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를 유괴하다!-50화 (50/117)

〈 50화 〉 조우(6)

* * *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다툼은 식탁에서 일어나곤 한다.

"도, 돌려줘어…!"

처량한 얼굴의 바람꽃이 낑낑거리며 까치발을 하고 있었다.

내게 착 들러붙은 채, 짧은 팔을 힘겹게 쭈욱 뻗어가면서.

그 절박한 몸짓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냉장고 밑에 들어가버린 개껌을 꺼내지 못해서 낑낑거리는 누렁이가 생각났다.

'저런.'

마냥 억울하고 불쌍해 보인다.

인간적으로 도와주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ㅡ

"안돼. 못 줘. 돌아가."

나는 폭신한 정수리를 꾸욱 누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관대한 나라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ㅡ

"케이크는 밥 먹고 나서 먹으라고 했어 안했어?"

밥 먹기 전에 간식부터 먹는 행위…!

"그, 그랬나아?"

"어허."

이래봬도 한끼 식사에도 진심인 편이다.

만약 간식을 먹고 밥맛이 없다고 투정이라도 부린다면… 그 때부터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내 경고를 무시한 애송이는 용서하지 않아요…!'

그런고로, 나는 케이크 한 조각을 해치운 무도한 현행범을 봐줄 수 없었다.

더군다나ㅡ

"의리 없게 혼자서 먹어?"

나는 바람꽃의 입가에 묻어있는 생크림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자, 댕댕이 녀석이 쭈삣쭈삣 떨어져 나갔다.

"맛만 보려고 했거든…."

참으로 비겁한 변명이오.

역시 댕댕이는 개인주의였다.

결국 나는 바람꽃에게 주었던 케이크는 도로 압수하고 돌려주지 않았다.

"그, 그래도 줬다뺏는 게 어딨어…!

바람꽃은 몹시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폴짝폴짝 제자리에서 점프를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다고 제 손이 닿을 리가 없었다.

'아직 애는 애네.'

나는 감수성이 폭발한 녀석을 골려주며 낄낄 웃었다.

그렇게 10살배기 꼬맹이를 참교육하던 중ㅡ

'…뭐지?'

문득, 묘한 시선을 느꼈다.

어쩐지 그 시선은 나와 바람꽃을 보고 있는 듯했다.

'데이지인가?'

아니, 그 꼬꼬마는 레베카에게 붙잡혀서 옷입히기 인형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밥 먹으라고 부르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나는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보았다.

그러자, 방 한구석에 웬 시커먼 그림자가 서있는 게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과 호박을 닮은 눈동자.

그리고, 완전 순둥순둥한 인상을 가진 10대 중반의 소년이었다.

'쟤가 언제 왔대?'

그는 어째 멍하게 풀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땡깡을 부리고 있는 바람꽃을 보는 듯했다.

"모야모야."

모르긴 몰라도 소년의 눈빛은 심상치 않았다.

평소 여동생한테 연애등신 소리를 듣고 살았어도… 이 정도로 적나라하다면 모를 수 없었다.

지금 저 소년은….

"모야, 모야?"

한편, 그 당사자인 바람꽃이 내 중얼거림을 따라하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세상에. 상당히 깜찍한 몸짓이었다.

그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높이 들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려버렸다.

"모야!"

아차!

미처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약삭빠른 댕댕이가 케이크를 들고 바람처럼 달아난 후였다.

닉값하는 녀석 같으니….

**

달아난 바람꽃은 내버려두고.

나는 구석에 숨어있는 소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안녕? 지낼만해?"

"네, 네네… 그, 그렇습니다…."

그는 며칠 간 바람꽃과 데이지와 지내며 영향을 받은 건지, 전처럼 나를 피해서 도망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 낯을 가리는 모양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쩐지 데이지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상자 속에 갇혀있던 그 아이처럼.

철창 안에 갇혀있던 소년도 세상에 의해 주눅이 들어있었다.

비록 인종은 다르지만... 나는 이 둘은 꼭 남매처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었지만.

'…후우.'

가까이서 마주보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아마도 똑같은 검은머리카락이 그런 감상을 들게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 그러고보니 원작에서 얘랑 주인공이 조금 엮었던 거 같은데….'

뭔가 공교롭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정신병자 같은 남주들 가운데서, 이 소년만은 빛이나 다름없는 멀쩡한 인물이었으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녀석의 위아래를 꼼꼼히 살폈다.

키는 제법 크다. 용모도 잘생겼고, 그동안 힘들게 살아 왔으면서도 심성이 모나지 않았다.

또한 특별한 출생과 그에 준하는 경이로운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게다가 비록 소심하긴 해도. 원작에선 주인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을 정도로 헌신적인 녀석이었다.

"……."

…뭐지?

웹소설 주인공에나 어울리는 법한, 이 멋진 녀석은?

"…흐으음."

그런데 뭔가 굉장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뭐랄까, 아직 성에 안 찬다고 해야하나…?

역시 남자가 너무 소심한 건 정말로 큰 결함이라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사내대장부라면 당당해야한다.

'…일단은 불합격.'

나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미묘한 기분이 뒤로 하고.

애써 웃음을 가장하며, 삐질삐질 땀을 흘리고 있는 녀석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나는 피터라고 해. 성은 없다."

"저, 저는 테오, 그냥 테오입니다…."

테오의 이름은 바람꽃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녀석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 테오. 반갑다. 날 형이라고 불러도 돼."

이제 A­14가 아니게 된, 그냥 테오에게 악수를 건넸다.

"아앗, 그, 그건…."

나는 내가 내민 손을 보며 횡설수설하는 테오를 조용히 관찰했다.

내 머릿속은 순수한 호의가 아닌, 시커먼 계산으로 바삐 돌아간다.

'잘 지내보자.'

한달 내로 테오가 선뜻 우리를 돕게끔 만들 계획을 짜낸다.

…속이 조금 메스꺼웠지만,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이건 모두를 위한 일이야.

분명잘 될 거라고.

괜찮을 거야.

속으로 주문을 되뇌이며, 나보다 작은 테오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제 영감님만 잘하면 되겠네.'

이제 남은 건, 뿌린 씨앗이 발아할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다.

**

올해로 예순 둘이 된 노년의 집사.

알프레드는 오랜동안 종사해온 스펜서 가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예약한 노예가 사라졌다고? 그게 말이라고 지껄여!? 야, 지금 당장 주인 놈을 데려와!

­갑자기 거래를 끊으면 어쩌잔 말이오! 뭐, 주인이 자리를 비워…? 제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레까지 약속한 3마리를 데려오시오. 이 일에 책임을 지란 말이오!

어찌된 영문인지 지하실에 수감된 수인들이 몽땅 사라졌다.

그 탓에 노예를 사러왔다가 헛물을 삼킨 단골이나 거래처에서 항의가 빗발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고용주이자 책임자인 두드리 스펜서는 외출하고서는 나흘째 돌아오지 않는다.

덕분에 애꿎은 알프레드가 그 대신에 찬물을 뒤집어 써야했다.

예순이 넘은 집사장이 물벼락을 맞거나, 뺨을 맞는 등.

날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저택의 분위기에 하인들 또한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주인 어르신이 야반도주한 거라니까. 노예들을 데리고.

­설마… 빚도 없고, 재산도 많은 양반이 왜 그러겠어?

­으음, 사랑에 빠진 게 아닐까? 그 노예들 중에서.

­어휴. 리챔, 제발 소설 좀 그만 봐. 그 사람은 짐승 냄새난다고 질색팔색하잖아.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종교에 빠진 게 아닐까? 왜 산제물을 받쳐야하는….

­입 닥쳐, 리챔. 누가 들으면 어쩔려고 그래.

그가 기여한 스펜서 가의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어수선해져간다.

알프레드는 허탈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노년의 집사는 20년 넘도록 두드리 스펜서를 보조해왔다.

그 고용주는 뭔가 유별난 구석이 있었으나, 결코 책임감 없는 주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확신했다.

'주인님께 뭔가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노인의 경험과 직감이 현 사태가 굉장히 불길하다고 일러주었다.

알프레드는 더이상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고용주와 그곳에 있던 노예들이 행방불명 되었다고 경비대에 신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부디 무사하십시오.'

그렇게 노년의 집사는 저택을 나섰다.

그러나, 이윽고 자신을 둘러쌓는 험악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당, 당신은 누구십니까."

건장한 무리 가운데서,얼굴이 유독 험상궂은 사내가 겁에 질린 집사에게 으르렁거렸다.

"영감, 죽탱이 맞기 싫음 입 닥치고 따라오슈."

알프레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들에게 끌려갔다.

.

.

찬란한 도시라 불리우는 제국의 수도에도 어둠은 존재한다.

하수도에 모여사는 이들 또한 그 어둠의 일부분이었다.

­사각사각.

불똥이 튀는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수 십명, 수 백명의 사람들이 바닥에 엎드려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그들 중 고개를 들고 있는 사람은 단 둘 뿐이었다.

비교적 젊은 사내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얼굴이 흉터투성이여서 유독 험상궂어 보였다.

그런 사내를 마주보고 있는 자는 무척 왜소하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에 불과했다.

허나, 사내는 그 땅딸보 노인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어르신, 그 집사는 어떻게 처리할깝쇼?"

어르신이라 불린 노인.

그는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탄 생쥐에게 해바라기 씨를 먹이며 담담히 말했다.

"쥑이라."

쇠를 긁는 듯한 걸걸한 목소리에, 소름을 느낀 사내가 뻐근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때 용병이었고, 현재 지명수배자인 남자.

그는 도시괴담처럼 전해지는 제국의 하수도에 산다는 괴물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어린애를 잡아먹는다는 생쥐와 닮은 추악한 괴물.

'이게 그 실체인가.'

하수도의 괴물은 존재했다.

그리고, 그는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마, 퍼뜩퍼뜩하그라!"

그의 독촉에 엎드린 사람들의 손은 점점 빨라지고, 종이의 무더기도 덩달아 높아졌다.

그렇게 쌓아올린 터무니 없이 많은 양을 바라보며ㅡ

"허튼, 고얀 메꾸리 새끼… 귀찮게 군대이."

늙은 난쟁이가 음영이 드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

한달이란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드디어 내일인가.'

기분이 심숭샘숭했다.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것 같아 잠깐 정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흉측하고 무성했던 잡초가 사라지고.

잘 정돈된 정원을 돌아보며 지난 한달을 돌이켜 보았다.

'데이지가 손톱만큼 커졌다고 자랑했었지.'

'댕댕이가 데이지한테 검술로 발려서 울었고….'

'엊그제 수인들이 내게 고맙다고 인사했고.'

'테오 그 자식은 은근히 나를 엿먹이는 것 같던데… 기분 탓이려나?'

'영감탱이는 여전히 지랄맞다만. 뭐, 일만 똑바로 하면 알 바 아니고.'

'황녀는 맨날 불평불만….'

'레베카는… 어휴, 진짜 예법이 개 빡셌어….'

그동안 크고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무난하게 산을 넘은 것 같다.

나는 회상하며 계속 걸었다.

어느덧 보름이 가까워진 달이 보였다. 그리고ㅡ

"왔구나?"

달이 밝은 곳에는.

언제나처럼 붉은 그녀가 있었다.

레베카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내게 물었다.

"드디어 시작이란다. 자신은 있느냐?"

…자신이라.

나는 레베카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아주 솔직하게 말한다. 중요하니까 3번 강조한다.

"당연히 없죠."

내 말에 잠깐 멈칫한 레베카는 빈 술잔에 가득채웠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밤공기에 울린다.

"걱정하지 마렴. 내 반드시 그대만은…."

이제 준비한 대사를 칠 타이밍이었다.

"못할 자신이 없다고요."

"……."

돌아본 레베카가 드물게 정색하며 나를 쳐다봤다.

이제서야 '짜게 식은 눈'이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정말 짠맛이 가득하고 싸늘했다.

'씁, 이게 안 먹히네….'

예상한 것과 달리 반응이 썩 좋지 않아서 무척 민망했다.나름대로 회심의 대사였는데….

그렇게 한참 쥐구멍을 찾던 중.

어느새 내 앞에 서있는 레베카가 보였다.

"그대를 믿는다. 나의 동반자여"

그녀는 금방 깨질 것 같은 미소와 함께 선언했다.

그 미소에 기시감이 들었다.

나는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말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ㅡ

"반드시 되찾아드릴게요. 레베카."

나는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는 다짐을 돌려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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