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불을 먹는자(6)
* * *
레베카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말할 것도 없이 곧바로 2층으로 내달렸다.
그리 길지 않은 계단을 오르던 중.
'…이건 또 뭐야.'
무언가가 계단 난간에 축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볼품 없는 모양새가 마치 널어놓은 건어물 같았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지 모르겠다.
뭐, 원체 괴상한 녀석인지라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바람꽃 또한 그를 발견했는지 짤막한 손가락을 쭉 뻗으며 말했다.
"족제비, 저거 왜 저래? 죽었어?"
대뜸 죽었냐니….
어린애가 하는 말이니 악의는 없겠지만 좀 그렇다.
나는 삿대질하는 댕댕이의 정수리를 꾹꾹 누르며 타일렀다.
"얘가 죽었다가 뭐냐? 그런 말하면 못 써."
"끼잉, 더워… 하지마아. 누르지마아!"
쭈그러진 바람꽃이 불편한 듯 아둥바둥거렸다.
나참, 이렇게 질색팔색하니까 괜히 더 골려주고 싶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적당하고 봐준다.
"람람이. 얼굴처럼 예쁘고 고운 말 쓰자."
"흥, 뭐래. 바보, 바보!"
댕댕이는 풀려나자 레베카에게 쪼르르 달려가더니, 그대로 뿅 숨어버렸다.
위대한 늑대치곤 실로 비겁한 모습이다.
나는 피식거리다가, 졸지에 든든한 바람막이 신세가 된 용마망을 보며 말했다.
"먼저 가 있을래요? 전 이거한테 볼일이 있어서."
"그러려무나."
레베카가 바람꽃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간 뒤.
나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난간에 널려있는 녀석을 쳐다봤다.
"뭐하냐 뺀질이. 죽었냐?"
"…시끄러워 죽겠습니다. …난방이 과합니다."
살아있었다.
조금 유감.
"이제야 겨우 잠을 청하나 했는데…."
그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불평 불만을 늘어놨다.
대충 듣자하니, 막 잠들려는 찰나에 웬 노인네가 벌인 방화 때문에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오늘따라 눈그늘이 짙은 놈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근데, 그거 알고 있는가?
나도 밤새 깨어있는데, 이 새끼는 팔자 좋게 자려고 했다.
이거 좀 괘씸하다.
"그래서 왜 여깄는데. 무슨 개수작이야?"
"난간이 시원하더군요."
"…뭐?"
"제가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지체 높은 귀족 신분이던 인간이 한다는 소리가….
내가 황당해 하고 있을 때,
그가 난간에서 내려와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소란입니까?"
"……쯧."
땀에 절어 있음에도 여전히 미남이라서 굉장히 재수가 없었다.
불쌍하긴 개뿔.
언제 기회가 되면 사막에 갖다버리든지 해야겠다.
나는 어두운 감정을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고, 아니 한스 그 친구는 어디 있어?"
"저쪽 방에 놔뒀습니다. 약에 취한 터라."
"잘됐네. 가서 정신 차리게 깨워. 뭔가 알고 있을 거다."
"뭐, 그러지요."
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보면 말귀를 잘 알아 먹어서 은근히 편하다.
하기야, 나사가 빠진 것처럼 보여도 본래 머리 하나는 비범한 녀석이다. 복도에 나와있던 것도 이변을 눈치채고 대기한 것이리라.
"도중에 도망치거나 죽지 않게 주의해. 만약 잘못되면 각오하고."
"후우, 집을 나오면 개고생이라더니…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녀석은 구시렁거리며 흐느적 걸어갔다.
나는 회색에 가까운 청년의 뒤통수를 보며 묘한 감상에 잠겼다.
지하 감옥에서 시작된 악연.
제국 굴지의 검술 명가에서 튀어나온 돌연변이, 희대의 천재 연금술사이자, 원작에서 요주의 세남주 중 한 사람.
시어도어 폰 히텐슈타인.
작중 그의 모습을 말하자면, 광인(?人)에 가까웠다.
사실상 남주라기보다는 악역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인간성이 결여된 자였다. 헌데,
'의외로 사람 같단 말이지.'
작중에서처럼 광기 어린 연금술사의 편린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어떨 때는 그저 유별한 청년으로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저 자도 변하는 걸까?'
아직 모를 일이다. 두고 봐야한다.
지금은 시어도어의 처우를 고민하고 있을 때도 아니고.
나는 감상을 지우고, 그가 걸어간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
"물은 한번에 많이 마시지 말고 자주 마셔. 덥다고 해서 옷 벗으면 안돼. 알았지?"
"응. 알써."
동그란 이마를 훤히 드러낸 데이지가 물을 꼴딱꼴딱 마셨다.
나는 땀으로 반짝거리는 이마를 보며 웃었다.
젖은 앞머리가 미역처럼 달라붙어서 사과머리를 만들어 봤더니, 얘 이마가 동그랗고 예뻐서 그런지 잘 어울렸다.
'이건 잘 어울리는 정도가 아니지.'
왜 엄마들이 애기를 동네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인지 알 것도 같다.
"…피터, 나 안 이상해?"
뭐, 본인은 조금 부끄러운 듯 보이지만.
평소 앞머리가 눈가에 닿을 정도로 길었던 탓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했다.
"아니, 귀여워. 너무 귀여워. 사람이 이렇게 귀여워도 되나? 누가 훔쳐갈까봐 걱정이야.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을 정도로 작고 소중해."
"그, 그만해…."
쏟아지는 칭찬이 부끄러운지.
데이지는 사과처럼 발그레해져 고개를 푹 숙였다. 물론, 앞머리를 넘긴 상태라 수줍게 걸린 미소를 숨길 수 없었지만.
헤헤.
…이걸 어떻게 참아?
긴급 상황인 건 알고 있지만, 지금 당장 퍼스트 클래스로 비행기를 태워주고 싶다. 말만 해! 아저씨가 기내식 다 사줄게.
"그대여, 적당히 하렴."
"네. 아직 한참 남았는데 참으려고요."
"…이제 보니 이것도 병이구나."
레베카가 질린 얼굴로 나를 나무랐다.
그런 그녀는 반쯤 눈이 감긴 레일라를 품에 안고 있었다.
흠냐….
체질적인 문제로 졸음이 많은 그녀는 아직 꿈나라였다.
밤을 지새운 데이지도 잠 못 들 정도로 더운 와중에, 그녀만은 또래 친구들과 다르게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보송보송했다.
"잘 자네요."
"아이에겐 자는 게 일이잖니."
그건 레베카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녀에게 이 정도 열기는 별 거 아닌 모양이다.
'과연, 레드 드래곤인가.'
현숙하여도, 미숙하여도 불에게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나머지 사람들이다.
특히나, 바람꽃과 테오가 걱정이었다.
"아흐으, 찝찝해!"
"더워요오…."
수인족 아이들은 여름철을 맞이한 댕댕이처럼 헥헥거렸다.
아무래도 추운 지방에서만 살아온 아이들이라 그런지 더 견디기 힘들어 보였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줘."
애들이 탈수하지 않게끔 최대한 가볍게 입히고 수시로 물을 마시게끔 했다. 탈출 방법을 떠올리기 전까지는 버텨야하므로.
나는 애들을 추스리고, 밖으로 나와 레베카와 논의했다.
'텔레포트는?'
고도의 마법일수록 집중과 안정된 환경을 필요로 했다.
불을 막는 결계를 펼치면서 전이 마법을 준비하는 기행에 가까웠다. 애초에 환자인 테오에게 부담을 주는 터라 최후의 수단이었다.
'지상으로 강행돌파는?'
몸에 불을 붙인 수백명의 인간들이 길을 막고 있다.
말 그대로 인간 방벽이다. 정신 나간 발상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이었다. 제 아무리 레베카라도 혼자서 여러 사람을 지키며 길을 뚫는 것은 부담스러울 일이었다.
'생각보다 안 풀리네.'
하지만 그렇다고 근심하지 않는다.
어차피 레베카가 있으니 어떻게든 됐겠지, 라며.
"……."
문득, 입안에서 지독하게 쓰라린 맛이 났다.
애써 유쾌함으로 포장하고 있던, 자신의 무능력함이 사무치게 다가왔다.지금껏 외면해온 부채감이, 이대로는 안된다는 의문과 분노가 물 밀듯이 밀려든다.
'시발, 진짜 쓸모 없네….'
이런 내가, 이런 무능력한 화전민의 몸으로 이 세계에 피랍된 데는 의미가 있던 걸까?
한순간에 변해버린 삶에 적응하기 바빴기에.
그 누구도 내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언젠가 진짜 현실로 돌아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기에.
이대로면 안주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어차피 내 삶이 아니므로.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고 한발자국 떨어져 있었다.
어차피 나는 이방인이며, 방관자니까.
정말로?
내 안에 무언가가 어긋나 있음을 깨닫는다.
이 사고방식이 커다란 결함이 있다는 것을.
'정녕, 내가 방관자인가?'
'내가 이 곳에 온 이유는? 누가 나를 보낸 거지?'
'어째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거지?'
여지껏 당연한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나는.
…이게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인가.
페이지에 쓰이지 못한 못한 공백이 여실히 느껴졌다.
마치 조각된 것처럼, 생각과 감정에 모순과 기만이 깃들어 있다.
'내 진짜 이름은….'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은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나란 무엇인가.
그 근원적인 물음에.
숨을 쉬는 법을 잊은 것처럼 서서히 질식하는 기분이었다.
"걱정하지 마렴."
부드러운 온기가 내 주먹 위를 감싼다.
나긋한 목소리에는 나를 향한 염려와 배려가 가득 담겨 있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녀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부디.
내 무책임한 생각들이 그녀에게 닿지 않기를 빌었다.
나는 달라져야한다.
**
마음에 걸리는 문제를 자각했다.
하지만 고민은 나중으로 미뤄야한다.
실시간으로 오븐 구이가 되는 중이므로.
"걱정하지 마렴. 여차하면 본신을 해방하마."
"본신을요?"
레베카의 본신, 드래곤 폼.
전에 한 번쯤 보고 싶어서 그녀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미안하구나. 함부로 드러낼만한 모습이 아니란다.]
당시 레베카는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는 것을 굉장히 꺼려했다.
단순히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사정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늘이라면 손쉽게 벗어날 수 있겠지."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키지 않는 수단이라도 제시하는 듯 보였다.
"확실할 것 같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레베카에게 받은 영향일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본신으로 돌아가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훗날 그녀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그건 조금만 더 생각해보죠."
나는 상념을 떨쳐내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구석에 멀뚱히 서서 혼자서 히죽거리는 남자에게 물었다.
"뺀질이, 뭔가 알아낸 거 있냐?"
일렁이는 푸른 눈동자를 나를 향한다.
"가연물이 없어도 꺼지지 않는 불이라…. 나름 흥미로우나, 관심을 가질만한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무어라 재촉하기 전에,
시어도어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물론, 맨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허. 그래서 지금 임금 협상이라도 하자고?"
"노력에는 정당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요. 아, 돈은 딱히 필요없습니다."
"……."
내가 지그시 노려보자, 놈이 보란듯이 웃었다.
이래서 검은 머리… 아니 흰머리….
음, 어쨌든 기껏 재워주고 먹여줬더니 머리까지 기어오른다.
'대가라고….'
이 정신 나간 연금술사가 뭘 요구할 지 짐작 되지 않는다.
데이지며, 테오, 그리고 레일라며, 레베카… 내 주변에는 그가 욕망할 만한 존재가 너무 많다.
나는 그들의 털끝 하나 그 무엇도 내어주고 싶지 않다.
"집어 치워. 나갈 방법은 많아. 따뜻한 거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 참에 실컷 즐겨봐."
지옥에 떨어지면 실로 볼만할 것이다.
나는 탁자에 단검을 내리꽂으며 읊조렸다.
"…흠."
연금술사는 무기질적인 눈으로 내 위아래를 빠르게 살폈다.
예의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기이한 재주를 사용하는 것이리라.
이윽고, 시어도어는 양 손바닥을 내보이더니 퍽이나 유쾌한 태도로 말한다.
"농담입니다. 하하."
진심이었을 것이다.
저 푸른 눈동자에 찌꺼기처럼 남은 감정은 엄연히 욕망이라고 부를만한 종류의 것이므로.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걸까.
나는 우울한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갈무리한다.
"그래서 선택은."
"한스 그 자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시어도어가 여상한 목소리로 운을 띄웠다.
"듣자하니, 강도 혐의로 수배 생활을 하다가 이 마을을 점령한 '무리'에 합류했더군요. 입단한 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자였습니다. 당신께 덤벼든 것도 공을 세우기 위해서 라더군요."
뭐, 결과는 비극이지만요.
놈이 어깨를 으쓱이는 행동이 영 꼴보기 싫었다.
"그딴 사연 따윈 알 바 아니고. 본론부터."
"그나마 신경쓰이는 것은."
이 마을을 점령한 자들이 '어떤 신'을 모신다는 것.
그리고, 신의 가호를 새기면 불에 타지 않고 고난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을 제물로 바쳐야한다는 것 정도였다.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네.'
특히나 어린아이를 산제물로 바친다는 점에서 가장 악질이다.
"저들은 그 문신을 신의 가호라고 부르더군요. 헛소리라고 여겼지만. 음, 초월적인 뭔가가 있긴 한 모양입니다."
시어도어는 붉은 광원이 보이는 밖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결계 위에 똬리를 틀었던 불꽃의 뱀이 어느덧 작은 태양처럼 변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경악해 중얼거렸다.
"정말로 신…."
"아니, 신이라기엔 너무 저급한 존재다. 수 백의 생명을 태워가면서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니. 저것은, 껍데기에 불과하구나."
레베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그와 관련된 엇비슷한 무언가라고 할 수 있겠군요."
푸른눈의 연금술사는 덧붙여 말한다.
불은 태양신과 관련이 있으며, 저것은 그로부터 파생된 존재이거나, 지금은 사라진 고대신이 전락한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인신공양은 과격하긴 하나 신앙을 축적하는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뭐, 사실 신앙이라기보단 주술에, 그보다 근원적으로 연금술에 가깝군요. 등가교환이라는 말 아십니까?"
대가 없는 힘은 없다.
예로부터 순수한 어린아이는 가장 뛰어난 촉매이자 제물로 쓰인다. 저 권능의 근원은 생명이었다.
"결국 따지고보면 저것은 주술이기에 어딘가에 주력이 되는 주구가 있을 겁니다. 이른바, 성물 같은. 어쩌면 제단일지도 모르겠군요. 그것의 정체성을 훼손하면 저 권능 또한 형체를 잃을 것입니다."
뭐지… 이상한 일이다.
왜 이 자식이 똑똑해 보이지….
"성물을 훼손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신앙을 더럽히는 존재. 타락의 상징. 그 중에서도 태양과 척을 진 어둠의 일족의 잔해라면, 불완적한 신격 정도는 더럽히기 충분할 것입니다.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흡혈귀.
그 놈이 마을을 헤집고 다닐 수 있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저 불의 주체는 흡혈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더러워서 피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시어도어의 주둥이에서 뭔가 그럴싸한 용어와 논리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나,
'이게, 모라는거지…?'
내 연약한 두뇌는 파업 상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새어나가기 바빴다.
'시, 시어도어 주제에….'
나는 묘한 패배감을 곱씹으며.
이 정신 나간 연금술사에 대한 평가를 대폭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
갑자기 시작된 시어도어 선생님의 주술 강의.
잠깐 넋을 잃었던 나는 간신히 그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래서 다 좋다 이거야. 그래서, 그게 뭔데? 어디 있는데?"
"그거 말입니까? 흠."
진리와 신비를 쫓는 연금술사는,
땀벅벅인 여유로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더니.
"저야, 모르지요."
몰?루.
하고 장황한 강의에 종지부를 찍었다.
"왜, 왜 몰라? 니가 모르면 어떻게 해?"
"아니,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따질려면 불구자에게 가서 따지십시오. 정보의 출처는 그곳에 있습니다."
일타 강사인 줄 알고 봤더니 순 사짜였다.
내 옆에서 흥미로 삼아 듣고 있던 레베카도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용두사미가 따로 없구나."
내 말이.
슬슬 공기가 숨쉬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70도에 달하는 불가마도 즐기는 나조차 견디기 버거웠다. 이제 정말로 빠져나갈 각을 재야한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가.
눈앞이 살짝 어지럽다.
아빠? 아빠!
언제 일어났는지.
잠에서 깬 레일라가 내게 다가와 칭얼거리고 있었다.
"아이고, 내 땀 다 묻었네…. 이러다가 레베카한테 혼난다? 엄마한테 가 있어."
도리도리!
놀아달라는 걸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데….
"미안해. 아빠 지금 바빠…. 나중에 놀자."
아…!
"……?!"
두쌍의 루비색 눈동자가 동그래진다.
환하게 웃던 레일라가 도리도리하며 표정을 고치더니, 재차 입을 뻐금뻐금거렸다.
…뽀뽀?
해달라는 건 절대로 아닐테고.
보자, 입모양이….
"그, 림? 그림이니?"
맞아요!
레일라가 정답이라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동시에 새하얀 머리카락이 출렁인다.
무척 아름다우나 색채를 잃어버린 듯한 색감이 스르륵 흩뿌려진다.
그러나, 그 끝자락에 달했을 때, 무언가 달라진 것이 보였다.
조금이지만 물들어 있었다.
마치 가을의 단풍처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