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84화. 조별 리그(1)
* * *
개막식을 엄청나게 기대했건만 사실 나는 별거 없었다고 느꼈다. 왜냐고? 선수대기실에만 주구장창있으니 밖은 시끄러운데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다.
2주란건 생각보다 금방지나가는 듯 하다. 벌써 개막식이라니.. 내일이면 바로 조별 리그가 시작된다.
그래서 그런지 대표팀 선수들이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으음..."
신유정이 의자에 앉아 앓는 소리를 내서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연습때마다 활발한 성격을 발휘하며 팀의 분위기를 띄우던 아이인데 상당히 긴장된 표정으로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지혜 언니.."
"응?"
"그거 알아요? 여자 축구 경기는 A매치여도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다지 조명을 받지 못했어요.."
그 정도는 잘알고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좀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데 올림픽은 전세계 사람들이 전부 지켜보는거잖아요...? 너무 긴장되서 미치겠어요..."
의자에 앉아 다리를 덜덜 떠는게 조금 안쓰럽게 느껴져 나는 유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표정이 조금 나아지는 듯 보였다.
"선수들 입장 준비해주세요!"
한국에서 파견나온 통역사분이 우리 여자 축구 대표팀들이 입장 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켰다.
"자자. 키대로 잘서있고.. 긴장되더라도 웃어야 해. 우리는 대한민국 대표팀이니까 대한민국의 얼굴이라고!"
주장이자 신유정의 언니인 신유라가 선수 한명 한명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주며 힘을 불어넣어주는데 막상 본인도 긴장되는 표정이다.
"..."
나는 오히려 FA컵으로 인해 큰 대회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다지 긴장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앞으로 본선에서 어떤 팀을 만나도 지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도 있고..
우리는 안내하는 직원을 따라 개막식장으로 이동했다. 그래도 꽤 색다른 경험이라고 느낀다.
여러 홀로그램이 빛을 발하는 커다란 돔형 구장에 많은 선수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커다란 전광판에 대한민국의 국기와 각 종목이 나오면서 카메라가 우리를 비추고 있는게 보였다.
***
"흠.. 개막식은 항상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애."
케리의 펍. 그들은 언제나 지혜를 향한 관심과 애정으로 지혜의 발자취를 스토커마냥 쫓아다니는 사람들.. 무려 수십명이 사비를 털어 두바이까지 찾아오고야 말았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이런 개막식을 보려고 온게 아니지 않나!"
"그래 그래! 우리 여왕님을 위하여!!"
"..."
수십명이 자리에서 시끄럽게 떠드니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을 향하는건 당연한 수순.
그들은 웰링 유나이티드의 이지혜 유니폼을 단체로 착용하고 있으니 국가대항전인 올림픽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였다.
조금씩 개막식이 진행이 되고 각국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와 언제나와..."
"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
손톱을 잘근 잘근 물어뜯으며 마약 금단현상이 온듯 보이는 서양 남성들. 이미 주변엔 불안해서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지 오래지만 오히려 흥미깊다는 표정으로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지혜? 이지혜가 누구야?"
"그러게.. 팬들인가? 열성팬들인가보네.."
각 나라의 국기가 그려진 옷이나 굿즈를 착용한 사람들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입장 순서가 되었다.
"오오...오오오오오!!!"
"온다! 온다! 온다! 온다!"
점점 자리에서 조금씩 일어나서 소리를 치기 시작하는 케리의 펍 서포터즈들..
"음? 저 사람들 서양인들인데 왜 대한민국이 입장하는데 저렇게 좋아하는거지?"
"그러게.."
이해하기 힘든 광경을 재미있게 쳐다보는 사람들이다.
"우와아아악!!!! 여왕니이이이임!!!!"
"끼요오오오옷!!!"
"사랑해요오오오!!!"
이지혜가 전광판에 등장하자 남성들이 미친듯한 모습으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와... 모델인가..? 종목이 축구라는데.. 진짜 예쁘다."
"오오오... 이번 올림픽 선수들 중에 최고 미녀로 소문 날 것 같네.."
지혜를 모르는 일반인들도 지혜의 외모에 감탄하며 홀리기 시작했다.
올림픽은 전세계 지구촌 사람들이 즐기는 행사. 이제 지혜는 세계급으로 유명해질 기회가 왔다고 볼 수 있다.
***
"안녕하십니까 국내 축구팬 여러분. 오늘! 여자 축구 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경기로 찾아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기영 해설위원님!"
"안녕하십니까."
"여자 축구 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여지껏 최종 예선을 돌파하지 못했었는데요.."
"참 대견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물론 좋은 성적을 가져오면 더욱 좋겠지만, 만약 조별 리그를 돌파하지 못하고 한다고 하더라도 국민 여러분들은 자랑스러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상 최초 성적이니까요."
"그렇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응원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럼 라인업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흥미로운 선수들이 참 많죠.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선수도 있고 서른이 넘은 선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바로 이지혜 선수가 아니겠습니까?"
"하하. 물론입니다. 역시 이기영 해설위원님께서는 이지혜 선수의 팬이 아니시랄까봐 처음 부터 이지혜 선수를 언급하시는군요."
"축구팬이라면 어떻게 그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튼 엄청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선수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기되되는 유망주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이지혜 선수의 활약을 설명하고 국가대표 선수들의 업적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과거와 다르게 현재의 여자 축구 대표팀은 해외파 선수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유럽쪽에서 활약 하는 선수도 꽤 있죠. 주장인 신유라 선수도 첼시 팀에 소속되어있습니다."
"네. 여자 축구쪽에서는 상당히 명문인 클럽이죠. 여자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상당히 자주 우승을 했구요."
"그렇습니다. 자! 이제 경기 시작합니다!"
"이지혜 선수가 원톱이 아니라 세컨드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위치한 듯 보이는 군요. 라인업은 평범한 442인 듯 보였는데 이렇게 보니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흐음.. 벤 하이머 감독이 그녀의 능력을 확실히 파악을 한 듯 보이는 군요. 평범한 감독이였다면 다짜고짜 이지혜 선수를 원톱에 박아뒀을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그래도 성과는 나올테죠."
상당히 빠른 속도와 강력한 피지컬. 이미 여자 선수들과는 비교하는게 실례일 정도인지라 이지혜를 만능 선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치한 벤 하이머 감독의 능력이 재평가 받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선수들. 네덜란드 선수들 보다 피지컬이 딸리기 때문에 속도로 승부를 보려 하는 것 같습니다."
"흐음.. 이지혜 선수의 패스는 꽤 약점으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힘이 좋기에 스피드가 빠르지만 퀄리티 측면으로 봤을때는 상당히 불안하거든요?"
이지혜의 경기를 자주봐온 이기영 해설위원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 보고 있었다.
"공격 속도가 상당히 빠른 대한민국! 네덜란드 선수들이 대인 마크를 통해 몸으로 막아보려지만 상당히 퀄리티있는 패스 입니다!"
"좋네요. 조금 더 밀고 들어가면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 볼 수도 있겠습니다."
"패스합니다. 이지혜에게! 오!!!!"
"!!!"
중앙 미드필더와 윙어가 2대1패스를 주고 받으며 전진을 하다가 조금 처진 위치에 내려온 이지혜를 발견하고 패스를 보냈다. 이지혜는 공을 트래핑 하지 않고 논스톱으로 센터백을 넘기는 로빙 패스를 정확하게 타겟 스트라이커인 신유정의 발 밑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기회입니다! 찹니다!! 신유정!!!!"
"들어갔어요!! 완벽한 1대1 찬스에서 신유정 선수가 선취점을 가져갑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여자 축구라 관심을 별로 못받는 종목이지만 사람들이 조금은 있다. 두바이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동포들이 태극기를 들고 환호성을 내지른다.
"대단합니다. 리플레이가 나오는군요... 여기 이지혜 선수의 패스가 기가 막힙니다."
"제가 잘 못 본게 아니라면 노리고 패스를 한건데... 이게..."
할말을 잃은 이기영이 얼을 타고 말았다.
"아까 이기영 해설위원님이 이지혜 선수의 패스 능력이 약점으로 평가 받고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발언을 취소 해야 하겠군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미 골을 만들어 낼만한 패스를 했기 때문에 판명이 나겠군요. 패스. 대단히 좋아졌습니다."
경기가 다시 진행이 되고 이지혜는 조금 더 내려와 더욱 공격적으로 패스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입을 떡 하니 벌리고 지켜보는 이기영.
"이게... 이게..."
"왜 그러십니까 이기영 해설위원님?"
"말이 안됩니다. 이건 그냥 다른 선수가 나왔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아예 스타일이 변화했습니다!"
웰링 유나이티드에서 탱크 같은 모습으로 밀고 들어가며 골을 우겨넣었다면, 올림픽에서는 아트 사커로 보는 사람들이 홀릴 만한 패스를 뿌려대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좌우 미드필더들이 상당히 편한 모습으로 뛰고 있습니다. 이게 중원을 장악해버린 이지혜 선수의 힘이군요!"
"...이게 끝이 아닐 겁니다. 이지혜 선수 본연의 능력을 아직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위협적인 패스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네덜란드 선수들이 라인을 끌어내려 막아내기 급급한 모습입니다."
이지혜와 미드필더들이 패스를 계속 좌우로 뿌려대니 네덜란드 선수들은 도저히 앞으로 튀어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엉덩이를 사이드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치명적입니다! 이지혜 선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센터백이 좌우로 조금 벌려진 순간 이지혜는 패스를 택하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빨라요! 빠릅니다!"
순식간에 센터백 사이를 지나치니 네덜란드 선수들은 이지혜의 속도를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
별다른 드리블 스킬을 선보이지 않았음에도 골키퍼와 1대1 찬스를 만들어낸 이지혜는 차분하게 골대를 쳐다보고 구석으로 정확히 패스를 하듯 차 넣었다.
"이지혜 선수! 추가 득점을 본인의 힘으로 만들어냅니다!"
"...스타일이 완전히 뒤바뀌었군요. 이제 이해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리플레이를 다시 보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죠. 네. 드리블은 전과 같이 빠릅니다. 하지만 특유의 상체 무브먼트가 강한 드리블 스킬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슈팅도 강력한 슈팅 보다는 정확한 슈팅을 사용했습니다."
"그렇군요.. 깔끔한 득점입니다."
"이 장면으로 봤을때 떠오르는게 하나있습니다. 전에 골때리는그녀들이라는 방송에서 골키퍼 연습을 한 적이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재능이였죠."
"아! 저도 봤습니다. 대단했죠?"
"제 생각에는 여자 축구 대표팀과의 연습에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 여자 축구는 남자들보다 힘과 피지컬이 딸리기 때문에 슈팅과 드리블, 그리고 기술에 퀄리티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허어.. 제가 알기로는 대표팀에 합류한지 단 2주 뿐인 걸로 아는데.. 어마어마한 재능입니다.."
"2주만에... 그게 가능합니까?"
"...거의 불가능 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렇게 실현하는 선수가 나온다는게 참 신기하죠. 아무튼 이지혜 선수는 무기가 하나 더 생겼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거의 극찬을 하는 한국의 한 방송국. 이는 다른 나라들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평가를 내렸고, 많은 클럽의 감독들도 올림픽을 모니터링 하고 있었기에 난리가 난 상태다.
"..."
"..."
"..."
웰링 유나이티드의 모니터링룸은 침묵에 흽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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