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76화. 첫 방송 출연(4)
* *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지혜씨!"
다시 방문한 체육센터.
이미 방송 스텝들을 방송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대부분의 멤버들도 도착해서 방송 준비를 돕거나 몸을 풀고있었다.
"어머. 일찍오셨네요 지혜씨?"
"일찍이라뇨.. 다들 이렇게 일찍 올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올걸 그랬네요."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한시간 정도 일찍와서 인성 좋은 모습을 보여 주려 했는데 이 사람들은 더욱 부지런하게 움직인 것이다.
"오셨어요? 컨디션은 어떠신가요?"
뒤에서 인사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피디님이 퀭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피디님? 왜이리 수척해지셨어요? 어디 몸이라도 아프신가요?"
"아뇨 아뇨. 어제 영상을 편집하는데 열을 올리느라.. 아무튼 정말 좋았어요. 지혜씨 카메라빨도 상당히 잘 받아서 굉장한 작품이 나올것 같네요! 예능이지만요 하하"
나는 걱정되는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가니 피디님은 활짝웃으며 답을 하는데 오히려 더 힘들어 보이는게 참 안쓰럽다.
"그나저나. 지혜씨. 어제 문자로 주신거 진짜로 하실려고요? 준비는 해오셨나요?"
"아! 네. 한번 해보려고요. 그거 때문에 저도 어제 밤새 영상 보면서 공부를 했다구요.. 그래도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요?"
"어머. 공부까지 하고 오신거에요? 정말 말씀대로만 된다면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박이 날거에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명 한명씩 필드로 나오며 피디님과 대화를 나누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다들 표정이 좋은게 분위기가 너무 좋다. 걱정하던 조이도 표정이 꽤 밝다. 앞으로 이렇게만 지내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준비를 하다 이틀째 방송 촬영을 시작했다.
"오늘은 어떤 훈련이 준비되어있을까요 코치님?"
메인 MC가 김대범 코치님을 보며 물어보았다.
"오늘은 미니게임을 해볼 건데.. 그전에 한가지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공지요?"
"설마 누가 탈퇴하거나 그런건..."
"에이.. 우리 끝까지 함께하기로 했잖아!"
"불길한 이야기는 하지말자 아람아."
웅성 웅성
평소에는 하지 않던 공지를 하겠다고 하니 멤버들이 조금 걱정이 되나보다. 이미 나랑 김대범 코치님이랑 이야기를 나눈 상태기 때문에 그걸 공지 하려는 것 이기 때문에 그렇게 걱정 할 필요는 없다.
"다음 경기에 우리 이지혜 선수께서 골키퍼로 출전할 예정입니다."
"...?"
"네?!"
"골키퍼요?"
다들 놀란 표정으로 나와 김대범 코치님을 번갈아 쳐다보며 놀란다.
이 멤버들중에 골키퍼가 있을 텐데 자리를 뺐는거 아니냐고? 그게 아니다. 조금 상황이 이상한데 이 멤버들 중 골키퍼에 관심있는 멤버가 있지 않기 때문에 매 경기마다 번갈아가며 골키퍼를 했다고 한다. 사실 코치님이 한명을 픽해서 골키퍼에 꽂아 놓고 가르치면 좋을텐데 사회인 축구는 재미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멤버를 강제로 시키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김대범 코치님은 내 아이디어에 반색하며 기뻐한 것이다. 만약 내가 슈퍼 플레이를 선보이며 멋있는 장면을 자꾸 만들어 낸다면 관심있는 멤버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면서.
"네. 제가 여러분의 골문을 지켜드릴게요."
나는 씨익 웃으며 멤버들을 보면서 양 팔로 알통을 만드는 자세를 하니 멤버들의 눈이 반짝이며 나를 보기 시작했다.
"와!! 대박!!"
"다 막아주시는거 아냐?"
"그건 힘들겠지만.. 그래도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야!"
멤버들의 부담감이 조금 줄어든 기분이다.
"하지만 그 전에 테스트를 조금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공을 막을 수 없는 사람에게 골문을 맡길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김대범 코치님은 나를 보며 슬쩍 웃는다. 확실히 나는 골키퍼를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축구를 별로 해보지 않았음에도 동영상을 보면서 공부를 하고 대부분을 해낸 전력이 있다. 그래서 나는 지난 밤에 미친 듯이 골키퍼 영상들을 찾아보며 머릿속에 박아 넣은 것이다.
"자자 그럼 이지혜 선수. 준비 해 주세요. 멤버들의 슈팅을 막아보고 코치들도 한번 찰게요."
김대범 코치님이 말을 하니 카메라 뒤쪽에서 몸을 풀던 대학 선수들이 보였다. 오늘 특별하게 준비한 코치들이라고 하던데. 가끔 이런 식으로 주변 인맥 스포츠인들을 섭외해서 특별 코치로 임명한다고 한다.
나는 아침에 레베카씨가 구해다준 키퍼장갑과 보호대들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
"...네?"
레베카씨가 멍한 표정으로 반문 했다.
"저. 골키퍼 해보려구요."
"골....키퍼요? 갑자기 왜요? 스트라이커가 질리신 건가요? 아직 몇개월 지나지도 않았다고요! 당신이라면 최초의 아시안 여자 스트라이커로 발롱도르까지 수상할지도 모른다구요!"
왠지 뭔가를 오해한 듯한 레베카씨가 새파래진 얼굴로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지금 출연하는 예능에서 골키퍼로 경기에 나가려구요."
"앗...! 그런거라면 먼저 말해주셔야죠!"
레베카씨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짐짓 화난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는데 섹시해 보이기만 했다.
"그래서 그런데... 키퍼용 장비를 구할 수 있을 까요...? 제가 준비해 놓은게 없어서..."
"하긴.. 괜히 혼자 돌아다니시면 이상한 스캔들이 터질 수도 있으니 제가 아침에 구매해서 준비해 드릴게요.. 아! 그 전에 클럽에 먼저 이야기를 해놔야겠네요."
"...네? 클럽에요?"
"예능에 출연하는건 허락 받았는데 그게 골키퍼면 말이 달라지거든요. 괜히 오해할 수도 있고 부상 걱정도 있을 테니..."
레베카씨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두들기며 전화를 한다. 감독님에겐가?
[!#!$%!$!$%!$!$@ !!!!]
누군가 소리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다. 그때 레베카씨가 나에게 스마트폰을 건낸다.
"...감독님이 바꿔달라네요.. 오해하신 듯 하니 차분하게 설명 하세요. 제가 말해봤자 오해만 생길 것 같으니까요."
"으으.."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는 귀에 가져다댔다.
"...이지혜입니.."
[자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건가?! 골키퍼라니?! 우린 아틀레이가 있어! 자네에게는 공격수가 딱이야! 암! 딱이고 말고! 사고칠거면 그냥 돌아오게! 부탁일세!]
뭔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치는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오해를 하고 계신 듯 했다.
"아뇨 아뇨. 예능에서 골키퍼로 나갈꺼라구요... 전 공격수가 더 좋아요. 걱정마세요."
[...? 아! 그런거라면 말을 하지 그랬나!]
"먼저 화내셨으면서.."
[하하하! 아무튼! 하아.. 그래도 부상이 조금 걱정되기는 하는데...]
"절대로 안다칠게요. 걱정마세요. 저 원래 튼튼하잖아요."
[흐음.. 만약 부상을 입으면 징계를 내리겠네. 나도 예능을 시청할테니 잘 하도록 해. 재밌게 놀다오게.]
"감사합니다 감독님!"
"...오해가 풀린 듯 해 다행이네요."
"그러게요.. 아무튼 저는 공부를 좀 해야하니 먼저 들어갈게요!"
"...공부요?"
레베카씨는 내가 다시 건내준 스마트폰을 들고는 멍하게 내 등을 쳐다보았다.
***
나는 레베카씨가 아침부터 땀을 빼며 열심히 돌아다녀 구해온 장비들을 소중하게 착용하고 골대로 걸어가 자세를 잡았다.
쪽잠을 지새우며 밤새 돌려본 영상의 야신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니 나에게서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사실 이건 꼭 막고 말겠다는 다짐이 투지가 되어 나에게 활활 불타는 기운이 되었을 뿐이다. 마치 FA컵 결승전때 마냥.
"오오..."
"와.. 그냥 자세만 잡았는데 그림이 되네."
"으어.. 골키퍼 안해본거 맞아? 왠지 절대 못넣을 것 같은 기분인데?"
방송 스텝들이 카메라로 나를 찍으며 감탄을 한다.
"자! 다들 슈팅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차세요. 키퍼는 신경쓰시지 말고."
어떻게 저렇게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자세를 잡은 이지혜를 무시하고 찰 수 있겠는가.
첫번째 멤버가 자세를 신경쓰며 열심히 도도도 달려와 공을 찬다.
"에잇!"
펑!
공을 정확한 자세로 찬덕분에 힘이 많이 실리지 않았음에도 공은 절묘한 코스로 골대 구석쪽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흐읍!"
나는 굴러오는 공을 끝가지 주시하며 자세를 잊지 않고 다이빙을 하며 공을 가슴으로 끌어 안았다.
"오오..."
"..."
"와!"
몸에 품은 공을 들고 일어나 김대범 코치님에게 굴려주니 코치님은 나를 흥미있는 표정으로 보고있었다.
퍼엉!
펑!
퍼엉!
한명 한명씩 열심히 찼지만 전부 내 가슴안으로 정확히 들어오거나 골대 밖으로 굴러나간다.
"이거..."
김대범 코치님이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왜 그러시죠?"
"와! 지혜씨! 진짜 잘하신다! 진짜 골키퍼 안해보신거 맞아요?!"
메인 MC가 나에게 나가오며 폴짝 폴짝 뛴다. 이게 이렇게 놀랄 일인가. 공의 속도가 워낙 느리기 때문에 눈으로 공을 보고 움직여도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자세가 완벽하네요... 제가 골키퍼 코치가 아니라 정확하게 피드백을 해드릴 수는 없겠지만, 제 눈으로도 완벽하다고 느껴지네요. 한번 저희 대학교 선수들로도 테스트 해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바로 가죠."
나는 몸이 자세를 익히기 시작했다고 느끼기에 얼른 시작하자고 말했다.
나를 흥미 넘치는 표정으로 보며 다가오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들.
"진심으로 차도 될까요?"
"하하! 물론입니다."
"어디..."
첫 번째 선수는 꽤나 몸이 튼튼해 보인다. 대충 보건데. 오른쪽 다리가 조금 더 큰 듯해 오른발 잡이라고 느낌이 강하게 왔다.
25M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김대범 코치님이 첫번째 선수를 향해 공을 굴려주니 그는 도움닫기를 꽤나 정확히 하고는 강하게 슈팅을 한다. 그 순간 디딤발이 내가 보는 쪽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트는게 보여 나는 곧 바로 오른쪽으로 뛰었다.
쾅!
터엉!!
순식간에 오른쪽 아래로 강하게 날라오는 공의 궤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는 급하게 오른손으로 공을 쫓으며 쳐내었다.
"..."
"와아아아!!!"
"우와!! 공 진짜 빨랐는데 저걸 막았어!! 대박!!"
"꺄아아악!!!"
"...세상에"
나는 일어나며 잔디가 묻은 저지를 손으로 살살 털고 고개를 드니 방방 뛰며 좋아하는 멤버들과 경악하는 대학교 선수들과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는 김대범 코치가 눈에 들어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