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세남자(7)
* * *
나는 튀김 요리는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딱히 튀김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기름이 튄 가스레인지를 닦고, 폐기름을 처리하는 등 그 뒷정리가 귀찮아서 자주하지 않았다.
'튀김은 사 먹는 게 훨씬 낫지.'
애초에 고생해서 만들어 먹는 것보다 사먹는 게 더 맛있다.
그러므로 나는 치킨을 튀겨달라고 떼쓰는 동생에겐 지랄하지 말고 배달 시키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가끔씩 날을 잡고 부엌을 청소하려는 날.
그 때는 특별히 팬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
그 후, 적당히 끓어오르는 기름이 지글지글 튀기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처럼.
치이이익….
오랜만에 들어도 참 맛있는 소리였다.
황금빛 기름 속에서 튀김옷을 입힌 재료들이 나풀나풀 춤을 추고 있었다.
웬만한 예술 작품보다 더 황홀한 광경이었다.
나는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중얼거렸다.
"기름은 위험하니까 조심해야해."
"……."
특히나 끓는 기름을 다룰 때는 집중해야 한다.
갑자기 튀어오르는 기름에 데이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까.
뭐, 내 경우에는….
본의 아니게 롱코트를 입은 덕분에 팔이 데일 걱정은 없다만.
'조금 덥지만 나름 장점도 있네.'
어떤 꼬마인지 몰라도 기똥 찬 어시스트다.
나는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튀김이 어느 정도 익었다고 판단될 때 쯤ㅡ
"킁, 여기서 냄새가 나는데에~"
냄새를 쫓는 소녀가 나타났다.
이 때를 노린 것처럼 타이밍이 제법 절묘했다.
나는 어색한 목소리와 적나라한 시선에 그 쪽을 흘끔 봤다.
작은 코를 연신 찡긋거리고 있는 바람꽃이 보였다.
내가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자, 녀석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히힛, 땅콩이 여기왔지?"
나는 확신에 찬 앳된 목소리에 조금 놀랐다.
술래인 바람꽃은 데이지의 흔적을 쫓아 이곳까지 도달한 모양이었다.
'이야, 진짜 개코네.'
괜히 북부의 댕댕이를 자처하는 게 아닌가보다.
확실히 녀석의 말처럼 데이지가 이곳에 왔었다.
허나, 내겐 지켜야할 신의가 있었다.
"데이지? 글쎄 여기 왔었나."
나는 짐짓 아닌 척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자, 바람꽃이 양 손톱을 내세운 위협자세를 취했다.
그건… 이족보행하는 렛서팬더만큼이나 위협적이었다.
"거짓말인 거 다 티나거든? 순순히 땅콩이의 위치를 불어!"
"얌마, 불라니…."
…얘는 가끔씩 애치곤 묘한 말투를 구사한단 말이야.
얘네 아버님이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한따까리하게 생긴 우락부락한 아저씨는 아니겠지…?
어쨌거나.
"지금 위험하니까. 여기선 장난치면 안돼."
나는 앙칼진 댕댕이에게 주의부터 줬다.
혹여 기름 앞에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사고라도 날 수 있으니까.
"자, 장난 아닌데…."
주의를 받자, 바람꽃은 손을 쭈뼛쭈뼛 내리며 꿍얼거렸다.
쫑긋 솟아있던 강아지귀도 시무룩하게 접혀 있었다.
'…조금은 떽떽거릴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 달리 바람꽃의 반응이 너무 얌전했다.
이러면 괜히 미안해진다. 이무래도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보다. 녀석도 나랑 친해져서 장난친 것 뿐일텐데….
나는 토라지기 직전인 꼬마를 보며 반성했다.
좀 전에 데이지랑 약속했지만, 이대로 바람꽃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미안.'
문득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동화가 생각났다.
나는 거기에 등장하는 나무꾼처럼… 고라니인지, 노루인지를 찾는 어린 늑대에게 알려주었다.
"아까 저쪽으로 간 거 같아. 데이지한텐 비밀이야."
"…응."
내가 데이지의 도주 경로를 알려주었음에도,
바람꽃은 여전히 시무룩해 보였다. 나는 평상시와 다른 아이의 모습이 조금 난감했다.
'이걸 어쩐담.'
…친하게 지낸 고향 사람들이 떠나간 탓일까?
그래서 얘가 평소보다 나를 의지하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닌 척해도 아직 어린애니까.
나는 갓 만든 튀김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그리고 웃는 낯으로 바람꽃에게 묻는다.
"람람아, 오늘 점심 뭐게?"
"응?"
코발트색 눈동자가 두어번 깜빡거린다.
그녀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누런 물체를 홀린 듯이 쳐다봤다.
또 주방에 온 뒤로 계속 찡긋거리고 있던 코가 유독 바빠 보였다.
"그, 그게 머야…?"
바람꽃은 꼴깍하고 침을 삼켰으나.
미처 삼키지 못한 침이 입가에 조금 새어나왔다.
'…어쩌면 그냥 배고팠던 걸지도.'
내가 젓가락을 무심코 왼쪽으로 옮기자,
바람꽃의 작은 머리통이 그 쪽으로 빼꼼히 따라왔다. 그 반대쪽으로 옮겨도 마찬가지였다.
"크, 크흠."
나는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보며 애써 웃음을 참았다.
…이런 말하기 미안한데 좀 재밌었다. 그래도 더이상 약올리기엔 후환이 두려워서 답을 알려줬다.
"닭튀김이야."
많고 많은 닭튀김 중에서 전분만 얇게 입힌 가라아게 느낌이었다.
마법의 치킨 튀김가루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 탓에 바삭함은 덜하겠지만… 대신 더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은 즐길 수 있을 거다.
"닭튀김…."
바람꽃이 멍한 눈으로 젓가락 끝을 보며 되뇌었다.
문득 정신을 차린 녀석이 설렌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 맛있는 거야?"
"쩔지."
밑간을 충분히 하고 튀겼다.
이대로 먹어도 충분히 맛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내 호언장담에, 댕댕이가 간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 봤다.
"피, 피터~ 내가 맛 봐줄까?"
…얘가 웬일로 애교를 다 부리네?
발을 동동 구르며 달라붙는 모습이, 뉘집 누렁이와 똑닮아 있었다.
'역시 댕댕이는 먹을 거에 진심인 편.'
콕콕!
문득, 코트 속에서 뭔가가 내 등허리를 찔렀다.
아무래도 들키기 전에 바람꽃을 빨리 돌려보내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나는 아기새처럼 모이를 기다리는 녀석에게 젓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아~ 해볼래?"
"……아."
뺨이 발그레진 바람꽃이 눈을 지그시 감고서.
조그마한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렸다.
그러자, 이따금 내 팔뚝을 깨물던 송곳니가 확연하게 보였다.
작고 하얘서 겉보기에는 귀여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에 물리면 아프겠지만….
나는 두툼한 튀김 하나를 성공적으로 혀 위에 안착시켰다.
이제 젓가락을 빼내면 되는데… 헌데 바람꽃이 입술을 앙다물고, 젓가락까지 집요하게 물었다.
"야, 이러면 못 먹잖아."
"…이히히."
얘는 제대로 씹지도 못하면서 뭐가 좋은 거야…?
어쨌든 하나 먹여 주었더니, 바람꽃이 기분 좋은 듯이 배시시 웃었다.
'잘 먹고, 잘 웃으니 얼마나 이뻐?'
이제야 그 나이대의 꼬맹이 같다.
나는 개구장이 같은 바람꽃을 따라서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제 젓가락 좀 놔 봐.
이거 자체 제작이라서 하나 밖에 없는 거란 말이야….
**
…결국 내 젓가락에 이빨 자국이 생겨버렸다.
못 쓸 정도는 아니나, 이곳저곳 씹힌 흔적을 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이건 뭐 이갈이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범인은 그저 신이 난 얼굴로 내 앞에서 재잘거렸다.
"족제비~ 하나로 모르겠어. 나 하나만 더 주라."
"안돼. 너 혼자 다 먹을 생각이야? 점심 때까지 기다려~"
나는 기름으로 반질반질한 입술을 닦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으븝, 짠돌이! 그거 하나도 못 주남."
바람꽃은 짐짓 뽀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겉보기엔 이래도, 이미 기분이 풀린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웃어넘겼다.
"다른 애들이 찾아주기를 애타게 기달리고 있을텐데… 술래는 몰래 밥이나 먹고 있다니…!"
"……!!"
본연의 목적을 떠올린 댕댕이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다른 애들이 알면…."
"나, 나 찾으러 갈거야! 이거 말하지마! 하지마!"
바람꽃은 빼액 소리를 지르며 급하게 주방을 나섰다.
방치한 친구들에게 어지간히 미안한 모양이었다.
성격이 모나긴 했어도 역시 심성이 착하다.
그나저나….
'이걸 눈치 못 채네?'
나는 바람꽃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속으로 킥킥 웃었다.
활달한 꼬마 하나가 떠나가자,
그 대비처럼 주방이 엄청 조용해졌다.
다시금.
치이이익….
튀김이 기름에 익어가는 소리만 들릴 때 쯤ㅡ
"…갔어?"
어디선가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목소리는 아주 가깝게 들렸다.
"응, 갔나보다."
나는 나오기 쉽도록 코트 단추를 풀고 한쪽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까맣고 작은 머리가 빼꼼하고 코트 안에서 삐져나온다.
"후하."
데이지는 여전히 주위를 경계하며 더운 숨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코트 안이 좀 더웠는지, 얼굴에 땀이 나서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붙어 있었다.
"굉장한데? 성공했잖아."
나는 머리카락을 떼어주며 실실 웃었다.
사냥꾼인 댕댕이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나무꾼 역할인 나와 사슴 역할인 데이지의 절묘한 계획이 먹혀 들었다.
"…응."
그러나, 정작 댕댕이를 따돌린 우리 꼬꼬마의 기분은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친구를 속여서 미안한 걸까?
음, 애들의 마음은 알다가도 잘 모르겠다.
내가 한참 표정을 살피고 있을 때ㅡ
조금 화난 표정이던 녀석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피터, 나도 줘."
얘가 뭘 달라는 건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데이지가 입맛을 다시는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하나하나 다 주고 나면 먹을 게 없는데.'
그래도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줄 수 없다.
들키지 않았으면 모를까.
...그러고 보니.
바람꽃이 밥 먹고 간 거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뭐, 나는 아무 말도 안했다.
데이지가 스스로 알아차린 거니까.
"오케이."
어쨌거나 나는 젓가락으로 닭튀김을 하나 집으려고 했다.
그런데, 데이지가 젓가락을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막대기 말고."
"응?"
"다른 걸로."
어쩐지 젓가락이 싫은 모양이었다.
이상하다. 평소에는 이걸로도 잘 받아 먹었는데….
'포크는….'
수저류는 식탁에다가 두었다.
데이지에게 붙잡혀 있기도 했고, 그걸 가지러 가는 것도 좀 번거로웠다.
"뎃지야. 나 손 깨끗하게 씻었는데. 싫어?"
나는 닭튀김 하나를 집게 손으로 집어들며 말했다.
정 싫다고 하면 포크를 가져와야지.
"아니, 좋아."
다행히도 시골떼기 데이지는 딱히 가리는 게 없었다.
꼬꼬마는 방실방실 웃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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