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45화. 첫 원정경기(5)
* * *
런던 내 위치한 한 펍.
펍의 내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들이키며 각종 축구 중계 방송을 틀어놓은 TV를 시청하며 평화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경기를 하든 안하든 인생 한구석에 축구가 존재했고, 없으면 삶의 보람을 잃는 셈이였다.
"오오! 오늘도 첼시가 이기고 있군!"
"아스날 상대로는 이겨야 당연한거 아냐?"
"축구 하루 이틀 보나? 누가 이기는 지는 끝나지 해봐야 아는거지!"
"하하하!! 여기 아스날 팬이있었나보네?"
"너 모르는 척 할래?"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는 한 남성 무리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다. 물론 그들 뿐만 아니라 펍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긴 하지만..
"응...? 저게 뭐야?"
"...여자가 리그1에서 뛸 수 있어? 피파 규정에 걸리는거 아닌가?"
"뭔 소리야?"
자칭 아스날 팬이 뒤쪽 테이블에서 들리는 흥미로운 얘기에 귀를 귀울이고 있었다.
"...음 찾아보니 십몇년전에 피파에서 사람들이 스포츠를 성별로 규제시키는건 너무한 처사라고 시위했었나보네. 난 이런 얘기 들어본적도 없는데?"
"하긴.. 누구든지 축구를 잘하기만 하면 어디서 뛰든 자기맘이지!"
"..."
"그런데 이런저런 문제 생기는거 아니야? 그래도 여자잖아. 영국 축구는 굉장히 격한 리그인데 엄청나게 몸싸움이 많이 일어나잖아? 게다가 하위리그들은 더욱 심하고!"
"그렇긴 한데 그건 본인의 문제지 남이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잖아?"
"...그런가? 뭐 피파가 허락했으니 뛰고있겠지?"
"너 뭐하냐?"
"응?"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아스날 팬이 화들짝 놀라며 자신에게 맥주로 가르키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아니.. 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야. 음... 저 TV인가?"
"도대체 무슨 헛 소리를 하는거야?"
"웰링이랑... 위건? 웰링이 거기지? 아마추어리그부터 한창 치고올라오고 있다는 클럽"
"어... 맞을껄? 누가 알겠냐. 여기에 웰링팬이 얼마나 있다고."
"저기 봐바. 웰링 공격수가 여자야! 그것도 아시안인데?!"
자칭 아스날 팬이 조금 멀리 떨어진 커다란 TV를 보다가 화들짝 놀란다.
"개소리 하지마. 음...? 씨발 진짜네?"
"뭐야. 벌써 한골 넣었잖아? 누가 넣었지? 설마 저 여자가 넣었나?"
화면속의 이지혜가 공간을 만드려고 이리저리 부딫히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오"
"아니 씨발 위건 새끼들은 불알 터진 계집놈들인가? 여자한테 몸싸움을 밀리는데?"
"아니야 알잖아 위건 새끼들 1부리그에 있을 때 부터 상당히 거친놈들이였어. 저 정도라면... 저 여자가 힘이 무척 쌔다는 건데..?"
그때 화면이 잠시 이지혜를 클로즈업 해서 보여준다.
(이지혜. 18세. 웰링 유나이티드 FC. 1골)
땀에 젖은 앞머리를 왼팔로 슬며시 닦고 정면을 보는 얼굴이 꽤나 섹시하고 아름답다. 운동하는 여자가 섹시하다는게 사실인가보다.
"씨발! 저 여자가 골을 넣었네?!"
"말도안돼...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있는거야?"
"그나저나 예쁘긴 존나 예쁘네. 어디 모델출신 아니야? ...피지컬도 상당히 좋아보이는데? 허벅지좀 봐 내 허리만할 것 같은데?"
"...18살? 진짜 씨발 내 뇌가 무슨일인지 받아들이질 못하고 있다고!"
술렁 술렁
펍을 시끄럽게 만들던 무리가 한 TV를 바라보며 더욱 시끄럽게 만들자 펍에 있던 사람들의 주의가 그들에게 끌리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이지혜의 경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마침 전반전이 종료되고 전반 하이라이트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오!!!
제리 맥과이어의 환상적인 스루 패스와 폭발적인 스프린트로 수비진을 따돌리고 깔끔한 칩슛으로 골을 넣는 이지혜의 모습이 몇번이나 다시 나왔다.
"..."
"...허허"
"오 마이 퍽킹 갓. 내가 지금 잘 못 본건가?"
"...우리 팀 공격수보다 빠르고 잘 넣는 것 같은데?"
웅성 웅성
하이라이트가 나오자 마자 펍 내부는 더욱더 시끌벅적 해졌다. 바 안에서 맥주를 준비하던 주인장도 TV를 멍하니 쳐다보며 멈춰있었다.
쾅!
"시발! 맞아! 첼시가 웰링한테 쳐 발린 적이 있었지? 내가 저 여자를 어디서 본 느낌이 였는데 얼마전 첼시 경기였잖아!"
자칭 아스날 팬 왼쪽에 앉아있던 스킨헤드녀석이 테이블을 쾅치며 뭔가 기억났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희 맨시티팬이라고 다른 팀 경기는 안본거지?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그랬던것 같기도 하고, 난 그냥 웰링이 미쳐서 첼시를 박살낸줄 알았지."
"이거 봐바. 뉴투브에도 지난 FA컵 경기 하이라이트가 실시간 동영상 순위에도 올라가 있잖아!"
실시간 동영상 순위 17위
"오오... 진짜네? 나중에 이것도 봐야겠다."
"하하하 시발! 이제 웰링한테 박살나는 클럽은 존나 쪽팔리겠네! 어디가서 여자한테 골먹혔다고 울면서 징징대는거 아닐지 몰라!"
"...맞아. 다음 FA컵 8강이 맨시티랑 웰링이였나?"
"홀리... 지금 맨시티는 상태가 상당히 메롱한데..."
현재 맨시티는 중상위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수비진들이 라리가로 이적을 해서 그래. 후보 선수들이 주전 만큼 기량을 못 펼치니까 하위권들에게도 골먹히면서 지고있다고."
"...하아 그 놈의 드림클럽이 뭐라고.."
"그나저나 한 골이라도 먹히면 상당히 쪽팔릴텐데... 지는건 상상도 못하겠지만, 첼시도 박살이 나버렸으니..."
"첼시엔 영국 국가대표인 제이슨도 있잖아? 근데 박살이 났다고? 영상을 꼭 봐야겠네."
드림클럽. 각 축구 선수들에겐 각자의 드림클럽이 있는 법이다. 대부분 현재 소속된 클럽이 드림클럽인 경우는 별로 없고, 클럽랭킹 상위권에 있는 유명한 클럽들을 대부분 드림클럽으로 삼고있다.
그러다 보니 드림클럽에서 이적을 요청해오면 클럽이 거절을 해도 그 소식이 선수에게 까지 알려지면 선수가 운영진들에게 항의를 하기 시작한다.
이적을 해서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드림클럽으로 가고싶다. 이 것이 대부분의 축구선수들의 마인드다. 전부는 아니지만.
"아무튼 웰링의 경기를 지켜보자고. 겨우 한달정도 뒤면 FA컵 8강이잖아? 근데 마르티네스가 FA컵보다 리그전에 신경을 쓸거라고 했는데..."
알바누 마르티네스. 맨시티의 감독이고 현재 5년이나 맨시티의 지휘봉을 잡고있는 명장이다. 그리 감독 실적이 길지는 않지만, 전시즌까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다투는 클럽으로 유지를 했다.
팬들은 모두 리그 우승을 원하고, 항상 우승 하지 못한 마르티네스 감독을 손가락질하지만 다들 리그 우승이 쉬운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이 정도에 만족을 하고있는것이다.
근데 하필 이번 시즌 다수의 주전들이 라리가로 이적을 해버려 공백이 생겼고, 마르티네스는 황급히 수비들을 물색해봤지만,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수준의 수비수를 찾고 데려오는건 쉬운일이 아니였다.
그래서 어느정도 후보진들로 리그를 버티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대어를 낚아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컵경기 보다는 리그경기에 집중 할 수 밖에 없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것이다.
"오오... 저기 저 왼쪽 윙어도 상당히 실력이 좋은데?"
"으음.. 제리 맥과이어라는 친구군 20살밖에 안된 팔팔한 신입이네?"
"저 프리티 걸은 그다지 경기 감각이 높지는 않나보네. 필드 시야가 길게 보지는 못하는 것 같아."
지능적인 현대축구를 오래 시청한 축구팬들 마저 지능적으로 변모하고 만 것이다.
"흐음... 상당히 공격적인 클럽이네."
제리 맥과이어의 대단한 드리블을 지켜보며 평가를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엔 저 정도 윙어는 차고 넘치도록 있다. 흥미를 끌기는 하지만 엄청나다고 칭송할 정도는 아니란 뜻이다.
영국 축구팬들은 프리미어 리그를 매일 같이 쳐다보고있으니 눈이 상당히 높아져있는 것이다.
"...!"
"씨발!!!!"
"고!! 고!!! 슛해!!!"
자리를 스위치하며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 이지혜가 환상적인 드리블을 치는게 보였다. 제리 맥과이어? 잘하긴 했지만 눈을 끌정도도 화려하지는 않다. 하지만 저 소녀는 폭발적인 스피드를 유지하며 오버스텝과 마르세유턴을 사용하는게 엄청나게 화려하고 빛이 나게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선수는 드물다.
오오오오오!!!!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지켜보던 펍의 축구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TV를 보기 시작했다.
"...찹니다!!"
퍼엉!!!!
와아아!!!
우우우우우우!!!!
"들어갑니다!!! 완벽하게 공간을 만들어낸 두 윙어와 대단한 스피드의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바보로 만들어 버린 이지혜가 페널티 라인 바깥에서 골문 오른쪽 상단 구석으로 정확하고 강하게 그물을 찢어버리도록 때려넣습니다!!!"
중계를 하던 캐스터가 격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목청이 터지도록 소리지르는 것이 펍 내부에 울려퍼졌다. 펍 주인장이 웰링의 경기를 하는 TV의 소리를 최대한 올린 것이다. 그도 주목 받아야 하는 경기를 아는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
"미쳤어!! 씨발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원더골이야!! 저런 슛은 수아레즈 말고는 본 적이 없어!!"
축구 팬들은 환상적인 골을 보면 미쳐버리고 만다. 특히나 축구 종가인 영국인들이라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오 마이 갓..."
맥주를 나르려고 했던 주인장 마저 양손으로 머리를 잡고 탄식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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