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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55화 (55/106)

〈 55화 〉 54. 사냥개들이 굶주렸다

* * *

마치 물이 들어간 것처럼, 귀가 먹먹해진다.

“—이먼—! 정신—”

흐릿해지는 시야로, 처참한 내 상처를 열심히 지혈해주며,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패닉에 빠진 오스틴 형제님이 보인다.

의외로 고통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하루 종일 몸을 단련하고 침대에 누운 것처럼, 온몸이 나른해지는 감각을 느끼면서...

너무 졸려서, 조금만 자고 싶습니다. 형제님. 저는 괜찮습니다.

“...그르르륵—”

라고 말하려던 입은,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피에 가로막혀 기분 나쁜 소리만 낼뿐이었다.

천상으로 불려 가는 걸까. 이대로, 그분의 곁으로...

아... 안 돼...

아직... 아직 모자란데.

아버지는.... 고작 이 정도로, 는... 죄를, 용서받을 수... 없을 텐데...

나는, 정의를, 위해... 더 헌신해야 하는... 데...

틀렸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너무 피곤해. 정신이 몽롱하다.

조금만 쉬자. 아주 조금만... 진짜 조금만 쉬고...

......

......

......

...나는, 아직 죽을 수 없다.

* * * * *

“끄응... 정말이지, 불안하게...”

로빈의 손에 이끌려, 본래 지하 주점으로 쓰이던 대피소에 피신한 실비아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끙끙거렸다.

로빈이 데려다 준지 얼마나 지났을까, 별안간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지상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지금 밖으로 나가서 오스틴을 도우면, 아마 다시는 마왕군으로 복귀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대로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 것이 맞는 선택일까?

실비아는 생각에 잠겼다.

마왕군의 군단장으로서의 책임감 따위는, 어차피 그다지 남아있지 않았다. 단지, 마족으로서 몸을 의탁할만한 곳이 마왕군 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애초에, 오빠인 아가토가 전선에는 절대 내보내지 않으니 출세할 기회도 별로 없었고. 이럴 거면 왜 굳이 그녀를 군단장으로 추천한 것인지. 오빠의 생각은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

중요한 일에는 항상 제외되고, 언제나 다른 이들의 뒤처리를 맡거나, 한직으로 보내졌던 그녀로서는 불만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지난번, 메르덴 숲에서 용사를 붙들어 놓으라고 했던 것도, 아가토가 반대했으나 마왕이 억지로 밀어붙였던 거니까.

물론, 그것이 모두 아가토가 그녀를 걱정해서 그런 것임을, 실비아 역시 어렴풋이 눈치채고는 있었다.

“씨이... 그래도...”

생각해보니, 그녀는 언제부턴가 자신을 아가일이 아닌, 실비아로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서, 다시 원점.

정말 이대로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 것이 맞는 선택일까?

갈란은 강하다. 아마 군단장들 중에서도, 중간 이상은 가지 않을까.

용사가 있으면 모르겠다만, 현재의 오스틴 일행의 힘으로는 많이 버거울 것이 자명했다.

그녀는 말없이 품속에서 밀랍 펜을 꺼내 들고, 눈을 감았다.

힘이 반 정도 회복되었다. 이 정도면, 무리 없이 아가토의 게이트를 열 수 있다.

기뻐해야 할 일이잖아. 어차피 힘이 회복되면 마왕군으로 돌아가려 했고, 다시 한직으로 물러나서 껍데기만 군단장인 채로...

“나쁜 새끼...”

아가토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그녀는 주점 바깥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왕군으로 돌아가는 것과, 오스틴의 파티에 돌아가는 것.

고민하는 게 바보 아니야?

* * * * *

“...뭐지? 꿈인가?”

아니, 왜.

그도 그럴게, 로이먼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새끼는 아니잖아. 그렇지? 내 말이 맞지?

“그, 그치?”

떨리는 목소리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으나, 누구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 갈란조차,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듯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씨발. 아무나 좋으니까, 제발 그렇다고 해 줘.

“아, 아니... 개지랄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 야, 로이먼...”

너덜너덜해진 로이먼의 사제복에는, 붉고 끈적한 피가 겉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었다.

애써 지혈을 하겠다고 손으로 붙잡은 로이먼의 상처 역시, 울컥울컥 피가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바닥 따위로 막아봤자, 지혈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로이먼은, 로이먼은 더는...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죽긴 누가 죽어. 오스틴, 이 무능한 새끼. 또 동료를 버릴 셈이야?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래. 내가 또 동료를 죽음으로, 사지로 몰아넣었다. 온전히 내 실수 때문에.

그리고 더 좆같은 건, 실수가 반복되면 그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이거든.

내가 그때, 욕심을 부리지만 않았더라면. 팀의 리더로서, 빠르게 후퇴 명령을 내렸었더라면.

그리고 지금, 내가 갈란의 공격을 재빨리 회피했었더라면. 애초에 루나와 알렉시스 공녀에게 공격하라 하지 않았더라면. 갈란이 저 기술을 사용할 것이라고, 미리 귀띔을 해 주었더라면.

대체 몇 명이나 죽일 셈이냐, 오스틴. 내 손가락으로 일일이 세지 못할 만큼 죽이면, 내 손이 동료들의 피로 뒤덮여, 더 이상 원래의 피부색을 볼 수 없을 지경이 되면, 그때 멈출 거냐?

“서, 선배님...”

“오스틴...”

로빈과 알렉시스 공녀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다시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뭐, 뭐야... 너희들...”

왜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건데. 왜.

내 잘못이니까.

하지만, 나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란 말이야. 이런 변수는 예측하기 어렵단 말이야.

나도, 너희들과 똑같은 사람이란 말이야. 아니, 마나 코어도 없는 반푼이니까, 어쩌면 더 못한 존재일 수도 있겠지.

“우웁—!”

...순간, 나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 구역질이 나와 버렸다.

이 개만도 못한 새끼. 지금 그걸 핑계라고 대는 거냐?

역겨운 새끼. 반푼이. 마나도 없는 열등 종자. 감정 없는 괴물. 동료를 희생시키는 배신자. 머저리. 레인저의 수치.

걱정스러운 얼굴, 그리고 눈가를 촉촉이 적시며 울먹이는 얼굴을 한 로빈과 알렉시스 공녀가, 나를 살포시 안아주기 위해 다가왔다.

“오, 오지 마...”

나는 가까스로 손을 뻗어, 그녀들을 제지시켰다.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는데. 내가 대신 뒤졌어야 했나? 이 씨발, 난 뭐 맨날 당하고만 살아야 돼?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데. 다른 사람들은 하하호호 웃으면서 잘만 살아가는데, 나는...

그때, 어디선가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그 새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 내가 원하던 그림은 아니군.”

“...뭐?”

네가 로이먼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무슨 개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갈란.

상처를 덮고 있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네놈이 더 강했다면, 저 사제는 죽지 않았겠지.”

“......”

“나 역시 마나 코어가 없이 태어난 존재다. 너라면 알겠지. 마나 코어를 가지지 않은 자들이, 얼마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지.”

“그 입, 닥쳐.”

“...어설픈 동정은 하지 않겠다.”

나는 말없이 일어나, 손에 묻은 로이먼의 피를 옷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손에 피가 묻어 있으면, 검을 휘두를 때 미끄러우니까.

남아있는 볼트의 잔량을 손으로 어림잡아 체크한다. 폭발 볼트 2발, 연막 볼트 1발, 갈고리 볼트는... 없고. 일반 볼트 4발.

연막 볼트가 1발...이라.

“충분하네.”

갈란을 상대하기에는, 한 발 로도 차고 넘친다.

“이곳은 전장이다, 오스틴! 어서 칼을 뽑아라!”

갈란의 외침에, 나는 곧장 숏 소드를 뽑아 들었다.

검집에서, 모그단이 내게 건네주었던 검이 끌러져 나왔다.

옥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검신. 하지만 모순되게도, 그 아름다운 검신에 비친 내 모습은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나는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갈란을 노려 보았다.

“...너. 곱게 죽이지는 않을 거야.”

“한심하군! 네놈이 나약하니, 지키고자 한 것을 지키지 못한 거다!”

갈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까부터 내 성질을 살살 긁고 있었다.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냈다.

곧장 달려 나가, 갈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까부터 자꾸...”

­ 챙!

막혔다. 왼쪽으로, 한 번 더.

“네가!”

­ 채앵!

또 막혔다. 이번에는 쇠뇌.

“씨발 뭘 안다고!”

­ 투웅!

“함부로 지껄여!!!”

갈란은 그저 무언가 마음에 안 든 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내가 쏘아낸 볼트를 손으로 텁— 붙잡는 것이었다.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갈란은 내가 파 놓은 함정에 발을 들였다.

“걸렸어.”

“...뭐라?”

“로빈—!”

영문을 모르겠다는 갈란의 말과 함께, 그의 손에 잡힌 볼트가 펑— 하고 터졌다.

푸쉬이이익...

“뭐...!”

화악—! 하고 퍼지는 연기에 천천히 시야가 가려지는 갈란의 눈에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두 마리의 사냥개였다.

하얀 연기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갈란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피를 끌어올렸다.

주먹이 핏빛으로 빛나며, 무언가를 으스러뜨리기에 적합하게 단단해진 찰나.

­ 쉬익! 챙!

어디선가 날아온 두 개의 단검을 오른팔로 막아낸 갈란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팔을 긁고 지나간 단검을 거칠게 내던졌다. 뜨거운 피가 흘러내려, 갈란의 팔을 적셨다.

끈적하고 무거운 연기가, 갈란의 온몸을 핥으며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요란하게 돌아가는 수레바퀴는 서둘러 연기를 몰아내기 위해 애썼으나, 무겁고 끈적한 연기는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누구에게 죽었는지 모를 만큼, 은밀하게.”

별안간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갈란은 피로 강화된 주먹을 휘둘렀다.

“여기냐!”

후웅—! 연기를 가른 주먹이 무색하게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너도 사냥해 주마.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고작 이런 잔재주를 부린다고...!”

갈란의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불현듯 연기 속에서 튀어나온 옥빛의 검날이 갈란의 옆구리를 깊게 베고 지나갔다.

“크하악...!”

순간 반응하지 못할 만큼, 그를 향해 달려드는 사냥개들은 은밀하고, 날랬다.

갈란은 옆구리를 부여잡고, 다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빠르고 정확하게 살점을 물어뜯은 사냥개들은, 그런 갈란을 보며 조소를 흘리곤, 다시금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갈란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사냥당한다.

넋 놓고 있다가는 사냥개들에게 갈기갈기 물어 뜯길 것이라고, 갈란의 본능이 경고해 주고 있었다.

갈란은 서둘러 옆구리와 팔뚝의 상처를 수복하기 시작했으나, 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어찌하지 못했다.

땅을 적시는 피, 그리고 퍼지는 혈향.

그 순간, 연기를 파헤치고 날아온 볼트와 단검에, 갈란은 허겁지겁 팔을 들어 올려 치명상을 막는 것이었다.

“크으으...!”

사냥개들이, 피 냄새를 맡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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