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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71화 (71/106)

〈 71화 〉 70. 아가일의 이야기

* * *

마족들은 같은 마족끼리만 이어진다. 이것은 오랫동안 지켜져 온 일종의 불문율이며, 마족들 사이에서도 당연시되는 규율이다. 다른 종족과 교접하게 되면 온갖 멸시와 비난을 받게 되며,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은 이른바 ‘열등종’이라 불린다.

나, 아가일 커들렌은 순혈 마족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양쪽 모두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마족이며, 선명한 자색 머리카락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그래서일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라는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 정이 갈 수가 없었다.

아가토. 나의 오빠는, 우리 어머니 이전의 여자에게서 태어났으니까.

수명도 짧고, 신체 능력도 형편없으며, 마나를 다루는 것도 서투른 열등 종족. 그런 하등한 인간 주제에, 감히 우리 아버지를 유혹했었다. 결국 오빠라는 존재를 낳았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오빠를 낳아놓고, 그 여자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여자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께서는 지금의 나의 어머니를 만나고서야 다시금 웃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 우리 어머니는, 그 인간 여자와는 다르게 순수한 마족이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오빠에게 대부분의 관심과 사랑을 쏟아부었다.

“아가토는 머리가 명석하니, 내가 직접 가르치지 않을 수 없구나.”

거짓말. 그저 그 인간 여자를 잊을 수 없어서 오빠를 편애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가일. 다음에 놀자꾸나.”

항상 그랬다. 언제나 나에게는 건성건성 대답하고, 대충 챙겨주고, 쥐꼬리만 한 관심을 준다.

아가토는, 나의 오빠는 그렇지 않았다. 나보다 머리가 조금 더 좋기로서니, 아버지의 모든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했다.

“아가일 커들렌. 우리 가문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거라.”

당신은, 그 잘난 가문과 아가토가 그리도 소중한가 보지. 나보다 더.

나는 노력했다.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나 스스로의 재능을 찾고자 노력했다.

마족들은 정령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원소를 사용하지 못한다. 다만, 각자 스스로의 특출 난 고유 마법. 즉, 스펠을 사용할 수 있다.

피나는 노력의 결실은, 내게 꼭두각시의 아가일이라는 이명을 선사해 주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가토 커들렌을, 우리 가문의 차기 가주로 임명하겠다. 이의는 없겠지.”

아버지. 당신이라는 사람은, 어째서.

아버지께서 아가토를 차기 가주로 임명하는 자리에서, 나는 멍하니 아버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시선을 알아차렸음에도, 왜 내 눈을 피하는 것입니까. 결국 당신은, 이번에도 나를 무시하시는 겁니까.

…내가, 그리도 싫었습니까?

“나에게도 조금은 관심을 줄 수 없었나요, 아버지?”

그 일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아버지와 독대하게 된 자리에서, 나는 그리 하소연했다.

“…아가토는 혼혈이다, 아가일.”

아버지는 이 말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신 듯했다.

그래. 고작 혼혈이라는 이유 때문에. 마족들의 사회에서는 온갖 멸시를 받을 테니, 아버지께서는 사랑으로 보듬어 주고 싶으셨겠지.

하지만, 나도 당신 자식이란 말이다.

당신의 피를 이은, 당신이 우리 어머니와 맺은 사랑의 결정체란 말이다.

그런 내게, 조금의 사랑도 줄 수 없었단 말인가?

“아가룬 커들렌.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받아들이마.”

그날, 아버지는 오른팔과 왼눈을 잃고 가주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 * * * *

“…미친.”

오스틴이 입을 틀어막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야기를 듣는 다른 이들의 반응도, 오스틴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나는 쓰게 웃으며, 오스틴에게 이죽거렸다.

“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엄….”

제 손으로 아버지에게 결투를 신청해서, 불구로 만들어 버리다니.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겠지. 놀란듯한 시선은 느껴졌지만,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에 혐오감이 깃들지는 않았다.

놀라움. 경악. 안타까움. 동정.

…동정?

너희들 따위가, 감히?

‘…아니, 아니지.’

인간들을 깔보는 성격은 이제 많이 희미해졌지만, 내가 깔보이는 것 같은 상황이 오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게 된다.

“동정은 필요 없으니까, 그따위 눈으로 나를 쳐다보지 마.”

나를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오스틴을 제외한 이들을 향해 쏘아붙였다.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나는 절대 후회하지 않아.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할 거야.”

“아, 미안. 딱히 동정하는 건 아니고, 그… 조금 놀라워서.”

“죄송해요. 너무 안타까운 이야기라서, 저도 모르게….”

연거푸 사과를 해대는 그들에게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이어서 이야기할게.”

* * * * *

아버지를 내 손으로 유폐시키고 난 뒤, 곧바로 가주의 자리를 꿰찼다.

권력욕? 그딴 건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해 온 아가토에게, 이것마저 넘겨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뿐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딱히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불구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곁에 남아 묵묵히 보살펴 줄 뿐이었다.

아가토는 곧장 가문에서 내쫓을 생각이었지만, 차마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

‘…아가토는 혼혈이다, 아가일.’

그 빌어먹을 노친네가 한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가토가 일찍이 마왕의 눈에 띄어, 마왕군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가주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아무리 아버지를 싫어했다고는 해도, 우리 가문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더 노력했다. 나의 고유 마법인, 밀랍을 이용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피가 나는 노력을 기울였고, 머리가 좋은 아가토만큼은 못 미치지만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그렇게 노력하기를 수년.

마왕이 교체됨과 동시에, 대륙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다.

새로운 마왕을 필두로 마족, 마물들이 모인 마왕군과, 엘프, 수인, 드워프, 인간들이 모인 연합군 간의 전쟁.

전쟁의 명분이 뭐였더라.

모든 하등 종족들의 머리 위에 서겠다. 대륙 곳곳에서 사냥당하는 마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겠다. 표면적으로는 이런 이유였다.

정작, 나는 얼굴도 못 본 새로운 마왕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듯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표면적인 이유는 그러했다.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애초에 나도 별 관심이 없었고.

나는 어느새 마왕군의 군단장이 되어 있었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가토와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마왕군의 군단장으로서, 참모장인 아가토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가토는 매번 나를 한직으로 몰아넣었다. 마치, 가주의 자리를 빼앗은 내게 복수라도 하려는 듯.

이렇다 할 공도 세우지 못하고, 전선에도 얼굴을 비추지 못했다. 그저, 내가 직접 생명을 불어넣은 인형인 바커스와 데팔을 데리고, 서대륙에 남은 인간 잔당들을 정리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라 왔으면서. 가주의 자리에 앉지는 못했지만, 마왕군의 참모장이라는 더 좋은 자리에 앉게 되었으면서.

아가토는, 내게 복수하고자 하는 듯해 보였다.

다른 군단장들이 큰 공을 세우며 전장에서 이름을 알릴 때, 나 혼자만 애매한 실적을 내었고, 언제나 전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곧장 아가토에게 찾아가 따졌다. 대체 얼마나 더 가져가야 속이 후련하냐고. 네가 양심이 있느냐고.

어쩐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아가토였지만, 내 눈에는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하는 역겨운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니었을 텐데.

아마 아가토는, 나름대로 내가 죽는 것을 걱정해 준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전선에서 싸우는 군단장들이 아무리 활약하고 있다고는 해도, 전쟁은 단순한 애들 장난이 아니다.

죽고 죽이는 혈투가 벌어지는, 전투가 끝나는 순간까지 살아있길 기도하며, 삶을 쟁취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 경쟁이 펼쳐지는 지옥. 군단장도 예외는 없었다. 인간들이 소환한 용사에 의해, 실제로 몇몇은 목이 달아났으니까.

비록 헌틀리가 되살리긴 했다지만, 아무리 헌틀리라고 해도 아무나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8 군단장, 최후의 바위 정령 기간트가 그러했다. 생명체가 아닌 정령이었기에 되살리는 것에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여차 했다간 우리도 되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별의 기사에게 당한 제2 군단장 칼라스만 해도, 영혼을 갈무리당하여 되살릴 수 없게 되었으니까.

내가 계속해서 아가토에게 따지고 들자, 아가토는 한숨을 내쉬며 나를 메르덴 숲으로 배치시켜 주었다.

그렇게, 사실상 처음으로 전선에 배치받게 된 것도.

인간들의 보급부대를 갉아먹으려 했건만, 그런 내 명령을 받아들이기 꺼려하는 마음 여린 데팔에게, 세뇌의 마법이 담긴 마나석을 건네어 준 것도.

어쩌면, 실수였을지 모르겠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 * * * *

아가일의 말이 끝나고, 우리가 둘러앉은 방에는 정적이 가라앉았다.

로빈의 말도 그렇고, 오늘은 조금 충격적인 것들을 새로이 알게 되는 것 같은데.

“…네 이야기는 잘 들었어, 아가일.”

내 말을 듣고, 이야기를 하는 내내 바닥을 쳐다보던 아가일이 고개를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마왕군에 큰 소속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겠지.”

“네 말대로, 마왕군에 소속감 같은 건 별로 가지고 있지 않았어. ”

“루나에게 세뇌 마법이 담긴 마나석을 준 건 조금 찝찝하지만… 어찌 됐건, 루나와는 이야기가 잘 된 거지?”

루나와 아가일을 번갈아 바라보며 묻자,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루나가 내 입장을 이해해 줘서, 이야기가 잘 됐어.”

“그때는 화가 났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더군.”

둘이 잘 해결됐다니, 좋은 일이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지금까지 아가일이 했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정리해 보았다.

아가일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마왕군에 딱히 몸을 담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확실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네가 마왕군을 배신하게 되면, 네 가문은 어떻게 되는 거야?”

“…참전하기 전에, 이미 어머니께 가문을 맡기고 나왔어. 딱히 내가 가주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아버지가 미웠고, 아가토를 시기해서 그런 것뿐이야”

“네가 마왕군을 배신한 걸 알고, 마왕이 네 가문에 무슨 짓이라도 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는 않을 거야. 마왕은 애초에 내게 별로 관심도 없었고, 우리 가문은 나름대로 마족들 사이에서도 힘이 있는 가문이거든.”

아가일의 대답을 듣고, 나는 턱을 짚으며 생각에 빠졌다.

아가일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아직까지 마왕이 뭐 하는 양반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전쟁의 이유도, 그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고?

대체 마왕은 무슨 속셈인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예상이 가질 않았다.

역시, 이야기를 더 들어 봐야겠지.

“확실히, 몇 가지 의혹은 풀렸지만… 아직 대답하지 않은 게 있지?”

아가일의 과거까지 거짓말일 가능성은, 우선 배제해 두기로 했다. 그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의심하면 끝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거를 정보는 거르고, 받아들일 정보는 우선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마왕군에 딱히 소속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건 알겠지만, 왜 마왕군을 배신하고 우리에게 붙으려 하는 건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어. 갈란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

“…좋아.”

아가일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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