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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41화 (41/106)

〈 41화 〉 41.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

* * *

“...뭐지? 그새 사람들이 정착했나?”

나는 아무것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지도의 평원 부분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저 앞에 보이는 마을을 향해 눈을 흘겼다.

“지도에는 안 나와 있는 마을인데...?”

지도가 오래 됐던가? 아니다. 기껏해야 반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나름 최신 지도일 텐데.

그렇다면, 그 2년 남짓 되는 사이에 사람들이 이주해 와서 정착했단 말인가?

“...로빈. 저기 무슨 동네인지 아는 거 있어?”

“어...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생각해 보니까, 저런 마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에라이 씨발.”

당최 언제 생겨난 마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해가 지기 까지는 한참 남았으니 굳이 들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쓰읍... 그냥 지나가자. 어차피 다음 마을까지 몇 시간만 더 달리면 될 것 같고.”

고개를 끄덕이는 로빈을 보고, 나는 다시금 지도로 시선을 내렸다.

일단 이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카르디나 마을이 나온다. 지도에 나타나 있는 거리를 축척으로 계산해 봤을 때는...

“네댓시간 정도 걸리려나. 도착하면 딱 저녁 시간 이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 계산을 잘했단 말이지. 3년 동안 전선 각지를 돌아다닌 짬밥은 어디 안 간다고.

“카르디나 마을이라면, 저도 들어 본 적이 있는 마을이네요. 유채꽃이 예쁘게 펴 있는 곳이라던데...”

“유채꽃?”

“네. 근처에 엄청나게 넓은 유채밭이 쫘악— 펼쳐져 있다고 들었어요. 매년 이맘때쯤에 유채꽃 축제도 연다고 하더라구요. 어때요? 가서 축제를 조금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유채밭이라. 상당히 장관일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마을에 머무르며 여유롭게 축제를 즐겨보고 싶지만... 갈란의 목을 떨구는 것이 먼저겠지.

“지금은 좀 그렇고... 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 같이 가 보자.”

“네에...”

내 대답을 들은 로빈의 머리와 어깨가 축 늘어졌다. 아쉽지만, 다음에 오면 되니까.

갈란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모그단의 몸을 걸레짝을 만들어 놓고 빤스런을 쳐?

“씨불련...”

“...네?”

“어? 아냐... 혼잣말.”

“아... 네에...”

제발 죽여달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온몸을 후들겨 패버리고 싶다. 레인저 시절부터 동료들을 잃은 일들 때문인지, 나는 유독 친한 사람들이나 동료들의 불의를 참지 못했다.

어쩌면, 내 실수로 인해 세상을 떠나버린 옛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르지.

갈란은 강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나름대로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 덜커덩! 콰자작!

“꺄악?!”

“어억...! 씨발 뭐야!”

덜컹! 하며 거새게 흔들린 마차로 인해, 하마터면 마부석에서 떨어져 나갈 뻔했다.

낙마하거나 마차에서 잘못 떨어지면 다리가 부러지는 것만으로는 안 끝난다. 뒤질 수도 있다고.

“우아앗...?!”

“형제님! 무슨 일입니까!”

“오... 오스틴?!”

마차 안에서 자고 있던 일행들의 단잠을 깨울 정도로, 마차는 심하게 흔들리다가 한쪽으로 기우뚱 주저앉아 버렸다.

“어... 아냐 아냐! 마저 자고 있어! 나랑 로빈이 한 번 볼게! 별일 아냐!”

그래. 별일 아니겠지. 끽해 봐야 흙길에서 돌 하나 밟은...

­ 쩌저적...

...방금 마차에서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은데, 제발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서... 선배님... 방금...”

“애미 진짜.”

* * * * *

“선배님... 그쪽이 아니라 이 쪽에 끼우는 것 같은데요...”

“이 쪽 아니야? 모양 보니까 딱 봐도 이쪽 같은데.”

“아니죠! 여기 걸림쇠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쪽에 이렇게 끼우면... 끄으응...!”

­ 빠각!

“...에헤헤... 시... 실수...?”

로빈은 끝내 마차 바퀴의 숨통을 끊어 버리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씨부랄.”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잘만 나가던 마차가 왜 길 한복판에서 멈춰 서 있는가? 하면...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차 바퀴 하나가 개 박살이 나버렸다. 그것도 흙길에 파묻혀 있던 단단한 돌 무더기 때문에.

“아니, 다시 생각해도 얼탱이가 없네. 길 한복판에 저딴 것들이 깔려 있는게 말이 돼?”

내가 되도록이면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건만, 유감스럽게도 이번 일은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정갈하게 정돈된 흙길에 교묘하게 파 묻혀 있는 단단한 돌조각들 하며, 가끔씩 섞여 있는 쇠사슬과 녹슨 농기구들까지. 심지어 쇠사슬 쪽은 누가 바닥에 고정이라도 한 듯 팽팽하게 당겨진 채 교묘하게 흙으로 덮어놓은 것이, 딱 봐도 누구 하나 뒤져 보라고 심어놓은 것 같았다.

이건 뭐 누가 일부러 설치한 게 아닌 이상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이딴게 길 한복판에 왜 파묻혀 있는 건지 모르겠네.

“갈 길이 바쁜데... 후우...”

내가 뒷머리를 거칠게 긁으며 한숨을 내뱉고 있으니, 근처에 있는 나무에 말들을 묶던 루나가 다가와 상체를 숙였다.

“으음... 이래서야 수리 하기에는 완전히 글렀군.”

“솔직히, 로빈이 박살 내지 않았 더라도 아마 못 고쳤을 것 같은데. 못이 완전히 부러졌어.”

“바퀴살에도 금이 가 있고 말이지. 대체 이런 길 한복판에 왜 저런...”

“내 말이...”

무너져 내린 마차를 붙잡고 끙끙 대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돌겠네 진짜.”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넘어간다. 하늘이 마치 로빈의 머리색 같아서, 나는 바퀴를 고치는 것을 포기한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람 인생 살다 보니 이런 좆 같은 경우도 다 있네. 오늘 밤은 야영을 해야 할까?

하지만, 내일은? 하루 잔다고 해서 마차 바퀴가 수리되는 것도 아닌데, 어떡하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마을 방향으로 잠시 눈이 돌아갔다.

저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할까? 하지만,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마을인데... 저렇게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마을들 중에서는, 도적떼들이 얼기설기 집을 짓고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습격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들어서 경계심을 가지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뭐, 괜찮으려나.”

이런 탁 트인 평야에 마을을 꾸리는 경우도 꽤나 흔한 일이니까. 애초에 마차를 수리하지 않으면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마차에 실린 짐을 싹 다 버려야 한다.

좋아. 마을에 가서 도움을 청하자. 겸사겸사 하루 정도 쉬었다 가면 좋겠지.

“저... 오스틴?”

모두에게 마을에 가서 도움을 청하자고 말 하려던 찰나, 알렉시스 공녀가 나를 상념에서 깨웠다.

“예?”

“저쪽에...”

어딘가를 가리키는 알렉시스 공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야를 돌려 보니, 저 멀리 마을이 있는 방향에서 누군가 랜턴을 들고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뭐여, 씨벌.”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허리에 달려 있는 검 손잡이로 손이 움직였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 역시 긴장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영을 노려보았다.

서서히 우리를 향해 다가오던 신원미상의 인물은, 이윽고 우리를 발견한 듯 랜턴을 높이 치켜들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거... 사람 맞지?”

“아무래도 저 마을에서 나온 모양이군. 우리를 본 모양인데...”

나와 루나가 그리 대화하는 사이에도 거리는 점점 가까워 져서, 이제는 서로의 얼굴이 보일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왔다.

“...와.”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그녀의 미모에 감탄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로빈과 루나, 알렉시스 공녀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저 마을은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청렴결백한 마을로 단숨에 평가가 올라가 있었다.

저런 고운 미녀가 있는 마을이 도적단이 모여 사는 그런 마을 일리가 없지. 암.

“아파. 갑자기 왜 꼬집어?”

“...모른다. 바보.”

루나가 난데없이 내 팔뚝을 꼬집어 주는 덕분에, 실없는 상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윽고 우리 앞에 선 정체불명의 미녀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귀여운 태도로 배시시 웃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저쪽에 있는 마을에서 왔습니다! 혹시, 곤란하신 일이라도 생기셨나요?”

“어, 음... 네. 마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는데, 하필이면 바퀴가 부서져서 말입니다.”

내가 선뜻 자리를 비켜 주며 부서진 바퀴를 보이자, 마을 소녀가 쭈그리고 앉아 랜턴을 들이대고 열심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으음... 마차를 조금 험하게 다루시나 봐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나는 마을 소녀에게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전해 주려 애썼으나, 마을 소녀는 자신도 전혀 모르는 사실 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 이 길목에 누군가 함정을 설치해 놓은 것 같다구요...?”

“아니, 뭐... 그냥 인위적인 흔적이 보여서 의심이 된다~ 이 말이죠.”

내 얼버무림을 들은 마을 소녀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잠시, 이윽고 손뼉을 짝—! 하고 마주치더니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 마을에서 조금 묵고 가시는 게 어떠세요? 저희 마을에 목수 아저씨도 계시니까, 아마 바퀴도 수리하실수 있으실거에요!”

살았다...!

솔직히 이 오밤중에 마을까지 가서 대뜸 하룻밤 묵겠다고 하면 의심을 사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저쪽에서 선뜻 제안해 오니 귀찮은 일이 줄어들었다.

나는 절로 헤벌쭉 해지는 표정을 고치지 못하고 마을 방향으로 손짓을 했다.

“아유! 그럼요! 그렇게 해 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내 대답을 들은 소녀는, 곧바로 활짝 웃음꽃을 피우며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흐흥... 그럼 가요!”

죙일 마차만 타느라 지쳤는데, 두 발 쭉 뻗고 잘 생각에 절로 싱글벙글 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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