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86화 (86/106)

〈 86화 〉 85. 크싸레쥐, 로웰

* * *

“들어와! 이, 이쪽이야!”

우리는 앞장서서 걸어가는 쥐새끼의 뒤를 따라, 정체불명의 내용물이 담긴 나무 상자가 깔끔하게 쌓여 있는 동공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그녀는 선뜻 내 지갑을 돌려주었다. 안 돌려주고 버티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을 텐데, 참 다행이었다.

“소, 소, 손님은 오랜만이라서, 나, 나도 모르게 실수를, 그, 말실수를 할 수도 있는데, 이상하다면 바로 알려줘!”

“예. 알겠습니다.”

“그, 그리고, 지갑은 정말, 정말 미안해…. 최근에 소, 손님이 없, 없어서…. 배가 고파서….”

“아하하…. 그건 돌려받았으니까 괜찮습니다.”

아까부터 느꼈지만… 이 사람, 말을 너무 심하게 더듬거린다. 이런 사람이 실력 있는 정보상이라고?

글쎄다. 내가 보기엔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라가자니 괜히 어색해져서, 콧노래를 부르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그러니까….”

이명은 기억이 나는데, 본명이 뭐였더라? 분명 베키가 말해줬던 것 같은데.

내가 말끝을 흐리자, 그녀가 이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 이름, 로웰! 로웰이야!”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아, 그럼…. 앞으로는 로웰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쥐새끼라는 이름은 조금….”

“그래 그래! 네, 네가 편한 대로 불러!”

“저는 오스틴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로빈, 이쪽은 루나고요.”

“음음! 오스틴, 로빈, 루나! 화, 확실히 기억했어!”

우리를 손님으로 알고 있는 쥐새끼— 로웰은 상당히 들떠보였다. 오늘도 손님이 없는 건가, 하면서 시무룩해했으니, 아마 오랜만에 손님이 와서 신난 게 아닐까.

그나저나….

‘쥐새끼라는 이름에, 하수도에 살길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이 버려진 하수도, 예상외로 그리 더럽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청결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신이 난 로웰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길 한참, 고급스러운 장식이 규칙적으로 새겨진 문이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오스틴. 저 문….”

“나도 보고 있어.”

놀랍게도, 저 단단해 보이는 문은 이 초라한 하수도와 어울리지 않게 금으로 만들어진 듯해 보였다. 로웰이 손에 들고 있는 랜턴 빛을 따라,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문이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흠흠흠~.”

콧노래를 부르던 로웰은, 품속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어 문을 열었다. 조금 전 하수도 입구를 열 때와 다르게, 이번에 밀어 넣은 열쇠는 어긋남 없이 부드럽게 돌아갔다.

문이 열리고, 우리는 익숙하다는 듯 문을 열고 들어간 로웰을 따라 조심스레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와.”

로웰의 방 안으로 들어온 뒤 내가 느낀 첫 소감은, 예상외로 엄청나게 고급스럽고 차분한 분위기라는 것이었다.

벽의 양 쪽에 놓인 책장은 완벽하게 대칭되어 놓여 있었고, 고급스럽게 장식된 책상과 푹신해 보이는 의자 역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좌우로 대칭되어 있었다. 방 안은 하얗게 칠해져 있었으며, 바닥은 반짝반짝 빛나는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닥과 책상 위는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것이, 마치 로웰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수도에 들어올 때부터 그리 더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깔끔해 보였다. 하수도치곤 냄새도 나지 않았고.

“헤헤. 어, 어때?”

로웰이 바닥을 꼬리로 탁탁 치며 물었다. 글쎄, 이건 뭐랄까….

“엄청 깔끔하게 사시네요.”

강박적인 정리 습관. 그녀는 확실히, 어딘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 멀뚱 거리며 방을 구경하고 있으니, 어느새 책상 앞에 앉은 로웰이 우리에게 의자를 권했다.

“그, 어, 어서 앉아!”

“아. 감사합니다.”

내가 안쪽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으려 하자, 로웰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자, 잠깐!”

“ㄴ, 네?”

내가 의자에 앉기 직전의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춰 있자, 로웰이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가운데 의자를 가리켰다.

“그, 여, 여기 앉아주면 안, 될까?”

“안 될 건 없지만…. 굳이 왜….”

“그, 서, 성별로, 대칭….”

“…아.”

여자 남자 여자. 이렇게 앉아야 대칭이 되어서 편안하다는 말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베키 역시 로웰을 미친년이라고 칭했었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가운데 의자에 앉고, 내 양쪽에 로빈과 루나가 앉으니, 로웰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헤헤…. 조, 좋아! 그래서, 어떤 정보를 워, 원하는 거야?”

로웰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조용히 품을 뒤져, 베키가 내게 건네어 주었던 편지 봉투를 꺼내었다.

“사실, 이게…?”

“너.”

내가 편지 봉투를 꺼내자마자, 로웰이 손을 뻗어 내 손목을 텁! 붙잡았다.

“뭐, 뭡니까?”

당황한 나머지 손을 뿌리치려 해 보았으나, 어째서인지 로웰에게 붙잡힌 손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렇게 앙상한 체격에서, 어떻게 이만한 힘이 나오는 것일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로웰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기요…?”

로웰의 눈동자는,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로웰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를 굴렸다.

로웰의 시선은, 내 손에 들린 편지 봉투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편지 봉투에 남겨진 베키의 립 자국에 고정되어 있었다.

“너, 베키랑 무슨 관계야.”

“아니, 무슨….”

불륜남을 상대로 캐묻는 것 같은 기묘한 상황에, 당황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했다.

베키와 무슨 사이냐니, 그냥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인데?

“그냥 친구인데요?”

“…거짓말 아니지?”

로웰의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 나에게 향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전혀 없었고, 얼굴은 소름 끼치게 무표정해서,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라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거짓말 아닙니다. 진짜 그냥 친구예요. 이 편지는 베키가 당신에게 전해 달라고 해서 가져온 것뿐이고요.”

“베, 베, 베, 베키가….”

로웰의 얼굴이 대번에 헤실헤실 풀어졌다. 대체 뭐지?

“예. 베키가 당신에게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이 립 자국도 베키가 직접….”

“에헤헤헤…. 베, 베키가, 지, 직접….”

로웰의 눈이, 위험하게 번득이기 시작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조금씩 뒤로 물렸다.

“…저기요? 로웰?”

“어, 어서 이리 줘!”

침까지 질질 흘리며 내 손에 들린 편지 봉투를 바라보던 로웰은, 이윽고 재빨리 손을 뻗어 편지 봉투를 낚아챘다.

편지 봉투를 가져갔으나, 로웰은 곧바로 편지 봉투를 뜯지 않았다. 한동안 편지 봉투에 묻어있는 베키의 립 자국과 우리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이윽고 입술을 꾹 깨물며 말했다.

“저, 저기…. 미안하지만, 잠시만 바, 밖에 나가 있을래? 오, 오래 안 걸리니까….”

* * * * *

“스읍…. 크흠. 미안. 잠깐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네.”

“…….”

우리는 군말 없이 다시 의자에 착석했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편지 봉투를 힐끔 바라보았다,

편지 봉투 위에 찍혀 있던 베키의 립 자국이 엄청나게 축축해져 있었다. 베키의 립 자국 위로, 누군가의 입술 자국 같은 모양이 진하게 젖어 있었다.

‘베키, 너도 고생하는구나….’

베키가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것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설마 하니 같은 여자까지 꼬셔버렸을 줄은 몰랐다.

아무튼, 이제 일 이야기를 해야겠지.

우리를 내쫓은 뒤 해피 타임을 잔뜩 즐긴 로웰은, 처음 만났을 때의 우중충한 분위기보다 한결 밝아져 있었다.

내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로웰을 바라보자, 아직도 편지 봉투를 힐끔거리고 있던 로웰이 허둥지둥 편지지를 꺼내어 펼쳤다.

“어… 그러니까…. 일단, 베키가 보낸 편지는 전부 다 읽어 봤어. 너희가 엄청나게 쓸만한 친구들이라고 하네?”

“베키가 그리 썼습니까?”

“응. 너희가 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니까, 뭐 부탁할 일이라도 있으면 너희에게 부탁하라고 하더라고.”

로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거 참 고마운걸. 부수입이라면 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 참 고맙네요.”

“흐음…. 그리고, 다른 내용은….”

“…잠시만요.”

조금 전부터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심각하게 더듬거리던 로웰의 말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젠 말을 안 더듬으시네요?”

“아, 그건….”

내 질문을 들은 로웰이, 얼굴을 붉힌 채 몸을 베베 꼬며 말을 이었다.

“베, 베키 성분을 보충했으니까….”

“…우리 이제 일 얘기나 하죠.”

“응! 그렇지! 일 얘기!”

잠시 심연을 엿본 것 같았다. 베키, 힘내렴.

로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곤, 오른쪽에 세워진 책장으로 다가가 무언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 이거다!”

이윽고 두꺼운 종이 두루마리를 하나 꺼낸 로웰은, 멍하니 책상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앞에 두루마리를 쫙 펼쳤다.

“이건….”

“…이건, 지도인가?”

“선배님. 이게 뭔가요?”

로웰이 우리에게 보여 준 두루마리의 정체는, 지도였다.

우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로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너희 알고 물어본 거 아니었어?”

“…예?”

로웰이 책상 위에 고이 접혀있던 편지지를 다시금 펼쳐 들고, 편지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베키가 말하길… 너희, 메텔하임 지하 탐사에 관심이 있다면서?”

“아니, 뭐?”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람. 내가 나도 모르게 반말을 하자, 로웰이 엥? 소리를 내곤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메텔하임 밑에 정체불명의 지하 공간이 발견되었다는 사실, 모르고 있었어? 지금 바깥사람들은 난리가 났는데?”

“그건 저희도 알고 있었죠.”

“그럼, 이번에 모험가 길드와 마탑에서 탐사대를 모집하려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네?”

“…아니, 잠시만요.”

이게 무슨 소리야. 로이먼에게 들었던 그 지하 공간의 탐사를, 왕국 측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용병이나 모험가들에게 맡기겠다는 소리야?

그리고, 베키는 우리가 그 탐사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 거고?

…이 미친년이.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로웰의 말을 부정했다.

“아뇨 아뇨. 잠시만. 저희는 그럴 생각도 없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거든요? 그냥 요양 좀 하러 올라온 거라서요.”

“음…. 잠시만…. 아! 편지 맨 밑에 이렇게 적혀 있어! 만약, 오스틴이 탐사에 참가하길 거부한다면, 환전소에서 번 돈…? 을 보수로 주겠다고 말하라는데?”

“미지를 탐사하는 것에는 항상 관심이 있었죠. 베키가 저를 아주 잘 알고 있었군요. 역시 사려가 깊은 친구네요.”

하르만의 르베너 환전소에서 털었던 돈을 말하는 것인가.

아마 그만큼의 금액을 보수로 지급하겠다는 소리인 것 같았다. 환전소에서 털어먹은 돈은 이미 환전소로 되돌아갔을 테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나와 로빈이 조금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뭐. 왜.”

“…아니에요. 저도 궁금하긴 했으니까.”

“오스틴…. 너는 정말….”

미안하지만, 너희는 그 돈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지 잘 모르는 것 같구나.

그만큼의 돈이라면, 막말로 목숨 한 번 걸어도 될 정도였다.

로웰의 손가락이,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오래된 지도 위를 짚었다.

“그러니까, 이게 그 지도야.”

“메텔하임 지하 지도라고요?”

로빈이 되묻자, 로웰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하 하수도의 지도야. 지금은 소실된 상태여서, 아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지도가 유일할 걸?”

“흠….”

나는 잠시 지도를 쳐다보다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빠졌다.

로이먼이 말했던 정체불명의 지하 공간. 그 공간을 탐사하기 위해 마탑과 모험가 길드에서 탐사대를 조직하려 하고 있다.

그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더 궁금한 것은, 베키가 왜 이딴 헛짓거리에 관심을 가지냐는 것이었다.

전혀 돈이 되지 않아 보이는데, 뭐하러?

내 눈빛을 읽은 모양인지, 로웰이 몸을 움찔 떨며 입을 열었다.

“그, 그게에…. 사실, 베키가 지난번에 나한테 부탁했거든. 마탑 쪽에서 탐사대를 꾸리려 하는데, 우수한 인원을 선발하고 싶어 한다고….”

“…….”

베키, 이년이 나를 팔아넘겼구나.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다.

“얼마나 받았답니까?”

“그게….”

로웰이 내 귀에 바짝 다가와 소곤거렸다.

“…진짜?”

“진짜….”

…상상도 못 한 액수에,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졌다. 아니, 마탑과 모험가 길드에서 그만한 돈을 내면서 까지 탐사대를 모집하려 하고 있다고?

베키가 왜 관심을 가지나 했더니, 그만한 돈이라면 도전할 가치가 있지. 하물며, 우리는 나름대로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실력자다.

…아니, 잠깐. 만약 탐사대를 꾸린다고 하면, 알렉시스 공녀는 어떻게 하지?

내가 고민하는 낯을 띄우자, 로웰이 다급히 말했다.

“아, 그래도! 탐사대를 꾸리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로웰은 베키에게 미움받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저렇게 필사적으로 나를 설득하려 하는 것이겠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어… 일 년 정도?”

일 년이라. 일 년 정도라면, 알렉시스 공녀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러면 그때까지 여유가 있겠지.

비록, 마왕을 처리해야 하는 용사 파티는 그때까지 남아있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때 가서 생각해 볼게요.”

“아, 응! 대신,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뭐든 물어봐! 내가 이래 봬도 알고 있는 게 조금 많거든!”

“그래요? 그럼….”

알고 싶은 정보라. 지금은 딱히 없는데.

“딱히 생각나는 건 없네요. 나중에 생각나면 찾아올게요.”

내가 주섬주섬 지도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로웰이 벌떡 일어나 나를 배웅해 주었다.

“그래! 여기가 내 집이니까,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와! 놀러 와도 되고!”

“예. 다음에 꼭 찾아올게요.”

“로웰씨!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놀러올게요!”

“음. 다음에 다시 찾아오지.”

로웰의 배웅을 받으며 하수도 바깥으로 나오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

“시간 참 빨리 가네.”

나는 로웰의 모습을 떠올렸다. 조금 맛이 간 것 같았지만, 나름대로 정보상으로서의 실력은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나중에 필요할 때가, 반드시 올것이다.

내 직감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