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72화 (72/106)

〈 72화 〉 71. 실비아의 이야기

* * *

갈란을 처음 만난 것은, 마왕군의 군단장이 막 되었을 참이었다.

놈을 첫인상은, 그야말로 광인에 가까웠다.

피를 사용한 혈마법, 신체 개조를 향한 도를 넘은 집착, 강한 힘을 가진 자는 일단 시기하고 보는 속 좁은 성격에, 마나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마족 군단장들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까지.

마왕군에 필요했던 인재는 적당히 맛 간 놈이었지, 완전히 돌아버린 놈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군단장들이 갈란을 좋게 보지 않았고,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고유 마법은 밀랍을 이용한 마법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과정에서 마나를 사용하기 때문에, 갈란은 여타 군단장들과 다를 바 없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혐오. 분노. 질투. 증오. 그리고, 의미 모를 그리움이 담긴 시선으로.

오스틴과 함께 갈란을 상대하고 난 뒤인 지금은 그 의미를 알 수 있었지만, 그때는 갈란의 눈빛에 담긴 그리움의 의미를 몰랐다. 아마, 아내와 딸이 생각나서 그랬던 것이겠지.

아무튼, 그때의 갈란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도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아가토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가토를 대놓고 나약하다고 깔보거나, 딱 봐도 불안해 보이는 신체 개조를 권유하는 등.

그렇게,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내던 중, 전쟁이 터졌다. 용사를 막으러 전선으로 나섰던 갈란은, 기간트 다음으로 용사 파티에게 패배했다.

갈란이 불신의 씨앗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은, 용사의 성검에 베여버린 갈란을 헌틀리가 되살린 직후부터였다.

당시, 제1 군단장인 벼락의 검 몬타를 제외한 모든 군단장들이, 그 불신의 씨앗이 피아를 가리지 않고 불안정하다는 점에서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마왕은 그런 이들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한 채 갈란의 말을 받아들여 주었다.

전대 마왕을 밀어내고 새로이 마왕의 자리에 앉은 현 마왕은, 도통 행동거지를 예측할 수 없는 별종이었다. 누구도 마왕을 만나본 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마왕의 얼굴을 본 이들도 없었으며, 마왕의 최측근인 몬타와 아가토 역시 마왕을 직접 알현하지 않고 수정구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 * * * *

“아니, 잠깐만. 마왕의 정체를 아무도 모른다고? 같은 편인 너희들도?”

아가일의 이야기를 끊고, 도무지 믿기질 않는 점에 대해 어이없다는 말투로 물어보았다.

아니, 시팔. 아무리 마왕이 베일에 싸인 존재라고 해도 말이다. 같은 세력에 소속된 이들도, 마왕 휘하의 군단장들도, 심지어 마왕의 최측근도 그 정체를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어처구니없는 정보에, 아가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응. 마왕의 정체는 아무도 몰라. 엄청나게 강한 마족이라는 추측이 군단장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지만, 그것도 정확한 정보는 아니야.”

“마왕의 정체를 아무도 모르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직접 만나본 놈은 있을 거 아니야.”

내가 헛웃음을 흘리며 묻자, 아가일이 미간을 조금 찌푸리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칼라스라면 알지도 모르겠어. 전대 마왕을 밀어낼 때, 그 과정을 주도했던 이가 칼라스니까 말이야.”

“그래 봤자 뭐하냐고… 이미 죽은 놈인데….”

“…아.”

아가일에게서 마왕의 정체와 속셈을 알고 싶었건만, 마왕이 누구인지도 모른단다.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황당한 정보였다.

내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고 있으니, 나와 아가일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이 서로 마왕의 정체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역시, 엄청나게 강한 마족이겠죠?”

“음…. 확실히 마족일 가능성이 높긴 하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어쩌면 마족이 아니라 그냥 강력한 마물일지도 모르겠군.”

“모습을 감춘 초월자들 중 하나 일수도 있겠군요. 태양의 기사, 달의 기사, 혹은 소문만 무성한 원소 군주 말입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있습니다.”

“로이먼 사제님의 말씀도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초월자라? 하지만, 마왕은 직접 힘을 내보인 적이 없다. 마왕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편견을 깔고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군.”

“하지만, 전대 마왕을 밀어내고 마왕의 자리를 차지할 정도면, 어느 정도 힘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확실치 않은 추측성 의견만 난무하게 된 좌중에서, 알렉시스 공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인간… 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순간 침묵에 휩싸인 방 안에서, 이윽고 모두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알렉시스 공녀님.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마족들과 마물들이 판을 치는 마왕군의 심장부에 앉아있는 이가 인간이라니요. 조금 불경하기까지 하군요.”

“오르엔. 너무 갔어.”

“음. 나도 로이먼 사제의 의견에 동의한다. 인간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하지 않겠나?”

“그… 렇죠?”

순식간에 난리법석이 된 토론의 장 한가운데에서, 나는 손뼉을 짝짝 치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자, 모두 그만. 우리가 용사 파티도 아니고, 마왕의 정체를 자세히 알 필요는 없잖아? 알면 좋았겠지만, 모르면 어쩔 수 없지. 그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로 넘어가자고.”

마왕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애초에 우리가 마왕을 잡아야 하는 처지도 아니고. 그런 건 용사와 똘마니들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다.

마왕군도 모르는 마왕의 정체라니,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그리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아가일에게 손짓해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마왕의 정체는 나중에 술자리 이야기로 남겨두던가 하고…. 그것보다, 불신의 씨앗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기 설명해 줘.”

“알겠어. 계속 이야기할게.”

* * * * *

불신의 씨앗. 홀로 남아 힘이 약해진 용사를 상대하기 위한, 오로지 용사 파티의 분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기체.

계속해서 꿈틀거리며 본모습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언뜻 보면 검은색의 슬라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얕보면 안 된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생명체가 아닌, 갈란의 연구로 인해 창조된 인공적인 생명체. 평상시에는 정말로 슬라임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생명체의 심장에 자리 잡은 마나 코어에 기생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모든 불신의 씨앗들은 갈란의 피를 통해 태어났기에, 모든 면에서 갈란과 이어져 있는 생명체이다. 따라서, 숙주인 갈란이 사망하면 불신의 씨앗들 역시 사망하게 된다.

개발 단계에서는 전선에서 싸우는 연합군의 인간 병사들을 실험체로 써 왔고, 기어코 갈란은 불과 몇 개월 만에 불신의 씨앗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마나 코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름 전대 마탑주였던 갈란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갈란은 곧바로 불신의 씨앗을 각 군단장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기간트와 갈란을 처리한 뒤 애쉬를 상대하던 용사 파티는, 최후의 발악으로 불신의 씨앗을 심어버린 애쉬에 의해 저들도 모르게 불신의 씨앗이 기생하게 되었다.

용사가 이 세계에 온 지 2년째 되던 해. 그리고, 용사 파티가 꾸려진지 정확히 1년이 되던 해였다.

오스틴을 제외한 용사 파티의 인원들 모두에게 불신의 씨앗이 심어진 후, 헌틀리의 손에 의해 다시금 되살아난 군단장들은, 구태여 용사 파티에게 싸움을 걸지 않고 일선에서 물러난 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불신의 씨앗이 심어진 이상, 용사 파티는 독 안에 든 쥐, 통발 안의 가재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조금만 인내하면 쉽게 잡을 수 있는 먹잇감을, 구태여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성급하게 노릴 필요는 없었다. 죽은 군단장들이 되살아 났다는 것을, 용사 파티가 모르고 있었던 이유였다.

유일하게 불신의 씨앗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오스틴이 가장 먼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갈란은, 우선 전투에서 가장 성가셨던 오스틴을 파티에서 몰아내고자 했다.

그렇게, 용사 파티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 1년째, 2년째, 그리고 3년째.

“어디 니들 마음대로 해 봐라.”

갈란의 임무는, 훌륭하게 완수되었다. 오스틴이 제 발로 파티를 빠져나옴과 동시에.

* * * * *

“후우우우….”

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레이시의 설명을 들었을 때에는, 혹시나 거짓말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었다. 차라리 거짓말이었다면.

아가일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그 희망은 처참하게 부서져 버렸다. 아니, 머리로는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이렇게 확인사살을 당하니 이렇게 좆같을 수가 없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있으니, 아가일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이었다.

“…그, 그래도! 아직 오스틴 혼자만 파티를 나온 상황이니까,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닐 거야…! ”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하아….”

이런 씨발. 이런 좆같은 현실, 다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그녀들에게 갈굼 받는 것부터 내 발로 파티를 나오는 것까지, 전부 갈란의 계획대로 움직인 것이었다는 사실이, 내 뒤통수를 방망이로 강하게 후려 친 것만큼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갈란의 직장동료인 아가일이 이리 말하니, 틀린 정보일 가능성도 0에 수렴한다.

“그래. 그럼 그… 불신의 씨앗인지 뭐시기인지는, 이제 이 세상에 나올 일이 없는 거지?”

“…갈란이 죽었으니, 아마도.”

“그래. 그러면 됐지. 그럼 됐어. 후우….”

얼마 전, 잠시나마 갈란을 안타까운 비운의 인물로 생각한 나를 힘껏 두들겨 패고 싶었다. 안타까운 비운의 인물은 개뿔, 그냥 뒤져도 싼 놈이었구만.

잠시 미간을 꾹꾹 누르던 나는, 겨우 마음을 다잡고 아가일에게 물었다.

“그래. 대부분 다 알겠는데, 마지막으로 하나 말하지 않은 게 있지?”

“어, 어떤 거?”

“그, 왜. 굳이 마왕군을 배신하고, 우리에게 붙어먹으려는 이유가 뭐냐는, 그거.”

“아… 그건….”

아가일은 말을 할 듯 말 듯 입을 우물거리더니, 고개를 푹 숙이곤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대답했다.

“처, 처음…이었거든….”

“…뭐가?”

아가일은 말을 꺼내기 부끄러운 듯 끙끙거리더니, 이내 새빨개진 볼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너희와 처음 만난 날… 굶어 죽을뻔한 나에게 맛있는 밥도 주고, 관심도 가져주고, 나를 보고 웃어준 게… 너희가 처음이었어.”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왔던 아가일에게는,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커다랗게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우, 우리 아버지도… 나를 그렇게 챙겨 주시지 않았는데…. 마왕군에 있을 때는 지루하고, 행복하지 않고, 짜증만 났었는데… 너희와 함께 움직인 지난 며칠간은, 정말 재밌고 행복했었거든… 그래서….”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한 아가일은, 결국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마침 잘 됐네. 듣고 있는 우리도, 낯 간지러워서 죽는 줄 알았는데.

“…네 이야기는 잘 들었어, 아가일.”

나는 착잡했던 마음을 밀어 넣고, 고개를 들어 아가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필요한 이야기는 전부 들었으니,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고개 들어봐, 아가일.”

“우으… 아, 아직….”

“빨리.”

아가일이 고개를 들어 올리니, 아직 부끄러운 듯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아가일을 향해 싱긋 웃어주곤, 주위에 앉아있는 로빈, 로이먼, 알렉시스 공녀, 루나를 차례로 훑어보며 물었다.

“아가일은 과거의 죄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나는 아가일이… 실비아가 새로운 삶을 새는 데 도움을 주고 싶은데, 이의 있는 사람은 지금 말해.”

내 말을 듣고, 아가일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 나를… 받아 주는 거야…? 정말로…?”

“못할 거 없지. 그래서, 이의 있는 사람?”

그런 아가일을 향해, 모두가 웃으며 말했다.

“이의 없습니다.”

“이의 없다.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군.”

“이의 없어요!”

“저도 좋아요.”

로빈은 잠깐 망설이던 것이 눈에 보였지만, 굳이 짚고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아가일에게,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어 주었다.

“새 삶을 살게 된 것을 축하한다. 실비아.”

“흑…. 고, 고마워…. 나는… 저, 정말 고마… 흐윽…!”

나는 어느새 울음보가 터진 아가일을 토닥여 주며, 분위기를 풀고자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그래도, 머리카락은 숨겨야 된다? 들키면 얄짤 없어.”

“훌쩍…. 나, 나도 알거든…!”

비록, 오랫동안 동료로서 함께 해 왔던 용사 파티는 내 주변을 떠났지만, 새로운 인연들이 속속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 감에.

활짝 웃으며, 실비아를 맞이할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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