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71화. 휴가를 받다.(2)
* * *
툭 투둑...
하늘은 무슨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사람의 가슴 속에도 먹구름이 끼게 만드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벌써 몇일째 집안에 박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나날이다.
"으음... 한국에 한번 갈 때 되지 않았나?"
내가 영상편집을 하고 있는 가은언니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한번 다녀올까? 괜히 여기서 죽치고 있는 것 보다 한국에서 좀 돌아다니는게 힐링이 되지 않을까?"
"그래! 한국에 가면 뭘하지.."
"그 한국에서 몇개 방송사에서 출연 요청을 하지 않았어? 광고도 들어왔다면서?"
"으음... 아직 그런데 나갈만한 짬은 아닌 것 같아서... 나중에 더 성공하면 나가볼까?"
"당연하지!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스타가 예능이나 CF에 출연 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지"
실제로 우리나라가 특히 스포츠 스타들이 광고나 예능에 많이 출연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특성이 국뽕을 한번 맞으면 굉장히 행복해져서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사람들에게 국뽕을 느끼게 해주면 좋을텐데 내 생각엔 아직은 아닌 듯 하다. 자고로 국뽕이란 묵히고 묵히다 제대로 익었을 때 터트려 먹어줘야 제 맛이지 않겠는가?
"그럼 일정을 한번 보자아... 잠깐만?"
가은 언니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웰링이 7월에 프리시즌이 시작하니... 거의 두달 정도 시간이 있는건데... 한국에 한달 정도 있는건 어때?"
"그럴까? 흐음.. 조금만 더 고민해 볼까..."
"급하게 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정 그러면 레베카씨랑 한번 연락해봐~"
"응..."
나는 소파에 누워 조금 더 뒹굴거리다 손을 머리위로 뒤적거리며 내 스마트폰을 찾기 시작했다.
"자"
"고마워 언니."
"아냐~ 뭐 마시고 싶은거 있어?"
"응 오렌지 주스. 나 전화 좀 할게 언니."
"응"
가은 언니는 겉 옷을 챙겨 입고는 잠시 쇼핑을 하러 집을 나섰다.
뚜루루루
[네 지혜씨. 잘 지내시고 계신가요? 필요한게 있으신가요?]
[안녕하세요 레베카씨]
[흐음.. 잠시만요 지혜씨. 여기! 잠깐 손좀 봐줘! 자리 좀 비울게!]
덜컥 덜컥 촤르르륵
무언가 서류를 정리해서 서랍에 넣는 듯한 소리가 통화 넘어로 들려온다. 바쁘신가? 미국에서 영국으로 자리를 옮기셨다고 들었다. 게다가 직원들까지 전부 데리고 왔으니 그에 대한 처리에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괜히 나를 보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오묘하다. 진짜 사고치면 안되겠다. 몇명의 인생이 걸려있는 것인지...
[아 죄송합니다 지혜씨. 이번 주에 한번 방문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연락까지 먼저 주시다니요.]
[아뇨 아뇨 괜찮아요 하하. 언제 쯤 오실건가요? 전 단지 궁금한게 있어서 연락을 한 거거등요...]
[으음... 한 목요일쯤 시간이 될 듯한데 괜찮으신가요? 이야기는 그때 차분히 하면 좋을 듯 한데 급하신 건가요?]
[아요 그럼 그날 만나서 이야기해요.. 저 때문에 바쁠 때 귀찮으셨던건 아니시죠?]
[물론 아니죠! 저에겐 언제나 편하게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어요... 그럼 목요일에 뵐게요.. 일 힘내세요!]
즐거운 하루를 보내라는 안부인사를 전해주신 레베카씨는 목요일 점심 쯤에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시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다시 스마트폰을 근처에 대충 던져 놓고 다시 뒹굴거리고 있으니 밖에 나갔던 가은 언니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휴 비가 왜 이렇게 자주와! 찝찝해 죽겠네..."
입었던 노랑 우비를 대충 털어대며 대충 문옆의 옷걸이에 걸어 놓았다.
"그러게 왜 굳이 비오는데 매일 밖에 나가서 이것 저것 사오는거야?"
"그냥! 난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찌뿌등하거든! 날씨만 좋으면 너 데리고 카메라만 들고 이곳 저곳 다니면서 찍고 다녔을 텐데..."
"하하..."
나는 애초에 인도어파 인간이라 밖에 돌아다니는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요즘엔 미녀들과 함께 있다보니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가 꽤나 돌아다니긴 하는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소파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지만.
***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레베카씨"
나는 집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던 레베카씨가 집에 도착했다고 연락을 하자마자 문을 열고 안내를 도왔다.
이미 집은 가정부 아주머니와 나랑 가은언니가 열심히 청소를 한번 해서 꽤나 깔끔하다. 왠지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청소하고 싶어지는 마음은 뭘까. 미인 눈나에게 아마 지저분한 사람이라고 생각들기 싫어서겠지?
"여기 이건 제가 선수와 계약을 하면 매번 드리는 선물인데 이번엔 너무 바뻐서 준비해놓은게 없어서 구하느라 오래걸렸어요."
레베카씨가 자신의 가방안에서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박스를 꺼내서 내개 건내주었다.
"오... 이게 뭐죠?"
나는 흥미로운 얼굴로 선물을 바라보며 이리 저리 돌려보았다.
"와인이에요. 그리 비싼건 아니니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셔도 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와인을 가져와봤어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레베카씨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웃는다. 확실히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 그런지 처세술에 꽤나 능통하신 듯 하다.
"너무 감사해요... 전 준비한게 없는데... 잘 먹을게요! 아! 어서 들어오세요."
나는 레베카씨를 데리고 거실로 들어갔다. 이미 자리엔 다과와 차가 준비 되어있었고 가은 언니가 있었다.
띵 동
"응...? 뭐지?"
가은 언니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당황해 하고 있었다. 오늘은 에이전트와의 중요한 만남이 있는 날. 따로 약속을 잡을리가 없었다. 누가 방문한 걸까?
"어... 언니 누구 불렀어?"
"아니? 너가 부른건 아니고?"
"전 괜찮으니까 천천히 확인 해보시고 오세요. 이웃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죄송해요 레베카씨. 얼른 확인해보고 올게요!"
나는 천천히 다녀오라는 레베카씨의 친절한 말을 듣고는 현관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띵동띵동띵동
'아씨 누구야! 내 집을 아는 사람은 몇 명 없는데... 왜 벨을 이렇게 마구 누르는 거야!'
나는 누군가 보채는 듯이 벨을 마구누르기에 더욱 빠르게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강하게 열었다.
벌컥!
"네 누구세..."
"안녕하세요!"
눈 앞에는 갈색 미녀가 서있었다.
"...공주님?"
"후훗! 잘 지내고 계셨나요? 그냥 안부인사차 왔어요!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아! 선물도 사왔답니다!"
불여우 같이 생긴 마야 공주님이 눈웃음을 치며 자신의 등뒤에서 아름다워 보이는 리본으로 곱게 묶인 상자를 꺼내들었다.
"아... 공주님 저기... 오늘 에이전트님이랑 만남 약속이 있어서요... 지금 집에 있어요..."
"어머! 그렇군요! 오랜만에 뵙는데 저도 인사드려도 될까요?"
"어어... 그럼 잠깐 들어오세요..."
왠지 공주님이 말을 하면 거부하기가 싫어진다. 하긴 어느 남자가 이런 미녀들이 부탁을 하면 거절할 수 있겠는가?
"후훗! 실례할게요!"
마야 공주님이 집에 들어오며 한 손으로 한쪽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눈웃음을 치고 내 옆을 지나갔다. 정말 심장 두근거리는 구만.
"어... 공주님?!"
소파에 앉아있던 레베카씨가 마야 공주님을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일어나 쳐다보았다.
"후훗.. 잘 지내셨나요? 건강한 듯 해서 다행이네요."
"여기엔 어쩐일로..."
"물론 우리 클럽의 보석의 안부를 확인하러 잠시 들렀답니다? 그러는 레베카씨는 어쩐일로 오셨는지요?"
"아.. 지혜 선수가 저에게 상담요청을 해서..."
꿈틀!
"상...담이요?"
"그럼요. 제가 지혜 선수의 담당 에이전트인걸요? 상담은 저에게 하겠죠?"
왠지 마야 공주님은 서운해 하고 레베카씨는 기새등등해보이는데 내 착각인가?
"아.. 다들 잘 오셨어요.. 이거 가은 언니가 만든 과자들이랑 차인데 맛있어요! 다들 드셔보세요..."
나는 미녀들 사이로 쭈뼛쭈뼛 다가가 말을 거니 과자와 차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오"
"맛있네요! 어디 유명한 파티시에로 일하셨던 분이신가요?"
두 미녀가 한국 미녀를 쳐다보며 흥미진진한 얼굴로 바라본다.
"아...하하하. 칭찬 감사해요. 그냥 취미 정도로 만들어본건데... 맛있으시다니 다행이네요."
베이지색 고풍스런 양복을 입은 마야 공주님과 정석적인 커리어 우먼 스타일 블랙 정장을 입은 레베카씨와 깔끔한 캐주얼 정장을 입은 가은 언니가 한 테이블을 두르고 앉아있으니 풍경이 굉장하다. 왠지 이 거실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흐음... 그런데 미녀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지혜씨의 미모가 줄지를 않네요.. 진짜 아름다우신걸요?"
마야 공주님이 테이블에 한쪽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며 나를 쳐다보고는 계속 이쁘다고한다. 사실 나한테 이쁘다고 해봐야 별로 큰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게 세명의 여자가 내 외모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로 빠지기 시작했다.
"아뇨 아뇨. 어쨌든 제 상담 좀 들어주세요..."
나는 자꾸 딴 이야기를 하는 세 여자들을 멈추고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 저 상담하러 왔었죠..."
레베카씨도 여자들이 모여있으니 수다에 빠져 이 곳에 온 목적을 잊었었나보다. 30대 중반인데도 꽤나 귀엽다.
"제가 프리시즌 전에 한국에 한번 다녀오고 싶은데... 기간을 얼마나 해야 할지..."
"아하.. 처음 입단한 선수들은 그런 점에 대한 고민을 많이 가지고들 있죠. 그럼 스케줄을 같이 짜볼까요? 지혜씨에게 들어온 요청들은 대부분 거절하기는 했는데 원하시는게 있다면 따로 받아도 되긴 합니다. 별로 추천하지는 않습니다만..."
"음... 팬미팅 정도는 생각하고 있긴한데... 아직 계획을 짜지는 않았어요."
"팬미팅... 좋네요. 하지만 아직 지혜씨의 크루가 만들어 지지 않아서 조금만 시간이 있으면 좋겠네요. 한 2~3주 정도? 그 정도면 꽤 좋은 크루를 만들 수 있을 거에요."
"그 크루란게 꼭 필요하나요?"
"음.. 크루가 대부분 개인 종목 선수들이 많이 가지고 있긴 하지만 꼭 개인 종목만은 아니에요. 크루가 생기면 그 만큼 선수가 부담할 부분이 줄어들으니 편해지거든요? 한번 크루를 만들어 보시고 마음에 안드시면 없애도 괜찮아요."
레베카씨가 걱정말라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어...? 한국에 가신다고요...?"
마야 공주님이 왠지 슬퍼보이는 얼굴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에... 일단 고향이기도 하고.."
"음.. 그렇네요!"
왠지 꿍꿍이 있어보이는 얼굴로 말을 한다. 무슨 생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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