에서 바위 메뚜기 몇 마리가 땅을 헤집고 튀어나왔다.

나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숏소드를 모로 들어 올려 바위 메뚜기들의 눈을 찌르며 모그단과 함께 기중기를 향해 달려갔다.

“뒤져! 이 벌레 새끼들아!!!”

[ 키이이익...! ]

“오... 오스틴! 여기에도 있어!”

“아이 씨팔! 엎드려!!!”

“으... 으아아아!!!”

쇠뇌를 적극 활용하며, 우여곡적 끝에 도착한 기중기 앞에서 눈을 굴려 보니, 로이먼과 로빈이 허둥지둥 화염석을 줍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루나는 어디에 있지? 루나도 분명...

아. 루나는 화염석을 줍는 저 둘을 엄호하고 있었다.

여왕도 어느새 이쪽에는 신경 쓰지 않고 알렉시스 공녀와 수비대를 상대하고 있고, 바위 메뚜기들 역시 그쪽으로 주의가 끌려 있었다.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모그단과 함께 기중기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모그단! 마나석은 가져 왔지?!”

“물론이지! 아무나 가져가지 말라고 광산 입구에 숨겨져 있었지만, 내가 위치를 알고 있어서 다행이야!”

허겁지겁 기중기를 기어 올라간 우리는, 마나석을 구멍에 꽂아 넣고 기중기가 잘 작동이 되는지 확인했다.

아무래도 나는 기중기를 조작할 줄 모르기에, 유일하게 조작법을 알고 있는 모그단이 의자에 앉아 이것저것을 당기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푸슉­ 증기가 새는 소리를 내며 털털거리기 시작하는 기중기.

­ 끼기기긱!

“...야, 모그단. 이거 괜찮은 거 맞지? 소리가 좀 불안한데?”

“요즘 힘이 조금 떨어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못 쓸 정도는 아니야! 기름칠 좀 하라니깐... 끄으응...!!!”

어쩐지 불안한 소리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멀쩡히 움직이기는 하는 모양이다.

기중기의 작동을 확인하고 내려오니, 알렉시스 공녀가 여왕의 앞발을 요리조리 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쾅!!!

­ 콰앙!!!

[ 키이이이익!!! ]

“꺄아아악...!!! 오스틴! 아직 멀었나요?!”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 주세요!!! 거의 다 됐습니다!!!”

나는 모그단은 기중기에 남게 한 뒤,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가 로이먼과 로빈의 화염석 수확에 가세했다.

낑낑대며 기중기의 갈고리에 달린 커다란 수레에 화염석을 싣다 보니, 어느새 수레가 가득 찰 정도로 화염석이 실렸다.

“끄응...! 다 됐다!!! 공녀님! 이제 슬슬 빠지세요!!!”

정신없이 굴러 다니던 알렉시스 공녀가 광산 변두리로 빠지는 것을 확인한 뒤, 루나와 로빈이 헐레벌떡 달려와 화염석 위로 마나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손에서 미약하게 뿜어져 나온 마나가 구석구석 스며들도록 꼼꼼히 펴발라주자, 수천 개의 화염석들이 웅웅거리며 주홍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됐...”

그 순간.

마력의 파장을 느낀 것일까?

여왕의 고개가 휙 돌아가더니, 우리를 향해 겹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 다르게, 어째서인지 자색으로 빛나기 시작한 여왕의 눈을 마주 보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느낌... 예전에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오스틴!!!”

내 어깨를 두드리는 루나의 손길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재빨리 기중기 위로 올라가 모그단에게 다가갔다.

“모그단! 다 실었으니까 이제 화염석 꼬라 박아!!!”

“저... 저거...!”

“뭐?!”

“오... 온다!!!”

모그단의 비명에 여왕쪽을 휙 돌아보니, 어느새 여왕의 앞다리가 우리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아.”

별안간 온몸이 부유감에 휩싸이더니, 천천히 뜨인 내 시야가 기중기의 조종석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여왕의 공격이 닿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으아아아아!!!!!!”

나를 밀쳐 내고 여전히 조종석에 앉은 채 혼신의 힘을 다해 레버를 당기고 있는 모그단이, 시야에 들어온다.

너는 왜 아직도 거기 있어, 새끼야.

“빠... 빨리 나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중한 소리를 낸 기중기에 달린, 화염석이 가득 실린 수레가 철퇴처럼 휘둘러졌다.

거의 동시에, 기중기의 조종석을 후려 치는 여왕의 앞다리.

­ 콰아앙!!!

[ 키에에에엑!!!]

화염석의 폭발과 함께, 기중기의 절반이 뜯겨 날아갔다.

“모그단!!!!!!”

미처 탈출하지 못한, 모그단을 품은 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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