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89화. 조별 리그(6)
* * *
대한민국과 브라질과의 경기는 3대0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전반전에 3골에 관여한 내가 교체로 나가고 나서 아무런 골이 터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경기가 재미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한민국은 자신감에 넘쳐있는 상황이다. 브라질은 내가 나가고 나서 어떻게든 상황을 역전해보려 노력을 해보았지만 이미 대한민국 선수들은 브라질의 스타일에 적응을 해버린 상태였다.
브라질 사람들은 실망을 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 내 생각엔 재미있어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을테니까...
우리는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필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쥐해!!!"
여기 저기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내가 경기를 뛰었던건 영국뿐이였던지라 영어가 들려오면 영국의 웰링 서포터즈들이 떠오를 뿐이였지만..
나는 고개를 들어 관중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흥분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매번 생각하는데 이럴때마다 진짜 내가 축구선수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를 보고. 물론 나만을 보고 있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박수를 쳐주며 환호성을 불러주는게 너무나 가슴을 벅차게 만들어준다.
"여기!! 여기요!!!"
어디선가 커다란 남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한 남성들의 무리를 발견했는데 보자마자 넋이 나가버릴 정도였다.
내 유니폼과 태극기를 들고 있는 서양 남성들. 딱 봐도 웰링 유나이티드 서포터즈들이다.
"하하하핫"
자신의 나라를 응원하러 가지도 않고 오로지 나를 보기 위해 쫓아와준 고마운 팬들이다.
나는 양손을 번쩍들어 그들을 향해 휙휙 휘둘러주었다.
***
올림픽은 상당히 순조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브라질과 네덜란드를 상대한 경기는 너무나 완벽했고. 브라질의 경기 하이라이트는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을 정도였다.
[올림픽 여자 축구 대한민국 vs 브라질]
너튜브에도 각종 스포츠 채널이 하이라이트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으니까 자연스래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브라질이 드리블 스킬에서 밀리네
대박이네요... 외모와 실력도 최고네요!
각종 나라의 언어로 칭찬글이 올라오는걸 보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지혜야 진짜 대박난 것 같은데?"
주장 언니가 나에게 스마트폰을 건내며 자신이 보던 영상을 보여준다.
"이미 다 봤어요 언니"
나는 언제나 내 영상을 찾아보기 때문에 누구보다고 빠르게 찾아보았을 뿐이다. 댓글도 읽어보는 재미가 있기도 하고. 물론 악플따위 신경쓰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다.
똑 똑
철컥
"...저기 지혜 언니"
신유정이 내 방의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를 찾고 있었다.
"응 유정아 왜?"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같이 훈련을 하며 따로 나를 찾은 적이 거의 없는 유정이가 찾아오니 오히려 반가운 기분이였다.
"으음... 그게 브라질 선수들이 찾아왔어요.. 통역사분들이랑 같이.."
"으음??"
나는 나를 찾아왔다는 브라질 선수들의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간단하게 차려입고 방을 나섰다.
"지혜야."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가은 언니가 나에게 다가와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괜찮아. 별일 아닐거야."
"걱정하는건 아닌데.. 같이 가자!"
슬쩍 웃고는 내 옆으로 걸어와 레베카씨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흠... 저도 근처에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미 저도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쪽 통역사분이 에이전트업도 하고 계시던 분이시더군요.]
나는 가은 언니에게 전화를 건내 받고 만나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게 이 정도로 걱정 해야할 문제였나...
"아!!"
멀리서 브라질 선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통역사도 같이 와서 내게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통역사를 거치는 대화. 마치 영국에 처음 갔을 때가 느껴진다. 왠지 향수가 느껴지는 것 같아..
"...팬이에요"
"우리 모두 당신의 플레이에 반했어요!"
"와.. 그 플릿 드리블은 진짜 장난 아니였어!"
"그렇지? 멀리서 봤을 때가 더 멋있었다니까. 가까이 있던 너희들은 제대로 보지도 못햇지?"
"...무슨일이 일어 났었는지도 잘 모르겠어."
내게 다가온 브라질 선수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어는 전혀 알지 못하기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일단 진정들 하세요. 대화하고 싶어서 온거 잖아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레베카씨가 걸어오며 영어로 브라질 선수들에게 말을 걸었다.
"네! 처음 만남이 안 좋았다는건 잘 알지만.. 그래도 축구 선수로써 그런 플레이를 본다면 반할 수 밖에 없잖아요!"
이 선수는 기억이 난다. 분명 페널티킥 상황에서 공을 찼던 선수일 것이다. 보통 그런 상황에서 실패를 한다면 상당히 위축될텐데.. 속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닌 듯 보였다.
"우리 브라질에서는 축구 잘하는 사람이 왕이에요.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얄밉게 삼바를 추고 그래도 브라질 사람들이 딱히 야유를 부리진 않았던거에요. 물론 남미 국가의 선수였다면 조금 상황이 달랐겠지만.."
그런가. 왠지 브라질 사람들도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듯한 기분이였는데 그런 이유였구나.
"...그럼 그냥 인사만 하고 싶어서 오신건가요?"
"그렇죠? 싸인도 받고 싶구요. 앞으로 프리미어 리그 선수가 될게 거의 유력한데 미리 받아놔야죠!"
"와.. 여자가 프리미어 리거라니.. 진짜 이런 날도 오는 구나.."
"나도 가능할까?"
"불가능 하지! 피지컬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인데. 그냥 이지혜 선수가 어마 어마하게 축구를 잘해서 그런거야. 꿈깨"
"에휴.. 그렇지.. 그냥 영국 여자 축구 클럽이나 알아봐야겠다."
기본적으로 브라질 선수들은 실력을 갖추고 있기에 대부분의 클럽을 골라서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받아주느냐 마느냐는 클럽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도 브라질이랑 경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앞으로 또 같이 경기할 확률은 엄청 적을 것 같지만... 어쨌든 좋은 추억이 됬네요. 브라질리언이랑 축구를 해보는 것도 꿈이였으니까요."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그들에게 내 말을 건냈다. 확실히 이들은 물론 이들 전부가 그런건 아니지만 잘 못된 어그로를 끌었으니 내가 화를 냈어도 별 소리를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을 만들어서는 좋을게 없겠지. 오히려 내 팬이 되었다는데 팬 서비스 차원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자.. 사인 해드릴게요."
나는 통역사님에게 팬을 건내 받고는 한명 한명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혹시 올림픽이 끝나면 바로 영국으로 돌아가시나요?"
"으음..."
누군가 나에게 바로 돌아가냐고 질문을 했다. 나는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의 스케줄을 잘 몰랐기에 레베카씨를 쳐다보았다.
"흠.. 바로는 아니에요. 선수도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할테니 적어도 3일은 머무를 생각입니다."
"그렇다네요. 왜 그러시죠?"
"축구를 조금만 배울 수 있을까 해서... 앗! 실례라면 거절 하셔도 괜찮아요!"
조금은 체격이 작아보이는 브라질 선수가 머뭇거리며 축구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본선에서 우리 또 마주칠 수 도 있는데 벌써 그런 말은.."
"하하.. 그렇죠.. 하지만 뭐 어때요!"
"가능하면 잠깐 시간 내볼게요. 그렇다고 제가 뭘 가르쳐드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같이 훈련이라도 하면 되겠네요."
"예이! 들었어?"
"우와... 허락 받고 말았네.. 오기전에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하하"
자신의 팀원들에게 돌아가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하는 소녀. 어쨌든 사람의 인연은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기에 이렇게 인연을 만들어 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가은 언니가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 지혜야..."
"응? 가은 언니 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은 언니. 이런 표정을 짓는 걸 보는건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레베카씨가 지금 연락을 받으러 갔는데... 내가 옆에서 들어보니까 네덜란드 선수들도 널 만나고 싶어하는 것 같던데?"
"...엥?"
나는 무슨 일이 생겨버린건지 놀라버려서 굳은 얼굴로 되묻고 말았다.
"네덜란드도 이겼으니까 좀 마음이 놓인 상태일거야. 그래서 줄곧 만나고 싶었던걸 참고 있었나 보지."
그렇게 통화를 하는 레베카씨를 기다리며 통역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림픽에서는 이렇게 만남이 자주 이루어 진다고 한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이기도 하고, 자신의 우상인 선수가 나오는 경우도 많으니 선수들이 자주 사람들을 찾고 다닌다고 말해주었다.
"아아.. 그렇군요."
"네.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저도 올림픽을 벌써 세번째 따라다니는데 거의 매번 이런 상황이 발생해서 익숙해요."
통역사님이 그저 평온한 얼굴로 웃는 걸 보니 진짜 많은가 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레베카씨가 다가온다.
"...브라질 선수들이 떠나고 연락을 주면 찾아오겠다고 하네요. 만나실건가요? 저는 만나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결국 스포츠도 인맥 사회가 강한 편이니까요."
다음은 브라질이랑 네덜란드가 경기를 하니 서로 마주치는건 지양하는게 맞을 것이다.
"네. 저도 만나고 싶네요."
여자 축구 선수들이라.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도 궁금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흔쾌히 승낙했다.
"...이러다 경기한 여자 축구 선수들 전부 만나는거 아니야?"
가은 언니가 턱을 괴고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