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37화. MK던스 전(1)
* * *
S사 방송국 스포츠국 국장실
"..."
콰앙!!
커칠게 서류철을 내리치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진다.
국장 김경철.
멋진 검은색 명패에 금으로된 장식들이 어우려저있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의 위치가 어떠한지 보여주는듯 했다.
"지금 국내 축구팬들의 반응이 어마어마하네. 자네도 알고있겠지?"
리그1 중계권. 단 한명때문에 리그1 팀인 웰링의 중계권을 구매하지않겠냐는 연락을 약 한달 전부터 받았다. 당연하게도 거들떠도 보지않았지만...
'미친... FA컵에서 대박을 터트릴 줄은 꿈에도 몰랐지!'
이미 시청자 게시판은 난리가 난 상태다. 물론 그 수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시간이 지난다면 이 불씨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것이다.
[지금 투위치에서 FA컵 방송을 하는데 여기선 안함? 맨날 하이라이트만 방송하네...]
[경기 진짜 대박인데. 중계 해주실 생각 없나요?]
[와... 이걸 안해주네]
하루동안 올라온 게시글이 대략 이런 반응이다. 이게 일주일만 넘어가도 파급력이 어마어마 할 것이다.
"이피디 자네 짬밥이 얼마나 됬더라?"
"...5년이 조금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럼 씨발! 이런건 미리미리 확인을 해놨어야지!"
리그1이라도 해외파다. 현재 유럽 각지에 나가있는 해외파가 많아 일일히 중계를 하고있는데 이 대어를 놓쳤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만 할지도 모른다.
"...말도안돼는 소리였다고 생각한거. 다들 알지 않습니까?
"하아... 여자 선수가 리그1에서 뛴다니 그 누가 상상이라도 할 줄알았겠냐고."
이미 입단 인터뷰를 진행했을때 국내에서 9시뉴스에 나올 정도였다. 단 몇초뿐이였지만, 이미 본 사람들은 다 봤다는 뜻이다.
"그.. 개인방송을 얼마나 봤다고 했지?"
"...10만이 넘었다고 합니다."
쾅!!!
"그깟 개인방송에서 10만명이나 경기를 봤네. 대부분의 축구팬과 소문을 듣고 찾아간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소리야! 그걸 우리 방송국에서 중계를 했다면..."
FA컵 5라운드. 첼시 대 웰링. 여파는 영국을 강타하고 바다를 건너 한국까지 덥친것이다.
"...아마 다른 방송국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겁니다. 우리가 먼저 계약을 하면 오히려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아... 하고는 있지... 이미 전화가 불이나도록 때리고 있는데..."
"왜 그러십니까?"
이피디가 불안한지 손을 앞에 곱게 모으고 어깨를 살짝 떨고 있었다.
"웰링에서 부르는 중계권료 값도 비싸지만 우리 이사진들의 반응이 별로 안좋네.."
"예? 갑자기 이사님들이 왜..."
"일단 리그1이라는게 문제이기도 해. 대회 경기 말고는 큰 이익을 못 볼거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 하네."
"그런 말도안돼는...!"
스포츠 업계가 어떤 동네인가. 그야말로 국뽕에 살고 국뽕에 죽는 동네다. 언제 방송국 스포츠국들이 국뽕에 가치를 매기며 살아왔다고...
"...이러다가 K방송국에 넘어갈 수도 있겠어. 그럼 최악인데..."
국영방송국이라면 이런 고민도 하지않고 바로 지르겠지... 그래도 너무 큰 금액을 웰링이 제시한다면 주춤하긴 할테다.
"확실히 그 클럽에서 이... 뭐더라?"
"이지혜입니다."
"그래 이지혜. 그 선수를 보석으로 생각하긴 하나 보더군. 확실하게 돈을 뽑아 내려고 하는 모양이야."
"..."
탁 탁
조용한 사무실에 펜을 책상에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장 좋은건 그 이지혜 선수가 계속 경기를 터트려주는 건데..."
"그렇죠. 그럼 이사님들을 확실하게 설득 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근데 지금도 시청률은 잘 나올 거라고 본부에선 판단하고 있습니다."
"...본부놈들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나?"
"네. 무려 전무후무한 한국인 여성 프리미어 리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미리 작업을 쳐 놓고 싶어하는 듯 합니다."
"...실패해도 본전은 뽑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쵸. 특히 예능국은 벌써 회의를 잡고 있다고 합니다. 반대로 드라마국은 반응이 몹시 좋지 않습니다."
"...드라마? 아 설마 지상파 채널까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건가? 하하 웃긴놈들 너무 성급한 생각인데"
"그렇긴하죠... 아무튼 저희는 계속 웰링을 주시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난 이사진하고 또 설전을 버리러 가야하니..."
김경철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들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또 돈을 먹이시는 겁니까?"
"그래. 참 웃긴일이지. 방송으로 먹고 사는데 방송을 걸기위해 돈을 먹여야 하다니..."
"그런데 이지혜가 그렇게 돈이 되겠습니까? 그 정도로 손을 써야 할 정도로..."
"무려 10만이 넘는 사람이 개인방송을 시청 했네. 케이블에서 그 몇 배만 봐도 성공이지. 그런쪽은 우리가 앞으로 생각해내야지 않겠나. 그리고 인물이 좋으니 팬덤층도 많이 생길것 같은데 안그런가?"
"하긴 인물이 정말 좋긴 하더군요. 연예인을 하는게 더 빠르게 유명해지지 않을까..."
"그런건 우리가 생각할 일이 아니겠지. 이만 가보지."
***
웰링 유니이티드 감독실.
똑똑
"누구지?"
"저 이지혜에요."
"오 그래! 어서 들어와!"
내가 감독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감독님이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 몸에 문제는 없고?"
"네."
"좋아. 적응도 상당히 잘하는 것 같고, 선수들과의 관계가 심슨을 제외하면 꽤 좋은 듯한데."
"...심슨은 왜요?"
"심슨이 자네가 상당히 자신을 놀리는 걸 좋아한다는데? 하하 전혀 문제될건 없지!"
그 찌질이 자식이 감독님한테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쳤나보다. 이 원한은 더 큰 놀림으로 돌려줄고 말 것이다.
"그래 우리 다음 리그전은 MK던스인걸 알고있지?"
"MK던스요..."
MK던스
정식명칭 밀턴킨스 던스 FC. 줄여서 MK던스다.
MK던스는 알고보면 참 재미있는 팀이다.
예전 팀명은 윔블던 FC. 여러가지 법적 싸움으로 연고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팀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클럽의 역사는 2004년에 시작됬다고 하며, 상당히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클럽이다.
리그1에서 시작했지만, 리그2를 왔다갔다하며 매 시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팀이기도하다.
더 재미있는건 14/15 시즌 캐피탈 원 컵 2라운드에서 무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40으로 떡실신 시켜버린 팀으로 유명하다. 더 웃긴건 다음 3라운드에서 셰필드 유나이티드 한테 진것이다. 결국 별명은 현재까지 ManU Killer 던스라고도 불린다.
"그래 자네는 선발 출전을 하지 않겠지만, 언제든지 교체로 출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게나, 나로써는 최대한 휴식을 주고 싶지만.. 우리 클럽이 현재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고있겠지?"
"네에..."
나는 감독실에 불려가 이런저런 푸념을 들어주고있었다. 우리 알렉스 감독님은 평소엔 이런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인데 필드에만 들어가면 살짝 미쳐있는 느낌이나서 그 갭이 조금 무섭다.
"경기전 브리핑에서도 이야기 하겠지만, 조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네."
나는 감독님이 컴퓨터 모니터를 돌려주는 걸 지켜 보았다.
"이 클럽은 현재 강등권이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야."
"...그렇네요."
22위. 아직 리그가 끝판으로 간건 아니라 희망이 있는 시기 이긴하다.
"경기가 많이 격해질거라고 판단하고 있네, 만약 경기가 심하게 격해지면 자네를 절대로 출전시키지 않을 거네."
"저는 괜찮아요. 진짜로."
"자네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운영진은 지켜봐야한다고 요청을 해왔네,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기도 하고 거슬러서 내가 좋을일은 없기도 하지."
"그래도 상황이 좋지않다면 출전시켜도 저는 괜찮습니다."
남자새끼가 몸싸움이 좀 격하다고 뒤로 뺄수는 없는 법이지. 다리 사이에 불알이 없어도 나는 남자니까.
"그래... 선수를 존중해 줘야 좋은 감독이라고 하지. 알겠네. 우리도 이겨야만 하는 경기이기도 하니... 고민을 조금 해보겠네."
감독님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철컥
"오! 우리 멋진 이지혜 선수가 여기 계셨구만!"
뒤를 돌아보니 마크 구단주님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FA컵 경기는 아주 잘 지켜봤어요. 역시 제 감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주셨군요!"
"하아.. 그래서 구단주님은 또 왜오신겁니까?"
"알렉스. 자네는 나 보는게 즐겁지 않나?"
"즐거울일이 따로 있죠. 남정네 자주 봐서 즐거울게 뭡니까?"
감독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구단주님을 살짝 포옹했다.
"그래요. 한국의 많은 방송국이 중계를 하고 싶다고 요청해 왔어요, 그런데 우리 운영진들은 조금 고민이 되긴 합니다."
"...고민요?"
무슨 고민이지? 중계하면 클럽은 돈을 벌테니 좋은일이 아닌가?
"우리 이지혜 선수가 개인적으로 중계권을 구매해서 방송을 하고 있는데 다른 방송국이 껴버리면 이지혜 선수가 손해를 볼테죠. 저희는 그런 의리를 져버릴 수는 없어 바로 결정내리지 않았습니다."
오오... 생각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시는 듯하다.
"...그럼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있긴 합니다. 다른 방송국에 중계권을 판매하고 이지혜 선수가 구매한 중계권은 환불해 드리고 무료로 중계를 하시는 거죠."
"...공짜로요?"
"어차피 전문 방송국이 아니고 취미 같은거 아니십니까? 가은씨가 이야기 하시기를 그래도 방송국을 통해서 보는거랑 개인적으로 방송을 하며 소통을 하는 느낌은 많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네에... 전 그런건 잘 모르니 가은 언니랑 황대표님 한테 잘 말해주세요."
"하하하! 걱정 마세요. 우리도 이지혜 선수께 기대하고 있는게 많으니, 개인 방송하시는거에 저희 웰링의 사은품 같은것도 지원해줘서 흥미를 더해 줄까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자자...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감독님이 난처한 표정으로 우리를 말렸다.
"하하. 내가 방해를 해버린것 같군요. 잠시 나가있을 까요?"
"아니요. 다시 일로와보도록."
나는 손짓을 하는 감독 님에게 다가가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451 스쿼드인 우리팀. 저번 FA컵에선 3331이 아니었나?
"우리는 그래도 리그내에선 수비가 꽤 좋은 팀이야. 굳이 공격적인 전술을 유지할 필요는 없지.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긴 할건데..."
감독님이 상대팀의 분석표를 보여주었다.
"...상당히 거친 태클의 비율이 높네. 내가 자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건. 경기까지 격한 운동을 자제하라는 거네. 혹사한 근육이 다칠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내용은 경기전 브리핑에서 이야기 하도록 하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도록."
"네 감독님."
나는 사무실을 나가기 전에 구단주님에게 꾸벅 인사를 하니 마크 구단주님이 한손을 들고 웃는게 보였다.
"다음에도 멋진 경기 기대할게요."
"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