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불청객(3)
* * *
끄아아아악…!
야심한 밤에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주 가까이에서. 그것도 바로 아랫층에서 들려왔다.
섬뜩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딱히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낯선 비명의 출처가 대강 예상이 가거니와,
내가 가장 신뢰하는 그녀가 보내오는 존재감에 평소와 같았기 때문이다.
"혀, 혀, 형. 이, 이거 귀, 귀…."
"별 거 아니야. 그냥 닭 잡는 중이거든."
나는 무사히 테오까지 수습할 수 있었다.
얘가 겁에 질린 강아지처럼 얼어있어서 조금 걱정이다만… 뭐, 어쨌든 이걸로 안심해도 될 것이다.
끼에에에에, 그마, 살려저어어!
"…닭은 살려달라고 빌지 않는데."
"……."
이래서 눈치 빠른 애송이는 싫다니까.
나는 구시렁거리는 테오의 의문에 침묵했다.
이윽고, 방문 앞에서 도착한 뒤.
댕댕이 2호에게 부탁을 가장한 협박을 가했다.
"일단은 네가 제일 오빠니까. 괜한 말로 애들 겁주면 혼난다?"
"제, 제가 오빠…?"
내 말에 테오가 세상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꼬맹이들을 모아둔 방을 노크했다.
방문 너머로 도도도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시간까지 안 자고 있는 비행 어린이는 하나 밖에 없다.
누구야아?
"나야 나."
아까 당부한 보람이 있는지, 곧바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흐으음~
내 목소리조차도 의심하고 보는 꼬꼬마…!
나는 그녀의 신중한 자세에 섭섭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대견함을 느꼈다.우리애는 가끔 어벙해서 그렇지 은근히 야무지다니까!
내가 흡족하게 웃고 있을 때,
방문 너머에서 혀 짧은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아모.
"응? 아모?"
응, 아모를 대!
"??"
…아모가 뭐야?
잠깐 당황했지만, 맥락을 보아하니 대강 짐작이 가는 것이 있다.그래도 확인 삼아서 물어보자.
"뎃지야, 암호 말이야?"
아… 으응. 암호.
역시 '아모'가 아니라 '암호'인가.
얘가 어디서 이상한 걸 주워 들은 모양이다.
어쩌면 내가 얼마 전에 들려준,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를 각색한 스파이 첩보물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기서도 아기염소의 비밀기지에 잠입하려고 변장한 늑대에게 암호를 물어보는 장면이 있었으니까.
'그 부분이 기억에 남았나보네.'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다니 기쁘다.
뎃지 요원이 어설픈 게 함정이지만… 어쨌든 그녀의 조심스러운 태도만큼은 합격점이었다.
그나저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
'암호 같은 거 들은 기억이 없는데?'
뭐, 원래 애들이 하는 일이 대개 그러하니 당황할 필요는 없다.이런 경우에는 임기응변으로 대충 맞춰주면 어떻게든 넘어가니까.
"힌트."
어어… 그, 잠깐마안.
…이제 막 암호를 만드는 건 아니겠지?
합리적인 의심이 스멀스멀 생기려 한다.
"형, 지금 뭐하는 거예요?"
"글쎄. 조금만 기다려보자."
아무쪼록 첩보 꿈나무를 지켜줘야한다.
혹시 모르잖아? 쟤가 나중에 블랙 위도우처럼 뺨치게 될 지도.
인고의 기다림 끝에,
머리를 쥐어짜낸 데이지 요원이 내게 질문했다.
있지, 피터는, 데이지 어떻게 생각해?
...너 내가 누군지 이미 다 알고 있잖아.
게다가, 질문도 암호라고 하기엔 실로 조잡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음, 뎃지는 도토리만해."
아니야... 그거 틀렸어.
원했던 답이 아닌지 조금 뿔난 목소리가 들렸다.
아깝다. 이거 회심의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지.
나는 쥐방울부터 시작해서 땅콩까지, 내가 알고 있는 작디 작은 것을 전부 읊었다.
그러자,
철컥.
데이지가 퉁퉁 부은 얼굴로 문을 열어주었다.
조그만한 게 주먹이 겁나게 매웠다.
***
나는 레베카의 연락을 받고 아랫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완전히 박살난 문짝과… 형언할 수 없는 기괴한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끄으으, 뜨거워어, 끄, 제바, 주, 죽기 싫어….
"조용히 좀 하려무나. 지금 당장 네 놈을 죽일 생각은 없다."
정, 정말인가?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커멓게 익은 고깃덩어리가 애원을 하고.
레베카가 불장난 하는 아이처럼 집안 곳곳에 불을 지핀 채로 그것과 대화하는 중이었다.
'…시바, 이게 뭐지?'
말하는 살덩어리와 방화 미녀?
B급 호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을 현실에서 마주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대신 웰던으로 굽는 연습을 조금만 더 하마."
끄아아아아, 악마 같은 년! 그냥, 죽여어어! 차라리 죽, 여줘…!
…지옥에서 잘못 배송된 특산품일까.
저주를 내뱉는 고기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다.
나는 뒤돌아서 도망치고 싶은 것을 애써 참고,
그로테스크한 고깃덩어리를 조리(?)하고 있는 레베카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저, 레베카?"
"왔구나. 응? 무슨 일이니? 표정이 어둡구나."
"…일단 저한테 뭔 일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 대체 이건 뭡니까?"
"이거? 방금 주운 거란다."
…길냥이라도 주워온 것 같은 말투다.
게다가, 그녀의 얼굴이 너무 태연해서 나도 모르게 '아, 그렇구나.' 하고 수긍할 뻔했다.
미쳐버린 사고 방식이구만.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레베카를 노려보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아무거나 주워오지 않기로 약속 했잖아요."
"어허, 나는 아무거나 줍지 않는단다. 엄연히 쓰임과 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서…."
"저번에 주워온 도토리들은 어따가 써먹는데요."
"아. 그건 애들 선물이란다. 저번에 작고 동그래서 귀엽다고 말하는 걸 들었단다."
할머니냐고.
게다가 이 양반이 주워온 도토리는 한 두개도 아니고 수천 개다. 애들에게 줄 선물치고는 너무 무겁다고 그거….
내가 도토리묵 레시피를 떠올리고 있을 때ㅡ
애써 외면하고 있던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거기, 인간 남자….
…주둥이도 없는 주제에 어떻게 말하지?
크툴루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고기의 비주얼이 징그러우면서도 묘한 호기심이 생긴다.
"어, 왜요?"
네 놈에게 영생과 젊음을 하사하겠다. 그러니, 저, 저 끔찍한 마녀로부터 본인을 해방시켜라.
초면에 고자세 무엇?
그나저나 이 고깃덩어리의 싸가지 없는 말투가 어쩐지 귀에 익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레베카에게 물었다.
"이거 흡혈귀?"
"응. 정답이란다."
이야, 정답이랜다.
뭔가 퀴즈쇼가 같은 느낌. 근데 하나도 기쁘지 않다.
"…이거 원래 이렇게 생겼어요?"
내가 알고 있는 흡혈귀와 크툴루 신화 속 고깃덩어리는 서로 연관성이 좀 떨어지는 편이었다. 내물음에, 레베카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입술을 달싹인다.
"아니, 보통은 이족보행을 하는 영장류를 닮았단다.이건 안개로 변신하지 못하게끔 조치해둔 거란다. 너무 태워버린 감이 없잖아 있지만."
흐으윽, 미친, 악마, 악마 같은 녀어언…….
나는 살포시 웃는 그녀와 흡혈귀였던 것을 번갈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조금 잔인한 처사가 아닌가 싶었다.
고깃덩어리로 전락한 흡혈귀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으니.
괜히 마음이 약해진 나는 레베카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이만하면 됐지 않나요. 일단은 들을 것도 있잖아요."
"흐응, 그대여. 이거 하나만 알아두렴."
레베카는 전에 없이 새초롬한 얼굴이었다.
어쩐지 내게 조금 화난 것처럼 보이는 그녀가 입술을 달싹인다.
"저 자가, 내 팔다리를 잘라 버리겠다고 했다."
"이 씹새끼가! 누구 여자한테 뭐가 어째?!"
끄아아아아아아악!
그딴 망언을 쳐하다니.
울 때까지, 아니 울어도 빌어도 패는 것을 멈추지 않을 거다.
**
"나쁜 놈인지 좋은 놈인지는 냄새만 맡아도 다 알아. 시발, 너 새끼는 썩었어! 썩은내가 진동을 한다고!! 너 같은 쓰레기 새끼는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어!"
끄아아아, 그마, 그만…!
아직도 분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나는,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는 고깃덩어리를 발뒤꿈치로 내려찍었다.
"에, 어, 어… 그, 그."
레베카는 이성을 잃은 내 모습에 당황스러운 듯이 새빨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했다.
내가 진짜 병신이다.
이딴 쓰레기를 옹호하다니….
나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내 탓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일단 헝클어진 머리와 옷을 급하게 단장하고, 멀뚱히 서있는 레베카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미안해요. 못 보일 꼴 보였어요. 면목 없어요."
"아, 아니 괜찮은데, 괜차나…."
말은 그렇게 해도 역시 속이 상한 듯했다.
레베카 또한 칵테일처럼 섞인 감정의 격류에 휩싸인 채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당분간 그녀에게 잘해야겠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모든 일의 원흉을 노려봤다.
보, 본인이 흐, 어쩌다가…
정체 불명의 고깃덩어리.
놈은 인간에게 죽도록 쳐맞았다는 굴욕감에 눈물 대신 육즙을 짜내고 있었다.
[그건 모르네. 그러니까 정체불명이지.]
문득 아캄마을의 입구를 지키던 초병들의 말이 떠올랐다.
[놈은 밤에만 찾아와.]
[아주 빠르고 흉폭하지.]
[…마을 사람을 넷이나 잡아먹었어.]
어쩐지 브루노, 그 참견쟁이의 이름이 스피드왜건이더라.
그게 일종의 복선이었나 싶다.
나는 허탈함에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야밤에 체조를 한 탓인지 탈력감이 급격하게 몰려온다.
그 때, 누군가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잔을 내게 건넸다.
"따, 땀이 식으면 추울거란다."
…이 사람, 천사인가?
내 실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베푸는 레베카의 호의가 너무나도 눈부셨다.
"고마워요…."
"후흐, 별 거 아니란다."
그녀가 내온 차는 이상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그러나, 물이 따뜻한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때때로 음식의 맛보다 마음이 중요한 법이니까.
"음, 향이 좋네요."
"그치? 여기 다과도 좀 먹어보렴. 자, 아~ 해보렴."
"어… 제가 먹을게요."
"떽. 손이 피로 물들었잖니?"
역시 레베카는 마음이 넓다.
그녀의 배려 덕분에 나 또한 죄책감을 어느 정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창 화해하는 분위기인데, 산통을 깨는 존재가 있었다.
당장, 본인을 죽여줘, 제발, 죽이라고.
피눈물을 흘리는 고기라니.
이거 참으로 진귀하다. 경매에 올리면 제법 비싸게 팔리지 않을까?
물론 그전에,
"맨 입으로 안되겠고. 뭐 좀 물어봅시다.제가 그쪽한테 궁금한 게 많거든."
놈의 몸값 외에도 알아내야 하는 게 무척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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