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52화. FA컵 8강전(7)
* * *
맨시티놈들이 점점 흥분하는게 필드 곳곳에서 살이 떨리도록 느껴진다.
FA컵이 그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대회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로사는 좀 더 흥분한 것인지 미친듯한 돌파를 선보이고 있었다. 마치 황소마냥 가로막는 웰링 선수들을 강제로 열어제끼며 두 골째를 우겨 넣었다는 뜻이다.
"우어어어어!!!"
와아아아아!!!
2대1의 리드를 얼마나 끌어갔다고 다시 2대2로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된 것인가.
한가지 웃긴점은 웰링의 수비수건 맨시티의 수비수건 양쪽다 표정이 안좋다는 거다. 양팀다 한명의 선수에게 농락당하는 경기이다 보니 짜증이 나는 것이겠지.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즈들은 대가리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인가 보다. 하나같이 얼굴이 시뻘게진채로 소리를 질러대는데 뭐라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다.
"기운내!! 정신차려!!"
캡틴이 수비진들의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아직 경기는 전반 30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4골이나 터졌다. 이 뜻은 더 많은 골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참 희안한건 경기를 주도 하고 있는건 맨체스터 시티인데 동점인 상황이라는 것이겠지.
우우우우~~~
웰링 선수들이 공을 터치할 때마다 야유가 터져나왔다. 에티하드 스타디움이 이렇게 분위기를 타는 구장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상황이 상당히 서포터즈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긴 했나보다.
이럴땐 내가 또 한골을 넣어 줘야 하지 않을까? 저 턱수염맨이 골을 넣을 때 마다 나한테 혓바닥을 쳐 내비는게 꼴불견이라고. 마치 자신도 이정도는 할 수 있다는 듯이 구는게 재수없어 보이기는 한다. 뭐.. 나보다 한참 오래 프로 생활을 한 선수이긴 하다.
맨시티 선수들이 더욱더 중원을 타이트하게 압박하려 한다는게 느껴진다. 제리녀석에게 태클을 걸때 다시 공을 뺏어보는 시도를 하려 했는데 두번은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일까, 공이 제리에게 갈때마다 근처에 있는 수비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수비수들이 나를 너무 견제 하는 느낌이라 한번만 사이드가 뚫린다면 거침없이 밀고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제리!"
나는 공을 받기위해 움직이는 제리를 향해 손짓을 하며 스위치를 해보자고 말했다. 스위치 플레이는 지난 경기에서 감독님이 지시 했던 전술이고, 그 이후에는 하지 않았지만 팀 전술 훈련에서 자주 스위치를 시도하는 연습을 했다. 감독님은 내가 앞으로 수비수들의 강한 견제를 받게 될거고, 윙어들은 강한 압박을 당할 것이란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제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공을 받기위해 과격한 움직임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연스레 스위치하기 위해선 시선을 좀 분산시킬 필요가 있는데 나는 수비수를 향해 손을 들고 레프트 윙어와 스위치를 하겠다는 사전에 정해놓은 사인을 하였다. 이로써 수비진들은 최대한 오른쪽으로 볼배급을 시도할 것이다.
"항상 주시해."
"한번이라도 놓치면 골 먹힌다고 생각하라고."
"힘으로 이길 생각은 안하는게 나을 것 같아."
내 뒤쪽에서 맨시티 수비진놈들이 이야기를 하는게 들려왔다. 현대 축구는 한가지만 잘해서는 안된다고 하던데, 여러 가지의 출중한 능력이 있어야 하고 지능마저 좋아야 한다고 한다.
나는 진형들이 점점 오른쪽으로 치우치기 시작했다고 느꼈고, 수비진들 마저 선수들을 둘러싸듯이 몰려 이동할때 슬며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대 눈에 띄어선 안돼... 그냥 공간을 찾으려고 한다는 느낌으로... 제리에게 다가가야만 해...'
제리도 나한테 시선을 하나도 주지 않고, 슬금 슬금 중앙을 향해 이동했다. 마크를 하던 맨시티 선수도 그냥 공간을 찾으려고 시도한다고 느꼈는지 딱 붙는 대인마크를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웰링이 공을 뺐기고 다시 공을 소지하고 오른쪽으로 뻥차는 반복 속에 나와 제리가 동일한 위치에 만났다는걸 수비진들이 확인을 했다.
폴 조지가 그걸 순식간에 확인하고 오른쪽으로 걷어내는 것 처럼 자세를 취하다 순식간에 왼쪽으로 긴 패스를 시도했다.
"...!"
"시발 스위치야!"
내가 순식간에 왼쪽으로 이동해 공을 받으러 이동했고, 제리를 마크한 것 처럼 나를 강하게 밀어 공을 컷트 해내려고 시도 했지만 나는 그냥 누가 민다는 느낌만 받았고 오히려 내가 밀어내는게 더 쉬웠다.
"크윽...!"
볼품없이 떨어져나가는 맨시티 선수.
나는 공을 발 뒤꿈치로 날아오는 공을 앞으로 이동하도록 트래핑을 하고 일직선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
제리가 중앙에서 앞으로 달려나가며 크게 소리를 친다.
맨시티의 수비수들은 내가 순식간에 왼쪽으로 치우쳐 버리다보니 위치 선정에 에로사항이 생겼는지 순간 얼을 타버리고 말았다.
'내가 드리블하고가면 수비가 다 모여 버릴거야.'
나는 스루패스를 시도 할 작정으로 공을 강하게 앞으로 찼지만, 제리의 달리기 속도를 잘 못 생각한건지 맨시티의 키퍼가 공을 먼저 잡아버리고 말았다.
"후우..."
우우우우!!!
"아까웠어! 조금만 짧았으면 좋았을텐데."
제리가 정말 아쉬워 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위로를 했다.
"너가 더 빨랐으면 넣었을 텐데."
"아니 이걸 내탓을 해?"
"아하하하!!!"
나는 웃으며 제리의 등을 팍하고 때려버리고 다시 중앙으로 걸어갔다.
"..."
"집중해. 스위치도 시도하는 모양이야."
'이런'
맨시티 수비수놈들이 스위치를 견제할 생각인가 보다. 이 작전은 그다지 많이 시도해선 좋을게 없다. 순간 순간 빈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
"막아!!"
로사가 또다시 우리 웰링 수비수들을 크게 뒤흔들고 있다. 워낙 공격력이 뛰어난 클럽이기도 한데, 로사의 공격력이 그 중심이라 그런가 삼각편대로 이루어진 공격수 미들필더들이 웰링 수비수들의 혼을 속 빼놓고 있다.
삐비비빅!!
그러다 폴 조지의 열정이 너무 넘치는 태클을 받고 로사가 넘어져 프리킥을 얻어냈다.
웰링의 선수들은 절대로 골을 먹히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벽을 네명이나 서고, 페널티 박스 안에서도 마크를 하기위해 윙어들까지 내려와 마크를 하기 시작했다.
공을 차기 위해 준비를 하는 로사. 저 더러운 턱수염을 손으로 쓸며 아틀레이 골키퍼를 주시하더니 도움닫기를 하고 강하게 공을 후려찬다.
퍼어엉!!!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수비벽을 살짝 넘으며 웰링의 골대 왼쪽 구석을 향해 날아가는 공.
로사는 헤트트릭을 먼저 달성하고 만다.
***
전반이 끝난 뒤 하프타임 웰링 유나이티드의 라커룸.
분위기가 상당히 다운되어 있다. 단 한명의 선수에게 처참하게 발린 수비수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런가, 평소에 농담따먹기를 자주하던 선수들도 다운된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뭐야 다들 왜 이렇게 침울해있어?"
감독님이 라커룸으로 들어오며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
"다들 정신차려! 경기는 아직 안끝났다고!"
"그래 조금만 더 집중하자. 로사를 더 강하게 압박하자고."
캡틴과 아틀레이 키퍼가 수비진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아하하하 자네들 무려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하면서 32로 선전하고 있는데 그렇게 침울하게 있는건가? 다들 어깨 펴게 오늘은 아무도 우리에게 승리를 기대하고 있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감독님"
좀 어린 수비수 한명이 침울해진 표정으로 감독님에게 말을 걸었다.
"그만. 나도 자네는 마음을 이해하네. 로사. 그 괴물같은 녀석은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득점왕을 경쟁하고 있는 녀석이야. 자네들은 그 괴물을 상대하고 있는거고, 난 자네들이 자랑스럽네. 45분동안 고작 세골만 먹히며 틀어막은셈이니까!"
감독님은 웃으며 수비진들 한명 한명에게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래. 자네도 정말 잘해주고 있네."
감독님은 나에게도 다가와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확실히 이런 사소한 언행 한번으로 조금 경직된 분위기가 풀어지는 느낌이다.
"이제 후반전 이야기를 해볼까? 제리 맥과이어!"
"네 감독님."
매번 밀쳐지고 굴러다니던 제리가 조금 안좋아진 안색으로 감독님을 바라보았다.
"자네도 고생하고 있네. 저 친구 말고 누구든 그 자리에 있었어도 고생을 했을거야. 난 꽤나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네. 그래도 이번엔 조금 내려와서 공을 받고 가보자고. 전체적으로 라인을 내리고 공을 멀리 차는거야."
감독님은 전술판의 선수 마크들을 양손으로 잡고 끌어내렸다.
"내가 전반전을 지켜보니 맨시티 수비수놈들은 허수아비와 다름없더군, 이지혜에게 피지컬이 전부 밀려! 전부 불알을 떼버려야 할 놈들 밖에 없더군."
""아하하하하하!!!""
"...우리 중에도 키티보다 힘이 쎈놈들이 별로없잖아?"
"...쉿"
"해보자고. 로사가 골을 넣어? 우리도 귀여운 골잡이 한명이 있으니 해결할 수 있어. 이지혜. 자신있지? 공을 최대한 몰아주겠네. 마음껏 맨체스터 시티놈들을 괴롭혀봐."
"물론이죠 감독님."
내가 다 해결할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른다. 한가지 확실한건 맨시티의 수비진들이 그대로 나온다면 나는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가보자고!! 필드에서 고개를 숙이는 놈들이 있다면 그 놈은 다음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을테니 명심해!"
감독님은 라커룸을 나서는 선수들 한명 한명에게 핸드 쉐이크를 하며 다독여 주었다.
사람들은 이 날 알 수 없었다.
에티하드 대참사.
사람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무려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에서 굴욕적인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