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28화. 데뷔전(5)
* * *
탁 탁 탁
"후욱 후욱."
나는 지금 트레드밀 런닝머신위에서 열나게 뛰고 있다. 오늘은 FA컵 5라운드 하루 전. 이미 지난 리그 경기는 1군 선수들이 힘내서 승리를 따내었다.
다들 그렇게 나에게 선배로써 자존심을 챙기고 싶었던건가.
나는 속도를 12로 놓고 빠르게 뛰고 있었다.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아서 일까 자꾸 남자였을 때의 인생이 머리에 맴돈다.
'더 이상 그렇게 한심하게 살고 싶지 않아.'
달리면 달릴 수록 호흡이 가팔라져 잡생각이 적어진다. 이러한 상황이니 오히여 더욱 더 오래 달리고 싶은 마음만든다.
"뭐하는건가 지금!!"
체력 코치가 구장내 체력 단련 시설에 들어오더니 나를 보고 대뜸 소리를 친다.
"자네 오늘 하루 휴식이 부여 되지 않았나!! 바로 돌아가게!!"
나는 런닝 머신을 끄고 체력 코치를 쳐다 보았다.
'이런.. 이 시간엔 팀 훈련중이라 필드에 나가있을 줄 알았는데...'
"이건 지시불이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마음이 이해가 가니 이번만 넘어 가도록 하겠네."
체력 코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니, 그가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다는게 느껴졌다.
"땡큐."
나는 체력 코치에게 고개를 숙이고 구장 밖으로 나왔다.
"헤이!"
"...음?"
트레이닝 백을 어깨에 걸치고 문에서 밖으로 걸어가며 철만 아저씨께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톰?"
퍽!!
"크허억!!"
"...?!"
나는 뒤를 쳐다보니 낯이 익은 곰과 닮은 덩치 큰 톰녀석을 보고는 냅다 달려들어 가랑이 사이를 차려고 했지만, 남성의 본능이랄까 위험지대에 드리운 거대한 위협을 감지하고 급히 다리를 오므리니 무릎 안쪽을 걷어차게 되었다.
"너 내 소문내고 다니냐?"
"오... 영어 좀 배웠나보네?"
"...조금은"
톰의 뒤에서 제리가 걸어왔다. 역시 이 놈은 톰이 뒤지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아하니 제대로 된 콤비인 듯 하다. 그 왜 미국 애니메이션 처럼.
"...크윽, 무슨 소리야 키티... 도대체 갑자기 왜 때리는 거야?"
"왜긴 왜야. 너 우리 주장한테 내 얘기 다 떠들어댔지? 입단 테스트에 있었을 때 일을 다 알고 있더만!"
이미 우리 팀의 라커룸은 매일 같이 내 썰로 신나게 떠들고 있다.
매일 같이 똑같은 일상에 던져진 새로운 떡밥이라 그런가, 남정네들이 낄낄 대며 웃으니 오히려 정다운 느낌이 들긴 한다.
"...왜 말 할 수도있지! 어차피 내가 아니였더라도 다 알게 됬을텐데? 바로 우리 키티의 리즈 시절인데!"
"리즈 시절이라니... 겨우 2주전 이야기를..."
나는 머리를 부여 잡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내일 경기에 선발로 출전 한다며? 축하해!"
"아.. 너희가 입단하게 된 것도 몰랐네... 너희도 축하해."
나는 이번 FA컵 5라운드에 이 녀석들이 출전 할 줄만 알았다. 버리는 경기라고 하지 않았었나? 선발 라인업을 봤을 때 대부분 주전 선수들이던데...
"너만 아니였다면 아마 우리가 데뷔하게 됬을 텐데... 이젠 상관없는 일이지. 축하해! 우릴 대신해서 골을 넣어야 해! 못 넣으면 이 동네 방네 별 이야기를 다 떠들고 다니고 말테니까!"
"톰 이 자식이라면 진짜 하고 말테니 조심하라고."
"하하하 그거야 해봐야 알겠지... 톰. 만약에 내 이야기가 어디서 와전되서 내 귀에 들려오게 된다면, 바로 니 불알을 터트려 버리러 찾아 갈거야."
겨우 2주 정도 영어 공부를 했는데. 대단한 분과 1대1 과외를 해서 그런가. 대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씩 이해가 되긴한다. 근데 중간 중간 단어를 못알아 들으니 조금 답답하긴하네.
이미 통역사 언니는 내 비서를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며 교육을 받으러 잠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나저나 그 미친 미키 새끼는?"
"아... 그 놈?"
제리가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내 뒤를 쳐다보았다.
나는 소름이 돋는 느낌과 동시에 뒤로 발차기를 날렸다.
"...크헉!! 어떻게 안거지..."
"...미친 새끼. 시도때도 없이 날 껴안으려 하는건 여전하네."
아참 내가 말 안했나. 영어 과외 해주시는 분에게 부탁드린것이 하나 있다. 욕을 빨리 가르쳐 달라고, 당황한 영어 선생님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그 왜 축구 경기에서 더티 토크가 심하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가뜩이나 몸이 여자로 변해서 무시받을 가능성이 있는데 주댕이로 먼저 기선 제압을 해야지 않겠는가.
몸뚱이로도 주댕이로도 질 생각은 없다. 난 남자니까.
"너희 지금 다 같이 퇴근하는거야? 내일 경기 보러 올거지?"
"당연하지 이쁜이. 우리가 네 경기를 보러 가지 않으면 어딜가겠어?"
"파티에 여자나 꼬시러 가겠지."
"하하하! 벌써 날 잘 아는 것 같은데? 우리가 좀 통하는 느낌인가?"
"꺼져."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오늘 감독님이 기자회견하러 가셨는데, 신경쓰이지 않아? 아마 지금쯤 하고 있으실 텐데..."
톰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기자회견? 아 기자회견."
갑자기 어려운 단어가 나오네.
"난 신경쓰지않아."
"오..."
"제리, 이쁜이를 좀 본받으는게 어때? 너 입단하고 나서 긴장해가지고 사람들 한테 말도 제대..."
"씨발 닥쳐!"
제리가 미키를 거칠게 밀고서는 자신의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아무튼 내일 경기. 지켜볼께"
"잘해 보라고~"
나는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는 눈을 감았다.
'후우...'
또 다시 안좋은 기억이 머릿속을 침투하려한다.
'이걸 이겨내려면 경기를 잘 해내야만해.'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 과거의 처참한 내가 새로운 나로 변한 간극의 차를 줄여 줄거라 기대한다.
***
찰칵 찰칵!
FA컵 5라운드 경기전 기자회견장
또다시 기자들이 30명 이상 모였다.
이유는 당연하지 않은가. 바로 한 선수 때문이겠지.
"안녕하십니까. 웰링의 알렉스 감독입니다. 바로 시작하시죠."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온다.
"네 영국 공영 방송 기자입니다."
BBC 스포츠인가. 매일 같이 지역 기자들만 상대하다가 이렇게 BBC쪽 기자들이 오는건 빅 클럽과의 경기가 아니면 스캔들 때운이였는데.
"이번 FA컵 5라운드에서 첼시를 상대하게 되셨습니다. 선발 라인업은 기존과 동일하게 운영하실 생각이십니까?"
이 기자는 돌려말했지만, 확실하게 이야기 한거다. 이지혜를 선발 출전 시킬거냐고. 하지만 사실대로 말해 줄수는 없지. 경기는 이미 시작된 거니까.
"선발 라인업을 기자회견에서 밝힐 생각은 없습니다."
"모두가 원하는 대답이 아닌데요? 확실하게 말씀해 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제 대답은 동일 합니다. 기자회견에서 제 라인업과 전술을 말 할 생각은 없습니다."
술렁 술렁
"웰링 지역 기자입니다."
다음 기자 부터는 내가 이지혜 선수에 대해 말 할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 챘는지 형식적인 질문만 해대기 시작했다.
***
"수고 하셨습니다. 감독님"
수석 코치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뭐, 매일 같이 하는일이 아닌가. 난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도 꽤나 즐기는 편이고."
"흠.. 아마 첼시는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이지혜 선수를 선발로 내세울 거라는 걸 말이죠."
"당연하지. 빅 클럽이 괜히 빅 클럽이겠나. 아마 팀 훈련하는 모습도 치켜 봤을 수도 있네."
"...오늘 트레이닝 센터에 이지혜 선수가 운동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허어. 그것 참. 내가 그렇게 이유를 설명 했는데도."
모든 축구 선수는 데뷔전을 치른다. 데뷔전은 당연하게도 선수들을 흥분하게 만든다. 이유는 당연하지 않나 자신의 뛰어남을 구장을 차지하고 있는 팬들에게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이 데뷔전을 치를 때 이런저런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별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들의 컨디션은 100프로를 넘어서 120프로 150프로까지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근데 문제는 이 올라간 120프로 150프로의 컨디션이 문제다.
긁히는 날이라는 말은 베테랑 선수들에게 통하는 말이고, 자신이 흥분했다는 사실을 잘 모른채 경기를 하다보면 과욕을 저지르고 만다.
드리블을 지구 끝 까지 치고 가려고 하거나, 심각한 태클로 상대 선수를 부상시키거나, 결국 혼자만 여기저기 뛰어다녀 기진맥진해서 금새 교체가 되거나.
경기전 휴식을 부여한 이유는 머리를 식히라고 한 것이다.
'아마 여자로써 남성 리그 데뷔천을 치른다는게 고양감을 느끼게 하겠지.'
지혜는 전혀 다른 생각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감독님. 그런데 왜 이번 라인업은 주전 선수 대부분으로 채워 넣으신 겁니까? 설마..."
"그래, 난 이번 경기를 버리지 않았네. 이기지 못할 수 도 있겠지만... 나는 주전 선수들을 믿어 보기로 결정했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처참하게 박살이 날 수도 있구요."
"그만! 나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우리는 프로가 아닌가. 결국 우리도 제 가치를 증명 해내야만 하겠지, 이지혜 선수 혼자만이 프리미어리그를 쳐다 볼 수는 없겠지."
그렇다. 나도 결국 더 위를 쳐다보게 된것인가.
아직은 확신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달려보는 것도 재밌지 않겠는가,
지난 몇 년 처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