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의 척후 담당이었다-99화 (99/106)

〈 99화 〉 98. 땅 구매는 신중히

* * *

“하나… 둘… 서이… 너이….”

다섯… 여섯….

“금화 330닢…. 하아….”

여관 바닥에 앉아 돈을 세던 나는, 바닥에 늘여 놓았던 금화들을 다시금 주머니에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 아낀다고 아꼈는데, 생각보다 빠져나간 돈이 많았다.

내가 잘못 세었나, 싶기도 하면서도….

“…쯧.”

빠짐없이 돈을 담은 주머니를 꽉 동여 매고, 탁자에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거의 금화 4~50닢은 쓴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사치스럽게 여행한 것 같지는 않다.

“씁…. 돈이 떨어지면 안 되는데….”

돈이 떨어지게 되면, 이 엄청난 숙박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진다. 미스릴 등급 의뢰를 한다고 해도, 그런 의뢰가 어디 널려있는 것도 아니고. 아카데미에서 임시 교사로 들어가서 버는 돈으로도 조금 힘들 것이다.

물론, 어디에서 이렇게나 많이 빠져나갔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식비로는 얼마 나가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고급진 입맛도 아닐뿐더러, 알렉시스 공녀 역시 뭐든 맛있다고 하는 편이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방 안을 쭉 훑어보았다.

마야와 로빈이 서로 꼭 붙어 자고 있는 침대를 지나치고, 로이먼이 플레일을 손보던 탁자를 지나쳐, 다시 금화가 담긴 주머니로.

“…방이 좋긴 했지?”

거진 한 달 만에 금화 50닢이 빠져나가게 한 주범은, 다름 아닌 숙박비였다.

매번 고급 여관만 찾아서 방을 잡으니, 돈이 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심지어, 이전에 머물렀던 상업 도시 하르만은 관광업이 발달해 있다 보니, 방 값이 거의 두배 가까이 비쌌고.

그래도, 후회는 되지 않는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하루를 보낸 뒤 고된 몸을 누이는 잠자리만큼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걸 이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 머물고 있는 이 여관만 하더라도, 하루 숙박비가 은화 70닢이 넘는 실정이다.

“끄응….”

아카데미 건은 해결했다고 하나, 조만간 알렉시스 공녀와 헤어져야 하는 것은 피하지 못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재정적인 문제에, 와일러도 만나야 하고, 로웰에게 의뢰받은 일도 생각해 봐야 하며, 곧 몬타가 있는 전선으로 떠나야 하는 용사 파티도 배웅해 줘야 한다.

용사 파티와 용사를 보조하는 파티로 나뉘게 된 우리는, 우선 각자의 일을 하기로 했다.

용사 파티는 당장 상황이 급박한 전선으로 가서 몬타를 상대하기로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왕국 내부에 숨어든 애쉬와 우르간을 찾아내기로 합의를 본 것이었다.

“후…. 생각할 게 많네.”

모그단에게 받은 검도, 모그단의 스승님께 보여 드리기로 약속했는데….

“염병. 이름이라도 알려 줘야 찾든 말든 할거 아니야.”

정작 그 스승이라는 작자의 이름을 모르니, 손가락이나 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편지라도 부쳐야 하나.

“…우선,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해결 하자.”

그리 결정했으니,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마야와 로빈에게 다가갔다.

쥐새끼를 만나야 할 시간이다.

* * * * *

“스읍… 하아…. 그래서, 나를 찾아오셨다?”

“그… 렇지?”

“흐응…. 좋은 집이라….”

“요즘 벌이는 어때? 아직도 시원찮아?”

“킁킁…. 아니. 요즘은 또 괜찮아졌어.”

로웰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여태까지 코를 박고 있던 편지 봉투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저걸 여태 물고 빨고 있었다니, 대체 베키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그렇게 로웰을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로빈과 함께 하수도를 둘러보던 마야가 로웰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스틴. 여긴 대체…. 응…?”

“…히끅.”

로웰과 마야의 눈이 마주친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뭐야? 아는 사이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뭔가… 탐나게 생겨서….”

“…뭐?”

이건 또 뭔 소리야. 싶은 표정으로 마야를 올려다보니, 마야의 눈이 노란색으로 흉악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

고양이와 쥐.

로웰을 돌아보니, 로웰은 이미 의자 뒤에 몸을 숨긴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건….

“…로웰. 괜찮으니까 나와. 마야는 그런 애 아니야.”

“거, 거짓말…. 내가 어릴 때, 고양이 수인들한테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데…!”

그건 네가 가지고 놀고 싶게 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

가까스로 둘을 진정시키자, 다들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로빈. 네가 마야 좀 잘 보고 있어 줘.”

“고양이와 쥐라니…. 선배님도 참, 배려심이 없으시네요.”

빈정거리는 로빈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뒤, 다시금 로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야가 가만히 있으니, 로웰 역시 조금은 안심한 낯빛이었다.

“으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까?”

“후우…. 마, 말해봐….”

“숙박비가 계속 빠져나가니까, 주머니 사정이 조금 걱정돼서 말이야. 오래 머물 거면, 적당한 집이라도 하나 구해 놓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휴우…. 그래서, 괜찮은 집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정확해.”

“혹시나 해서 묻겠지만, 자금이 어느 정도 있어?”

“금화 3백 닢 정도? 수도에서 집을 사기에 넉넉한 돈은 아니지만… 우리가 뭐 대저택을 원하고 그런 건 아니거든.”

“으음…. 금화 3백 닢이면….”

마야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낮은 신음을 흘리던 로웰이, 책상 밑의 서랍을 열어 종이 몇 장을 꺼내었다.

“운이 좋았네. 마침, 최근에 괜찮은 곳이 한 곳 들어왔거든.”

“오오. 역시, 널 찾아오길 잘했네.”

“흐흥…. 그렇지? 자, 여기….”

로웰이 의기양양하게 건네어 주는 종이들을 받아 들었다. 토지 매매 증서, 건물 매매 증서….

특이한 점은, 두 증서 모두 어느 한 귀족 가문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는 것이다.

“…인장이 찍혀 있네? 귀족 가문에서 판 곳이야?”

“보어만 공작가라고, 이번에 수도로 올라 온 귀족인데…. 베키에게 투자할 일이 생겨서, 당장 목돈이 필요한 모양이더라고. 마침 보어만 공작에게 수도에 놀고 있던 땅과 건물이 몇 군데 있어서, 나한테 헐값에 팔아넘긴 거야.”

“보어만 공작가라면… 하르만의 영주?”

“응. 아마 그랬을걸?”

어쩐지, 그때 영주가 수도로 올라갔다고 하더라니.

그것보다도, 나는 로웰의 인맥이 놀라웠다. 로웰이 인맥도 많다고 베키에게 듣기야 했지만…. 설마 공작가와 연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래. 어떤 집인데? 괜찮아?”

“대충 2층 정도 되는 작은 저택인데…. 보어만 공작가의 선대 가주가 별장으로 샀던 모양이더라고. 뭐, 왜인지는 몰라도 사놓고 관리만 해 왔지만.”

“…오호.”

“큰 방이 4개 있고, 별도로 작은 방이 4개 정도 있어. 욕실은 커다란 욕탕이 한 군데 있고… 큰 방은 방마다 개별 욕실이 있는 모양이야.”

“…좋은데? 가격은?”

“가격은 딱 금화 3백 닢인데…. 너희들은 베키의 친구들이니까, 특별히 10닢 정도 깎아줄게.”

“오….”

로웰의 말만 들어보면, 우리 파티를 모두 수용하기에 딱 적당해 보이는 집이다.

“너희들은 어때? 괜찮아 보여?”

“말로만 들어 보면 괜찮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직접 가서 한 번 둘러봐야 하지 않을까요?”

“로빈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역시 그런가.”

거금이 오고가는 만큼, 확실히 해야겠지.

나와 로빈, 마야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로웰이 서랍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어 들곤, 앞장서서 방을 나섰다.

“자, 다들 따라오라구. 내가 특별히 안내해 줄게!”

“…흠.”

괜히 또 이상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로웰을 따라나섰다.

* * * * *

“어디 보자…. 거의 다 왔어!”

로웰을 따라 걷다 보니, 메텔하임의 중앙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외곽의 거주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

근처는 나름대로 고급진 저택들이 들어선 곳이었는데, 용케도 이런 곳에 있는 집을 싼 값에 매입했구나 싶었다.

그렇게 감탄하며 로웰을 따라 걷고 있으니, 내 옆에서 나란히 걷던 로빈이 내게 속삭여왔다.

“선배님. 이거 사기 아닐까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저택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 고작 3백 닢에 판다는 게 말이 안 돼요!”

“나도 조금 의심돼…. 저 여자가 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심지어 깎아 주기까지 했잖아…?”

마야까지 합세해서 그리 말하니, 나로서도 조금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누가 죽기라도 한 걸까요? 아니면, 불이 났던 집이라던가?”

“로빈. 재수 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불이 났던 집이 뭐냐. 재수 없게.

그렇게 로웰의 뒤를 따라 5분 정도를 걸으니, 어느 한 저택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었다.

“여기야!”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로웰이 의기양양하게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음?”

이거, 생각보다….

“이렇게 보니까, 또 생각보다 괜찮네요?”

“그… 러게…?”

저택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니,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좋아 보였다.

저택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작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애초에 이보다 더 큰 집을 사도, 우리에게는 별 쓸모도 없다.

적당한 크기, 마차를 댈 수 있는 마구간, 적당히 꽃 따위를 기를 수 있어 보이는 정원, 적당히 고급스러운 외관, 적당히 가까운 공방 거리.

…엄청 좋은데?

“…로웰. 내부도 조금 볼 수 있을까?”

“응. 물론이지! 잠시만 기다려….”

로웰이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고, 우리는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 내부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그러게. 관리를 꾸준히 했다고 했나?”

내부는 로웰이 말 한 그대로였다. 4개의 큰 방에, 또 작은 빈 방이 4개. 큰 방에는 각기 욕실이 딸려 있었고, 그 외에 식당, 욕탕, 창고, 업무실 같은 방들도 있었다.

따뜻한 물도 잘 나왔고, 심지어 침대를 비롯한 가구들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가구들은 로웰의 말대로 관리가 잘 되었는지, 새것처럼 보이기만 했다.

이 정도면….

“아니, 이 정도 되는 매물이 고작 3백 닢이라고?”

“맞아. 내가 생각해도 너무 거저 주는 거긴 한데…. 뭐, 애초에 3백 닢에 팔아도 마진이 많이 남으니까….”

“…진짜 누구 자살했던 곳 아니야? 불이라도 났다거나?”

“아, 아니거든!”

로웰이 빽 소리를 지르는 것을 달랜 뒤, 우리는 저택 바깥으로 나왔다.

“그래서, 매입할 거야?”

“음….”

집을 구하는 데 자금을 사용하는 것은, 이미 파티원들 모두에게 동의를 구했으니 상관은 없겠는데….

이걸 쓰면 남는 돈이 금화 40닢 정도.

…아카데미 임시 교사로 들어가면, 아마 봉급으로 식비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겸사겸사, 용사 파티와 함께 현상금도 나눠 가지면….

“좋아. 살게.”

내가 돈이 담긴 주머니를 건네자, 로웰이 잽싸게 낚아채며 히죽히죽 웃었다.

“고마워! 열쇠는 여기 있고, 증서는 여기! 증서 뒤에 마력 회로가 보일 테니까, 거기에 마력을….”

시발. 나 마력 없는데?

“…저기, 난 마력이 없는데?”

“아…. 걱정 마! 마력이 없으면, 근처에 있는 부동산 길드에 가서 증서를 제출하면 될 거야!”

“그럼, 이걸로… 끝?”

내가 조심스레 묻자, 허겁지겁 품 속에 돈 주머니를 쑤셔 넣던 로웰이 활짝 웃어 보였다.

“응! 이걸로 끝! 이제 네 집이야! 돈은 금화 290닢, 정확하지?”

“한 번 세어 보던가. 290닢, 정확히 담았어.”

“아냐! 네가 날 속였을 리는 없을 테고…. 그럼, 난 먼저 갈게!”

“어, 어… 그래…! 잘 가라!”

어쩐지 로웰이 다급해 보이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나저나….”

나는 눈앞에 있는 저택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들었다.

“수도에 집을 장만하다니….”

나도 나름 성공했구나. 싶었다.

툭툭.

그렇게 감상에 젖어 있자니, 별안간 누군가 내 등 뒤를 톡톡 두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왜, 로빈.”

툭툭.

…왜 말이 없어?

“로빈. 나 지금 집 감상하고 있잖아. 가만히 있어.”

“혹시….”

“…응?”

누구지? 로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낯익은 얼굴의 여자가, 내 등을 손가락으로 꾹 찌른 상태로, 내 얼굴을 보고 굳어 있었다.

…누구더라?

로빈을 힐끔 바라보니,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와 정체불명의 여자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역시, 오스틴이구나?”

“저기, 미안한데…. 너 누구더라…?”

“…뭐?”

잠시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어젖혔다.

“푸하하하!!! 누구냐고…? 푸흡…. 푸하하하하!!!”

…이 웃음소리.

“…어?”

시발. 아니, 왜 여기에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한참 웃어 젖히던 그녀가 웃음을 뚝 그치곤,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왜. 이제 좀 알겠냐? 아, 로빈. 안녕? 내가 인사를 못했네.”

로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나와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 으… 어…?”

“야. 이 개새끼야. 아니, 전 리더.”

내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먼저 만나야만 했던 사람.

“씨발, 때깔 좋아 보인다? 죽여 버리고 싶게.”

흉악하게 웃어 보인 와일러가, 내 명치 부근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팀원을 그렇게 죽여놓고, 어떻게 잘 살았나 봐?”

“아니, 그… 어…. 저기…. 네가 왜, 여기에…?”

“…응? 너희 방금 이 집 산 거 아니었어?”

“마, 맞는데…. 응…?”

아니, 설마.

내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바라보자, 와일러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 여기 옆집 살거든. 반갑다? 이제 이웃이네?”

이 씨발아.

내게 욕지거리를 속삭이는 와일러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시발. 조금 더 둘러보고 사는 거였는데.

‘조, 좆됐….’

좆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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