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91화. 올림픽을 여행하다(2)
* * *
인생 처음으로 농구 경기장에 들어와보았다. 생각보다 커다란 구장에 한번 놀라고 선수들과 관중석의 사이가 가까워서 경기를 준비하는 스텝들과 선수들이 상당히 가깝게 느껴지는 점에 놀랐다.
농구는 이렇게나 관중들과 사이가 가까워서 그런지 경기 전 부터 관중들을 위해 진행하는 행사가 꽤 있는 듯 했다.
각 나라의 치어리더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춤도 추고 선수 소개 하는 시간도 재미있게 진행을 했다. 이런 부분이 상당히 부럽게 느껴졌다. 축구는 그냥 안내 방송으로 퉁치고 바로 경기로 들어가버리니까..
그렇게 우리는 즐겁게 농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주변에 구경온 관중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니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역시 농구는 엄청나게 피지컬이 중요한 세계. 눈 호강이 될 정도 였다.
***
[님들 이거 봄?]
(대충 이지혜가 농구를 하는 짤)
이거 갑자기 돌아다니던데 합성 아니지? 어떻게 축구를 그렇게 잘하면서 농구도 잘하냐? ㅋㅋㅋ
와... 진짜 잘던진다..
자세만 보면 농구 별로 안해본 것 같은데 힘이 좋아서 공이 림까지 날라가네 ㅋㅋㅋ 남자도 저기까지 못 던지는 사람 많을걸?
ㄴ 나 못하는데 ㄹㅇㅋㅋ
근데 훈련 안해도 됨? 바로 낼모래가 8강전일텐데..?
ㄴ 솔직히 안해도 되니까 나갔겟지~
ㄴ 3경기 하드캐리 오졌는데 이정도 쉬는건 괜찮지 ㄹㅇ
[야야야야야 야구장에 마리눈나 왔다 시불]
(대충 내가 한국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있는 사진)
나 두바이 출장온 직장인인데 올림픽 특수로 휴가 받고 돌아다니는데 한일전 구경 왔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여자가 보이는거 아니겠음? ㅅㅂ
난 내가 정신이 나갔나 했지. 맨날 티비나 너튜브에서나 보던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
게다가 실물이 훨씬 쩐다고 ㅅㅂ 존예여신이 있다면 이지혜가 아닐까 싶다. 근데 키도 크고 피지컬이 좋으니까 좀 무서운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하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스토커 같네 진짜
야구장?! 나 지금 거기 근처인데 바로 간다
부럽다 시발 진짜 두바이까지 어떻게 가누..
***
"...예?
"혹시 미스 지혜가 시구를 해주 실수 있으실까... 하고요"
"제가요? 사람들은 제가 누군지도 모를걸요?"
나는 내가 야구장에 온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나를 찾아온 야구 관계자한테 너무나도 놀랐다.
"그리고 이미 시구자가 있는거 아니였나요? 보통 이럴땐 올림픽 관계자분게서 많이들 던지는걸로 아는데요..."
만약 누군가를 밀어내고 내가 시구를 해버린다면 나는 엄청난 야유의 폭격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런 염치없는짓은 최대한 안하는게 내 선수수명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게 시구자분이 긴장되서 못하겠다고 어제 갑자기 연락을 해서.. 너무 당황스럽네요.. IOC관련 인사분이신데.. 참 진짜.. 욕을 할 수도 없고.. 나오라고 보챌 수도 없는 위치라.."
"아니 대체자도 안구해놓고 다짜고짜 못던지겠다고 했다고요? 허..."
"...생각보다 이런일이 자주있다고 해요. 근처에 유명인사가 지나가나 인터넷으로 상황파악을 하고 있었는데 미스 지혜를 보았다는 글들이 짹짹이에 올라오기 시작해서..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안될까요?"
"흐음..."
나는 고민스런 표정으로 가은 언니를 바라보았더니 가은 언니는 마치 나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듯 그냥 슬며시 웃기만 하고 있었다.
"...한국이 경기하는 날이라 다행이네요. 만약 제가 나간다고 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테니까요."
"...! 그럼!"
"네.. 할게요.. 그 전에 전화 한통만.."
나는 관계자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피해서 레베카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일이 있었어요."
[하하하. 그런가요? 그럼 지혜씨는 하고 싶으시다는거죠? 그럼 상관없어요. 오히려 반길일이죠! 지혜씨의 이름을 또 알릴 기회니까요. 한국이 출전하는것도 좋지만 일본이군요? 같은 아시아쪽이라 많이들 신기해 하겠네요.. 이참에 일본과 친해질 기회이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야구 해보신적있어요? 아니 그전에 농구는 또 뭐에요! 이미 인터넷에 쫙 퍼지고 있다구요!]
"..."
갑자기 엄청나게 말을 쏟아내는 레베카씨 때문에 말을 잃고 말았다.
"...야구요. 해본적 없죠. 시구는 별로 그런게 중요한게 아닐거 아닌가요?"
[물론 그렇죠. 혹시나 시구도 엄청 잘해서 난리나는거 아닌가요? 하하하]
"그럴리가요. 야구공을 던져 본적이 한번도 없어요."
[그런가요. 아무튼 잘 하고 오세요! 알아서 홍보도 하시고 장하네요.]
"하하하"
"그럼 지혜 시구하는거야?"
"응"
나를 보고 눈을 반짝이며 기대를 한다는듯이 보이는 행동이 살짝 부담스럽다. 하지만 뭐 어떤가. 이 몸뚱이는 스포츠라면 중간은 할 것 같으니까.
"어... 그 쪽이 이지혜씨...?"
덩치가 커다란 곰 같은 남성이 나를 보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갑자기 시구자가 런을 해서 짜증이 날텐데 또 대신 시구를 할 사람이 처음 들어본 여자라니. 꽤나 당황스럽기도 할텐데 나를 보니 또 체격이 상당히 좋은 여성이다.
"네. 오늘 대신 시구를 하기로 했어요. 영국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이지혜라고 합니다."
"...아 네 반가워요. 전 김대수라고 해요. 그냥 포수라고 생각하세요."
뒷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피하면서 얼굴이 살짝 빨게 진걸 보니 또 내 외모를 보고 딴 생각을 한듯하다. 얼른 생각을 돌려줘야지.
"시구 연습때문에 오신거죠? 얼른 해보죠. 경기 시작까지 얼마 안남았을거 아니에요?"
"네? 아! 네 네."
딴 생각을 하고 있던게 맞았는지 말을 더듬는다. 어쨌든 나는 빠르게 공을 던지는걸 조금 배웠다.
***
마운드 위에 선수들이 나와 몸을 풀기 시작했다. 1회 초는 한국의 수비이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이 올라와 마운드의 상태도 확인하고 돌아다니며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며 잠시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대수야. 시구자 어떻게 됬냐?"
"어... 그게요..."
"아 새끼 또 얼타네. 누군데 그래 임마!"
김대수가 말을 잘 못하니 답답해 하는 선배 동료가 김대수를 보챘다.
"그게 여자가 왔어요. 축구 선수라던데요? 우리나라 사람이에요."
"...우리나라 여자 축구 선수? 누구지? 유명한 사람이 누가 있더라? 아무튼 시구는 잘 알려줬지? 대충 던져도 되니까 빨리 끝내자고."
"그게...."
눈알을 또르르 굴리며 뭔가 당황을 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김대수.
"또 왜! 좀 심각한 수준이야?"
"아뇨.. 오히려 너무 잘 던져서 문제인데요... 그렇게 던지는 여자는 처음 봤어요..."
"...뭐? 무슨 소리야"
선배 동료는 투수. 괜한 소리를 해서 멘탈에 문제가 생기면 안될테니 말을 조심해야 할 테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시구자니 빨리 끝내면 좋죠. 하하하"
"...싱거운 놈. 아무튼 오늘 꼭 이겨야해. 무려 한일전이잖아?"
"그렇죠!!"
그렇게 김대수는 한숨을 푸욱 쉬고는 장비를 준비하러 잠시 마운드를 떠났다.
***
"안녕하십니까. 국내 야구팬 여러분 드디어 한일전이 시작됩니다."
"오래 기다렸죠, 이번 올림픽에서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치열하게 잘해오고 있기에 더욱 더 기대되는 경기가 아닐 수 가 없습니다."
한일전은 종목을 불문하고 대박적인 시청률이 나오기 마련이다. 당연하게도 오늘 야구 한일전은 올림픽 최고의 시청률을 갱신하고 있을 정도 였다.
"오늘 시구자가 나오고 있군요.. 저희도 방금 시구자분에 대한 자료를 받았는데 대단하신분이군요! 이지혜 선수입니다!"
"스포츠쪽 종사자라면 모르기 어려운 이름일 것입니다만 시청자분들은 모르는 분이 많으실걸로 예상합니다. 그녀는 영국 축구 2부인 챔피언십리그에 소속되어있는 웰링 유나이티드의 선수입니다. 남자리그 소속 선수입니다. 남자리그요! 그만큼 대단한 선수라는 것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재능을 가진 소녀입니다. 이제 겨우 20세에 불가한 소녀인데 말이지요."
해설자들은 나에 대한 극찬을 하기 시작했고 내가 시구하기전 준비를 할때까지 이어졌다.
"자! 이제 이지혜 선수가 시구를 준비하는군요! 외모도 상당히 미인이 아닙니까? 피지컬도 상당하군요! 팔다리가 길어 피칭도 상당히 좋을 거로 보입니다."
"크... 야구 국가대표 옷이 아주 잘 어울리는군요."
나는 김대수가 던지라는 사인을 하고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긴장을 하는게 보였다. 나는 김대수가 꽤나 자세하게 잘 알려준 자세를 틀리지 않도록 머리로 잘 생각하고 몸을 움직였다.
공을 던지는데는 여러 단계가 있다는데 자세한건 잘 모른다. 어쨌든 나는 축구 선수이니까.
무릎을 명치까지 올렸다가 발을 차듯이 앞으로 뻗는다. 난 다리가 상당히 긴편이기에 몸이 앞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왼발을 지지하고 뒤로 뺀 팔을 몸으로 끌어당기듯이 당기며 동시에 몸의 중심을 왼다리로 실어버린다.
상당한 무게감이 오른팔에 느껴진다. 최대한 강하게 던진다는 생각으로 오른팔을 내려찍듯이 직각으로 내려친다.
후우웅!!!
슈우우우우욱!!!
퍼엉!!!
시타자가 일본인 선수였는데 그냥 대충 던지겠지라고 생각했던건지 장난스런 표정으로 방망이를 좌우로 흔들고 있다가 공이 갑자기 눈앞까지 날라오자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스트라이크으으으으!!!"
주심이 오버스런 모습으로 스트라이크 자세를 취하며 소리를 질러댄다.
"으어어어엉?? 이... 이게 뭐죠?"
"대단한 피칭입니다!! 야구를 안해봤다고 자료에 나와있는데 그건 분명히 거짓말이 확실합니다!! 속도! 속도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요!"
그때 전광판에 속도가 떡 하니 나온다.
"100..... 103마일?????"
"아니 이게 무슨!!!"
와아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100마일은 약 160km의 강속구. 물론 MLB에서는 종종 100마일 이상으로 던지는 투수가 나오지만 여자가 100마일을 던진다는건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집어들고 툭툭 털며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니 주변의 한국과 일본 선수들이 나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어어?!"
나는 당황스러워 출구쪽으로 달려가려고 했지만 김대수 선수에게 먼저 잡히고 말았다.
"씨.. 씨발 대단해!! 연습때보다 더 빨라졌어요!! 그 것도 엄청나게 정확한 자세로!!"
나는 그렇게 한국과 일본 선수들에게 둘러쌓여 각종 질문 공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정말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도대체 어떤 몸을 가지고 있기에 여성의 몸으로..."
그렇게 야구장에서의 헤프닝도 또다시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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