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를 유괴하다!-21화 (21/117)

〈 21화 〉 중간자리(3)­일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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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양이의 문제입니다….

작성자:Pt조아 채택률71% 마감률85%

저희 집에 생후 10년(추정)되는 힘 쌔고 귀여운 아깽이가 있어요.

밖에 있던 걸 냉큼 주워온 뒤로 저만 졸졸 따라다니던 애기입니다.

평소에는 밥도 잘 먹고, 말도 잘 듣고, 체조도 열심히 하는 착한 아이인데요…

어느날…

제가 새로 데려온 강아지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얘가 슬픈 표정으로 굳어버렸습니다.

…그 뒤로는 놀아주려고 해도 반응이 없어요.

예전에 안고 쓰다듬어 주면 좋아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얘가 하악질을 하네요ㅠㅜ

이런 적 없어서 너무 당황스럽습니다.

지식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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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인지.

3년 전 쯤에, 지식인에 올렸던 사연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 먼저 키우고 있던 개냥이가 새로 데려온 누렁이를 봤을 때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었는데….

"…흑."

어디선가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가 조금 난감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나무 뒤에 숨어서 눈만 빼꼼 내밀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자수정에 경계심과 배신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다 보이는데….'

조금 안쓰러웠지만, 솔직히 말해서… 자기 딴에 숨어 있겠다고, 숨은 모습이 훤히 보여서 우스운 마음이 더 컸다.

어린애의 허접한 숨박꼭질을 감상하는 게 유쾌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대로 둘 수는 없지.

나는 강아지를 내려주고, 숨어있는 고양이에게 손짓했다.

"이리온."

"……."

얼씨구?

내 손짓에도 데이지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소심한 몸짓이었지만… 그 몸짓에선 반항하는 티가 풀풀 났다.

어지간히 마음이 상한 모양이다.

"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데이지에게 거부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나는 데이지가 울기도 하고, 삐지기도 한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언젠가 사라져 버릴 것처럼 옅다고 생각한 그녀의 색채가 점점 짙어지는 것 같았다.

역시 감정이란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이다.

한 때 무감정했던 살인병기가 이토록 인간적이지 않은가.

새삼 그 사실이 와닿아서 감개무량했다.

'거기에. 이 정도 질투는 귀엽지.'

나는 나를 의지해주는 아이 덕분에 내 가치를 확인 받은 기분이었다.

그런 만큼, 아직 어린애의 서툰 투정은 이해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언젠가 그녀가 어른이 된다면… 이처럼 나를 의지할 일도 없어질테니깐.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 쓸모를 다하고자 양팔을 벌리기로 했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피식 웃었다.

"이리와. 올 때까지 숨 참을 거야."

"……!"

데이지는 화들짝 놀라며 이를 앙다물었다.

긴가민가한 듯 굴러가는 눈알이 고민스러워 보였다.

"흡, 흐읍!"

나는 진심으로 숨이 막힌 듯 가슴을 퉁퉁 두드렸다.

삐진 꼬맹이 하나를 속이기 위해서 진짜로 숨을 참고 있었다.

"피터…! 하지마, 그만. 떽!"

"우브븝."

작달만한 다리로 뛰어온 아이가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서 나를 질책했다.

데이지는 고사리 같은 손바닥으로 내 볼을 푹 감쌌다.

나는 함정인 줄도 모르고 순진하게 다가온 꼬꼬마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요놈, 잡았다!"

이윽고 괘씸한 꼬꼬마에게 지옥의 PT(Piter's tickle)코스를 선사해 주기로 했다.

지옥에서 단련한 마왕의 손가락에 의해서 데이지는 고통에 찬 비명을 터트렸다.

"꺄하하하핫!"

아무리 꼬맹이가 힘이 강해봤자 어린애인 이상, 이 손가락에는 못 당한다.

나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깔깔 웃다가 지친 데이지에게 마지막 자비를 주기로 했다.

"크하하! 항복해라! 어리석은 용사여."

"하, 항…!"

"응, 어림 없지."

"아, 안, 돼… 꺄핫!"

그래도 쉽게 봐줄 수 없었다.

진정한 악은 용사를 철저하게 굴복시키는 법이다.

메소드 연기 중인 나와, 내게 괴롭힘 당하는 데이지.

그런 우리 둘을 보며, 방치되어있던 바람꽃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누가 애야."

"그러게 말이구나…."

레베카가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부러운 듯이 엄지를 물고 있었다.

응애. 나 아기 피터.

뭐, 어른도 가끔씩 유치하게 놀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

마왕이 용사를 괴롭히는 사이에,

오지랖 넓은 드래곤과 북부에서 온 어린늑대는 대화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레베카는 답답하다는 듯이 넘쳐나는 모성을 콩콩 두드리며 말했다.

"정말 집으로 가고 싶지 않니? 사양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레베카는 자신의 유능함과 모성을 바람꽃에게 재차 어필한다.

번뜩이는 홍옥이 그녀가 진심이라는 것을 그대로 비추었다.

그러나, 바람꽃은 그런 드래곤이 부담스러운 듯이 눈을 피하며 말했다.

"괜찮아… 요. 그, 나도 은혜를 갚고 싶어, 요. 데려가 주세요."

바람꽃은 존댓말이 익숙하지 않아 보였지만, 레베카에게 반말할 용기가 없는 듯 했다.

반면에, 레베카는 아이의 어색하면서도 기특한 말에 입을 틀어 막았다.

"…장해."

"읍…."

레베카는 못 견디겠다는 듯이 바람꽃을 꼭 끌어안고 연신 쓰다듬었다.

겁 먹은 바람꽃은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인다.

'저런.'

나는 까칠한 용사에게 시달린 드래곤의 모습이 무척 애잔해 보였다.

동시에, 그런 레베카의 회복제가 되어버린 강아지도 짠해 보였고….

"흠."

어느 정도 마음의 상처를 달랜 레베카는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뭔가를 짐작하고 있는 눈치였다.

나도 그녀에게 할 말이 있어서 다가가려고 했다.

그 때.

"안돼…!"

갑자기 데이지가 나서서 내 앞길을 막아섰다.

내 허리에 간신히 닿는 꼬마는 통통한 팔을 쭉 펼쳤다.

'넌 못 지나간다?'

나는 난데없는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비장미가 느껴지는 데에지의 등이었기에, 이게 뭔가 싶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레베카에게 물었다.

'이게 뭐예용? 얘가 왜 이런데?'

'…설명하자면 길구나.'

레베카는 난감하다는 듯이 내게서 눈을 돌렸다.

아무래도 이 허술한 드래곤이 얘한테 실수라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해답을 찾고자, 내 앞을 막아선 작은 머리통을 똑똑 두드렸다.

"데이지? 이러면 못 가요."

그러나. 데이지는 나를 보지도 않고, 경계하는 자세를 유지하며 대꾸했다.

"가면 안돼… 잡아 먹혀."

…이건 또 무슨 의미래?

나는 진동벨처럼 떨고 있는 데이지와, 심히 억울한 표정의 레베카를 번갈아 보았다.

조금 피곤해져서, 쓴웃음과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아주 잠깐 집을 비웠을 뿐인데… 집안이 개판이다.

**

파란만장한 4일 째를 마치고, 5일 째가 되던 날.

언제까지 야영을 할 수 없었기에, 오늘부로 성벽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수도로 잠입하기 전, 우리는 꽃단장을 했다.

나는 그 때처럼 검은 연미복을 입었고, 데이지는 하얀색 원피스와 붉은 가발을 쓴 상태였다.

한편, 바람꽃은 수인이었기에,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나처럼 시종으로 변장해야했다.

"이걸로 갈아 입으렴."

온갖 옷을 가지고 있던 레베카는, 어째서인지 아동용 메이드복도 가지고 있었다.

어쩐지 수상쩍은 레베카의 하녀복이었지만, 바람꽃에게 잘 어울리긴 했다.

'오, 이건… 귀하군요.'

현실에서 메이드복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거기에, 동물귀라니…!

나는 왠지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어서, 바람꽃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브라보…."

"후후. 보람이 있구나."

레베카도 자신의 코디가 마음에 드는 것처럼 나긋하게 웃었다.

"씨, 이상한데…."

바람꽃은 자신의 복장이 어색한 건지 우물쭈물거렸다.

데이지는 그런 바람꽃과 박수치는 나를 번갈아 보다가, 내 옷자락을 당기며 말했다.

"피터, 나도 저거 입으면 안돼?"

굳이?

번거롭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약간 귀찮아진 내가 생각하는 사이에, 수상쩍은 취미를 가진 드래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안될 게 뭐가 있니!"

결국 레베카는 혼자서 시종 3명을 끌고 다니게 되었다.

**

5일 전의 까마득한 행렬은 없었다.

이번에는 해가 지기 전에 도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레베카가 호언장담한 황금패 때문인지, 별 다른 사건 없이 입장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뵈어서 영광입니다, 영애! 부디 살펴가십시오!)

너무 깍뜻한 경비병의 태도가 조금 신경쓰였지만…

뭐, 어쨌든 드디어 수도에 도착했다.

설렘과 불안을 안고 보게된 중세배경의 도시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무척 깨끗했다.

의외로 하수도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도시 주변에 오물이나 악취 같은 비위생적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중세 유럽이란 무척 비위생적인 이미지였기에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의외로 깨끗하네."

"깨끗해!"

나는 회색돌이 깔린 정갈한 도로와 네모 반듯하게 정비되어 있는 목조건물들을 보며 감탄했다.

건물은 정면이 세모였고, 붉은 계열의 벽돌로 지풍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언젠가 보았던 유럽의 어디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단 한번도 유럽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이 세계에서 관광하는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무거운 현실을 잠깐 잊고, 데이지의 손을 잡고, 시골 촌놈처럼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데이지, 분수예요! 물이 나와!"

"분쑤!"

반면에, 레베카는 우리와 멀찍이 떨어져서 걷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행이 아닌 척하기'를 시전하는 모양이었다.

바람꽃은 주변에 인간들이 많아서 그런지 레베카의 곁에 얌전히 붙어있는 눈치였다.

레베카는 한참동안 싸돌아다니는 나와 데이지를 보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기어코 그녀는 우리 목덜미를 붙잡으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언제까지 돌아다닐 거니? 정신 사나우니 얌전히 좀 있거라…."

도시에 갓 상경한 시골 소년소녀의 천진난만함은 드래곤도 버티기 힘든 수치플이었나보다.

…내가 생각해도 철이 없었다고 반성하며, 동심으로 돌아간 사고를 전환했다.

나는 이제와서 뻔뻔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데헷… 그럼 숙소부터 잡을까요?"

원래 여행의 기본 수칙은 잠자리부터 마련하는 것이다.

레베카는 히죽 웃는 나를 샐쭉한 눈으로 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내 저택으로 가자꾸나."

"와, 저택이 있어요?"

"그럼. 내가 누구니?"

레베카는 제일로 잘 나가는 언니처럼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웠다.

나는 무심코 반할 것 같은 당당함에 그녀의 이름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레베카! 레베카!"

그런 나를 보고 데이지가 따라한다.

"아줌마! 아줌마!"

"어. 으?"

바람꽃은 이 저세상 텐션을 따라야하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레베카는 레드 드래곤답게 붉어진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 좀! 조용히 해!"

아직 동심 모드였던 나는 꿀밤을 맞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쩔 수 없잖아.

무려 드래곤의 저택이라고!

'설레이는 이 마음은 뭘까~'

드디어 허름한 주점이 아닌, 드래곤의 저택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이전부터 드래곤의 레어를 구경하고 싶었기에, 설레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어느 용의 울적한 마음이,

내 광대짓으로 희석된다면… 이 정도 억텐은 감수할 수 있는 일이었다.

***

꿈과 희망을 안고 도착한 레베카의 저택.

"……."

"……."

그 앞에서, 꽃의 이름을 가진 두 아이가 내 곁에 꼭 붙어있었다.

장래가 기대되는 소녀들이 양 옆에서 내 옷자락을 쥐고 있는 모습은, 흡사 양손의 꽃이었지만…

그 실상은 썩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아야."

특히, 데이지의 손아귀에 옷자락을 포함해서 살까지 꼬집힌 탓에 제법 아팠다.

벌벌 떨고 있는 애들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던 나는 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에게 따질 수 밖에 없었다.

"…레베카, 이거 맞아요? 제가 볼땐 아닌데…."

"음, 분명 200년 전에는 멀쩡했거늘…."

시간 개념이 박살난 용가리가 하는 말에,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믿었던 레베카에게 기대가 송두리째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200년?'

데이지가 무려 20명은 있어야하는 아득한 세월이었다.

그 긴긴 세월이라면 설사 관리해주는 사용인이 있었다고 해도 모두 죽었거나, 찾아오지 않는 주인에게서 모두 도망쳤으리라.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 저택은 그대로 방치되어서 풍화되고 문드러졌을 것이다.

창문조차 남아 있지 않은 거대한 저택은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뭘 기대한 건지….'

레베카가 허름한 주점을 들고 다닐 때 알아봤어야 했다.

이제 보니 부동산을 고르는 능력이 형편없는 여자다.

내가 질린 눈으로 무성하게 자란 가시덤불을 보는데, 바람꽃이 내 셔츠를 당겼다.

"응?"

내가 묻자, 그녀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저택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안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 그것도 엄청 많아… 분명 귀, 귀…."

…그러고보니 개과 동물이 영감이 좋다고 했던가?

귀가 발달한 바람꽃이 어째 소름끼치는 말을 했다.

기가 쎈 그녀가 덜덜 떠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시발, 선객이 있다는 소리잖아….'

'귀'에서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는 바람꽃의 말을 데이지가 이어 붙였다.

"귀, 귀신… 히끅!"

본인이 말하고도 놀라서, 딸꾹질을 하는 데이지의 하얀 얼굴은 더더욱 질려버렸다.

나는 벌벌 떠는 두 꼬맹이들을 보며,

오늘밤에 두 꼬마 중 누가 혼자서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될 지 궁금해졌다.

아…

어쩌면 내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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