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불청객(4)
* * *
피를 섭취하는 괴물이라 하여.
흡혈귀,
혹은 뱀파이어.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설화와 민담에 따르면.
흡혈귀는 흔히 태양빛에 약하고, 변신의 귀재이며, 불사에 가까운 존재로 묘사되곤 한다. 솔직히 설명하는 것이 구차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유명한 괴이다.
드라큘라 백작, 트와일라잇, 월야환담, 월희… 등.
흡혈귀를 소재로 써먹는 작품이 정말로 수도 없이 많다. 웹소설을 비롯한 장르 문화를 꽤나 섭렵한 나로선 다소 지겨울 정도로.
'클리셰 덩어리인 사골국이란 말이지.'
진부하고 고전적이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흡혈귀라는 이름이 주는 위명은 결코 가볍지 않다.
죽지 않는 불사의 괴물이란,
언제나 강력한 권능을 지닌 존재로써 등장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흐으윽, 흐으윽….
'그것'은 힘의 편린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도 초라하게 전락하여 눈물 대신에 육즙만 짜낼 뿐이었다.
'이게 내가 알던 흡혈귀가 맞나?'
나는 서럽게 우는 고깃덩어리를 보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새삼스럽게 불사와 무적은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애초에 바다의 해삼도 영생한다고 하지만,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문득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레베카가 냉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귀에 거슬린다. 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거늘. 매가 모자라느냐?"
끄, 끄윽. 아니, 끄윽, 그치겠다… 제발, 폭력은, 그만….
건드려선 안될 것을 건드린 흡혈귀의 비참한 말로였다.
어쨌든 레베카가 이토록 다져놓은 덕분에.
놈은 체념한 듯이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심문을 받아들였다.
"이름이 뭐죠?"
보르네 오 말레이 시안….
…어째 휴양지 같은 이름이네.
자신을 패면서 스트레스를 풀라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제법 어울릴지도.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 대화를 이었다.
"보르네오. 이 곳에 온 목적은 뭡니까."
본인의 이름은 보르네 오 말레이….
"보르네오든 보르르든 내 알 바 아니니까 묻는 것에만 성실하게 대답합시다."
……사냥.
녀석이 빈정이 상한 것처럼 툭 내뱉었다.
꼴에 자존심은 있는 건가. 고자세인 놈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야, 말이 지나치게 짧다? 내가 존대해주니까 우스워? 아직도 정신 못 차렸지."
"흠."
내 말에 레베카가 슬쩍 일어나려고 했다.
그녀가 몽둥이를 챙기는 것을 봐버린 녀석은 다급히 소리쳤다.
사, 사냥을 나왔소!
"허, 왔소?"
…나왔습니다. 슬슬 굶주림이 찾아와서….
보르네오는 쭈글쭈글하게 말을 고쳤다.
'사냥이라.'
내가 아는 그 '헌팅'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흡혈귀는 구애가 아닌, 문자 그대로 포식을 전제로 사냥감을 골랐을테니까.
놈이 점찍은 사냥감이 하필 우리였던 건가?
나름대로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그러나, 뭔가 후련하지 않다. 아직 찜찜한 것이 남아있었다.
'한스.'
그 마을 청년의 몸에 새겨진 문신.
고작 포식으로 끝나는 단순한 의미처럼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제물…
끔찍한 의식의 과정처럼 보였다. 레베카와 시어도어의 의견에 따르면 마족과 관련된 이교도의 신앙이었다.
'이 놈이 구라치는 걸까?'
나는 식은땀 비스무리한 것을 흘리고 있는 고깃덩어리를 흘겨봤다.
마족은 종이 다양하다.
마기에 오염된 지적 생명체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분명 흡혈귀 또한 마족의 갈래에 속했다.
하지만, 흡혈귀라는 족속은 어떤 의미로 신앙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불로불사(不?不死)와 오만할 정도로 개인주의적인 성향.
흡혈귀는 누군가를 섬길 만큼 절실하지 않고, 신도를 모으는 귀찮다는 짓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맞물리지 않는다.
그리고,
[밤에는 집 밖으로 나오지 말게.]
문득 떠오르는 아캄 촌장의 말.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의 경고는 흡혈귀를 상정해둔 것처럼 느껴졌다. 심증에 불과하지만.
"할 말은 그게 다냐?"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노려보자,
보르네오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오랜만에 맡는… 순결한 처녀의 향기에 허기를 참지 못해서….
…이딴 걸 변명이라고 내뱉는 건가?
순간, 머리가 띵해지더니. 간신히 잠재둔 열이 다시 뻗치는 것을 느꼈다.
"배가 쳐고프시면… 돼지나 쳐먹던가!"
끄어어억!
나는 레베카의 손에 들려있던 몽둥이를 빼앗아 녀석을 후려갈겼다.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생존이라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서… 미처 자라지도 못한 어린 새싹에게 흉수를 들이밀어?
"진짜 넌 뒤졌다. 하필이면 애들을 넘 봐?"
어, 어린애? 아니다.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밤의 귀족에겐 변하지 않은 긍지와 양심이 있소! 본인은 숙성되지 않은 핏덩이엔 관심 없단 말이오!
뚫린 입이라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 집에서 순결한 처녀라고 부를만한 여자애들의 평균나이는 고작 열 살이다, 열살!
설마 이 씹새끼는 열 살짜리를 성인으로 취급하는 걸까?
아, 잠만. 그러고 보니까… 흡혈귀에게 흡혈은 일종의 성행위라는 설정이 있는 걸로 아는데….
"페도는 사형이다."
내 눈빛이 살벌하게 물들자,
페도필리아 뱀파이어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크아아악, 아니라고! 본인의 취향은, 저기, 저 미친 마녀…
"당, 당장 죽여야겠구나!"
레베카가 황급히 나를 따라 단죄에 나섰다.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녀답다.
페도 흡혈귀의 만행에 분노하였는지,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
보르네오는 사경을 헤맬 정도로 쳐맞다가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뭔가 할 말이 많은 듯이 계속 구시렁거리긴 했지만… 뭐, 어쨌든 미수에 그쳤기에 잠깐이나마 목숨만은 살려주었다. 아직 심문해야할 것도 남아있었고.
나는 그에게 마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말하라고 일렀다.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소. 애초에 사냥터를 이쪽으로 옮긴 지 이제 일주차요.
흥, 젖비린내 나는 핏덩이에겐 관심 없소. 본인이 정착할 때부터 어린 인간이 무척 희귀한 마을이었소.
여긴 빌어먹게 촌구석이오. 어떻게 마을에 순결한 처녀를 넷 밖에 안 되는지….
처녀충 흡혈귀는 아주 맹탕이었다.
어떻게 된 게 관심사가 처녀 밖에 없는지, 자신이 잡아먹은 여자들의 숫자만 기억하고 있었다.
"쓸모없는 역겨운 새끼."
…….
그래도 그나마 알아낸 게 있다.
신출내기 흡혈귀와 아캄 마을은 한통속이 아니라는 것.
그 말은 즉슨, 이 마을에 정착한 마족은 따로 있다는 의미였다.
좀스러운 녀석이 있는 건 짐작하고 있었소. 허나, 동족이 침 발라둔 영역이 아니기에 빼앗으면 그만이라고 판단했소.
밤의 귀족이라는 새끼가 하는 짓은 양아치가 따로 없다.
어쨌든 숨어있는 마족은 흡혈귀가 아니라는 모양이다.
나는 허탈해져 한숨을 내뱉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로 생각이 많아진다.
'마족이라….'
마왕은 이미 부활했다.
여신의 신탁이 그리 말하였고, 마족들이 조금씩 준동하고 있음이 그 증거다.
앞으로 삼 년 뒤.
눈 덮힌 산맥너머로 검은 물결이 밀려들고.
굳건하리라 믿었던 인류의 방패, 겨울의 철옹성이 그들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질 것이다.
마족의 군대는 미지의 전염병과 함께 전대륙으로 퍼져나가고.
인류는 중앙대륙으로 남하하는 마족들과 서로의 존망을 건 전쟁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가 바로 원작이 시작되는 본격적인 무대다.
나는 눈을 감고 삼년 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 때면 얼마나 자라있으려나.'
지금은 열살배기.한창 클 나이이니 무럭무럭 자라겠지.게다가 먹는 양이 무시무시해서 아기돼지가 따로 없으니,어쩌면 나보다 커져 버릴지도 모른다.음, 아니 그건 좀 오바인가?
어쨌든 지금보다 키는 좀 크겠지.
말투도 좀 어른스러워지고. 의젓하게 혼자서 자는 버릇도 들 것이다.
그 때 쯤이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일테니, 아직까진 나를 졸졸 따라 다니려나?
어쩌면 사춘기로 나를 애먹일지도 모르지.
사람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그럼 나는 삐질 때를 대비해서, 달콤한 간식을 만드는 법을 배워둬야겠지.
삼 년 뒤.
나는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거고.
아이들은 조금 더 어른이 되어있을 거다.
"……."
결국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다.
고작 삼 년만으로.
아이는 어른이 되거나 하지 않는다. 그 때도 여전히 어리다.
'차라리 바다를 건너서 섬에서 살까?'
만약 전쟁이 난다면, 누구나 한번씩 해봤을 망상.
그런 종류의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차 오른다.
휘말리기 전에 도망치고 싶다. 운명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본인은 모든것을 말했소. 다시는 이 마을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약조하겠소. 아니, 인간을 습격하지 않고 평생 속죄하며 살아가겠소.
잠깐 졸았던 건가.
어느 흡혈귀의 회개가 내 상념을 일깨웠다. 나는 반개한 눈으로 그를 보며 가만히 듣는다.
본인에겐 사랑하는 아내가 있소. 그리고, 배고픔에 굶주린 딸아이가 아비를 기다리고 있소. 부디 선처를 베풀어 살려주시오….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
이는 남자라면, 그리고 한 집안의 가장이라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사연이다.
"그대여, 마족에 대해서 얼마나 아니?"
"글쎄요."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역시나 글로 엿본 세계가 전부를 말하지 않을테니까.
내가 흐릿한 눈으로 보르네오를 바라볼 때,
문득 루비색 눈동자가 내 시선을 막아선 채 내게 물어온다.
"저 자를 동정하니?"
나는 멍하니 레베카의 눈을 바라봤다.
홀릴 정도로 아름다운 눈동자에 비추는 내 모습이 무척 피곤해보였다.
후.
수면 부족이 이토록 무섭다.
귀찮은 일을 얼른 마무리하고 눈이라도 좀 붙여야겠다. 레베카에게 잔소리 듣기 전에.
뭐, 모르는 건 모른다고 제쳐두더라도.
마족에 대해서 몇 가지 정도는 알고 있다. 특히나 그들의 생리 정도를 이해하고 있었다.
[말을 할 수있는 마물.]
이는 이 세계에서의 마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아무리 불쌍하게 눈물을 흘리고, 애원을 하더라도 그 정도에 불과하다.
"아뇨. 저거 개구라인거 다 알고 있어요."
내가 단호한 말에,
보르네오가 발작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거짓이 아니다. 진심으로 본인에겐 사랑하는 가족이….
"번식도 안하는 새끼들이 뭐래."
이들에게 부모와 자식이란 개념은 없다.
마기에 물들어 거짓과 기만에 의해서 만들어질 뿐이므로.
마족은 자기애 외에는 품지 않는다.
따라서 타인을 이해는 하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다.
한편, 나는 흡혈귀의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
"……."
그러므로, 나는 이건 그런 존재다. 라고 되새긴다.
나와 시선이 마주한 보르네오는 전에 없이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쯧, 상대를 잘못 골랐군.
"잘 알고 있구나."
레베카는 내 머리를 살짝 끌어안는다.
이윽고, 그 너머로 불길이 화르르 휩싸이는 것이 보였다. 어느덧 새벽이 지나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