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59화. FA컵 결승전(3)
* * *
"..."
상황이 점점 안좋아 지고 있다. 월드 클래스는 그냥 따내는 명성이 아니라는 것인가, 전반 20분만에 우리는 두골을 더 먹혀 30까지 몰리고 말았다.
"크윽! 정신차려! 고개들라고!"
캡틴이 참담한 얼굴로 선수들을 다독이지만 지독한 패배의 공기는 웰링 유나이티드 진형에 낮게 깔려 퍼지고 있었다.
알렉스 감독님도 터치라인 부근까지 내려와 여러 지시를 소리치고 계시지만 표정이 그다지 좋아보이시지는 않는다.
"씨발!!"
아틀레이가 골셀러브레이션을 하는 누노 레오를 바라보다 바닥에 주먹을 치며 분해하고 있었다. 3번의 일대일 찬스를 단 한번도 막지 못한 아틀레이. 당연히 그가 문제는 아니다. 너무도 허무하게 기회를 만들어준 웰링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
나는 침울해지고 있는 팀동료를 바라보며 생각을 했다.
'...내가 패스를 나에게 보내 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뛰면서 공간을 만들어냈다면..'
나의 문제점이 이번 경기에 크게 나타난 기분이다. 마치 알몸으로 필드에 나온 것 마냥 내가 필드 시야가 그렇게 좋지 못하다는 걸 알아 챘다는 듯이 다이렉트한 패스를 구사하지 못하도록 리버풀 선수들이 내 주변에 촘촘하게 서있는데 나는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해결할만한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누노 레오가 골을 넣었습니다. 3대0. 경기는 많이 힘들어 졌군요.]
[리버풀이 많이 준비해온 모습이 보이는 군요. 완벽한 찬스를 꾸준하게 만들어 내는 누노 레오. 대단합니다.]
[수비진들이 많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네요. 확실히 리그 1에서는 리버풀만큼 정확한 패스를 구사하는 클럽이 없을 테니까요.]
[그렇죠. 생각지도 못한 킬패스가 자꾸 터져나오니 선수를 한 두명씩 놓치게 되는 겁니다.]
[웰링 유나이티드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큰 고민을 해야겠습니다.]
다시 공을 돌리며 웰링의 심장을 부셔버리기 위해 움직이는 리버풀.
우리 팀 동료들이 처참한 표정으로 열심히 뛰지만 그리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하하하. 키티 너를 막다보면 누구든 다 막을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야?)
(그렇지? 하긴 너만한 드리블러는 세계에도 몇 명 없을테니 말이지.)
(씨발! 힘으로도 밀린다고! 이게 말이 돼?)
(그러게 더 열심히 근력 운동을 하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흐음.. 슈팅 속도가 너무 빠르다보니 공을 보고 다이빙하기엔 너무 늦는군. 그렇다고 슈팅 동작에 버릇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키퍼들에게는 지옥같은 스트라이커겠구만.)
(....우웩!!)
(우욱...)
(씨발... 이거 오버워크 아니야?)
(그래도 이 정도로 하지 않으면 리버풀의 발가락도 못따라 갈거야.)
(그렇겠지.. 한번만 더 해보자고!! 어이 키티! 다시 달려와!)
머릿속에 열심히 팀 훈련을 하던 팀 동료들의 모습이 지나간다. 동료들이 뛰다 지쳐 필드에 쓰러져 누워 급한 호흡을 하는 모습. 나를 마크하길 지속하다 경기장 한구석으로 달려가 구역질을 하는 모습. 동료들끼리 뛰다 부딫혀 피를 흘리던 모습.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언가 모를 불꽃이 타오르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동시에 머릿속에 잡생각이 사라지고 뜨거운 무언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
[누노 레오. 기회를 다시 찾아보지만 다시 뒤로 돌립니다.]
[카이센. 수비형 미드필더로써 처음 출전하지만 열심히 뛰는 모습... 뒤에!]
[컷트를 해내는 이쥐해! 완벽학 숄더푸쉬 이후에 공을 다리 사이에서 빼냅니다!]
[드리블!! 빠릅니다!! 지난 경기의 스피드 보다 더 빠른 것 같은데요? 수비수들 마크 해야죠! 아! 제칩니다!]
[완벽한 오버스텝! 엄청나게 과격한 드리블입니다! 아! 헤리 그레이 붙어보지만 넘어집니다! 백업이 붙습니다! 빨라요! 붙지를 못합니다!]
[키퍼 나와야 합니다! 이쥐해! 슛동작을 하다 크라우프 턴! 슛! 들어갑니다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아!!!!!!
미쳐버린듯하고 귀신들린듯한 돌파로 골을 만들어낸 이지혜를 향해 사람들이 환호성을 보낸다.
다이빙한 자세로 멍하니 바라보는 리버풀의 키퍼.
이지혜는 별다른 골셀러브레이션 없이 공을 들고 다시 센터 박스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
몸에 무언가 변화가 생긴 듯한 기분이다. 가슴은 뜨겁게 불타오르는데 이걸 막을 방법이 생각나지도 않고 막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러다 영국에 방문하셨던 황대표님과의 만남이 떠오른다.
(...생리 말씀이신가요.)
(네. 보통 여자들은 생리를 할텐데 제가 그걸 겪은 적이 없어서... 아 물론 겪고 싶다는건 아니고!)
(흐음 그러고 보니 제가 말씀을 드리지 않았군요.)
황대표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설명을 해주시기 시작했다.
(뇌 이식을 하면서 부작용 있을 겁니다. 자신은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호르몬 분비에 조금 문제가 있을 수도 있구요.)
그런가. 확실히 나는 임신할 수 있는 여자라는 건 알지만 내 정체성은 남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몸이 난자를 분비하지 않는 것이구나.
(...그렇군요.)
(그리고 전의 삶 때문의 새로운 육체의 포텐셜이 전부 발휘 되질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네?)
(원래 당신의 힘이 10이라고 하면 그 육체의 힘은 100이라고 해보죠. 그럼 당신은 과도한 힘이 새로 생긴걸 뇌가 인식하기 힘들어 20이나 30만 인식하고 사용할 수 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날 수록 뇌도 새로운 육체에 적응하기 시작해 원래의 포텐셜을 발휘 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이건 저희도 자세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론상 그렇게 판단이 될 뿐.)
가슴의 열기가 더욱 불타오른다.
지금의 나는 잘 모르지만 나중의 나는 이걸 투지라고 불렀다.
"좋았어! 정말 잘해줬다!"
터치라인에서 소리치는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료들의 표정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기분이다. 그들의 노력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서는 안됀다. 나는 그들과 같이 뛰고 또 뛰며 얼마나 노력을 해왔는지 잘 안다.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나타내지 않는다 해도,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기가 죽은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됀다.
"다들 힘내요! 아직 시간 많아요! 저쪽 수비수들도 별거 없으니까 나한테 공을 몰아줘요!"
내가 소리를 꽥 지르며 박수를 치자 리버풀 녀석들이 나한테 욕을 날리는게 들려오지만 나랑은 상관이 없다.
"...뭐야 그럼 우리도 별거라는 거야?"
캡틴이 피식웃으며 농담을 했다.
그래.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
"지혜가 정말 열심히 뛰고 있네요..."
"맞습니다. 웰링 유나이티드 선수들 전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두 골째를 먹힌 이후에 조금 처진 모습을 보여 줬지만 이지혜 선수의 만회골 이후로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 답답하네.. 리버풀 조직력이 개 쩌는 듯
ㄹㅇ
프리미어 리그에서 괜히 잘나가는게 아니지
"점유율은 아직도 리버풀이 많이 우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리버풀이 그다지 중원을 넘어서지를 못하고 있군요."
"네.. 조금 경기가 과격해진것 같아요..."
가은이 걱정되는 얼굴로 경기를 지켜 보았다.
확실히, 웰링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열정은 리버풀 선수들의 열정을 넘어섰고 그 결과는 경기 흐름을 자주 끊어 버리는 태클로 변했다.
삐익!
누노 레오가 또 다시 공을 잡으려 했지만 강하게 부딫혀 오는 폴 조지에 의해 넘어지고 말았다.
폴 조지가 진지한 얼굴로 사과를 하며 넘어진 누노 레오에게 손을 건냈고, 누노 레오는 아직도 실실 웃으며 사과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툭툭 유니폼을 털었다.
"아직 리버풀은 경기가 자신들의 손바닥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군요.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웰링이 조금씩 위험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이기영이 조금씩 방심하는 모습을 보이는 리버풀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와! 아틀레이 선수가 공을 잡고 바로 지혜 쪽으로 공을 찹니다!"
라인을 높게 올려버린 리버풀. 맨시티의 실수를 망각하고 말았던 것일까. 그대로 공을 따라 질주하는 이지혜를 수비진들이 놓치고 말았다.
"빨라요! 엄청 빠릅니다! 오로지 스피드로만 선수들을 제쳐버립니다!"
"꺄악!! 지혜야!!"
"키퍼가 빠르게 나옵니다! 슈팅 각도가 없어보이는데요! 앗!"
이지혜는 오로지 골을 넣는 것만 생각했는지 키퍼마저 빠른 방향전환으로 제쳐버리고 골을 넣어 버린다.
"들어갔습니다 이지혜 선수 멀티골!! 완벽한 움직임이였습니다! 순간속도가 어마어마한데 그 속도를 유지하는 군요! 지난 경기들 보다 더 빨라진 것 같은데요?!"
"와아아아아!! 골이에요!! 키퍼도 제쳤어요!!"
와 ㄹㅇ 치타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리버풀 놈들 정신 못차리네
맨시티가 어떻게 당했는지 기억 못하나?
기억 못하기는 무슨. 이미 리버풀 감독은 미친듯이 화난 표정으로 수비진들을 질책하고 있었다. 수비진들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다시 경기에 집중하는 표정으로 변하니 확실히 지난 다른 클럽들과는 질이 다른 선수들이긴 한가보다.
"경기는 벌써 3대2! 전반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경기는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
리버풀 놈들의 표정이 달라졌다는게 보인다.
'젠장 조금만 더 방심해주지..'
가슴속의 불꽃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조그맣게 타오르고 있지만, 아까만큼 가슴을 지배한 듯한 느낌이 나지는 않는다.
"이런 젠장.. 라인을 최대한 올리지 마"
"감독님이 많이 화나신것 같네..."
"아직 우리가 유리해. 레오녀석도 이제 정신 차린 것 같고."
녀석들의 대화가 귓가에 들려온다.
확실히 녀석들이 강펀치를 두번 얻어 맞고 정신을 차렸나 보다.
삐빅!
삐비비빅!
녀석들은 경기를 져서는 안된다는 듯 무리한 태클도 거침없이 해대며 내 앞에 공이 오지 못하도록 막아 서고 있었다.
'젠장! 공을 잡을 수가 없어!'
확실히 이 녀석들은 높은 수준의 공격수들을 매번 상대하다보니 이골이 난 듯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나보다.
'내 문제점...'
이런 베테랑들을 겪은 적이 적다보니 이들을 곤란하게할 노하우가 별로 없다는 것. 오로지 내가 잘하는 것만 할 수 있다보니 읽히는게 뻔한가 보다.
'하지만.. 질 수 없어!'
순식간에 가슴속의 불꽃이 다시 한번 불타올라 가슴을 지배해 오는게 느껴진다.
퍼엉!
폴 조지가 흘러 나온 공을 길게 차는 걸 확인하고 나는 뛰기 시작했다.
양쪽에서 어깨를 밀며 전진을 막는걸 온힘을 다해 밀어낸다.
"크윽!"
"씨발 더 쌔졌어!"
나는 내 눈이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드는걸 무시하고 내 눈앞에 바운드 하는 공을 향해 달려보지만 앞에 튀어 나오는 키퍼가 보였다.
[몸싸움으로 막아 설 수가 없군요! 말 그대로 무아지경입니다!]
나는 기어코 발 끝을 억지로 공에 가져다 대 보지만 키퍼의 품속으로 공이 들어가 버린다.
[아깝습니다. 키퍼가 나오는게 늦었다면 대형사고가 터졌겠군요.]
[리버풀 수비진의 움직임이 좋아진 듯한 느낌입니다.]
'젠장. 혼자서는 조금 힘들것 같은데..'
나는 제리를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끄덕
제리와 나는 사전에 연습했던 그걸 시도 해 보자고 한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