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53화. FA컵 8강전(8)
* * *
S사의 스포츠국 방송실.
"어때 반응은 좋은가?"
김경철 국장이 방송실까지 직접 내려와 FA컵 8강전의 경기를 모니터링하러 내려왔다.
자리에 앉아있던 이피디가 헤드셋을 벗고 환한 얼굴로 김경철 국장을 맞이했다.
"대박입니다! 그 맨시티가 이지혜한테 박살이 나고있어서 시청자들의 국뽕수치를 아주 하늘 끝까지 올려주고있습니다!"
"진짜 대박이에요. 저희 스포츠국 역사상 이정도로 시청률이 높았던 적은 올림픽 이후로 거의 없어요."
이피디의 옆에 앉아있던 단발머리 여자직원이 살짝 흥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전반이 끝나고 난 이후에 광고가 송출되고 있는 화면. 모니터링 전용 모니터에서는 계속해서 쭉쭉 올라가는 시청률이 보였다.
"크흐흐흐. 내가 뭐랬나. 얼마가 되었든 딜을 거는게 남는 장사라고 했지?"
"그러게 말입니다. K방송국에서 손을 쓰기전에 먼저 접선한게 신의 한수가 되었군요."
"이사진들에게 PPT를 만들어 보고한 스포츠국 1팀 직원이랑 맛있는거라도 먹게."
김경철 국장이 이피디에게 두툼한 흰 봉투를 건내주었다. 이피디는 헤벌쭉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봉투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실적에 따라 보너스도 넉넉히 주겠다고 이사진들이 전해달라는군. 그 분들도 방송을 재밌게 보고 있는 모양이야. 아 그리고 벌써 부터 광고를 걸어달라고 전화기에 불이난다더군. 실무국에서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모양이야."
"하하하 좋은 일만 생기는 군요. 아무튼 우리나라에 국뽕은 치명적인 조미료 같은 존재죠. 한번 맛보면 끊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달까요."
"그렇지. 그렇고 말고. 앞으로도 중계진들에게도 국뽕 요소를 잘 이용하라고 전하게."
"물론 이미 전했습니다. 이제 지켜보는 일만 남았군요."
둘은 흐뭇하게 광고가 흐르는 모니터링 화면을 쳐다보며 앞으로 생길 찬란한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
"..."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세상에"
마르티네즈 감독이 멍한 얼굴을 들어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35
웰링이 미쳐버리고 말았다. 아니 미쳐버린건 오직 저 황소같은년 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일이야?!"
경기시간은 후반 30분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미친 황소년은 돌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펑!!
미친듯이 라인을 내려 궁댕이를 자신의 페널티라인까지 내려 깔고 앉은 웰링의 수비수가 로사가 좁은 공간을 뚫어 내지 못하고 부딫혀 흘러버린 공을 막무가내로 앞으로 차내었다.
우우우우우우!!!!
공이 하늘 높이 날아 정확히 필드를 반으로 가르듯 날아가는걸 황소 한마리가 미친듯이 따라가는게 보였다.
수비수들이 지친 모습으로 이지혜를 따라가지만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고 이번이 몇 번째인지도 모를 키퍼와 일대일 상황이 만들어 졌다.
콰앙!!!
저 황소는 자비라는 것도 모르는지 키퍼가 튀어 나오려는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강하게 오른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는 슈팅을 때려 버렸다.
우우우우우!!!
이지혜는 처참한 홈 서포터즈들의 분위기를 느꼈는지 후반전에 두골을 넣은 이후에 딱히 별다른 골세러브레이션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공을 다시 들고 센터박스로 뛰어가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더욱더 잔인한 모습으로 보이고 있었다.
전광판에 서로 껴안고 울고 있는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한 노인과 어린아이가 비춰진다.
...다시 전광판이 36로 변한다.
마르티네즈 감독은 눈앞이 깜깜해지는걸 느끼고 점점 아파오는 머리를 붙잡고 자신의 실수를 되내이고 있었다.
첫번째 실수는 저 황소가 후반에 들어와 한 골을 넣었을 때만 해도 대단한 주력과 킥력을 가진 선수라고 생각하고 어중간한 지시를 내려 마크를 잘하라고 말했다.
두번째 실수는 후반 두 골째.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라인을 내리라고 했지만, 이미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흥분을 진정시키지 못해 라인을 내리라는 지시를 지키지 못함이다.
세번째 실수는 후반 세 골이 넘어가기 시작했을 때 선수들의 멘탈을 챙겨주지 못했다. 그 때는 이미 마르티네즈 감독이건 수석 코치전 멘탈이 나간 상태라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니 애초에 실수는 수비진을 빨리 강화하지 않은게 제일 문제였나."
이미 경기는 저 멀리 화성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여기서 더 무언가를 해낼 방법은 없었다. 선수들의 멘탈은 이미 깨진 유리컵마냥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저 미친 황소를 막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로사도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는지 전반의 좋은 움직임을 다시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듯 팀 분위기는 엄청나게 중요한 존재다.
"...후우 더 이상 골을 먹히지 않을 방법만 생각해 봐야겠군."
마르티네즈 감독은 지끈 거리는 머리를 잡고 코치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미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인 에티하드 스타디움은 마치 장례식마냥 분위기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서포터즈들은 이딴 경기를 보여주는 선수들에게 화가나서 경기장을 뛰쳐나가고 싶지만 엄청난 활약을 하는 저 여자 한명 때문에 엉덩이를 자리에 붙혀 앉고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즈들을 중계 카메라가 비춰주는데 몇몇 사람들이 서글프게 우는 모습이 비쳤다.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맨시티에 영혼을 담고 응원하는 서포터즈들은 이런 처참한 결과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쪽에 모여있는 웰링 서포터즈들은 마치 축제라도 벌어지는 것 마냥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
삐익 삐익 삐이이익!!!
잔혹했던 경기. FA컵 8강전의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생각치 못했던 승리에 환호하는 웰링 서포터즈, 그리고 말도안돼는 너무나 처참하고 잔혹한 패배를 당해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는 맨시티 서포터즈들의 환호성과 울음소리가 휘슬소리를 뒤덮고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정말 미쳤군 오늘 넣은게 몇 골이야? 6골? 내가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니지?"
그때 로사가 자신의 유니폼을 벗고 이지혜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으음 당신도 잘하던데요?"
"지금 누굴 놀려? 하핫 난 내 커리어에 이런 오점이 남을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데... 참고로 우리팀은 너가 여자라고 대충 뛰거나 하진 않았어, 단지 우리가 너희를 이길 만한 능력이 없었단 거겠지."
이 더러운 턱수염맨은 생각보다 쿨한 성격인가 보다. 나는 로사가 건내주는 유니폼을 들고 나는 그 자리에서 유니폼을 벗고 로사에게 건내주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상당히 대단한 몸이네. 나도 가서 근력 운동을 더해야겠네."
로사가 내가 유니폼을 벗을 때 살짝 올라간 이너웨어 상의 때문에 들어난 복근을 보았는지 눈이 휘둥그래진 얼굴로 말했다.
"눈깔 파버리기 전에 내 몸에서 시선 돌리죠?"
"오호호호 아주 드센 성격이시구만, 알았어 알았다고 유니폼 고맙고 다신 보진 말자."
내가 턱수염맨을 째려보니 로사는 양손을 들고 몸을 돌려 자신의 팀 동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내가 잠시 몸을 풀고 있으니 제리가 쭈뼛 쭈뼛 다가오는게 느껴 졌다.
"넌 또 왜그래?"
"아니 그게... 오늘 대체 뭘 먹은거야? 아니 확 변한건 후반때니까 라커룸에서 뭐 약이라도 빤거아냐?"
제리가 헬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하긴 이 녀석도 오늘 기를 쓰며 뛰어 다녔으니 힘이 많이 빠지긴 했을 거다.
"약을 빨다니.. 나 너희랑 같이 들어가고 같이 나왔잖아."
"아니 말이 그렇다는거지.. 도대체 이게 무슨일이야..."
제리는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는 건지 필드에 털썩 주저 앉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나도 이상하단말이지.'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일단 맨체스터의 수비진들의 멘탈은 이미 전반전에 나간듯 했다. 우리가 수비라인을 한계까지 내려 버리고 나만 멀찍히 서있었을 때 부터 수비진들이 긴장하는게 나한테 까지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공이 날라오기 시작했을때 부터 수비진들의 능력이 나한테 미치지 못한다는걸 크게 느꼈다. 전반전에는 긴장감이 몸에 생겨 자세하게 느끼지 못한 것일까, 나 혼자와 수비수들 몇명과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을 몰고 나감에 있어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공이 들어가기 시작했을때 부터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이 대화를 하지 않는 다는걸 알게되었을때 이녀석들의 의지가 크게 무너졌다는 걸 느꼈다. 아마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그전과 컵경기의 차이가 그런 프로페셔널하지 못함을 만들어 냈을 거다.
"아무튼 이겼네! 우리가 준결승이라니!! 이건 말도 안돼는 일이라고!"
"...그러게"
제리가 너무나도 기뻐하는 모습으로 양팔을 번쩍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라커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팀동료들이 지나갈 때 마다 나를 괴물보듯 쳐다보고 지나간다. 하긴 후반전에 내가 해결 할 거라고 믿기는 했겠지만, 이런 괴물같은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았겠지.
애초에 나는 이런 컵대회가 처음이라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위대한 클럽을 벌써 두번째 만났다는 것도 실감이 나질 않고 그들을 이겼다는 것도 실감이 나질않는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한번 한번씩 하면서 무언가 내 내면이 바뀌어 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 찌질했던 남자의 과거가 대단한 재능을 가진 여자의 육체를 가지게 되고 성격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중요한 무언가를 채우지 못했는지 아직도 가슴 한켠에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음을 느낀다.
사실 좀 반칙같은 느낌이 나기도 한다. 이런 기회를 가진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자리를 가지게 된 다른 프로 선수들과는 다르니까,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나는 여기까지 달려왔고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것. 내가 먼저 더티 플레이를 하지 않고 일관성 있게 페어 플레이 하는 것이다.
내 발걸음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지않도록, 나도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내 반칙같은 재능을 목도한 다른 선수들도 자신의 재능을 더욱 크게 개화할 수 있도록.
이런 생각을 하는 난 지금 자만에 빠져있었다. 매번 골을 넣고 승리를 하다보니 세상에는 재능이 넘치는 선수가 여렷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멍청한 생각을 품고 있던 것이다. 이 날의 나는 승리에 흠뻑 빠져 아직 모르고 있었다. 세상에는 하늘위의 하늘이 있는 법이고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선수들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 발걸음은 FA컵 준결승전.
만약 만에 하나라도 준결승에서 승리한다면, 유로파 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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