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85화 (85/106)

〈 85화 〉 84. 쥐갑 도둑

* * *

“저녁에는 여관으로 돌아와. 로이먼, 너도.”

“알겠습니다.”

“우리는 걱정하지 마.”

“그래. 설마 용사에게 무슨 일이 생기겠냐만은, 그래도 조심해.”

여관에서 푹 자고 일어난 아침, 우리는 가볍게 식사를 한 뒤 각자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찢어지게 되었다.

용사는 그레이시, 아드리엔과 함께 왕궁에 다녀오기로 했고, 로이먼은 이사벨과 함께 메텔하임 대성당에 가 보겠다고 했다. 뭐, 메텔하임 지하에 대악마가 있다나 뭐라나.

“오스틴. 나는 잠깐 도서관에 다녀올게.”

“저도 동행해도 될까요? 아카데미의 방학이 끝나면, 곧바로 시험이 있어서요.”

“…응. 좋아.”

“엇, 그… 나, 나도 갈래!”

마야와 실비아, 알렉시스 공녀는 도서관에 갈 예정인 것 같았다. 다들 볼일을 보기 위해 흩어지니, 뭐랄까…. 정말 각자의 성향에 어울리는 곳에만 가는구나 싶었다.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배웅을 해주고 나니, 내 곁에는 로빈과 루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이건 또 굉장히 묘한 조합이라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서 있자, 내 옆에 서 있던 루나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스틴. 달리 해야 할 일이라도 있나? 없으면 조금 더 자는 게 어떤가.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데.”

“어? 아니, 그…. 별로 피곤하진 않은데.”

“…다행이군. 또 한량처럼 여관에 틀어박혀 있긴 싫었으니 말이다.”

“…….”

루나가 어디서 저런 못된 말을 배워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로 하여금 조만간 루나에게 예절을 주입시켜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

여하튼, 지금은 다시 잠을 자고 싶을 정도로 피곤한 것은 아니니, 빨리 무언가 할 일을 생각해내야겠다.

“내가… 뭘 하려 했더라….”

레인저 양성소에 얼굴 좀 비출까? 원래 수도로 올라 온 궁극적인 이유는, 파멜라 교관을 만나기 위함이긴 하다. 겸사겸사 열심히 구르고 있을 맥스도 만날 수 있을 테고.

“…아니다.”

지금 시기면, 아마 레인저 양성소에서는 한창 실전 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수도에 머무르는 이상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패스. 그러면….

“참. 내 정신 좀 봐.”

팔짱을 끼고 고민하고 있으려니, 베키가 내게 맡긴 일이 생각났다. 나는 서둘러 품을 뒤적여, 하르만에서 베키에게 건네받았던 편지 봉투를 꺼내어 들었다.

편지 봉투에는 베키의 방에서 나던 특유의 커피 냄새가 아직도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조금 흐릿해지긴 했지만, 베키가 남긴 진한 립스틱 자국 까지도.

대체 편지봉투에 이딴 걸 왜 남겼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단, 지금 할 일은 정해졌네.”

“뭔데요? 선배님?”

“그게 뭐지?”

“베키가 나한테 따로 부탁한 일이 있거든. 우선 그것부터 처리하자.”

그렇게 정해 졌으니, 상업 구역으로 가야겠지. 나는 먼저 앞장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로빈과 루나는 어지간히 할 일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편지 봉투를 흔들거리며 앞장서서 걷자, 멀뚱멀뚱 서 있던 그녀들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옆에 따라붙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상업 구역. 메텔하임은 워낙 도시 규모가 커서, 각각의 특정 건물을 따로 모아놓은 구역이 있거든.”

“호오…. 상업 구역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아니, 우리는 놀러 가는 게 아니거든….”

‘이럴 줄 알았으면, 구경이나 하고 온다고 하는 건데….’라고 투덜거리는 루나 억지로 잡아끌며, 그렇게 상업 구역으로 향했다.

이름이 분명… 뭐였더라?

“…아 맞다. 쥐새끼였지. 참.”

최근 들어서 자주 까먹는 것 같은데, 이 나이에 치매라도 걸렸나.

* * * * *

“대단해…. 정말 대단해…!”

루나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정신없이 주변을 휙휙 돌아보았다.

“상업 구역이 조금 복잡하거든. 잠시만….”

눈을 반쯤 감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역시 너무 오랜만에 온 탓일까. 지금의 상업 구역 거리는, 드문드문 끊어지고 풍화된 내 기억 속의 거리와는 많이 달랐다.

이럴 때 버나드 아저씨의 주점이 있었다면, 빠르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이미 메텔하임을 떠난 버나드 아저씨가 조금 그리워졌다.

나는 결국, 지나가는 사람의 옷깃을 붙잡고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뭡니까?”

“바쁘신 와중에 죄송하지만, 혹시 쥐새끼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쥐새끼? 그게 누구요?”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맷단을 붙잡고 계속해서 물어보았으나, 죄다 똑같이 모른다는 대답만 나왔다.

염병할. 그럼 그렇지. 꼴에 정보상이라는 쥐새끼의 정체를 이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안일했다.

“하아…. 로빈. 너는 쥐새끼가 누군지 알아?”

“우물우물…. 네? 뭐라구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로빈과 루나가 양손에 군것질 거리를 들고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잠깐, 저거 설마….

‘이 씹….’

나는 황급히 허리춤을 뒤적였다.

“어, 없….”

없다. 지갑이 없다. 항상 내 소중한 지갑을 보듬어 주고 있던 내 레인저 파우치가, 텅 빈 채 쫄쫄 굶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허리춤을 뒤적이던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로빈과 루나를 올려다보았다.

“그건 또 언제 샀…. 아니, 먹고 싶으면 말을 하던가. 내 지갑까지 훔쳐갈 일이냐?”

“우물우물…. 그게 무슨 말인가?”

…응?

“시치미 떼지 말고. 이번에는 봐줄 테니까, 빨리 내 지갑 돌려줘.”

“이건 로빈이 사 준 것이다만?”

“…뭐?”

내가 얼빠진 소리를 내뱉은 그 찰나의 순간, 멍해진 머리가 급속도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관에 지갑을 두고 나왔던가?

아니. 분명 상업 구역에 들어오기 전, 파우치를 확인했을 때는 지갑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에 흘렸나?

아니다. 레인저 파우치는 단단히 밀봉했다면 절대 흘릴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내가 칠칠치 못하게 길바닥에 흘렸을 리가….

“…씨발. 설마.”

나는 눈을 부릅뜨고, 인파로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오스틴. 가만히 서서 뭘 하는 거지? 화장실이라도 찾는 건가?”

“그게 아니에요, 루나. 선배님의 눈을 보세요. 탐욕으로 꽉 들어찼잖아요. 선배님의 돈 냄새 탐지 마법이 가동된 거예요.”

“아하. 그런 거였군.”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뚫어져라 인파 속을 쳐다보고 있기를 잠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후드를 푹 눌러쓰고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커다란 로브를 푹 뒤집어쓰고, 로브 끝자락으로 살짝 튀어나온 얇은 꼬리를 흔들거리는 왜소한 덩치의 소매치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자연스럽게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꼬리를 보니, 수인인 듯하다.

나는 곧바로 몸을 휙 돌려, 자연스럽게 사람들 틈바구니에 숨어들었다.

다행히도, 저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소매치기는 내가 쫓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 돈도 아니고 내 돈을 훔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친구로구나.

왜소한 덩치가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나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평등하다.

모그단의 검이, 어서 저 깜찍한 소매치기에게 예절을 주입시키자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나는 허리춤에 매달린 검 자루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조금만 참으렴, 모그단 주니어. 곧 사람 하나 갱생시킬 수 있을 테니까.”

“로빈. 오스틴이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건 뭐지?”

“흠…. 누군가를 죽일 생각 만땅이네요. 상황을 봐서, 저희가 말리던지 하죠.”

그렇게 뒤에서 뭐라 뭐라 떠들어 대는 루나와 로빈을 데리고, 은밀하게 소매치기의 뒤를 밟았다.

그렇게 미행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걸어가던 소매치기가, 갑자기 왼쪽 골목으로 휙 빠졌다. 나는 소리 없이 걸음을 재촉하여, 소매치기가 모습을 감춘 골목을 힐끔 들여다보았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 막다른 골목 벽 안쪽에, 어딘가로 내려갈 수 있는 좁은 계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계단 옆의 벽에 새겨진 오래된 글씨를 읽어 보았다.

10번 하수도 출입구. 관리자 외 출입금지. [ 폐쇄됨 ]

지금은 폐쇄된, 지하의 하수도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었다. 그렇구만. 과연.

실제로, 저런 외진 곳을 뒷골목의 양아치들이 아지트로 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는 어두컴컴한 계단 안쪽으로 귀를 기울여 보았다.

덜컹. 덜컹.

금속 재질의 무언가를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심스레 몸을 드러내어, 계단 안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 내려갔다. 내가 발소리를 죽인 채 천천히 걸어가자, 루나와 로빈 역시 분위기를 눈치채고 살금살금 내 뒤를 따랐다.

“끙…. 여, 열쇠를 어디다 둬, 뒀더라….”

하수도로 향하는 쇠창살 문 앞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수인이 품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목소리가 여린 것으로 보아하니, 아무래도 저 간악한 소매치기는 여자인 듯했다.

상관없었다. 나는 남자 여자 가리지 않는 공평한 사람이니까.

바닥에는 커다란 가방이 놓여 있었는데, 아마 로브 품속에 숨겨 두고 있던 가방인 듯했다.

‘어쭈구리….’

채 잠기지 않은 가방 위에, 소중한 내 지갑이 대충 쑤셔 박혀 있었다. 순간 꼭지가 확 돌았지만, 가까스로 참아내고 조용히 계단 옆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소매치기는 열쇠 꾸러미를 손에 쥔 채, 한동안 열쇠를 찾지 못해 고전하고 있었다. 지금 뛰쳐나가 잡을 수도 있었지만, 저 소매치기가 패거리를 이루고 활동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저 빌어먹을 도둑놈년들을 한꺼번에 잡아들이고 싶었다.

“이, 이건 아니고…. 이, 이것도…. 어, 이, 이건, 가….”

소매치기는 말을 심하게 더듬거렸다. 가정교육의 부재인가?

그럴 테지. 그러니까 저런 범죄를 뻔뻔하게 저지르고 다니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철컹! 끼이이익….

“돼, 됐다! 히히….”

어딘가 음침한 웃음소리를 낸 소매치기는, 이윽고 바닥에 놓인 가방을 낑낑거리며 들어 올린 뒤, 쇠창살 문 안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는 재빨리 계단 아래로 내려와 쇠창살 문을 붙잡았다.

“그렇지.”

예상대로, 문을 막고 있는 최후의 보루인 자물쇠는 여기저기 녹이 슬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검을 뽑아 들고, 자물쇠 틈바구니로 검을 끼워 넣었다.

“흡!”

깡!

청명한 소리와 함께, 뚝 끊어진 자물쇠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쇠창살 문을 슬쩍 밀었다.

끼이이익….

낡은 비명을 지르는 경첩이 돌아가고, 메마른 지하 하수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 손님은 이쪽으로 오시오. ]

“…뭐지?”

하수도 벽에는, 은은하게 길을 밝히고 있는 랜턴과 함께 낡은 표지판이 매달려 있었다. ‘손님은 이쪽으로 오시오.’ 라니. 역시, 패거리를 이루고 활동하는 놈들이 틀림없었다.

표지판을 따라 걸어가길 한참, 어느새 저 앞에 넓은 공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흥흥~. 오, 오늘은…. 맛있는 빵, 이네~!”

안쪽에서 소매치기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빈. 저 안에, 내 이쁜이를 훔쳐간 찢어 죽일 년이 있어.”

“이쁜이? 그게 뭐지?”

“…지갑이요?”

“역시 로빈이야. 척하면 척이네.”

“아휴…. 못살아 정말….”

로빈과 루나가 못 이기는 척 무기를 뽑아 들었다.

“오늘도… 손님이, 없어…. 힝….”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보니, 소매치기는 팔자 좋게 늘어져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재빠르게 달려나가, 저 앞에서 꼼지락거리는 소매치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야 이 씨발련아!!!!!! 순순히 내 지갑 뱉어 내!!!!!!”

“꺄악?! 뭐, 뭐야!”

쿠당탕—!

소매치기는 생각보다 맥없이 제압되었다. 아니, 툭 건드린 정도로 몸이 넘어지다니, 얼마나 힘이 약한 거야?

질문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 우선 지갑부터 돌려 받자. 내 전재산이 저기에 있다.

마운트 자세로 로브를 거칠게 벗기자, 소매치기의 얼굴이 드러났다.

“우이씨…! 뭐, 뭐야…! 너, 너, 너 누구야…!”

“…엉?”

동그란 귀와, 털이 없어 민둥민둥한 꼬리가 달린 앙상한 쥐 수인 소녀가 내 밑에 깔린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귀와 꼬리의 모양. 이거….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근처에 놓인 낡은 의자에 소녀를 앉혀 주었다.

쥐 수인은 흔치 않다.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이 사람은….

“…혹시, 쥐새끼 되십니까?”

내가 조심스레 묻자, 허리를 문지르던 쥐 수인 소녀가 확 밝아진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응? 호, 혹시, 손님! 손님이야?!”

“어, 저기….”

“손님! 손님이구나! 손님이야! 이히히!”

베키가 답지 않게 고평가를 하던 세기의 정보상, 이명 쥐새끼.

그녀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