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111화. 프리 시즌(1)
* * *
시구가 끝나고 사람들을 위해 내 사인 유니폼을 나누어주는건 황대표님이 보내준 사람들이 해주기로 하셨다. 그들도 돈을 충분히 받고 나온 것인지 표정이 상당히 밝은 상태라 걱정없이 떠날 수 있었다.
이 후에 각종 CF나 예능 프로그램 섭외가 엄청나게 쌓여있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거절 연락을 돌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하하하! 이렇게 연락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기쁩니다. 제가 도움드릴게 많아져서 오히려 기쁩니다.]
황대표님의 목소리가 상당히 들떠있는 듯 했다. 여태 연락을 자주 할 수 없어서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었는데, 다행히 고아원건이나 이번 사인 유니폼건에 도움이 급히 필요해 헬프 연락을 드리니 흔쾌히 받아드려주시고 빠르게 일처리를 해주기로 하셨다.
[그럼 지혜씨는 바로 영국으로 넘어가시는 겁니까?]
"네. 아무래도 오래 자리를 비우는 건 그다지 좋지 않을 것 같아서요."
레베카씨에게 듣자하니 웰링 유나이티드의 프리시즌은 아주 완벽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한다. 유럽 여러 국가의 2부 리그 팀들과 친선경기를 치루고 있다고 하는데 승률 80퍼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시즌! 정말 기대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네. 대표님도 건강하게 지내세요."
대충 인사를 나누고는 눈 앞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비행기가 곧 도착할 거야."
가은 언니가 눈웃음을 지으며 조만간 영국행 비행기가 도착할 것이라고 나에게 말을 해주었다.
"끄응! 이제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네!"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에서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기간동안 다시 고국에 돌아온 것인데 타국에 여행온 듯한 기분은 대체 뭘까?
"그나저나 내 인생도 참 제대로 성공한 기분이네"
"그러게 지혜덕에 이런 럭셔리한 여행을 즐기게 될 줄이야~"
럭셔리. 정말 말 그대로 느낌이다. 내 인생 평생 이런 호사를 누릴 것이라고는 꿈도 꾸질 못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누리는 권리 처럼 느껴지는데 이걸 입으로 내뱉으면 사람들이 질투감에 휩싸이지 않을까?
"이지혜 고객님. 현재 영국행...."
아름다운 스튜어디스 한분이 다가와서 곧 비행기가 도착한다고 인솔하기 위해 안내해주기 시작했다.
***
드디어 다시 영국에 도착했다. 이 더럽게 흐리고 축 처지는 듯한 기분의 날씨가 이제는 나에게 더욱 친밀감이 느껴져왔다.
영국의 공항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많이 좋아졌다고는 한다만 한국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청결, 서비스, 미해 지향성 등등 많은 부분에서 뒤쳐져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인천 공항에서는 단 20년 정도 지난 미래인데도 불구하고 한 100년은 지났다고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발전이 있었는데, 이 영국 런던 공항은 이제야 2020년대 인천 공항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그 정도나 차이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나에게 더욱 친밀감 있게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내가 너무 옛날 사람이라는 것일까?
미리 연락을 받고 우리를 기다리던 구단에서 준비한 리무진 한대가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에서 부터 경호원이 마중을 나와서 안전하게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동료들이 워낙 미인들 밖에 없어서 그런지 눈깔을 자꾸 돌리는게 보이긴 했지만, 신경쓰지는 않았다.
"어서오십시오. 이지혜 선수 편안한 여행 되셨습니까?"
리무진 앞에서 중후한 중년의 남성이 멋들어진 기사용 정장을 입고는 대기하고 있었다.
편안하게 운전을 해주는 리무진에서 준비 되어있는 간단한 다과를 먹으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이제 챔피언십 리그가 곧 시작될 것이다.
이 뜻은 이제 진짜 축덕들에 의한 평가가 나를 노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축구에 미친 동네는 챔피언십부터가 진짜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시선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공주님이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표정에 지루함을 숨기지 못하는 것을 보아하니 기나긴 비행이 상당히 고달팠나보다.
"...이제 진짜 돌아왔다고 생각을 해서요."
"그러고 보니 클럽에서 꽤나 오래 자리를 비웠죠?"
"그렇죠"
"다들 기대하고 있어요. 워낙 올림픽에서 임팩트가 굉장했으니까요!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는 공주님. 나에 대한 여러 칭찬을 하면서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내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켜보고 있으니 정말 내 광팬이 옆에 있었구나라고 느낀다.
"꽤 잘하죠?"
"꽤 잘하냐고요? 저야 축구에 관해 문외한 수준이였지만, 이젠 눈을 떴다구요! 자료 조사를 위해 이런 저런 리그도 전부 둘러보면서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는데 제 눈길을 뺐는 선수가 전혀 없었어요!"
핸드폰을 구석에 던져버리고 팔짱을 낀채로 투덜거리기 시작하는 공주님. 자료를 조사한다고? 꽤나 흥미가 돋는 이야기였다.
"자료 조사를 한다구요?"
"그럼요! 언제나 이지혜 선수의 클럽 생활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괜찮은 인재를 둘러 보고 있죠!"
"와.. 공주님 맨날 노는 줄 알았는데.."
가은 언니 마저 옆에서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공주님을 바라보았다.
"제가 이래뵈도 발이 넓다구요? 저를 무시하지 말아주시겠어요?"
힐끔 하며 가은 언니를 살짝 째려보신다. 삐진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꽤 우리랑 친해졌기 때문에 장난스런 표정이 얼굴에 숨어있다.
"그럼 자료 좀 보여줘요!"
가은 언니도 장난스런 표정으로 공주님에게 손바닥을 펼쳐서 보여준다.
"이익! 알겠어요!"
공주님이 리무진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을 손으로 여기저기 톡톡 건드리니 무슨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위잉
"오오!"
나는 조금 놀라서 자세를 뒤로 뺐다. 테이블 중앙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노트북이라니 상상도 못했다.
노트북을 집어들고 집중하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찾더니 다시 돌려서 우리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오오..."
왠 선수 명단이 쭈루룩 나열 되어있고 숫자들이 적혀있었다.
"선수들의 능력치를 조사 했어요. 각 팬들의 평가와 전문가의 평가가 적절하게 섞여있어서 꽤나 신뢰성 있는 자료일걸요?"
"이걸 직접 다 하신거에요?"
"아니요?"
"네?"
"물론 돈 주고 사람을 썼죠!"
"이런건 클럽에서 다 하는 일 아닌가요? 스카우터들이요"
"우리 웰링 유나이티드 스카우터 팀이 만든 자료에요 그거."
"아니 그럼 공주님이 만든게 아니잖아요!"
"저도 같이 했어요!"
"아하하하하!"
어쨌든 다들 자기 위치에서 굉장히 노력을 하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나도 지고 있을 수 없지 않겠는가.
***
"...누가 도착했다고요?"
심슨이 자신을 코칭하던 체력 코치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우리의 키티가 도착했다는 소문이 돌고있어!"
"하아... 드디어 씨발..."
심슨은 자리에 털썩 주저 앉으며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어허! 얼른 일어나! 아직 쿨 다운을 끝내지도 않았어!"
"제발 살려주세요..."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던 것인지 미쳐버리겠다는 표정으로 코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기 시작했다.
"하하하! 누가 보면 자네를 죽이는 줄 알겠어~"
"아니 진짜 죽는다구요... 프리시즌 친선경기도 그렇고 훈련도 그렇고 달리는 양이 평균을 한참 윗돌고 있다구요!"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으아아악!!"
코치가 심슨을 향해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자 심슨은 뒷 걸음질 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심슨이 성장하지 않는 걸!"
"끄아아악!!"
필드에 심슨의 비명 소리가 울려퍼지자 웰링 선수들은 오히려 즐겁다는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래도 심슨 많이 성장했어."
"진짜로 많이 성장했지.. 굴리면 사람은 어떻게는 되는구나.."
"걱정 많이 했는데.. 솔직히 프리 시즌 전에는 방출 될 것만 같았다고"
"하긴.. 자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이제는 완전히 서브 위치는 잡은 듯 보이네. 키티가 좀 쉴 시간은 충분 할 것 같아."
그래도 무리한 친선 경기 일정을 전부 소화한 심슨이다. 아픈 손가락이던 팀 동료가 성장하는 모습이 꽤나 보기 좋아 팀 분위기도 덩달아 올라간다.
"흐음... 키티가 돌아왔다고?"
팀의 주장인 폴 조지가 스트레칭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다네.. 못 본지 얼추 세달 정도 된 듯 한데.. 엄청 오래된 기분이네"
"하하! 오래되긴 했네. 감이나 안 잃었으면 좋겠구만."
"그 괴물이 감을 잃는 다고요?"
제리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부인을 했다.
"그렇긴하지 듣자하니 또 야구계가 뒤집어 지고 있다고들 하니"
"미친 괴물 녀석이 이상한 짓을 벌여서 메이저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요! 물론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근데 여기서 뛰는 것도 현실성 없는 일인데?"
"...그것도 그렇네요."
그렇게 떠드는 사이 필드에 익숙한 그림자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