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65화 (65/106)

〈 65화 〉 64. 가중되는 혼란

* * *

“으아아... 힘들다...”

맥스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고, 수통에 담긴 미적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휴식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오스틴에게 레인저 입단을 추천받은 뒤, 큰 결심을 한 맥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하였고, 3주 동안 정기 마차를 타고서야 수도인 메텔하임에 당도할 수 있었다.

레인저 양성소에서의 삶은 고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지옥 같은 훈련을 받아야 했고, 매일 아침마다 극심한 근육통으로 인해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에 익숙해져야 했다.

하지만, 레인저 양성소를 담당하고 있는 파멜라 교관의 기대는 무거웠다. 오스틴의 추천으로 왔다고 말했을 때 파멜라 교관의 반응은, 솔직히 가관이었다.

­ 네가 오스틴의 들개라고? 진짜로?

­ ㅇ, 예! 맞습니다!

­ 그 새끼, 로빈 말고는 들이지 않겠다고 하더니... 너, 이름은?

­ 매, 맥스입니다!!!

­ ...그래, 맥스. 기합이 큰 건 좋지만, 앞으로 내 앞에서는 말을 더듬거리지 마라.

오스틴이 레인저 양성소에서부터 두각을 드러내던 시절, 그를 전담하던 교관이 바로 파멜라였다고 한다. 오스틴이 레인저 양성소를 벗어나 레인저 본대에 배정받은 뒤로도, 그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줬다고.

맥스는 아직, 오스틴을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 관리가 안 된 듯, 수염이 지저분하게 나 있는 꾀죄죄한 몰골의 오스틴을 기억하며, 맥스는 피식 웃었다. 그런 남자가 근래 레인저가 배출한 인원 중 최고라 칭하는 레인저라니.

“...그렇게나 유명한 사람 이었구나.”

처음 레인저 양성소에 발을 들일 때, 맥스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양성소의 입구에서부터 ‘경 레인저 101기 오스틴, 용사 파티원 최종 합격 축’ 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스틴의 기수는 역대 레인저 기수들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단언컨데 최고라고 평가받는 남자.

심지어 용사 파티원을 뽑는 자리에서 당당히 합격했으니, 그런 오스틴을 배출한 레인저에서는 얼마나 자랑스러워할까.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맥스도, 용사 파티의 일원으로 뽑힌다는 것이 얼마나 명예롭고 대단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비록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으로는 오스틴이 레인저를 박차고 나갈 때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들 하지만, 맥스는 구태여 그런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에 현혹되지 않았다.

레인저 양성소에서 파멜라 교관과 훈련을 받은 지 이제 고작 3주가량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3주가량의 훈련 만으로도 전보다 활시위를 당기기 수월해졌다. 아마 오스틴의 말을 듣지 않고 모험가의 삶을 계속 유지했다면, 그의 말마따나 금방 죽지 않았을까.

“휴식 끝이다, 애송이들! 5초 안에 내 앞으로 일렬횡대!”

“““예!!!”””

“아... 젠장...”

어느새 끝난 휴식 시간에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맥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파멜라 교관이 서있는 곳을 향해 내달렸다.

오스틴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 만큼, 오스틴의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훌륭한 레인저가 될 것이라는 각오를 다지며.

‘...그나저나, 오스틴 형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 * * * *

“그르르륵...! 수, 숨 좀 쉬... 자...”

내 앞뒤에서 갈비뼈가 바스러지도록 껴안는 그레이시와 용사 때문에, 숨을 쉬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등과 가슴팍에 맞닿는 몽글몽글한 감촉은 확실히 극상의 감촉이었지만, 가슴에 둘러싸여서 죽는 천박한 죽음은 내 목표가 아니었는데.

“오, 오스틴... 이제 어디 안 갈 거지? 그치?”

“오스틴. 내가 미안하다... 내, 내가 많이 반성하고 있으니까, 다시는...”

“커헉!... 아니, 이것... 좀...”

오 마이 갓.

나는 얼굴도 모르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얼굴이, 기어코 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다들 선배님한테서 좀 떨어지세요! 숨 넘어가잖아요!”

“자, 잠깐...! 너희, 일단 진정해!”

내가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기 위해 헉헉 거리고 있자, 마야와 로빈이 기겁을 하며 그녀들을 어떻게든 뿌리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다행히 로빈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듯, 그레이시와 용사는 황급히 팔을 풀어 주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아무것도 못하고 숨질뻔했다. 사인은 흉부 압박에 의한... 몽글몽글 에 둘러싸인 채 압사.

...그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게 아니라.

“이 씹... 켈록! 켈록!”

자꾸 숨을 쉴 때마다 쇳소리가 나고 폐가 입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은 기침도 멈추질 않는 게, 아무래도 갈비뼈가 몇 대 부러진 것 같다.

용사의 힘이 이 정도로 강했던가? 전보다 더 힘이 세진 것 같은데.

“새액...! 새액...! 나, 나 좀...!”

“어머, 어머! 어, 어떡해...! 미안해...!”

“오, 오스틴...! 괜찮나요?!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치유의 빛을...!”

내가 급하게 숨을 들이쉬자, 이사벨이 안절부절못하며 내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정작 나를 이 지랄로 만든 당사자 둘은 연신 오또케를 외치고 있더라.

‘씨발련들...’

따스한 빛이 화악—! 퍼지고, 얼마 안 가 부러진 갈빗대가 말끔히 이어 붙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

이윽고 정상적인 호흡을 되찾은 나는, 곧바로 눈앞에 있는 물을 한 컵 들이켰다.

이번에는 진짜 손가락도 까딱 못하고 뒤지는 줄 알았다. 내가 갈란과 싸울 때 이후로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적이 없는데.

나는 들이키고 있던 물컵을 소리 나게 내리치며, 그레이시와 용사를 째려보았다.

쾅!

“너희 미쳤냐? 시팔 죽일 거면 고통이라도 없이 죽이던가.”

“아, 아니... 우리는 그러려던 게 아닌...”

한편 이사벨과 마야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기껏 오스틴을 어렵게 구슬려서 만남을 주선했건만, 화해는 커녕 숨통을 끊을 뻔했으니.

“...용사님.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우선 진정 좀 하세요.”

“으, 응... 미안해... 이사벨, 오스틴.”

“...나도 미안하다. 사과하지.”

용사와 그레이시의 사과가 끝나고, 방에는 잠시 적막이 흘렀다.

벽에 걸려있는 고급스러운 장식의 벽시계 소리만이, 조용한 방안을 고즈넉하게 채워가고 있었다.

나는 가슴팍을 문지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좋아. 숨 쉬는 데는 문제가 없군.

“오스... 이번에는... 묶어서...”

내가 방에 끌려들어 온 뒤로, 구석에 앉아있는 아드리엔은 이따금씩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궁시렁거리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우선, 식사부터 하실까요?”

나는 이사벨이 조심스레 건네어 준, 메뉴가 적힌 책자를 거칠게 낚아채고 옆에 앉은 로빈과 함께 펼쳐 보았다.

“...뭐가 뭔지 모르겠네. 그냥 대충 시켜. 어차피 지금 뭘 먹어도, 소화가 되기나 할지 모르겠거든.”

“...응. 알았어...”

마야가 직접 음식을 주문하고, 곧이어 서빙 트레이를 끌고 온 종업원이 미닫이 문을 열고 음식을 내려놓아 주었다.

“...일단, 먹자.”

“......”

* * * * *

분위기가 너무 어색해서 방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애써 그런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음식을 입에 날랐다.

“...음. 맛있네.”

보기만 해도 승질이 나는 여자들이 눈앞에 앉아 있었지만, 음식의 맛이 그런 불편한 기색을 몽땅 뒤덮어줄 만큼 맛있었다.

로빈은 이미 입안 가득 음식을 물고, 눈을 반짝이며 다음으로 입에 넣을 음식을 바쁘게 찾고 있었다.

“우움! 우우음!”

“로빈. 다 삼키고 말 해야지. 칠칠치 못하게 입에 소스 묻히지 말고.”

“우물우물... 꿀꺽...! 선배님! 진짜 너무 맛있어요!”

“알겠으니까, 좀 천천히 먹어. 누가 보면 내가 널 굶기고 다니는 줄 알잖아.”

내가 로빈의 입가를 닦아주자, 순간 피부를 칼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몸이 오스스 떨렸다.

“...걔는 누구야?”

용사의 싸늘한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댕그랑—! 떨궈 버렸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굳히곤, 포크를 집어 들어 냅킨으로 슥슥 닦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내 파티원.”

“...파티, 라니...?”

“아, 얘기 못 들었나? 나 파티 새로 짰어.”

“...으, 응... 그렇, 구나...”

“그래. 난 너희처럼, 내 입장은 생각해 주지도 않는 이기적인 년들과 다르게 화기애애한 파티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고.”

내가 모진 말을 내뱉자, 분위기가 대번에 침울해졌다.

우리는 묵묵히 손을 놀리며, 음식을 입에 가져갔다.

“후우... 그래서?”

대충 배가 찬 뒤, 나는 테이블 위에 포크를 내려놓으며 의기소침 해 있는 마야를 향해 쏘아붙이듯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

“...그게.”

마야는 내 물음을 듣고 올 게 왔다는 듯, 말끝을 흐리며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야의 뒷말이 예상해 보았다. 미안하다는 둥, 잘못했다는 둥, 너를 파티에서 내쫓은 건 실수였다는 둥... 여러 가지 횡설수설을 내뱉는 마야의 모습이 뻔히 그려졌지만, 어느 것도 내 마음을 돌리지 못하는 말이었다.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나는 너희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

물론, 이미 엎어진 물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 용서는 해 주겠지만, 용사 파티에 돌아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있지. 화내지 말고 들어줘...?”

“그래. 듣고 있으니까, 빨리 얘기해.”

방금 전까지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입안이 텁텁해졌다. 나는 물컵에 물을 따르고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기며, 마야를 향해 어서 이야기하라고 손짓했다.

“...만약, 우리가 오스틴에게 저질렀던 행동들이... 우리가 의도한 짓이 아니었다면... 어떨 것 같아...?”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래. 차가운 물로 입을 헹군 나는, 물을 마시느라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의도하지 않았다니? 그게 정확히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로, 우리가 오스틴에게 저질렀던 그런... 짓들이... 우리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행동이 아니라... 외부의 간섭, 같은 걸로 인해서... 휘둘러졌던 거라면...”

갈수록 말소리가 줄어들던 마야는, 이내 몸을 움츠리며 내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야의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마야의 말마따나, 만약 내게 푸대접했던 모습들이 전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흠.”

확실히, 그녀들도 나름대로 억울하긴 할 것이다. 내가 의도치 않은 행동을 저질러서, 상대방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새겨버렸다고 생각해 보면...

솔직히, 도대체 내게 왜 그랬는지... 지금까지 궁금하긴 했다. 분명 처음 1년가량은 서로 큰 다툼이나 의견 충돌도 없이 화목했는데, 그녀들이 서서히 돌변하기 시작한 것이 이상하긴 했으니까.

처음에는 년 단위로 걸친 살육 행위로 인해 피폐해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그보다 두배는 더 오랜 시간 동안 죽이고 살았던 나는 멀쩡한데?

마야의 말을 계속해서 곱씹어 보았다. 그녀들이 내게 푸대접을 했던 모습들이, 모두 그녀들이 의도한 행동이 아니라면?

“...모르겠어.”

“...어?”

“모르겠다고.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쳐도, 너희들이 내게 저지른 짓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그, 그렇... 지... 미안...”

머리가 조금 아파졌다. 왜 갑자기 저런 이야기를 꺼낸 걸까. 이유도 없이 저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닐 텐데.

“...그런 말을 한 이유가 뭐야.”

내가 도끼눈을 뜨고 싸늘하게 묻자, 그레이시가 입을 열었다.

“...오스틴.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믿기지 않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들어주었으면 한다.”

나를 바라보는 그레이시의 눈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진지했기에, 나는 자세를 고쳐 안고 진지한 태도를 취했다.

“방금 마야가 든 예시는, 사실이다.”

“...뭐?”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그동안 오스틴... 네게 했던 짓들은 모두...”

“자, 잠깐. 잠깐만.”

“...모두, 우리가 의도했던 행동들이 아니었다. 일종의 세뇌 비슷한 것을... 당하고 있었다고 해야겠지.”

그레이시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간신히 붙잡았다. 아니, 그게 사실이라고?

“...너, 확실해?”

“확실하다. 헌틀리에게 직접 들었고, 우리 눈으로도 직접 봤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저게 무슨 소리야 대체.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간신히 머리를 부여잡고 그레이시에게 손짓했다.

“...자세히 말해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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