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35화. 휴식의 날(2)
* * *
영국의 날씨는 괴랄하다.
유명하지 않은가? 비가 시도때도 없이 내린다.
일기예보가 거의 맞지 않는 동네라고 보면된다. 비가 오는 날이 대부분이라 사람들은 우산같은건 챙기지도 않는다.
"..."
투두두둑..
나랑 가은 언니 그리고 수아가 갓즈니월드에 도착했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거지같은 런던, 일단 실내 파크 부터 돌아다니면 되징!"
가은 언니가 애써 웃으며 우리를 이끌고 매표소로 걸어갔다.
눈 앞에 거대한 갓즈니 랜드가 보인다. 나는 예전 남자였을 때도 갓즈니 랜드에 한번도 가보질 못했다.
갓즈니 영화에 나오는 그 유명한 모양의 성이 웅장하게 서있는게 멋있긴한데...
"비가오니까 저 성이 좀 무서워 보이지 않아?"
"하하하 그러네."
"그런데 날씨도 별로 안좋고, 평일인데도 사람이 어느정도 있네?"
"그러게.. 사실 난 오늘 오면 셋이서 거의 독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갓즈니 랜드라는 건가..."
우리는 우산을 쓰지도 않고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줄을 서서 기다렸다.
"세분이신가요? 네... 전부 성인이시고요? 신분증이나 여권 있으신가요?"
'와... 비싸네.'
갓즈니 월드 이용권이 상당히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생각 보다 더 비싸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래도 비를 막는 시설이 잘되어있네. 영국이라서 그런가?'
비를 가려주는 투명한 천장에 투둑투둑 빗방울이 떨어지는게 보인다.
오늘 놀러오는 동안에도 날씨가 우중충 해서 기분이 꿀꿀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보니 뭔가 분위기가 운치있다고 해야 할까.
놀이동산안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동화 노래가 감수성을 자극하는 듯 하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들뜨는 기분.
"자!! 일단 아침 일찍 부터 왔으니까~ 밥을 먼저 먹으러 가자~"
"그래 언니. 여기 안에 맹도널드가 있을거야."
"...아침 부터 햄버거?"
"왜! 든든하고 좋지!"
"...지혜 너 그렇게 먹어도 괜찮은거야? 관리 같은건? 구단에서 뭐라고 안해?"
"하하하 걱정마 언니, 먹을 거는 이미 허락을 다 받아놨다구~ 체내 영양 분석도 끝났는데, 당분간은 먹고 싶으거 먹어도 별 영향 없을 거라더라. 과식만 하지말래."
"에이~ 먹고 걸어다니면 다 소화되서 괜찮을 거야~"
옆에서 수아도 내 편을 들어준다.
"그래 그래 맹모닝이나 먹어야지.. 가자!"
***
"혹시 한국인 임미까?!"
왠 10대 중반정도 되어 보이는 금발 긴생머리 백인 여자애가 앉아서 맥모닝을 먹으며 휴식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와 어색한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
가은 언니가 아는 사이냐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하긴. 여기서 가장 오래 런던에서 지낸건 나뿐이니까.
그런데 처음 보는 여자애인데...
"어... 우리가 한국인은 맞는데..."
"와!! 반가워요!! 전 한국을 너무 조아해요우!!"
"엠마! 뭐하는 거니?"
그녀의 친구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 누구세요?"
".....어?! 어? 설마... 아니지?"
우리를 보며 물음을 던진건 금발의 단발 꼬맹이와 놀라는 친구는 꽤 운동을 하던 아이 처럼 보이는 갈색 포니테일 주근깨 꼬맹이 였다.
"설마..."
"...? 무슨일이야? 카렌"
긴 생머리는 엠마고 포니테일은 카렌인가.
"그런데... 왜그러니 얘들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살짝 숙여 아이들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내 키가 무려 182cm에 신발까지 착용하니 10대 중반 밖에 안되보이는 애기들은 너무나 작아 보였기 때문이다.
"어...어 맞는것 같은데... 이름이 뭐더라..."
포니테일이 급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뭔가를 검색 하고 있었다.
"얘는 한국 아이돌을 좋아해서요.. 동양인들만 보면 맨날 말걸고 한국인이냐고 그래요."
"와.. 근데 키 큰 언니 아이돌들 보다 이쁜것 같은데?"
"하하...고맙네..."
전혀 고맙지 않은 칭찬이다. 난 아이돌들 보다 이쁘고 싶지 않았다.
"아!!! 이쥐해!!! 맞아!!!!"
"야! 시끄러워.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포니테일을 휭휭 휘두르며 방방뛰는 소녀는 내게 다가와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웰링의 주전 스트라이커!! 맞죠 언니?"
"...어 용캐도 알아봤네. 한경기 밖에 안했는데."
"꺄아아아악!!!"
나는 놀라서 주변을 둘러 보았는데, 가게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수근거리는게 여길 빨리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아... 언니 우린 첼시 팬들이에요. 쟤 카렌은 첼시의 유소년 클럽에서 축구하고 있구요."
"?!"
나는 놀라고 말았다.
"아... 첼시 팬이라고? 그것 참 미안하게 됬네..."
"첼시 팬이긴 하지만, 웰링이 우리 라이벌도 아니고! 언니가 멋있어서 괜찮아요!"
영국은 어린애들도 홀리건이 많다는데, 꽤나 착한 아이들 일지도 모른다.
"아니에요! 요새 첼시 선수놈들 좀 자만에 빠진 것 같은데, 크게 혼내줘서 이제 잘할 거에요."
"하하하하!!"
나는 꼬마가 할만한 소리가 아닌 이야기를 듣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축구를 잘해요?"
카렌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에게 물어보았다.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운동해서 그렇지."
"풉"
고개를 휙 돌리니 가은 언니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아.. 카렌이 축구를 잘하고 싶나 보구나?"
"네!! 언니 처럼 멋진 선수가 되고 싶어요!"
확실히 유소년에는 여자고 남자고 구별 없이 많이들 뛴다고들 하지. 어릴때 피지컬은 여자가 더 뛰어 날때가 있다고도 하고,
"너희 혹시 몇 살이니?"
"13살이에요. 아직 다들 생일도 안지났어요!"
15살 애들인가... 카렌이라고 했나? 몸이 꽤나 튼실해 보이는데?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나중에 팁 같은거 알려주시면 안돼요?"
"그래.. 원래 팬들 한테 번호를 주면 안된다고 하지만.. 미래의 대단한 축구 선수가 될 카렌 선수랑 번호 교환을 하는건 괜찮겠지?"
"꺄아아악!! 사랑해요 언니!"
카렌과 번호를 교환하고 잘 지내라며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카렌이 내 옷자락을 붙잡는 걸 느꼈다.
"사인해 주세요 언니!"
"..."
사...사인이라고?
밤새노력해서 만든 [이지혜입니다. ver 2]가 가은 언니에게 쌍욕을 먹고 빠꾸를 먹었다.
"하...하하. 나 지금 펜 같은거 없는데."
"그럼 사진이라도 찍어주세요!!"
"그래 그래"
나는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 주고 아이들 한테서 겨우 벗어났다.
왠지 또 만날 것 같은 애들이네. 느낌이란게 꽤 잘 맞는단 말이지.
***
"어? 수아야 뭐해?"
나는 수아가 여러가지 물건을 주섬 주섬 만지고 있길래 다가가서 물어 보았다.
"...아! 지혜야 나도 꽤 오랬동안 지혜 방송을 못봤거든! 그래서... 짠!"
"셀카봉이네?"
"맞아! 셀카봉이지."
'이걸 아직도 쓴단 말이야?'
"이거 꽤 좋은 거라서 봉에 여러 가지 기능이 많이 붙어있어!"
그래도 세상이 변한건 있긴 한가보다. 이렇게 자잘한 부분에서 발전한 모습이 보이고 있으니까.
"자자 일단 바로 생방을 킬 생각은 없어~ 우리끼리 좀 놀다가 하자!"
"음... 밥을 먹고 나오니까. 사람들이 좀 늘어났네."
비도 그쳤고. 안은 따듯한 놀이동산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조금씩 나들이를 나오나 보다.
"배가 좀 부르니까 걸어다니자!"
우리 셋은 그렇게 이리 저리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며 휴식을 듬뿍 즐겼다.
[오랜만입니다. 마리입니다.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마붕이들. 잘 지내셨나요?"
나는 셀카봉을 들고 인사를 했다.
와ㅏㅏㅏㅏㅏㅏㅏㅏㅏ
야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이게 대체 얼마만이누?
눈나 방송 안켜도 돼
앞으로 축구 방송할 때만 봐도 행복하다고...
우린 눈나만 행복 하면 돼...
ㅋㅋㅋㅋㅋㅋㅋㅋ 물소쉑 이 악물고 괜찮은 척하네
근데 ㄹㅇ 한국에서 방송할 때가 그립다...
얼마나 지났다고 그립대 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수아랑 가은 언니랑 갓즈니 랜드에 놀러 왔어요!"
?
이 눈나가 축구 방송을 안한다고?
세상이 망할려고 그러나..
하늘이 심하게 흐리긴 하네...
투수주제에 오래 살긴 했지..
"아니 여러분! 놀러 온김에 여러분이랑 이야기 좀 하려고 했지! 마붕이들아 이제 월드 클래스가 될 나님인데 앞으로 보기 어려울거 아냐~"
주접 꼬라지를 보니 마리눈나가 맞는 거 같은데
주접 컷 하고 싶은데 후원 왜 또 막혀 있냐?
"후원은 접어 두시고~ 야방이라서 그냥 안켰어."
ㄵ
ㄹㅇ 노잼이네
이게 수금 각이였는데 ㅋㅋㅋㅋㅋ
"나 너희 돈 필요없다."
"아하하하하!!!"
수아가 옆에서 내가 주접을 떠는 꼬라지를 보니 배를 잡고 웃는다.
"안녕하세요 마붕이들! 이번엔 제가 지혜네 방에 찾아 왔네요!"
수하
이 누추한 곳에 귀하신 분이
ㄹㅇ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날씨가 흐리긴 한데, 건물 안은 따뜻해서 사람들이 꽤 나온 듯 해요. 여기 주변 주민들에겐 익숙한 날씨인가 봐요."
'하긴 맨날 비가 오다 말다 오다 말이 이 지랄을 해대니 익숙해 질만 하지.'
"아하하하!! 님들 저기봐요 누가 축구에 미친 나라 아니랄까봐 저게 여기에도 잔뜩 있네."
음료수와 먹을 거리를 파는 이쁘게 꾸며진 가게들 사이로 흔히들 아는 슈팅 기계가 몇개 놓여 있었다.
슬슬 점심시간이 먹을 시간이 되가서 그런지 주변에 사람이 많다.
"여러분 축구하면 이지혜 아닙니까?"
수아가 나를 보며 눈치를 줬다.
"..."
내가 슈팅 기계 쪽을 바라보니 20대 정도 되어보이는 백인 남자들이 공을 차며 낄낄 거리고 있다.
'뭐... 내기들을 하고 있나보지'
"하아... 우리 내기 할까요? 점수 컷트라인을 걸고 내가 못넘으면 무슨 벌칙 같은거 받기로!"
"오! 좋다! 여러분 벌칙 적어봐요!"
가은 언니와 수아가 채팅창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아! 이거 좋다! 점수 못넘으면 젤 귀여운 동물 귀 끼고 돌아다니기!"
"...그건 좀."
나에게도 한계라는게 존재한다. 아마 동물 귀따위를 착용한다면... 그 장면을 누군가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올려서 팀동료들이 발견한다면...
"제발 다른건..."
"이걸로!! 지혜는 프로니까 컷트라인 900점으로가자!"
"900?! 안돼!"
"지혜는 이 정돈 쉬울 것 같은데~"
하긴 마리눈나 정도면 공 터치고도 남지 않을까?
눈나 킹전자산이라고
"...그런가? 사실 이거 내가 한번도 안해봐서"
님 정도면 ㄹㅇ 저거 터질 듯 ㅋㅋㄹㅃㅃ
999점 나오지 않을까?
"크흠 그렇지? 내가 이정도 가지고 900점도 못 넘지는 않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 태세전환보소
ㄹㅇ 못 넘기만 해봐 클립 다 따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슈팅기계로 슬며시 다가가니 공을 차던 친구들이 나를 보고 자기들 끼리 눈치를 보더니 자리를 비켜 준다.
내가 외투를 벗고 가은 언니에게 전해주자 티셔츠가 딱 달라붙어 숨겨져 있는 내 몸매가 고스란히 들어난다.
"...오 저 여자 봐"
"...뭐야 핏 걸(fit girl*헬스녀)인가?"
"몸매 장난아닌데?"
'왠지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자자 지혜야 준비 됬어? 돈 넣을게?"
가은 언니가 다가와 기계에 동전을 넣었다.
띠리리링!!
텅!
막대에 달려있는 공이 강하게 올라왔다.
"으음... 기회는 단 한번?"
나는 수아를 바라보고 손가락을 폈다.
"에이 유치하게 왜 이래. 단 한번!"
"후우... 그래... 찰게..."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뒤로 좀 물러 서서 프리킥 스텝을 밟았다.
턱
턱
턱
콰아앙!!!
"!!!"
"홀리몰리"
"왓더퍽?"
띠리리리리리
푸쉬이이이....
막대에 매달린 공이 찢어졌는지 터져버렸고, 막대가 살짝 휘었는지 기계에 박혀버려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
"지..지혜야..."
"이...이건 성공이지?"
실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