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46화 (46/106)

〈 46화 〉 45. 잘못된 만남

* * *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

최소한의 영양소를 충족시켜 주며 허기를 달래주는 밥, 따뜻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를 선사해 주는 집, 체온을 유지해 주기도하고, 때로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해주는 옷.

그렇다면, 마족은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

최소한의 영양소를 충족시켜 주며 허기를 달래주는 밥, 따뜻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를 선사해 주는 집, 체온을 유지해 주기도하고, 때로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해주는 옷— 그리고 마력.

이 중 두 가지만 없어도, 인간과 마족이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은 현저히 줄어든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여기, 마족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중 세 가지를 충족하지 못한, 안타까운 신세의 마족이 비틀거리며 걷고 있다.

“배... 배고파아...”

최소한의 마력과 밀랍으로 변장한 백발은 어느새 푸석푸석 해진지 오래였고, 끼니를 해결한 것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가일은, 태양이 떠오르고 지는 것을 기준 삼아, 그저 서쪽으로 걷고 걸었던 것이다.

용사로부터 벗어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여기는 대체 어딘가. 서쪽으로 한참을 걸었건만, 어째서 숲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처음에는 나름 희망을 갖고 발을 움직였던 아가일 이었지만, 제대로 된 끼니도 먹지 못한 채 이슬만 마시며 강행군을 행하는 것은 아가일이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이기에 충분했다.

“흑... 배고픈데... 나는 마왕군 군단장 인데에... 흐윽...”

더 이상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아가일은, 나무에 등을 기대고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조난 4일째, 아가일은 한계에 다다랐다.

“왜 아직도 숲인 거야... 흐윽...!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냐구우... 히끅!...”

평소의 고압적인 태도를 고수하던 아가일은 이미 공복으로 인해 허물어진 지 오래였다. 아가일은 그저, 손으로 소매를 쥐어 차오르는 눈물을 닦아 낼 뿐이었다.

며칠간 쫄쫄 굶은 그녀에게, 바닥을 보였던 마력이 빠르게 차오르는 기적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천천히 충전되는 마력마저 공복으로 인해 쓰러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바람에, 사실상 충전된 마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차라리 그 자리에서 가만히 마력을 충전해서 오빠에게 구조 요청을 보내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평소 오빠에게 보였던 태도를 굽히기에는 아가일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차라리 그냥 구조 요청을 보낼 걸.

왜 항상, 저지르고 나서야 후회하는 걸까.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걸까.

아직 오빠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 했는데.

그녀는 눈을 감았다.

아가일이 입을 다무는 바람에, 잠시나마 소란스러웠던 숲은 다시금 고요함을 되찾았다.

새소리, 벌레 우는 소리, 그리고...

“...맛있는 냄새...”

그래, 맛있는 냄새.

고기를 구울 때 나는 기름진 냄새가, 그 어느 때보다 향긋하게...

아가일은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헤엑...! 헤엑...!”

풀숲을 헤치고 드러난 것은 마침내 끝을 보인 숲과,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들판, 잘 닦인 흙 길 도로변에 멈춰 선 한 대의 마차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인간 무리들.

“바... 바압...!”

그리고, 마차 옆의 모닥불 위에서 육즙을 뚝뚝 흘리고 있는 고기였다.

아가일은, 이성의 끈을 놓은 채 모닥불 앞으로 쪼르르 달려 나갔다.

* * * * *

“카악— 퉤! 염병할 새끼들.”

어쩐지 여정이 너무 순탄하다 싶었다.

마을을 벗어났을 때만 하더라도 느낌이 좋았건만, 반나절 정도 마차를 움직이니 숲에서 도적 떼가 튀어나왔다.

큰 피해는 없었지만, 바로 어제만 하더라도 길가에서 마차가 부서지는 대참사를 겪은 터라, 마차 바퀴가 또다시 작살이 나버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건만.

나는 숏소드에 묻은 피를 바닥에 흩뿌리고, 눈앞에 묶여 있는 몇몇 도적 새끼들을 눈에 담았다.

이 밥버러지 거렁뱅이 새끼들은 세상 살기가 막막해서 이런 짓을 벌이는 주제에, 정작 당하는 사람 입장은 생각하지도 않는 깎아죽일 새끼들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이번 습격에서 가장 악질이었던 놈의 머리끄댕이를 잡아 쥐었다.

“이 씹새끼야. 다시 말 해 봐.”

“무... 무슨... 커헉...!”

“다시 말 해 보라고. 뭐? 마차 바퀴를 노려라?”

“죄송... 죄송합니다!”

“이게 죄송해서 끝날 일이야!!! 어!!!!!!”

“끼야아아악!!!”

뚜둑.

그대로 모가지를 움켜쥐고, 등을 긁기에 최적화된 몸으로 만들어 주었다.

뒤통수와 안면의 위치가 뒤바뀐 몸뚱이를 구석으로 던져 버리자, 반짝거리는 대머리가 인상적인 도적단 두목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내... 내 동생을...! 크아아악!!! 죽여 버릴 테다!!!”

“아... 네 동생이었어?”

고건 몰랐네.

“이거 풀어!!!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붙자!!!”

“야. 내가 네 동생 놈한테 자비를 베푼거잖아. 아직도 모르겠어?”

“이게 무슨 자비야! 이 잔인한 놈아!!!”

“귀 아프니까 조곤조곤 말하자. 혓바닥 뽑아버리기 전에.”

두목놈의 대머리에 손바닥을 올리니, 챱—! 하는 찰진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놈의 뽀득뽀득한 대머리를 슬슬 문지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네 머리 꼬라지 보면 저 동생이라는 놈도 예비 대머리일 텐데... 그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 바에야, 자비롭게 보내 주는 게 낫지 않겠어?”

“이이익...! 지금 나를 대머리라고 놀리는 거냐!!! 죽여 버릴 테다!!! 너는 내 손으로 꼭...!”

“자, 조용. 저녁 먹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너 때문에 이게 뭐냐? 단란한 저녁 식사 분위기가 씹창이 나버렸잖아. 어떻게 책임질거야?”

“이 미친놈이...!”

대머리라는 사실을 놀림거리 삼아 잠시 말 좀 섞어 줬더니, 끝도 없이 기어오르는 모습에 새삼 감탄이 나올 정도다.

이렇게 의지가 강한 놈이 도적질을 하다니...

“말세지, 말세야. 네가 모험가를 했다면 아마 이름 좀 날렸을 텐데.”

본보기로 한 놈만 죽이기에는, 이놈들의 죄질이 너무 나쁘다.

나는, 곧바로 두 번째로 악질인 발언을 한 놈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얼굴을 온통 무지개 색깔의 붕대로 칭칭 감은 괴상한 패션 감각을 선보이는 놈의 머리 끄댕이를 붙잡고, 모가지에 칼을 들이밀었다.

“야. 넌 뭐라고 했어?”

“그... 그게...”

“난 네가 했던 말이 다 기억 나는데. 네가 뭐라고 했는지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그대로 얘기해 봐.”

“여...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겁탈하라고...”

“...또? 날 가리키면서 한 말이 있지 않아?”

“...저기 저 반반하게 생긴 놈은 내가 찜했으니까 건들지 말라고...”

안 되겠다...! 이놈이 내뱉는 말들은, 하나 같이 내 마음을 후벼 파는 잔인한 말들밖에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진 나는, 놈의 멱살을 억세게 움켜쥐고 고함을 질렀다.

“도적질을 하더니, 기어코 천륜을 저버리는 거냐!!! 어!!!!!!”

“히익...!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죽어!!! 넌 죽는 게 세상에 이로워!!!”

“으... 으아아아...!”

촤악—!

놈의 더러운 피가 풀밭에 흩뿌려졌다.

죄 많은 인생, 내세에는 지렁이로 태어나길...

슬슬 마차 뒤쪽에서 굽고 있던 고기가 걱정된 나는, 엉덩이를 훌훌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 우리를 어쩔 셈이지!”

방금 전까지 온갖 센척을 해대면서 반항하더니, 아무래도 죽을 위기에 처한 사실을 감당하기 힘든 걸까?

여전히 반항하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지만, 나는 놈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덜덜 떨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남은 도적 잔당의 수는, 두목을 포함해서 넷.

저놈의 말마따나, 나머지 도적들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

어떻게 처리하긴, 우리의 만능 해결사 로이먼에게 맡기면 되겠지.

나는 저 멀리 도적들의 시신을 한 군데로 모으던 로이먼에게 다가갔다.

“야, 로이먼. 저 새끼 심문했는데,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네가 꼭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형제님? 그게 무슨...”

“저 새끼들... 이단이야! 악마를 신봉하는 이단이라고! 내가 다 물어 봤어! 확실해!”

“이... 이단이라고요!”

내 말을 들은 로이먼은, 질질 끌던 시체의 발목을 놓고 살아남은 도적 잔당들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이... 이 불경한 자들이!!! 감히 그릇된 존재를 신봉하다니!!!!!!”

“무슨...! 으아아악!!!!!!”

“그분께서 네놈들의 잘못된 신념이 바로잡히길 원하신다!!!”

살과 뼈를 뭉개버리는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 왔지만, 나는 구태여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알렉시스 공녀님. 추한 광경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아뇨... 저들이 먼저 우리를 공격한걸요.”

알렉시스 공녀 역시, 생전 처음 보는 도적 떼의 습격으로 인해 조금 놀란 모습이었다.

나는 알렉시스 공녀를 데리고, 저쪽 구석에서 시체를 불 태우고 있는 로빈과 루나를 향해 손짓 했다.

“야! 밥 먹자!”

밥 먹자는 소리를 들은 로빈이 신나서 달려오고, 루나 역시 창에 묻은 피를 천으로 닦아내며 다가왔다.

불위에 올려 둔 고기는, 아마 지금쯤이면 딱 잘 익지 않았을까.

“흐흐... 역시 밥은~ 고기를~ 먹어야지요~”

“선배님! 소금은 뿌려 두셨죠? 선배님 맨날 까먹으시던데...”

“야. 이번에는 확실히 뿌렸으니까 걱정하지 마셔.”

“배가 고팠는데, 마침 잘 됐군. 지금쯤이면 다 익었... 을...”

루나의 말은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옴뇸뇸뇸... 우물우물...”

“...?”

모닥불 앞에서 꼬물거리는 새하얀 백발을 본 우리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저건 또 누구야.”

행복한 표정으로 고기를 물어뜯고 있는 소녀의 앞에는, 깨끗하게 살이 발라진 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지만, 그건 지 밥 먹을 때나 통하는 얘기고.

“동작 그만!!!!!!”

내 밥그릇 뺏어 쳐 먹는 거면 얘기가 다르지.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