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82화. 개막식(1)
* * *
툭
콰앙!
툭
콰앙!
마구잡이로 굴러오는 공을 골대를 향해 강한 슈팅을 날린다.
"허억! 허억!"
벌써 몇 번째 공을 찼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휴일이 꽤 길었기에 감각을 최대한 돌아올 수 있도록 훈련 강도를 조금 높게 잡았기 때문이다.
펑!
"크윽..."
골키퍼가 날라온 공을 쳐내고 자신의 손목을 주무른다. 25M 이상의 먼 거리에서 차는 슈팅임에도 강력한 힘이 실려있어 여자 축구 리그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슈팅이다.
"슈팅연습은 여기까지."
벤 하이머 감독이 손뼉을 치며 내 슈팅 연습을 멈추었다.
"허억 허억!"
가파른 숨을 가다듬었다. 물론 슈팅연습때문만은 아니다. 이전에 체력 훈련도 하고 팀 훈련 연습 후에 바로 슈팅 연습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오버 페이스는 오히려 독이야."
훈련에 들어서자 벤 하이머 감독은 분위기가 뒤바뀌어 꽤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상대방을 상당히 존중하는 말투를 사용했는데 필드에서는 꽤 거친 말을 자주 사용하는 듯 하다.
"다들 모여."
삐빅!
벤 하이머 감독이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버튼형 휘슬을 눌렀다.
다들 흩어져 자신의 포지션 훈련을 하다가 감독에게 모였다.
"다들 이번 조별리그 알고 있지?"
""네!!""
다들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다. 그간 올림픽 최종 예선을 뚫지 못한적이 많아 올림픽에 나가지 못해 분한 적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여자 축구쪽은 대한민국이 확실한 열세라는 뜻이겠지.
"그래도 다시 한번 말해주는게 낫겠지? 이번에 합류한 이지혜도 있으니."
귀를 열고 감독님의 말을 경청했다.
우리는 여자 G조. 남자는 A~D조까지 있고, 여자는 E~G조까지있다. 조마다 4팀씩 리그전을 하고 여자 조는 3개 뿐이기에 조마다 3위끼리 녹다운 토너먼트를 치뤄 한팀을 떨군다. 그 뒤로 8강부터 진행된다.
"우리 조는 하나같이 쉬운 상대가 없어."
E조 일본. 캐나다. 영국. 잠비아
F조 중국. 칠레. 이탈리아. 뉴질랜드
G조 대한민국. 네덜란드.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인가... 일본이 E조에 있는데 이번에 꽤나 잘한다고 한다. 만약 결승전까지 올라간다면 한일전이 성사 될 수 도 있는 상황. 꽤 재밌는 경기가 될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가지게 되었다. 조금더 합을 맞춰봐야겠지만.. 그래도 희망이 느껴진다. 이번 대표팀은 전보다 팀 결속력이 끈끈해. 대표팀은 실력보다 중요한게 결속력이라고 생각한다."
벤 하이머 감독님은 상당히 이번 올림픽에 목숨을 걸고 있는 듯 보였다. 단 2주도 남지않은 개막식조차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대회 경기 준비에만 신경쓰고 있었다.
"자자.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다들 딴길로 새지말고 쿨링다운 후에 숙소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도록."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코치들을 배정해주며 몸을 스트레칭 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나는 훈련을 대충 마무리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야 공주님이 축구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준 센터. 상당히 시설이 깔끔하고 최신식이다. 이런 곳을 그녀가 왜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녀에게 대표팀 모두가 감사하고 있다는건 당연한 수순. 잔디도 최근에 관리를 받았는지 상당히 쫀쫀하다.
그렇게 발로 잔디를 훑으며 감상에 젖어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혜야 오랜만이다!"
훈련 중에도 거의 마주치지 못한 박명석 코치님을 드디어 만났다.
"아! 오랜만이에요!"
나는 다가가 포옹을 한번 해드리고 인사를 했다. 나에게는 거의 은사같은 존재가 아닌가. 수아의 아버지이기도 해 나에게도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말하면 오바를 하는 것일까? 아무튼 친근한 기분이 든다. 그도 나를 딸처럼 생각하는 듯 했고.
"잘 지내는 듯 해 다행이구나.. 영국으로 가려고 했는데.. 올림픽 코치도 놓칠 수 없는 자리라서 말이지.."
박코치님이 머쓱하게 웃으신다. 그의 얼굴이 조금 더 늙은 듯한 기분이 드는건 기분탓일까. 사실 못만난게 몇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하하 코치님은 고생이 많으셨나보네요.."
"그래.. 축구협회에서 태클거는게 사실 많았거든.."
왠지 불안한 기분이든다. 축협이 끼어들때는 좋은 이야기를 들어보질 못했기에
"아무튼 그건 별로 신경쓸 필요는 없고.. 훈련을 지켜보니 엄청 발전한거 같구나. 확실히 영국에서의 경험이 확실한거 같네"
박코치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포근한 미소로 웃으신다. 다행이 기대에 보답을 해드린것 같다. 사실 영국으로 떠날때도 가장 걱정해준건 그였기에.
"하하. 수아는요?"
나는 괜히 머쓱해져 수아를 찾았다. 박코치님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르켜서 그쪽을 쳐다보니 낑낑거리며 많은 짐을 옮기는게 보였다.
"수아야!"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수아가 든 아이스박스를 대신해서 들었다.
"어휴.. 고마워.. 나도 운동을 하긴 하는데 아직 이것도 무겁네.."
"뭐야 이건?"
"이거? 아이스팩들. 나참 시대가 어떤때인데 아이스쿨러가 좋은게 얼마나 많은데 이딴 아이스팩이나 주고 말이야.."
"으음? 그러게. 이건 어디서 난건데?"
"축협에서 지원해준거야."
젠장맞을 축협의 이름이 또 나온다. 불길한 기분이 마음 한 구석에서 조금씩 커져가는게 느껴진다.
"가은 언니이이!!"
나는 멀리서 자신의 업무를 보고 있던 가은 언니의 이름을 배에 힘을 꽉 주며 소리를 질렀더니 주변의 선수들이 깜짝놀라 나를 쳐다본다.
"목청도 크네."
"키키킥 힘도 쌔더니 성대 힘도 좋은가봐"
그래도 밝은 사람들이라 나쁘게 보지는 않는 듯 했다.
"응 지혜야 왜?"
"나 주급 받은거 많지? 돈 별로 쓰지도 않았잖아"
"많긴 하지.. 돈 관리는 내가 하고 있으니.. 지혜 너가 별로 돈 자체를 쓰질 않으니.. 근데 그건 왜?"
"이 것 좀 봐. 아이스팩만 잔뜩 있어."
"으응..?"
가은 언니는 바닥에 놓인 아이스팩들을 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시대가 많이 지나 이딴 아이스팩을 보기는 유물과도 같이 어렵기에 뭔지 파악하는 듯 했다.
"이거.. 어따 쓰라고? 설마.."
머리가 좋은 가은 언니기에 순간 적으로 상황이 파악이 된 듯 했다.
"나 돈좀 쓰자. 이딴걸로 대표팀 선수들을 케어하는건 너무하잖아?"
대표팀 감독이나 코치들이나 넉넉한 사람들이 아닐거다. 그들은 거의 명예직처럼 일하는 것 뿐이기에 이런 선수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은 축협에게 지원을 받는게 당연하다.
"하아.. 그래.. 근데 여긴 두바이라.. 레베카씨한테 연락 좀 해볼게."
가은 언니가 잠시 레베카씨와 연락을 했다.
"...레베카씨가 굉장히 화가 난 듯 한데?"
우리가 스트레칭을 같이 하고 짐을 정리하고 호텔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레베카씨가 버스와 함께 도착했다.
벌써 부터 얼굴이 시뻘게져 있는게 상당히 화가나있는 상태인 듯 보였다.
"이게 대표팀에 대한 대우인가요?! 다른 종목도 이렇습니까?"
"그게.. 한국은 각 협회가 따로 있기도 하고.."
벤 하이머 감독님이 꽤나 곤란해 해 보여 내가 다가가 중재를 했다.
"레베카씨 감독님이 잘 못 한건 없잖아요? 그냥 제 사비를 써서 충당하죠."
"...축협의 입김이 닿지 않도록 요청한건 이런 점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가 대표팀은 이런 대우를 받는건 이상합니다. 물론 이지혜 선수는 더욱 더요. 안되겠어요. 최고의 서포터진을 준비해 두도록 하죠. 언론플레이도 준비하겠습니다."
레베카씨의 눈빛이 빛나보이기 시작한 것은 착각일까. 직접적으로 축협에 불만을 표하지 않고 후속조치 후에 언론 플레이를 하겠다는 점도 상당히 영악하다.
그 후에 어땠냐고? 레베카씨가 마야 공주님에게 헬프를 요청했는지 마야 공주님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고 어딘가에 전화를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발견했다. 그 후에 호텔에 방문한 각종 프로 여성 마사지사. 그리고 최첨단 기기를 급하게 구해와 선수들의 케어를 해주니 선수들이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호텔을 돌아다닌다.
"나 이런거 처음해봐!"
"진짜요? 어디서 축구하신다고 그랬죠?"
"지혜야 말 편하게 해! 난 핀란드에서 뛰고 있어. 거기도 여성 리그는 조금 가난해서.. 이런 최신 기기는 꿈에도 못꿔."
"크.. 지혜가 있으니 삶이 달라지네.. 나 너랑 평생 같이 하고 싶다."
주장도 기기에 쏘옥하고 들어가 애벌레처럼 케어를 받는 모습이 상당히 행복해보였다.
'대표팀에 대한 안좋은 처우.. 내 은사인 박코치님에 대한 불순한 접근..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듯 해 보이는데...'
어쨌든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닌 듯 보였다. 우리의 목표는 어쨌든 메달권. 나는 금메달을 노리고 있으니... 아마 다른 선수들은 놀라겠지만. 왜냐고? 올림픽 자체에 출전한게 이번이 처음인데 금메달이라니. 상상도 못할게 아닌가.
나는 지금의 대표팀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여태껏 최종예선도 뚫지 못했는데 자력으로 뚫고 올라왔다는건 그들의 노력과 열정이 이런 기적을 만들어 냈다는 뜻 아닌가. 그런데 언론에 하나 노출된게 거의 없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막은 것 마냥. 나는 이들이 광명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첼시, 아스날을 박살내고 잘근 잘근 밟고 리버풀마저 긴장하게 만들어 자신감이 상당히 올라가 있는 상태다. 그들이 노력하고 열정을 불사지른다면.. 나는 더욱더 활활 불타올라 재가 되도록 발화하여 그들의 앞길을 막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