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수도에서 생긴 일(1)
* * *
따라다라딴~ 따라라라라란~
나와 데이지, 그리고 바람꽃이 기대하던 것은 러브하우스 브금이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이딴 인시디어스에서나 나올법한 찢어지는 귀곡성이 아니라….
레베카의 저택은 정원부터가 아비규환이었다.
한때는 정교하게 깔려있었을 자갈길은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에 의해서 삐뚤어지고 갈라졌다.
허리까지 자라난 수풀들은 척보기에도 억새 보였고, 메마른 고목들이 음침하게 줄 서 있었다.
곳곳에 자라난 가시덤불과 담쟁이 덩쿨 때문에 발 디딜 곳도 마땅치 않았다.
30년 차 베테랑 정원사도 맨발로 달아날 수준이다.
사실 이정도로 초토화된 정원을 목도했으면 도망가는 게 현명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혹시라는 게 있으니 조금만 더 저택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다.
가까이서 본 레베카의 저택은 멀쩡한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창문 대신에 거미마저 떠난 거미줄이 무성하게 늘어져 있었다.
반파된 저택의 문은 툭 건드리면 속까지 썩어서 뚝뚝 부러져 버렸고, 그 소리에 놀란 박쥐들이 빽빽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애들 얼굴만한 박쥐의 크기에 깜짝 놀라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미친, 귀신이 집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아직 저택 안에 들어가 보지 않았음에도, 대략적인 사이즈가 나왔다.
…이건 들어가면 안되는 유형의 집이었다.
나는 여동생 때문에 공포영화를 자주 봤었기에, 호러물의 클리셰를 익히 알고 있었다.
대충 이런 낡은 저택에서 친구들끼리 담력 테스트하러 들어갔다가, 단 1명만 남기고 모두 행방불명된다.
그리고 마지막엔 남은 한 명도 끔살 당하고….
이런 곳에서 잘 수 있냐, 없냐는 논제조차 되지 못한다.
이딴 유령저택에서 자느니, 신문지 깔고 지하상가에서 자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이곳을 탐험하고 싶어하는 용감한 어린이가 있을까 싶어서 확인해보았다.
내가 눈짓하자, 데이지와 바람꽃이ㅡ
도리도리….
도리도리…!
아주 열심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 절실함… 아주 잘 알아 들었어.
끄덕끄덕.
그렇게 나까지 포함해서 3삼진 도리도리로 쓰리 아웃이다.
절대로 여기서는 못 지낸다는 게 절대다수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극소수에 속한 얼빠진 드래곤만이 손가락을 물며 아쉬워했다.
"흠, 조금만 청소하면 될 것 같은데…."
"제발. 헛소리하지 마세요. 이거 나중에 철거하세요… 차라리 다시 짓는 게 더 빨라요."
현기증이 났던 나는 그런 레베카를 쏘아붙였다.
졸지에 집을 잃게 생긴 용가리는 뭐 잘했다고 뚱한 표정이나 짓고 있었다.
나참… 돈도 많으신 분이 집은 하나같이 왜 이 모양이야?
알고보니 그 허름한 주점이 선녀였다.
이런 음침한 곳은 당장 벗어나야했다. 아무래도 판타지 세계인 만큼 저주 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데이지와 바람꽃을 옆구리에 끼고 달아나려고 하는데…
우오오오오오…….
뭔가… 아쉬워 하는 듯한 귀곡성이 저택에서 들려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목소리는 아무래도 새 친구를 찾는 모양이었다.
시바, 어쩌냐… 느그들이랑 친구 먹기에는 우리가 너무 창창하단다. 아, 한 사람은 빼고.
'…니들은 거기서 살아, 우리는 갈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이 곳만큼은 오지 않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호다닥 달아났다.
***
끔찍한 매물을 뒤로하고, 대충 골목의 끄트막에 있는 여관을 숙소로 잡았다.
혹시라도 레베카가 저택으로 돌아가자고 할까봐 두려워서 황급히 내린 결정이었다.
급하게 결정한 여관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사실 유령저택을 보고 온 뒤로는 뭐든 선녀처럼 보였다.
입지 조건이 썩 좋지 않았던 여관은 한산했기에 그럭저럭 넓은 4인실을 구할 수 있었다.
"인당 하루에 동화 6닢입니다. 씻을 물은 동화 1닢이고요. 아, 식사는 저녁에만 제공합니다."
이 세계가 초입인 나는 물가가 비싼 건지, 싼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동화보다 금화가 훨씬 비싼 것을 알았기에, 담담하게 쌈짓돈을 열려고 했다.
"그건 넣어두렴. 내가 있잖니."
그러나, 내 전재산이 금화 3닢인 것을 알고 있던 용누나께서 대신 계산해줬다.
'나를 위해 돈을 써준 여자는 당신이 처음….'
감동 먹은 나를 뒤로 하고, 레베카는 주인장에게 금화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나머지는 팁이다. 가지거라."
나는 레베카의 플렉스를 보고 설렜다.
그러나, 동시에 몹쓸 남자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참 묘했다.
뭔가… 내 포지션이 기둥서방이랑 다를 게 없지 않나?
나는 복잡미묘한 생각을 하며, 애들을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
삐걱거리는 계단이 신경 쓰였지만, 그것 외에 여관 내부는 나름대로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주변에서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무척 안심이 되었다.
도착한 방은 주인장의 말대로 제법 넓었다.
그 넓은 방 안에는 이층 침대가 2개 놓여있었다.
"피터는, 어디서 잘거야?"
내 다리에 꼭 붙어있는 데이지가 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이층 침대에 위쪽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아하니, 이층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나도 어릴 때는 이층에서 자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대꾸해줬다.
"1층!"
"엣."
내 말에 보라색 눈동자에 살짝 실망한 기색이 깃들었다.
아무래도 나랑 같이 2층에서 자고 싶었던 것 같다.
데이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눈만 빙그르르 굴렸다.
내게 2층에서 같이 자자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게 훤히 보인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작은 머리통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2층에서 두 명이 같이 자는 건 조금 위험하다.
"그래서, 데이지는 2층에서 잘 거예요?"
"…아니. 1층…."
데이지는 무척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아이를 위해서, 적당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로 했다.
"지금 2층에서 놀다가, 밤에는 1층에서 내려올래요?"
"……! 대, 대단해!"
데이지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에, 눈을 크게 뜨고 자수정을 반짝인다.
나는 나를 대단하다는 듯이 보는 초롱초롱한 눈빛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내가 껄껄 웃자, 데이지도 뭐가 좋은 지 방실거렸다.
한편,
"혼자서 잠도 못 자? 너 애기야?"
바람꽃이 배시시 웃고 있던 데이지에게 시니컬한 디스를 날렸다.
데이지에게 어린애냐고 놀리는 바람꽃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녀도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살랑살랑.
바람꽃은 이미 이층을 점령한 채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도시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항상 날이 서있던 아이가 처음으로 천진난만해 보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못본 체 해주었다.
"…애기 아니야."
꼬꼬마는 우물쭈물한 딕션으로 반박했다.
그 와중에 혼자서 잠을 못 잔다는 것을 은연 중에 인정하는 자세가 훌륭했다.
우리애가 좀 순진해도, 거짓말을 못한다는 게 참 장점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바람꽃은 말주변이 없는 데이지를 농락했다.
"그럼 너 몇 살인데? 나보다 작은 거 보면 9살? 나는 10살이거든."
"나, 나도 10살…."
"엑, 진짜? 너 혼자서 밥도 제대로 못 먹던데."
"…윽."
'저런.'
데이지는 거침없는 야생아의 팩트폭격에 반박조차 못하고 탈탈 털렸다.
10년 남짓한 생애에 또래 친구가 있어본 적이 없었던 데이지….
그 탓에 그녀는 또래에 비해서 언어능력이나 대인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용사의 힘이 있으면 무엇하나, 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언젠가 위풍당당하게 바람꽃에게 선빵을 날리던 데이지는 쭈구리처럼 있었다.
그 모습이 가엽고 짠해ㅡ
아니, 솔직히 말해서… 첫째가 둘째에게 갈굼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름 꿀잼인데?'
생각보다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 뿐만이 아닌지, 레베카도 내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팝콘을 씹고 있었다.
"음음. 금방 친해지겠구나."
"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법이죠."
나는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데이지를 향한 바람꽃의 말은 틱틱거렸지만, 그 의도에는 호기심이 깔려있었다.
어떤 계기가 없으면 언제까지고 서로를 무시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바람꽃이 데이지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다소 험악했던 두 아이의 첫 만남을 생각하면, 무척 호재라고 할 수 있다.
'역시 먼저 다가가는 건 강아지인가.'
바람꽃이 까칠해 보이긴 해도 개과는 개과인 모양이다.
아직 고양이 쪽이 경계심을 푸는 것은 요연해보이지만, 조만간 데이지에게 또래 친구가 생기게 될 지도 모르겠다.
"피, 피터…."
'지금부터 서로 친해져라…!'
나는 그리 생각하며 내게 구조선을 보내는 간절한 눈빛을 외면했다.
원래 애는 강하게 키워야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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