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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64화 (64/106)

〈 64화 〉 63.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

* * *

우리는 곧바로 옷과 무기를 갖추고 거리로 나왔다. 어제 시장 바닥을 통째로 날려 먹었던 갈란과의 전투 때문인지, 이곳저곳에서 인부들이 건설 자재를 나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째릿—.

“...?”

홱!

내 양 옆에 자리 잡은 마야와 로빈이, 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다.

“...너희 싸웠니?”

“아뇨? 싸우긴요. 저는 오히려 마야 씨와 친해지고 싶은데요? 마야 씨는 어떠세요?”

“......”

이 어색한 분위기, 어쩔 거야. 이 상태로 목구멍에 밥이 넘어갈지 모르겠다.

나는 로빈의 말도 무시한 채 앞장서서 종종걸음으로 걷는 마야의 옆에 따라붙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식당인데?”

“어, 응...? 뭐라고?”

로빈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던 마야가, 내 말에는 화색을 띠며 내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뭐, 좋은 식당이라며. 무슨 식당이냐고.”

“아, 그게... 우리 스승님께서 아시는 분이 운영하고 계시는 식당이야... 나도 스승님과 함께 몇 번 가 봤구...”

“마야, 네 스승이라면... 켈프? 그 고대 마법사?”

“응. 맞아. 스승님께서 유독... 그 식당을 좋아하셨어.”

그리 말하며 먼발치를 바라보는 마야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그나저나, 그 입맛 까다로운 고대 마법사가 자주 찾던 식당이라니. 이거 이거...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되네.”

“...! 응! 기대해도 좋아...! 나도, 꽤 좋아하는 곳이니까...!”

“선배님...! 저는 벌써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나와 마야의 대화를 듣고 있던 로빈 역시, 고대 마법사가 즐겨 가던 식당이라고 하니 꽤나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식당 이름이 뭔데?”

“그, ‘미식가들의 정원’이라고...”

“캬... 이름부터 예술이네.”

식당 이름이 ‘미식가들의 정원’ 이라니. 간판에 미식가라는 단어를 떡하니 박아 넣을 정도면, 그만큼 맛에 자신이 있다는 걸까. 솔직히, 이쯤 되니 미야를 따라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야. 나도 하르만에 처음 온 건 아닌데, 미식가들의 정원이라는 식당은 처음 들어 보는데? 그렇게 맛있는 곳이면 이미 유명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무심코 마야의 모자챙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질문하자, 마야가 사르르 녹는 얼굴로 내 팔에 엉겨 붙어 왔다.

“헤헤... 그건 말이지이... 식당이 조금 외진 곳에 있어서, 단골손님들만 찾는 곳이라 그래. 나도, 스승님도 우연히 알게 된 식당이야.”

“그래...?”

“일리가 있어요, 선배님! 의외로 그런 곳이 숨은 맛집이라니까요?”

그런가? 우리 파티에서도 알아주는 먹보인 로빈이 저리 말하니, 또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흐흐... 그렇게 맛있단 말이지.”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기대하게 되네. 나는 고개를 한 차례 젓고, 내 팔에 자연스럽게 휘감긴 마야의 팔을 떨쳐 내었다.

“뭐, 그 거창한 이름값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네가 할 이야기겠지. 솔직히, 나는 아직도 너랑 같이 있는 게 거북하거든?”

단순히 조금 친근하게 대해 준걸로, 내가 용서해줬다고 착각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내가 매정하게 팔을 뿌리치자, 내 손에 떨어진 팔을 멍하니 바라보던 마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응... 미안해...”

“...에휴.”

나는 물에 젖은 것처럼 축 늘어진 마야의 고양이 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시무룩해하니까, 마치 내가 나쁜 놈인 것 같잖아.

“아무튼, 빨리 가자.”

“응... 거의 다 왔어...”

나는 부푼 마음을 끌어안고, 앞장서서 걸어가는 마야의 뒤를 따라 으슥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 *

마야가 건네 준 약도를 따라 도착한 식당은, 확실히 고급스럽고 운치 있는 식당이었다. 한 곳에 모여서 먹는 것이 아니라 따로 방음 처리가 된 방을 잡아서 먹는 것도 그렇고, 기본 가격이 은화부터 시작하는 것도 그랬다.

비록 이 식당의 주인과 길게 대화하지는 못 했지만, 다행히도 마야를 기억해 주고 있었기에 무리 없이 방을 잡을 수 있었다.

“상당히 멋진 곳이군. 이 정도로 고급스러운 가게라면, 맛있는 음식을 기대해도 되겠어.”

“맞는 말이에요, 그레이시.”

돈 많은 귀족들이 올 법한 가게. 확실히 음식의 맛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면 마음가짐도 달라질 것이고, 어쩌면 오스틴의 기분이 조금 풀릴지도 모른다.

이사벨은 수녀복의 치맛단을 꽉 움켜쥐며,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마야는 분명 볼 일을 보고 합석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를 만큼, 이사벨은 바보가 아니었다.

‘다른 분들은 눈치채지 못하신 것 같지만요...’

성녀의 자리는 땅따먹기로 차지한 자리가 아니었고, 그 성녀의 자리에 앉아 있는 이사벨은 남들보다 눈치가 빨랐다. 마야가 말 한 ‘중요한 일’은, 아마 오스틴과 관련된 이야기 일 것이라고 진작에 눈치를 챘다.

마야는 아마 오스틴을 데리고 올 것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오스틴의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이사벨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홧홧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만나면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일단, 죄송하다고 빌어야겠죠. 그다음에는, 마나 코어와 관련된 사정을 잘 설명해 드리면...’

대화만 잘 진행된다면, 어쩌면 정말로 용서받을지도 모르겠다. 이사벨은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이사벨. 그냥 우리 먼저 먹고 있으면 안 돼? 마야도 먼저 먹고 있으라고 했잖아.”

그런 이사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입맛이 없다던 용사가 주린 배를 움켜잡고 눈을 반짝였다.

하긴, 아까부터 은은하게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용사와 이사벨을 비롯한 일행 모두가 군침을 흘리던 참이었다.

하지만, 마야가 오스틴을 데려 왔을 때 먼저 밥을 먹고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이사벨은 그렇게 생각했다.

“마야가 올 때까지만 기다리죠. 아마 곧 오실 거예요.”

“쩝... 그래...”

“아드리엔도, 조금만 참아 주세요.”

“......”

아드리엔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헌틀리와 싸울 때까지만 해도 활기찼던 아드리엔이, 저렇게까지 의기소침해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스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그녀들에게는 굳이 오스틴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그녀들에게 먼저 알려 줬다가, 괜히 흥분해서 걷잡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간 영영 돌이킬 수 없다. 애초에 오스틴이 올 지 안 올지도 단언할 수 없는 일이고.

그렇게 5분 정도를 더 기다리니, 마침내 문 바깥의 복도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사벨은 문 바깥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 가게... 진짜 고급지... 선배...

­ 진짜... 사는...

­ 응... 내가 산...

방음 처리가 된 방이라서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저들의 대화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드르르륵—!

“...어?”

* * * * *

마야를 따라온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답이었다. 이렇게 비싸고 고급진 건물들만 들어선 거리에 있으니 내가 알 턱이 있나.

식당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외관은 확실히 단골들만 받을 것처럼 고급지고 세련되어 보였다. 입구부터 미닫이 문이라서 그런지, 어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세련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한몫하는 것 같았다.

“와... 진짜 고급져 보이네. 기대된다.”

“꿀꺽...”

로빈은 아까부터 군침을 흘리며 코를 벌렁거리고 있었다. 문 앞으로 다가갈수록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나 역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내 배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그럼... 들어가자.”

“그래. 빨리 들어가자.”

마야가 익숙한 몸짓으로 문을 드르륵—! 열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음식 냄새가 내 코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나와 로빈이 정신없이 음식 냄새를 맡는 사이, 말쑥한 차림새의 남자가 마야를 향해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오셨군요, 마야 님.”

“...응. 내 이름으로 잡아 둔 방이 있어.”

“3번 방입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냐. 우리끼리 갈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대할 때의 마야는, 확실히 용사 파티 시절의 그 차갑고 무뚝뚝한 마야였다. 사람이 바뀌면 뒤질 때가 된 거라는데, 그래도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구나.

“가자, 오스틴. 내가 안내해 줄게.”

“...어, 응.”

오늘따라 마야가 어른스러워 보인다. 평소에는 왜소한 체격 때문에, 마냥 어린애로만 보였는데.

마야를 따라 좁은 복도를 걸어가니, 양 옆으로 그리 많지 않은 미닫이 문들이 굳게 닫힌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진짜 고급지네요, 선배님...! 저 너무 기대돼서 미칠 것 같아요...!”

“너는 먹기 위해 사는 쪽이니까 그렇지. 뭐, 나도 기대되긴 하네.”

호들갑을 떠는 로빈의 말에 동의를 표하자, 앞장서서 걸어가던 마야가 싱긋 웃으며 우리쪽을 돌아보았다.

“에헤헤... 그렇지? 기대해도 좋을 거야.”

“가격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진짜 네가 사는 거 맞지?”

“응. 내가 산다니까...”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오늘이 아니면, 내가 언제 이런 고급진 식당에서 원 없이 밥을 먹어 보겠어? 밥값도 공짜라니. 마야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친 판단이었다.

“다 왔어. 여기야.”

“빨리 들어가자. 나 너무 배고파.”

“아...! 자, 잠ㄲ...!”

드르르륵—!

“......”

“...어?”

문을 여니, 방 안에 앉아있던 낯익은 여자가 내 얼굴을 보고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하하. 선객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오랜만에 재회한 나와 용사 일행은 한동안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용사가, 몸을 벌떡 일으키곤 나를 향해 몸을 날리...

“...오, 오스틴!!!”

드르륵—! 쾅!

­ 꺄아악...! 내, 내 코...!

곧바로 문을 쾅 닫으니, 저 안쪽에서 무언가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야. 우리 방을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여, 여기 맞아... 제대로 찾아왔어.”

“아니, 장난하지 말고. 이미 선객이 있잖아.”

시발. 단둘이 먹을 것처럼 말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사람을 낚는다고?

“그... 오스틴, 미안...”

“...야. 지금 나랑 장난하냐?”

“하지만, 나는 단 둘이 먹는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는걸...”

“이 씨발 그걸 말이라고...”

속았다. 속았어. 확실히 마야는 단 둘이 먹는다는 말은 일절 내뱉지 않았고, ‘우리’라는 말을 꺼내며 은근슬쩍 용사 일행에 대한 사실을 슬쩍슬쩍 보여왔다. 병신같이 그런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니.

드르륵—!

덥석!

그때, 갑작스레 열린 문에서 네 개의 손이 튀어나와 내 옷을 덥석 움켜쥐고 나를 방 안으로 끌어당겼다.

“오, 오스틴... 오스틴...!”

“어머, 씨발...!”

이게 사람이야 좀비야...! 내 몸을 잡고 끌어당기는 그녀들의 텅 빈 눈을 본 나는, 순간 진심으로 겁을 집어 먹고 말았다.

“갸아아악!!!!!! ”

순식간에 내 몸을 빨아들인 3번 방의 문이 닫히고,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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