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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90화 (90/106)

〈 90화 〉 89. 재입대

* * *

“그러게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이대로 진행했다가는, 멀린 백작의 지원금이 끊길 것이라고 말입니다!”

또. 또 잔소리. 매번 이런 식이다.

지겹다. 지겹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눈꼬리가 휘게 웃으며, 나를 향해 화를 내는 상대방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괜찮아요, 부관. 아쉬운 쪽에서 먼저 접근하기 마련이니까요. 멀린 백작도 조만간 다시 지원을 넣을 거예요.”

“그러니까, 도대체 그걸 어떻게 확신한다는 겁니까…!”

어차피 나중으로 가면은, 또 내 말이 맞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터인데. 어째서 이 남자는 그 사실을 학습하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학습 능력이 없나?

하지만, 면전에 대고 이런 말을 내뱉지는 못한다.

나는 내 속마음을 남에게 함부로 내비치는, 그런 용기 있는 사람이 못 되었다.

그래도, 나름 내 부관이니까 말이지. 그런 심한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런…! 후우….”

또다시 화를 내려던 부관이, 구레나룻과 이어진 특유의 턱수염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됐습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 하지요.”

“하암…. 좋아요~.”

“…지금 하품하신 겁니까?”

“넹. 졸려서요.”

“…아니, 됐습니다. 여하튼, 지난번에 전선에 파견 나간 대원들의 사상자 명단입니다. 이번에는 유독 사상자가 적더군요.”

“어머. 그거 다행이네요.”

아, 참. 우리 대원들.

가슴팍에 걸린 주머니에서 단안경을 꺼내어 쓰곤, 부관이 내밀어 준 종이 더미를 넘겨 보았다.

“…어떻게, 느껴지는 게 있으십니까?”

“으음…. 사상자가 많이 줄었군요.”

“예. 이번에 소환된 용사가 아주 열심히 활동하는 모양입니다. 벌써 여덟 명의 군단장들 중, 다섯이….”

용사….

오스틴도 용사 파티에 들어갔다고 전해 들었다.

아쉬웠다. 오스틴이 그렇게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던데,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하고 떠나보내서.

“지난번에 올린 보고서를 읽어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최근 망각의 마녀와 전선 파괴자의 동향을 파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왕군을 나간 것인지, 혹은 서 대륙으로 돌아간 것인지, 어쩌면 마왕에게서 받은 극비리의 임무를….”

이미 며칠 전에 보고서로 올려서 아는 내용을, 굳이 또 말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벌써 지루해졌다.

“덕분에 사상자가 줄어들긴 했습니다만, 변수가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전선에 모습을 비춘 적이 없던 벼락의 검, 몬타가….”

하품을 필사적으로 참아내었다. 진지하게 듣는 척을 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아시겠지만, 최근 마왕군과 대치중인 전선에서 지원 요청이 산더미처럼 몰려들고 있습니다. 특히나 철의 고원 전선에서….”

…아, 여드름 발견.

부관은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게 되면, 언제나 저렇게 여드름이 나곤 했다. 턱수염에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해서, 그 근처에 주둔 중인 검은 매 기사단 예하의 기사들과 합동 작전을….”

오늘따라 파멜라가 늦네. 어제 같이 점심 먹기로 했었는데. 지금이 몇 시지?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바라보니, 아직 고장 난 시계가 그대로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언제 고친담.

“그러니까……. 단장님?”

“…….”

“단장님. 단장님!”

“…흐? 헤? 으, 음. 스읍. 무슨 일이죠?”

“…제 이야기, 듣고 계셨습니까?”

“그으… 러엄요. 다 듣고 있었죠.”

“…됐습니다. 어차피 제대로 듣지도 않으셨을 테니, 나중에 보고서로 한 번 더 올리겠습니다.”

“수고해주세요~.”

진작에 저럴 것이지.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이상하게도 대화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부관은 이런 내 태도를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만….

따분한 걸 어떻게 해.

“그럼, 저는 이만….”

아. 또 딴생각을 해 버렸네.

지친 표정을 지은 부관이, 어느새 내 집무실을 나가려 하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부관을 불렀다.

“아, 부관! 잠시만요!”

“…예? 뭡니까?”

이걸 안 물어봤네. 나도 참.

“그래서, 오늘 점심은 뭐죠?”

“어억….”

내 질문을 들은 부관이, 눈을 까 뒤집으며 뒷목을 잡곤, 등에 기댄 문을 따라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갔다.

“부관?”

뺨을 콕콕 찔러보았다. 반응이 없다.

“기절한 걸까나?”

…아니, 잠깐만.

그럼, 내 점심 메뉴는 누가 알려 주는데?!

* * * * *

나는 실비아와 함께 파멜라 교관의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양성소 옆에 붙어 있는 식당을 가로질러 레인저 본부로 향했다.

“맛있는 냄새….”

실비아가 꼬르륵 거리는 배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침 식사도 하지 못하고 나왔구나.

파멜라 교관과 떠들어 대다가 나왔더니, 시간은 벌써 점심 시간대였다.

“그러게. 나 때는 꿀꿀이 죽이나 다름없었는데, 많이 변했나 보네.”

대충 말라비틀어진 채소 조각과, 퍽퍽하기 짝이 없는 질긴 고기를 때려 붓고 끓인 꿀꿀이 죽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딴 걸 얼마나 처먹고 살아왔는지. 참.

“한 2년 전인가? 그때, 단장님께서 레인저 식비를 빼돌리는 놈들을 다 잡아내셨어. 그래서 식사의 질이 올라간 거야.”

파멜라 교관이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은 손도 대지 못하던 문제를 단장이 쉽게 해결해 버렸으니, 기분이 좋진 않겠지.

“마침 지금 점심시간일 텐데, 너희도 조금 먹고 갈래?”

“아니, 저희는 빨리 단장님과….”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단장, 그 여편네한테 가서 말하면 금방 끝날 거고, 너도 굳이 끼니까지 걸러가면서 할 필요는 없잖아?”

…듣고 보니까 또 맞는 말 같네.

신이 난 실비아와 손을 맞잡고, 싱글벙글 웃으며 훈련생 식당으로 들어갔다.

원하는 식사를 양껏 담은 뒤, 실비아를 데리고 파멜라 교관을 따라 들어가며 주위를 구경했다.

예전에, 내가 훈련생 시절일 때와는 많이 변했구나.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의 식사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식사를 하는 훈련생들의 행복한 표정들 좀 봐라. 다들 따뜻한 빵도 먹고, 뜨끈한 스튜와 고기도 먹고, 채소들도 싱싱해 보이고, 예쁜 단장님과 함께 식사도….

…어?

“교관님? 저쪽에….”

“응? 뭐가?”

“저쪽이요. 식당 한가운데에….”

파멜라 교관이 고개를 돌려, 내 손가락 끝을 쫓았다.

그곳에는, 신난 표정으로 맛있게 밥을 잡숫는 단장님께서 훈련생 식당 한가운데 식탁에 앉아 계셨다.

그녀를 발견한 파멜라 교관이 대번에 표정을 일그러 뜨렸다.

“…아니, 저 여편네는 왜 간부 식당에서 안 먹고 또….”

단장님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딱 한 명. 한눈에 봐도 초췌하고 피곤해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단장님의 맞은편에 힘없이 앉은 채 그릇에 코를 박고 엎어져 있었다.

그 주변에는, 다섯 자리 간격으로 다른 훈련생들과의 거리가 널찍이 띄워져 있었다. 다들 표정이 그리 좋진 못했다.

“…교관님. 애들 체 하겠는데요.”

“저 여편네가 진짜….”

파멜라 교관의 붉은 머리가, 오늘따라 한층 더 붉게 빛나는 것 같았다. 화가 나서 그런가.

파멜라 교관이 성난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 아직 햇병아리 같은 훈련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식당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와…. 저 사람은 누구지?”

“엄청 예쁘네….”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니라, 실비아를 쳐다보는 거였구나.

실비아를 향해 슬쩍 고개를 내리자, 나와 눈이 마주친 실비아가 으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꽁—!

“야! 갑자기 왜 때려!”

“얄미워서 그랬다, 왜.”

그렇게 계속해서 걸어가던 우리는, 단장님께서 앉아 계신 식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야.”

파멜라 교관의 목소리가 매서웠다. 하긴, 방금까지 막 힘들게 훈련을 받고 온 훈련생들 일 텐데, 밥도 맘 편하게 못 먹고 있으니. 파멜라 교관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도 하다.

“야. 내가 부르잖아.”

“우물우물…. 으음?”

한쪽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단장님께서, 마침내 파멜라 교관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노란색으로 맑게 반짝이는 금안(??)과, 단정하게 위로 땋아 올린 윤기가 흐르는 흑색의 머리칼이 인상적인, 전형적인 강아지 상의 미인이 우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레인저의 현 단장, 거트루드 메이어. 메이어 후작가의 차녀. 파멜라 교관처럼 친한 사람에게는, 트루디라는 애칭으로 자주 불린다.

서글서글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한동안 우리를 쳐다보던 단장님께서, 입에 남은 음식을 열심히 오물거리는 상태로, 옆자리의 의자를 탁탁 내려치며 우리에게 의자를 권했다.

나는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남자의 옆에 조심스레 앉으며, 파멜라 교관에게 물었다.

“…교관님. 이 분은 누구세요?”

“아…. 네가 나가고 나서 새로 들어온 보급 장교인데, 지금은 단장의 직속 부관이야. 오늘도 영혼까지 털렸나 보네.”

내가 메이어 단장님을 말없이 바라보자, 단장님께서 나를 마주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우우움…. 우음….”

“다 먹고 말해. 더럽게 진짜….”

메이어 단장님의 바로 옆에 앉은 파멜라 교관은,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따금씩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훈련생들을 째려보면서도, 단장님이 계신 방향으로는 전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었다.

한참을 우물거리던 메이어 단장님께서, 마침내 음식물을 전부 삼켰다.

“우움…. 꿀꺽…. 오스틴, 오랜만이네요!”

“아하하…. 예, 뭐…. 그렇죠.”

“4년? 아니, 5년 만인 가요?”

“4년 조금 넘었거든, 이 멍청아.”

“팸. 또 왜 화가 난 건가요….”

“야!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팸이 어때서요. 파멜라의 애칭인데…. 팸도 저를 트루디라고 자주 불렀잖….”

“크흠! 조, 조용히 해! 자, 잡담은 그만!”

단장님께서 얼굴을 숙이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저 꾸밈없는 순수한 표정이 귀여웠다.

“너 말이야. 대체 간부 식당은 어쩌고, 애들 밥 먹기도 불편하게 여기서 처먹고 앉아 있어?”

“우물우물…. 하지만, 팸. 간부 식당보다는, 여기가 제 집무실에서 더 가까운걸요….”

“너는…. 아휴, 됐다. 말해 뭐하냐.”

“헤헤….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저에게 용무라도 있나요?”

메이어 단장님께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턱을 괴고 물었다. 진짜, 저 볼살 한 번 꼬집어 보면 소원이 없겠는데.

“오랜만에 만나 뵈었는데, 이런 말씀부터 드리자니 죄송하지만…. 실은, 저희가 부탁드릴 일이 하나 있어서 말입니다.”

“으흠…. 그게 뭐죠?”

“조만간 아카데미로 파견 나가는 인원을, 저와 로빈으로 채워 주세요.”

메이어 단장님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하긴, 어차피 첫술에 배부를 생각은 없었….

“음…. 좋아요!”

“죄송합…. 예?”

영문을 모르겠네.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건너편에 앉아 있는 파멜라 교관을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파멜라 교관은, ‘거 봐. 내 말이 맞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쉽게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뭐…. 문제는 없지 않나요? 어차피 파견 나가는 대원들도, 다들 하나같이 가기 싫어하는 눈치구요. 그렇죠, 부관?”

우리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 눈. 피곤에 절어 있는 눈을 보니, 이 사람이 단장님께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단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버크 자작가의 차남, 이안 버크입니다…. 메이어 단장님의 부관 자리에 있습니다….”

“아, 예…. 그, 반갑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메이어 단장님의 부관, 이안 버크라는 남자는 그렇게 힘없이 떠나갔다. 그 뒷모습이 어쩐지 슬퍼 보여서, 나는 차마 그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럼, 저와 로빈이 아카데미로 파견 나갈 수 있는….”

“우물우물…. 대신, 조건이 있어요.”

아니, 방금은 그냥 들어 주실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뜬금없이 조건이라니.

“조건… 말씀이십니까?”

“네. 조건이요. 오스틴도 알겠지만, 아카데미로 파견 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레인저 대원들이에요.”

“그렇… 죠?”

“그런데, 오스틴은…. 더 이상 레인저 대원이 아니네요?”

메이어 단장의 미소가 조금 차가워졌다. 아니, 해 주겠다면서. 이 아줌마야.

“그럼, 불허하시겠다는….”

“으—음. 아~니죠.”

“예?”

메이어 단장이 포크를 빙빙 돌리며, 싱긋 웃어 보였다. 단장님과 대화를 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단장님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건지 모르겠다.

“이곳, 양성소의 교관들은 모두 사냥개 출신이라는 거, 오스틴도 알죠?”

“알죠. 그럼요.”

“그럼 말이 통하겠네요. 오스틴이 교관이 되면 되는 거잖아요? 딱 하루만, 우리 레인저 양성소에서 훈련생들을 교육시켜 주세요.”

…시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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