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바람꽃(2)
* * *
인, 간… 죽, 일거야….
그녀는 난데없는 살인통보를 마치고, 까무룩 기절해버렸다.
아무래도 그게 그녀의 마지막 힘이었던 것 같다.
"아!"
순간, 숨이 멎은 줄 알고 급히 다가갔다.
입가에 손을 대었더니,다행히도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시발."
가까이 다가가서 마주한 그녀의 모습은 가히 처참했다.
오늘따라 유달리 밝은 달빛이 나무에 매달린 그녀를 적나라하게 비추었다.
원래 같았으면 그녀의 이질적인 귀나 꼬리에 눈이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질감보다 작은 몸을 제멋대로 할퀴고 간 검붉은 선에 시선이 쏠렸다.
전신에서 핏방울이 맺히는 모습이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져서 악몽을 꾸는 듯했다.
그런 상처투성이인 몸에 반해 얼굴만은 멀쩡했다.
그만큼 악랄한 취향이 엿보인 것 같아서 기분이 심히 더러워졌다.
"……."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 좆같음을 표현할 방도가 많지 않다.
"내려 놓으마."
뇌정지가 온 나에 비해 레베카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수인족의 아이를 받치고서 그녀를 속박한 줄을 끊었다.
틱.
레베카는 강제로 붙들려있던 그녀가 힘없이 추락하는 것을 안아들었다.
"…차갑구나."
레베카는 미간을 찌푸리며 천을 꺼내어 그녀의 몸을 감쌌다.
상처입은 몸이 가려지자, 겉보기에는 곤히 잠든 것처럼 보였다.
'데이지보다 조금 큰 정도.'
레베카에게 안겨있는 몸집은 결코 성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이종족이라 확실하지 않았으나, 앳되보이는 얼굴은 분명 어린아이의 것이었다.
'…이딴 개짓거리를….'
으으….
나는 끙끙 앓는 소리에 고개를 젖혔다.
대가리가 깨진 놈은 살아있는지 괴로운 신음을 내고 있었다.
'저 새끼가….'
빼박 현행범인 놈을 걷어차주고 싶었지만… 레베카가 나를 말렸다.
그녀는 충동적으로 사람을 들이박을 때와 달리 비교적 차분해보였다.
"그럴 때가 아니다. 자리를 피하자꾸나. 누군가 오고 있어."
아직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레베카의 말대로라면 소란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나보다.
어쩌면 저 남자의 일행일지도 모른다.
애당초 저 비계덩어리가 여아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기묘한 일이다.
'재수가 없으려니….'
기껏 사람들을 피해서 인적 드문 숲에 야영지를 꾸려놨으나.
그럼에도 성가신 일에 휘말리고 말았다.
"어휴."
나는 수인족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는 레베카의 모습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성격이나 행동으로 봐서 아이를 두고 간다는 선택은 없을 것이다.
거기에 나도 동참하는 일이었고.
처음부터 모른 척했다면 모를까….
제 발로 찾아와 엮여버린 이상 스스로 매듭을 지어야했다.
그러나, 이대로 아이만 데리고 가자니 후환이 걸렸다.
저 찜찜한 놈을 두고 가는 것은, 분명 웹소설 전개상 고구마가 되어 돌아올 것 같았다.
'그건 안 돼. 어림도 없지.'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결심을 굳히고 레베카에게 말했다.
"네, 데리고 가죠. 대신에ㅡ"
내가 내민 조건에 레베카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고양이 줍는 것도 아니고… 2명 째인가.'
나는 아득한 기분으로사건 현장에서 데려온 아이를 본다.
그녀는 붕대와 약초에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제대로 했나 모르겠네.'
군대에서 배웠던 야매로 조치한 덕분에 그녀는 미이라가 되어 있었다.
나는 녹초가 되어 내가 만든 미이라를 관찰했다.
칭칭 둘러멘 붕대 속에 얼굴만 빼곰 내민 아이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녀의 푸른빛 섞인 회색머리카락은 푸석하고 거칠어 보인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어린애치고 날카롭고 예민해보였다. 잠들어 있음에도 찌푸린 콧잔등과 꾹 다문 입술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그 찡그린 얼굴조차도 작은 몸에 가득하게 새겨진 상처 때문이겠지만.
'고양이는 아니고… 개과인가?'
내가 진이 쭉 빠져서 멍하니 있을 때, 레베카가 말했다.
"북쪽의 아이라 강인해서 망정이구나. 완치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생명의 지장은 없는 것 같구나."
"아… 그건 다행이네요오…."
내 독단적인 판단으로 치료한 것이라서 천만다행인 소식이었다.
처음에치료를 돕겠다고 레베카가 나섰지만.
그녀는 입을 터는 것에 비해서 손재주가 형편 없었다.
'진짜 전쟁 같았다, 우리….'
나는 한시름을 놓으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료하는 일은 생각보다 부담되는 일이었다.
피로함에 미이라 꼴이 된 수인족 아이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째 마법도 만능이 아니네요…."
나는 정신적 피로감에 투덜거렸다.
레베카는 고생했다는 듯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쓴웃음을 짓는다.
"물론이다. 고치는 건 엄연히 여신의 영역이지."
유감스럽게도, 레베카의 말처럼 마법은 만능이 아니었다.
마법으로 치료를 도울 수 있을 지 몰라도, 사람을 낫게하는 일만은 할 수 없었다.
그건 초월적인 드래곤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력과 신성력이라… 생각보다 까다로운 설정이야.'
원작의 설정 때문인지 치유는 오직 신성력으로만 가능했다.
그 말은 즉,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이 세계에선 여신의 은총만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란 소리였다.
'거참… 생각할수록 종교인이 타락하기 딱 좋은 설정이야.'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도 암울한 세계관이었다….
재수가 없으면 감기만으로도 죽을 수 있을 정도다.
대한민국의 의료혜택이 무척 그리워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 곁에 그저 빛이자 여신님인 존재가 따로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좋은 약이니 흉도 남지 않을게다."
막막함에 한숨을 푹 쉬는 나를 보며, 레베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누가 레베에몽은 아니랄까봐….
없는 게 없던 레베카는 상처에 잘 듣는 약초나 상비약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오래 산 만큼 이것저것 쟁여둔 게 많은 모양이다.
'마망, 당신은 도덕책….'
세월을 허투로 먹지 않은 레베카의 준비성 덕분에 한 고비를 넘겼다.
문득 안심이 되자, 피로감과 함께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애써 졸음을 참으며 레베카에게 물어봤다.
앞으로 이 수인족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어쨌든 레베카가 충동적으로 행동해서 데려온 아이였다.
나는 우선적으로 그녀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일단 아이가 깨어나기를 기다려야겠다. 사정을 물어보고. 가족이 있다면 곁으로 돌려 보내야지."
나지막하게 말하는 레베카에게 일단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걸리는 게 있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그 근심거리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 사실은 레베카가 나보다 더 뼈저리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휴, 착해 빠졌기는.'
수인족 아이를 바라보는 레베카의 얼굴은 고뇌가 섞여있었다.
나는 레베카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 또한 그 아이를 보며 상념이 떠올랐다.
'북부출신 강아지 귀라….'
뭔가 공교롭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찾고 있는 사람과 유사한 종족으로 보였다.
성별도, 머리색은 확연히 다르지만.
'어쩌면 같은 출신일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그녀를 구한 게 단순한 우연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밤이 너무 깊었다.
하고싶은 말도, 의논할 말도 많았지만 나는 너무 피곤했다.
수인족 아이에게도,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먼저 들어가서 자거라. 아이는 내가 지켜보고 있으마."
레베카는 언제나 내게 잠을 권했다.
그녀는 노인처럼 잠이 없는 모양인지 항상 마지막에 자고, 일찍 먼저 일어난다.
나는 무척 피곤했던 만큼 레베카의 호의를 거절할 입장이 아니었다.
"고마워요… 레베카, 고생이 많아요."
"무얼. 그대야말로 나 때문에 고생이다. 푹 쉬어라."
나는 레베카의 배웅을 받으며, 내가 잠들 곳으로 향했다.
도중에 여러가지 고민으로 골치가 아팠지만,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또 이렇게 자네.'
막사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형체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모포 속에 태아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떨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올리고, 잔뜩 움츠린 자세는 무척 불편해보였다.
'…불안증세인가.'
얼마 전, 새벽에 깨서 화장실을 갔다가 왔을 때 알아차렸다.
데이지는 밤에 혼자 두면 버릇처럼 새우잠을 자곤 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일종의 방어기제인지….
아무튼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안타까운 데이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잠깐 잊으려고 했던 수인족 아이가 떠올랐다.
방금 전의 검붉은 구불거림이 떠올랐다. 데이지보다 심했던 그 험한 모습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시발."
새삼스럽게 애들에게 가혹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쳐 죽을 새끼들이 너무 많다.
…인간쓰레기 같은 씹새끼들, 좆같은 아동성애자, 가학증 걸린 돼지들… 전부 대가리를 쪼개ㅡ
"피, 터어……."
내 중얼거림에 들었는지 데이지가 웅얼거렸다. 역시 이런 살벌한 생각은 애 앞에서 할 게 못된다.
나는 생각을 지우고, 나를 찾는 목소리를 따라서 옆에 몸을 뉘었다.
"똑바로 안 자면 키 안 큰다니까."
나는 속삭이며 불편해보이는 그녀의 다리를 펴주고 바로 눕힌다.
말을 잘 듣는 데이지는 비몽사몽한 채로도 고집부리지 않고 내 손길을 따랐다.
편안하게 대자로 뻗은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이제 나도 한숨 자볼까.
"…가지마…."
돌아누으려니, 데이지가 내 옷자락을 붙잡으며 잠꼬대를 한다.
붙잡혀 버렸지만 떼어내려면 떼낼 수 있는 약한 힘이었다.
"안가요."
괜히 떼어놓기도 뭐해서 그대로 누웠다.
조금 불편했지만 익숙한 느낌으로 내 자리를 찾는다.
"여기 이써…."
데이지는 온기를 찾아서 자꾸만 꾸물거렸다.
부쩍 익숙해진 아이의 어리광에 등을 토닥여주었다.
"있다니까."
"……."
아이는 그 토닥거림에 맞춰서, 조용히 호흡했다.
나는 조용하고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작은 체온과 숨소리는 어딘가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15… 아니… 중학생되면… 혼자서 자…….'
점점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나는 어느 아이가 혼자서 편하게 잠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언젠가 혼자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