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86화. 조별 리그(3)
* * *
브라질.
삼바 축구의 나라. 축구에 미쳐사는 나라. 여러가지 수식어가 있긴 하지만 일맥상통하는 내용은 축구를 정말로 사랑하는 나라라는 거다.
주리그, 전국 리그, 남미 챔스, 브라질 FA컵등을 전부 합하면 1년에 60~70경기에 달하는 미쳐버린 일정을 가진 나라. 1년간 쉼 없이 축구를 하고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결국 브라질인들은 남자 축구 뿐만 아니라 여자 축구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지혜? 누군지 잘 모른다. 우리는 브라질이다. 대한민국이 축구를 하는지도 잘 몰랐다. 네덜란드 전은 보지 못했다.]
이런 어마어마한 어그로를 끌며 나타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야이 씹... 이 새끼들 진짜 너무한거아니야?"
주장인 신유라가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굉장히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올림픽은 전세계인들이 관심있게 보는 대회. 이런 상대팀을 비난하는 어그로는 상당히 좋지 못하다. 올림픽 정신을 완전히 잊어버린 인터뷰라는 거다.
물론 축구는 서로의 팀을 물어뜯고 헐뜯는게 한가지 아이덴티티라고도 하지만.. 조금 너무한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한거겠지.
"진짜! 우리가 혼쭐을 내줘야 하는데! 정의구현! 정의구현!"
신유정도 뿔이난 상태로 방방뛴다.
"다들 훈련 다시 시작하자. 브라질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벤 하이머 감독님이 팀 수비 훈련을 실시했다. 확실히 브라질 선수들은 여자라도 기술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한다. 모니터링실에서 브라질과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경기를 관전했는데 2대0으로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더라.
그래도 나한테는 그다지 감흥이 올 정도는 아니다. 저 정도의 드리블은 코웃음이 나올정도고 스피드는 하품이 나올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원들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상당히 위협적인 드리블과 빠른 스피드로.
"더 강하게! 몸으로 부딫혀!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주면 안돼!"
박코치님도 수비수들에게 조언을 아낌없이 전하며 투지를 불사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후우.. 그런데 감독님. 이러면 페널티킥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수비수들의 부담이 너무나 커질 것입니다."
"흐음..."
계속 훈련을 진행해보니 확실히 몸을 쓰는 태클에 미숙해서 자꾸만 넘어지는 선수들이 나오기 십상이였다.
"..."
그때 골키퍼를 담당하던 선수 박아영이 벤 하이머 감독에게 다가왔다.
"음? 왜 그러나?"
"만약 다른 선수가 PK를 잘막는다면 저 대신 막을 수 있지 않나요? 피파 규정에도 심판에게 말하면 교체가 가능한걸로 알고있는데요..."
키퍼는 이제 19살의 어린 선수. 애초에 풀이 좁은 여자 축구에서 키퍼란 더욱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 스쿼드에는 골키퍼가 두명이나 있는데?"
골키퍼 자원이 한명밖에 없는건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에 어린 선수에게 압박감이 생기지 않도록 그 동안 신경을 많이 써온 벤 하이머 감독은 잠시 정신이 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혜 언니가 키퍼를 저 보다 잘해요... 분하지만 전 지혜언니를 존경해요! PK를 지혜 언니에게 맡기고 싶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어..."
벤 하이머 감독과 수석 코치가 서로를 바라보며 이해를 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흠.. 지혜가 키퍼를 맡으면 너의 자존심은? 너가 골문을 확실히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은?"
옆에서 박코치가 박아영에게 질문을 날렸다. 근본적인 문제. 스포츠 선수들의 자존심이란 마지막 성문과도 같은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되는 것.
"...전 예전 부터 PK가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게다가 올림픽에서 PK라니... 저는..."
아직 어린 선수에게 커다란 부담이였을까. 상상만 했는데도 벌써 얼굴이 새하얘지며 부들부들댄다.
서브 GK를 맡고 있는 선수를 바라보자 자신도 PK를 담당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PK는 골키퍼들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떠안고 자신의 성적표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에..
"...지혜에게 한번 PK 훈련을 시켜보죠."
"뭐?! 대체 무슨 소리인가?"
박코치가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벤 하이머 감독에게 말했다.
"일단 보시면 알겁니다."
박코치가 감독과 수석코치를 모시고 선수들을 모은 다음 PK 연습을 할거라고 말했다.
"...지혜가? 아!!!"
주장인 신유라가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짓다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말했잖아... 지혜 언니 골키퍼 장난아니라고..."
"맞다.. 공격 포지션을 저렇게 잘하니 골키퍼를 잘한다는건 완전히 잊고 있었지..."
"그럼 아영이는? 아영이는?"
신유정이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아영이를 찾으니 아영이는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으로 있었다.
"아영이도 알고 있었나보네... 아영이가 워낙 멘탈이 약한 애라 걱정했는데..."
이미 선수들끼리는 서로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법.
"자... 다들 한번씩 차봐!"
벤 하이머 감독이 선수들에게 PK를 실시하라고 명령했다.
***
삐익!
브라질의 선축. 브라질 선수들은 여자들임에도 단단한 몸체가 눈에 띄게 보일 정도로 잘 단련되어있어 보였다.
"크윽..."
특유의 리듬과 격한 상체 움직임. 삼바 축구라는 별명이 딱 어울릴 정도로 현란한 드리블을 브라질 선수들 대부분이 사용을 한다.
삐익!!
삐이익!!!
생각보다 빠르고 처리하기 곤란한 드리블 스킬을 사용해대니 수비수들이 거친 태클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공격도 못해보겠어!"
패스를 하려면 공을 소유해야만 한다. 하지만 공을 소유하지 못하면 방법이 없다.
나는 이미 이 올림픽에서 완전한 공격수로 뛰지 않을 것이라는 걸 감독과 합의를 봤다. 왜냐고? 혼자 하드캐리해서 다 찢어발기려면 라인을 내려서 중원에서 놀아야 하기 때문이다.
"!#$%!$@"
영국에서 뛸 때는 영어 공부를 했기에 상대 선수들의 말도 이해해서 대응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오히려 이 점이 나에게 역으로 답답하게 만드는 기분이다. 도저히 뭐라고 하는지 알아먹을 수가 없네.
"..!!!"
상대는 나보다 느리다. 느리면? 공을 뺐겨야지.
내 태클 실력이 높은 수준에 있지는 않지만 영국 프리미러 리그 팀과 격렬하게 싸운 짬이 있지 이런 것도 못 뺐을 실력은 아니다.
와아아아!!!
빠른 스피드와 공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드리블 치는거에 환장한 브라질 선수를 따라다니다 정확하게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내니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확실히 네덜란드전보다 관중이 늘은 기분이다.
"받아!"
나는 공을 뺐어버리자 마자 강하고 빠르게 로빙 패스를 시도했다.
"!#!$!$$# !!!"
브라질 선수들이 창백해지며 빠르게 뒤로 뛰는 모습을 보니 상당히 다급해 보인다. 하지만 나 정도 되는 수준이 된다면 공을 쫓는건 크나큰 실책이다.
터억!
신유정이 꽤 괜찮은 트래핑으로 강하게 날아온 내 패스를 잘 받아낸다.
"크윽!!"
신유정은 이미 페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했기에 브라질 선수들은 지역 수비를 하며 라인을 내렸어야 하지만, 이정도 퀄리티의 패스를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마구잡이로 공을 쫓은 댓가를 치루고 말았다.
터엉!!
확실히 유정이는 재능이 있어 보인다. 정확하게 찬 공은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상관이 없다. 골키퍼가 막을 수 없는 공간으로 날아가고 마니까.
***
"대한민국의 선취골!! 또 다시 해냅니다!"
"정말 대단한 패스와 슛이였습니다. 브라질 선수들은 상대 팀을 존중하지 못한 댓가를 치루고 맙니다!"
자고로 정의구현이란 강한 뽕맛을 느끼게 해주는 법.
"크으... 기가막힌 패스 입니다. 이 정도 패스를 구사하게 됬다니.. 앞으로 이지혜 선수의 경기를 관전할 재미가 하나더 늘은 기분이군요."
이기영 해설위원이 행복한 표정으로 리플레이를 지켜보았다.
"하하하! 이지혜 선수가 완전히 미드필더 진영까지 내려 온걸 볼 수 있지 않았습니까? 이기고 말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군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애초에 공격수 혼자는 게임을 승리로 이끌기에는 상당히 힘들기에 중원 가담에 힘을 더 실은거 같습니다만... 아주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와.. 진짜 패스 개쩌네. 옛날에 기성용이 포텐터졌을때 저랬는데.]
[ㅋㅋㅋㅋㅋㅋ언제적 선수냐고]
[와... 이제 마리눈나 피파 카드 능력치 어떻게 되누? 슬슬 100넘어가겠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비현실적인 재능이다... 메시나 호날두를 보던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였을까?]
[근데 저 천막 뭔지 아시는분? 누구 다침?]
시청자 채팅창에서 천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기영 해설위원님. 대한민국 대표팀 진형에 천막이 하나 설치되어있는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빠른 브라질 선수들을 대응하다 부상이 생기면 빠르게 후속조치를 하려는 생각일까요?"
해설위원도 뒷 사정은 전혀 모르기에 자신들의 뇌피셜을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흠... 브라질 선수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질 수만은 없다는 뜻이겠죠?"
"그렇습니다. 브라질 선수들도 충분히 골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보니 대한민국 선수들은 긴장을 늦추지 말고 대응해야 합니다!"
여자 축구 선수임에도 상당히 굉장한 실력으로 보인다. 쓸대 없는 드리블을 자제하는 대한민국과 화려한 드리블을 자주 사용하는 브라질이 맞붙다보니 대한민국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못해보이고 있다.
"사실 저런 드리블을 자주 사용하는게 좋은게 아니거든요? 템포를 잃어 버릴 수 있다. 이겁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위협적인 드리블을 허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아!! 안됩니다!!"
너무 빠른 드리블을 상대하다보니 발이 풀려버린 대한민국 풀백. 브라질의 공격수를 페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하도록 허용하고 만다.
거기서 침착하게 달라붙으며 상대해야 하지만.. 화려한 드리블을 자주 보다보니 열이 뻗친 것일까. 조금 힘이들어간 스탠딩 태클에 발이 걸려 넘어져버린 브라질 공격수.
삐이익!!
와아아아아!!!!
"아... 심판이 페널티 스폿을 찍습니다.. 조금 침착했어야만 합니다..."
브라질 관중들이 일말의 승리를 느꼈는지 브라질 국기를 들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어? 신유라 선수. 이건 주심의 심기를 건드리면 카드가 나올 수 있어요!"
그때 주심에게 주장인 신유라가 달려가 뭐라고 말하기 시작하고 주심은 경악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뭐라 뭐라 말하는 신유라. 주심은 고민을 하다가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신유라가 손짓을 하니 이지혜와 박아영이 천막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뭐죠? 판정에 불복하는 것 아닌 듯 합니다만..."
"박아영 선수가 천막으로 갑니다. 부상이 아니였으면 합니다만... 대한민국엔 서브 골키퍼가 한명더 있긴 합니다만 박아영 선수는 실업팀에 소속되어있지만 서브 골키퍼는 현재 대학팀에 소속되어있는 선수입니다. 이런 큰 상황을 담당하기엔 조금 부담이 클겁니다."
"...그건 치명적아닙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뛰는 것이기에 여자 축구 선수들은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 올림픽 대표팀에 잘 참여를 안하거든요... 이건 선수 탓할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선수 풀도 문제입니다. 축구 협회에 등록된 선수가 초중고대학실업팀까지 합해도 1400명 정도 밖에 안됩니다!"
그렇게 잡담을 하고 있으니 천막안에서 서로 유니폼을 바꿔입은 둘이 나오기 시작했다.
"...?"
"....어?"
"이지혜 선수가 왜..."
"아!! 설마!!"
이기영 해설위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경악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뭐임? 도대체 뭐임?]
[왜 이지혜가 골키퍼 유니폼을 입고 나옴?]
이지혜가 골키퍼 유니폼과 장비를 착용하고 골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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