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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77화 (77/106)

〈 77화 〉 76. 지난 일에 분노하지 않기

* * *

“그래서… 여기서는 이렇… 게…!”

찰칵!

분해되어 있던 방아쇠를 밀어 넣으니, 청명한 소리와 함께 부드럽게 맞물려 들어갔다. 시험 삼아 방아쇠를 몇 차례 당겨보니, 확실히 이전보다 부드럽다.

“기름칠을 새로 한 보람이 있단 말이지.”

“오오…!”

“자, 이제 여기를 이렇게 조여주면….”

끼리릭—!

나사를 살짝 조여주자, 조금 느슨해졌던 쇠뇌의 현이 당겨지며 다시 팽팽하게 되었다.

“우와….”

“신기하지? 이게 또 엄청 유명한 장인이 만든 쇠뇌거든.”

“응…. 엄청 신기해….”

“확실히, 기술력이 상당하군. 이렇게 정교한 쇠뇌는 듣도 보도 못했다.”

메텔하임으로 떠나기 전날 밤, 우리는 마지막으로 각자의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어제 베키의 요청에 따라 환전소를 한바탕 털어먹은 탓에, 식료품을 보충하지 못해서 이곳 하르만을 떠나는 것이 하루 미뤄진 것은 안타깝지만…. 게이트 관리사 건이 깔끔하게 처리되었으니,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자.

낮에 식료품을 보충하고 왔으니, 내일 바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쇠뇌를 정비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한 듯,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실비아와 루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며칠전만 해도 서로 앙숙 같은 사이였는데, 지금은 서로 딱 붙어서 내가 쇠뇌를 손질하는 것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내가 루나라면 실비아를 용서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서로 어떻게 화해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서로 모르는 사이로 지내자.’

…나는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재조립된 쇠뇌를 탁자 위에 두고, 건너편에 앉은 채 양손에 창과 숫돌을 집어 든 루나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너 쟤랑 어떻게 화해하게 된 거야?”

“음?”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 루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왜. 그날 너희끼리 얘기하게 내버려 두고, 우리는 먼저 잤잖아.”

“…아. 그날 말인가?”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더니, 결국 어떻게 화해했는지 궁금해서.”

상당히 궁금했다. 단순히 어떻게 화해했는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상대방의 과오를 묻어 주었는지.

내 질문에 숨은 의도를 파악한 듯, 루나 역시 손질하려던 창을 탁자에 기대어 두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날은 서로 험하게 싸우기는 했지만, 계속 그렇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서로 한 발자국씩 물러서고 보니, 화가 나던 마음도 조금 누그러들더군.”

“…한 발자국 물러서?”

“그렇지. 서로 물러서지 않고 머리를 맞대기만 하면, 그 둘의 사이는 싸움이 끝난 뒤 그대로니까 말이다.”

“음…. 확실히, 내가 잘못했던 일이니까 말이야. 그래서 진심으로 사과했어.”

루나와 실비아는, 감정에 휘말리지 않았던 것이다.

서로 한 발자국씩 물러선다… 라.

만약 내가… 한 발자국 물러서서, 그녀들과 차분히 대화를 시도했다면….

내가 턱을 괸 채로 생각에 빠져 있으니, 잠시 나를 바라보던 루나가 말을 이었다.

“뭐, 결국에는 잘못을 저지른 쪽이 용서를 구하면, 받는 쪽은 용서해 주면 되는 것이다.”

“…너는, 그게 그렇게 쉽게 됐어?”

나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용서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인가?

아니. 상대방의 과오를 묻어주고, 용서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과를 하는 것보다 용서를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루나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루나는 사실상 주인이었던 실비아에게 버림받았던 처지이고, 그 배신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용서를 해 주었다고?

“…어떻게?”

“복잡한 질문이군.”

“아니, 정말 궁금해서 그래. 용서가 그렇게 쉽게 돼?”

“당연히 쉽진 않았지. 서로 타협점을 찾는 과정에서도, 곱지 않은 말들이 오갔으니까 말이다.”

내가 던진 질문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지, 내뱉고 나서야 깨달았다.

루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싸우기 이전에는 가까웠던 사이라면, 더더욱 용서하기 힘들겠지. 배신감이 상상 이상으로 클 테니 말이다.”

“…그렇지.”

“오스틴. 하나만 묻지.”

나는, 루나와 실비아가 화해한 모습을, 나와 용사 파티에 투영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 내게, 루나가 물었다.

“너는 지금… 억지로 관계를 끊고 있지는 않나?”

“…….”

“물론, 용서를 할지 안 할지. 선택은 오스틴 네 몫이다만…. 네가 계속해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니, 억지로 상대를 뿌리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건….”

루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내 가슴에 틀어 박히고 있었다.

“오스틴. 네가 용사 파티에 들어갔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고개를 들어 올려, 루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실비아는 어느새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4년 전이었어.”

* * * * *

4년 전, 수도 메텔하임.

당시의 나는 레인저를 나오게 되었지만, 그동안 쌓아온 돈이 있으니 딱히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그때는 아직 로트와 와일러의 일을 잊지 못해서, 조금 우울했었다.

그날이 언제였더라…. 그러니까….

그래. 겨울이었다. 눈이 막 내리기 시작한, 뼈가 사무치도록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다.

어렵지 않게 얻게 된 간소한 집을 나서서, 자주 가던 주점으로 갔을 때였을 것이다.

“버나드 아저씨. 만드레이크 주 한 잔 주세요.”

“오스틴…. 내가 이런 말을 하자니 좀 웃기지만, 술을 조금 줄이는 게 좋지 않겠냐?”

“됐으니까, 술이나 줘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때의 나는 생각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내가 술독에 빠져 살았구나.

“이봐, 오스틴.”

“크으…. 왜 불러요.”

“너…. 정말 계속 이렇게 살 거냐?”

“그럼, 그럼… 저보고 어떻게 하라구요….”

으레 그랬듯이, 술에 취하면 눈물샘이 약해져서는 그대로 바 테이블에 엎어져서 엉엉 울었더랬지. 로트를 동료로서 진심으로 아꼈으니까 말이다. 로트를 잃은 것이 내 욕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커서, 죄책감이 상당했다.

“하아…. 제일 쓸만했던 후배 놈이 이러니, 내가 속이 썩어서 말이다.”

그런 내가 한심했던 모양인지, 버나드 아저씨가 한숨을 푹 내쉬며 종이 한 장을 건네어 주었다. 참고로, 버나드 아저씨는 내 윗 기수 레인저 출신이었다. 제대하고 나서 술집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다나.

주점 아저씨가 건네어 주는 종이를 낚아채듯 받아 들고, 미간을 찌푸린 채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용사… 파티원… 모집…?”

용사 파티원을 모집합니다. 어느 분야든 자신이 숙련되어 있다고 생각되시면, 메텔하임의 모험가 길드에 접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전투 관련 분야 전문가 우대. 군단장을 하나 토벌할 때마다 500 금화 가량의 토벌 보수를 드립니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마왕군이 설치고 다니는 모양인데, 서 대륙은 이미 쑥대밭이 됐다고 하더라.”

“…저도 알아요.”

“하긴,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겠지. 그래서, 혹시 관심 있냐?”

“…관심 없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한 싸가지 했구나 싶다.

처음 용사 파티원 모집 공고를 보았을 때는, 딱히 용사 파티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지금껏 개고생을 하다가 동료를 잃고 제대했건만, 또 일을 하라고?

물론, 500 금화는 조금 끌렸지만…. 용사 파티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이번에 소환된 용사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하더군.”

“예…. 용사가 그럼 다른 세계에서 오지, 어디서 오겠어요….”

“아직도 모르겠냐, 오스틴?”

“그러니까, 아까부터 무슨 헛소리…!”

의미를 알 수 없는 버나드 아저씨의 말에 짜증이 치솟아 오를 때쯤, 버나드 아저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용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지금은 그저 힘없는 이세계 사람에 불과해. 오스틴.”

“…그래서요.”

“하지만, 믿을만한 동료가 곁에 있다면…. 용사는 훨씬 더 수월하게 마왕을 토벌할 수 있겠지.”

말을 끊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버나드 아저씨가, 고개를 숙여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불쌍하지 않아? 잘 살고 있던 사람을 다른 세계로 끌고 와서는, 갑자기 마왕 같은 놈을 상대하라니.”

“…저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내가 계속해서 성의 없는 대답으로 일관하자, 버나드 아저씨의 얼굴이 조금 험악해졌다.

“…오스틴. 너는 계속 그렇게 도망칠 생각이냐?”

“…….”

아마 버나드 아저씨의 그 말이, 내게 기폭제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너는 그걸로 만족해? 계속 그렇게 도망치면, 와일러가 용서해 준다냐?”

“저는….”

“자. 여길 잘 읽어 봐라. 전투 관련 분야 전문가 우대. 사람 죽이는 데 이골이 난 놈이 너인데, 이걸 봐 놓고도 아직도 모르겠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데요?”

“오스틴.”

버나드 아저씨가 평소 답지 않게 비장을 표정을 짓더니, 나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더랬지.

“세상이 너를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잔에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고, 버나드 아저씨가 건네 준 종이를 품속에 구겨 넣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주점을 나가는 내 뒤통수에, 버나드 아저씨가 말했다.

“이번에는, 동료를 소중히 여겨줘라. 안 그러면 내가 직접 손 봐줄 테니까.”

이튿날, 나는 용사 파티에 지원하게 되었다.

* * * * *

“그래서, 용사 파티에 들어가게 된 거지.”

루나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조금 멋쩍은 기분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잘 알았다.”

루나는 그리 말하곤, 팔짱을 낀 상태로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오스틴.”

“…왜.”

“지난번, 용사 파티와 만나고 온 뒤로… 가끔씩 이런 상태더군. 자각하고 있었나?”

“…아니.”

“용사 파티와 만나고 온 그날, 필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겠지. 맞나?”

“…응.”

“아마 그녀들의 사정도 들어보고 온 것이겠지. 맞나?”

“맞… 아.”

“그럼,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루나의 눈동자가, 내 눈을 빤히 마주 보았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려고 하니, 루나가 내 볼을 붙잡고 눈을 마주쳐 왔다.

그 눈이, 내가 도망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너는 정말로…. 그녀들과의 관계를 끊고 싶나?”

모르겠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미 내쪽에서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고 나왔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오스틴. 나는 네가… 내면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용서는 힘든 법이지. 용서하지 않고 사는 것은, 더욱 힘든 법이고.”

“윽….”

“오스틴. 네가 정말로 그녀들과 영영 상종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의 그 마음은 아마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오스틴. 지난 일에 분노하지 말아라.”

그건 마치, 그건 마치….

이제껏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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