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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95화 (95/106)

〈 95화 〉 94. 언젠가는

* * *

엘프들의 땅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백 년. 인간들과 엘프의 공식적인 수교가 이루어진 지, 겨우 백 년이 지났을 뿐이었다. 마치 거대한 벽처럼 높이 솟아나 있는, 험준하기로 악명이 자자한 송곳 산맥에 가로막힌 탓이었다.

송곳 산맥은 험준하다. 그곳은 하나의 고립된 공간이며, 그곳에 사는 마물들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순전히 야생 그 자체나 다름없는 마물들이 차고 넘친다.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험난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은 마물들은, 여타 다른 숲 속의 마물들과 궤를 달리한다.

산맥 옆 작은 숲 속 마을에 살고 있는 꼬마 엘프 아드리엔에게 있어서, 이 잔인하고 사나운 마물들은 그저 하나의 놀잇감이자, 어린 시절의 눈길을 잡아 끄는 흥미로운 대상일 뿐이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꼬마 아드리엔이 힘차게 인사하자, 마을과 산맥의 경계를 지키던 순찰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드리엔, 오늘도 나가는 거니?”

“헤헤…. 네!”

“쓰읍…. 오늘은….”

잠시 빽빽한 숲을 바라보던 순찰대원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어 주었다.

“늦지 않게 마을로 돌아오렴, 아드리엔. 또 늦었다간, 너희 어머니께서 걱정하실 테니 말이다.”

“아하하…. 그으… 럼요…!”

“아드리엔, 너 말이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송곳 산맥의 숲은 언제나 위험하단다. 언제 어디에서 마물들이 튀어 나올 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이, 참! 알겠다니깐요!”

오랜만의 숲 나들이에 신이 난 아드리엔은, 순찰대원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좁은 숲 속 길을 달려 나갔다.

산맥의 마물들이 잠시 소란스러워져서, 한동안은 숲에 나오지 못했다.

어린 아드리엔에게 있어서, 숲은 그야말로 흥미로운 것들의 총집합이었다. 어디로 들어가도 새로운 것들로 가득했으며, 생전 처음 보는 존재들은 어린 엘프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와아….”

이를테면, 그래. 바닥에 선명하게 찍혀있는, 이 커다란 발자국 이라던가.

“우웅…. 피갈퀴 곰인가…? 아닌데….”

한참 동안 숲을 돌아다니며 뛰어놀던 꼬마 아드리엔은, 새롭게 발견한 마물의 발자국을 보곤 눈을 빛냈다.

쪼그리고 앉아, 흔적이 새겨진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발자국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아드리엔은, 이윽고 그 발자국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발자국은 한 종류의 마물의 발자국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뿌려져 있는 발자국을 따라가던 아드리엔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어…?”

수많은 마물들의 발자국이, 평소 아드리엔이 자주 이용하던 숲 속 오솔길을 따라 이어졌기에.

아드리엔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 발자국들이 이어진 곳이라면, 이 방향으로 쭉 나아간다면….

이 방향은, 마을이 위치한 방향이었다.

아드리엔은 달렸다.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고, 나뭇가지에 긁혀 생채기가 생겼으나, 개의치 않았다.

“헤엑…. 헤엑…. 흐읏…!”

여기만 돌면, 평소대로의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 나타날 것이다.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아….”

아드리엔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매캐한 연기, 불길이 꺼진 채 잿더미가 되어버린 집들, 여기저기 흩뿌려진 새빨간 피. 피. 피.

“아…? 아아…?”

흉악한 마물들에게 유린당한 흔적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었다.

마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살아남은 이 역시, 보이지 않았다.

“어, 엄마아….”

무너져 내린 집을, 아드리엔은 멍하니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허락 없이 숲에 다녀왔는데, 오늘 아침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는데, 도대체 왜.

이제, 평소처럼 엄마에게 혼이 나면 되는 것인데. 그러면, 오늘은 평소와 다름없는 완벽한 하루가 될 텐데.

“아…. 으…. 흐으….”

어린 아드리엔의 마음속에는, 마물들을 향한 극도의 혐오감이 자리 잡게 되었다.

* * * * *

“휴우….”

아드리엔은 후드를 벗어 넘겼다.

이곳까지 오겠다고, 얼마나 험난한 여정을 거쳤던가.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나무를 보며, 아드리엔은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 시절의 그날로부터, 벌써 20년이 넘게 지났다. 그렇다고 해서, 마물들을 향한 혐오감이 사라졌다고 하면 오산이었다.

아드리엔은 오늘, 꿈에 그리던 은빛 날개 순찰대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은빛 날개 순찰대. 거대한 마물들을 사냥하기 위해 창설되었던 집단. 오래전에 해산된 집단이었으나, 최근 급격히 부상하는 마왕군의 위협으로부터 대비하기 위해, 다시금 창설되었다.

그 옛날, 아드리엔이 살던 마을에도, 은빛 날개 순찰대 출신의 순찰대원이 딱 한 명 있었더랬다.

“여기서…. 나도….”

아드리엔은 기대감에 부푼 마음을 이끌고, 세계수가 위치한 엘븐 왕국의 심장부, 정령의 도시 엘리시안에 발을 들였다.

순찰대에 지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순찰대에 들어가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다.

순찰대에 들어오게 된 순간부터가,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엘프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노화가 급속도로 더뎌진다. 정령들과 굉장히 친밀한 신체를 가진 덕택이었다.

그 덕분에, 엘프들은 젊은 육체를 오랫동안 유지한 채, 다른 여타 종족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엘프들 중 대다수는, 자신들이 살아온 세월에 취해 오만함에 빠지게 되는, 소위 꼰대라고 불리는 이들이 되는 것이었다.

살아온 시간이 길수록, 경험을 많이 쌓았다는 증거였기에.

다른 종족들 사이에서, 엘프들이 오만하고 고집 센 종족으로 불리우게 된 계기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수많은 부조리. 몇십 년을 더 살아온 윗 기수들의 갈굼. 혹독한 훈련. 잠을 자다가도 비몽사몽 한 몸을 이끌고 진흙 속에 머리를 박아야 하는 꼬이고 꼬인 문화.

‘내가, 이러려고 들어왔나…?’

아드리엔의 심성은 점점 뒤틀려갔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거대한 마물들을 물리치는 것 까지는 좋았으나, 순찰대 내부에서의 지독한 갈굼은 끊이지를 않았다.

그렇게 1년, 2년, 3년…. 마침내, 10년.

10년이면 송곳 산맥도 낮아진다고들 하던가.

“야. 이것밖에 못하냐? 어?”

“죄송합니다…!”

“하아…. 활을 더 빨리 쏴야 될 거 아니야…. 실력이 고작 이래서야, 네가 은빛 날개 순찰대의 일원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겠어?”

“죄송합니다!”

“야. 됐다. 네 위로, 내 밑으로 싹 다 모아 와. 오늘은 훈련 시간 내내 정신 개조 들어간다.”

자존심 강하고 이기적인 꼰대 아드리엔은, 마침내 그렇게 완성되었다.

* * * * *

“와….”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아니, 저…. 그게…. 그, 그때는 나도 조금…. 뭐랄까…. 젊은 날의 실수였다고 할까….”

“아니, 그…. 와….”

연신 감탄사가 나왔다. 아니, 나올 수밖에 없었다.

꼰대 아드리엔의 일대기를 들었더니, 지금 내 앞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아드리엔이 조금 다르게 보이려 하고 있었다.

“꼰대…. 꼰대라….”

확실히, 아드리엔이 유독 까칠하고, 별것도 아닌 일에 트집을 잡는 것에 능통하긴 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미 예전부터 착실히 꼰대로서 교정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근데…. 그게 몇 년 전이라고? 10년 전?”

“10년도 더 됐지…. 용사 파티에 들어온 지도 벌써 4년 째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아드리엔이 과거의 추억에 젖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내가 물어보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20년 전…. 어린 아드리엔, 그러니까…. 꼬마 시절의 아드리엔이라고 생각하면, 대충 10살 전후….

거기서 20년…. 그리고, 은빛 날개 순찰대에서 10년….

10 더하기 20…. 10…. 용사 파티에서 4년째….

…어?

내 몸이 두려움에 휩싸였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예쁘장한 엘프 여성이, 최소 우리 엄마랑 동갑이라는, 그런….

너무나도 두려워진 나는, 결국 참을 수 없어졌다.

“야, 아드리엔.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그러면 네 나이가 지금….”

“…어?”

내가 나이를 물어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연도까지 상세히 말한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것인지, 아드리엔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우리 엄마랑 동….”

“지금. 그게. 중요할까?”

“…….”

“응? 오스틴. 지금 그게 중요한 거야? 응?”

“중요하지 않을….”

“응? 뭐라구?”

“…별로 중요하진 않지. 응. 아~. 이야기나 계속 들어볼까나?”

방금, 죽을 뻔했다.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듯 꿈틀거리는 아드리엔의 손가락이, 내 목을 틀어 쥐기에 적당한 크기였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크흠…. 어쨌든, 네 과거는 잘 들었어.”

“…미안해. 별로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지.”

아드리엔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아냐. 아냐. 나는 오히려 아드리엔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된 것 같아서, 꽤 좋았어.”

“응…. 고마워….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도, 끝까지 들어줘서….”

마물들에게 부모님도 잃고, 주변 환경 때문에 꼰대가 되어 버렸다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드리엔을 가볍게 포옹해 주었다. 마음의 상처에는 따스한 포옹 만한 게 없지.

“힘들었겠구나. 아드리엔.”

“어, 으, 응?! 무, 뭐, 뭐 하는….”

“싫으면 말고.”

“이 바보야…. 싫지는 않아….”

그렇게 서로 가볍게 안아 주고 있자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꼰대가 된 이유는 알겠는데, 파티에 있을 때 내게 차갑게 대한 것과는 별로 연관성이 없지 않아?”

아드리엔이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내 눈을 피하며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저러지. 저러니까 더 알고 싶어졌다.

“아니, 왜. 들어봐? 네가 꼰대 짓을 한 이유는 잘 알겠는데, 그래서 나한테 왜 그렇게 차갑게 굴었던 건데? 이건 꼰대가 된 것과는 별개의 문제 아니야?”

“그, 그건….”

“…응?”

“이잇…! 나, 나도 몰라! 이야기 다 끝났으면, 슬슬 나가!”

“어, 어…?”

* * * * *

아드리엔은 오스틴을 억지로 방에서 내쫓은 뒤, 방금 전까지 오스틴과 체온을 나누었던 식탁 앞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한테 왜 그렇게 차갑게 굴었던 건데? 이건 꼰대가 된 것과는 별개의 문제 아니야?’

상대적으로 단명종인 인간들은 엘프보다 빨리 죽기 때문에, 점점 정이 붙는 오스틴을 멀리 했다는 것을. 그런 부끄러운 사실을.

“그걸 어떻게 말하냐구….”

파티에서 상냥하게 대해 주었던 오스틴이, 점점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더 멀리하기 위해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아드리엔은, 아직 말할 수 없었다.

한동안 의자에 앉아 끙끙대던 아드리엔은,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 맞다.”

오스틴이 말 한, 용사 파티에 복귀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 몰라…. 나중에 들어야겠다….”

너무 섣불리 오스틴을 내쫓았다고 자책하며, 시무룩해진 아드리엔은 침대에 몸을 풀썩 날렸다.

“아직은 말 못 하지만…. 그렇지만….”

하지만, 언젠가는.

오스틴에게 당당히 말할 날이 오리라.

상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엘프는, 그리 믿고 싶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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