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115화. 프리시즌(5)
* * *
텅~
골대를 강하게 때리고 밖으로 튀어 나가는 공.
"헤이!"
"침착하게!"
"컴 다운 키티! 컴 다운!"
벤치의 코치들이 소리를 치는게 정확하게 귀로 날아와 박힌다.
아무대로 관중이 없는 경기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으니 잡다한 소음 마저도 크게 들려온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남자들이랑 축구를 한다. 이 땀내나는 전쟁터가 그리웠던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에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더욱 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이 커다란 덩치를 가진 놈들을 상대하는 진짜 축구를 하게 되니 조금 가슴이 두근 두근 거리는게 내 몸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파악!
발끝에 힘이 전보다 더 잘 들어가는 기분이다. 기분 좋게 파여나가는 잔디가 내 잔상을 만들듯이 날라간다.
"젠장! 막아!"
수비수들이 기겁을 하며 나를 막아세워 보려고 달려든다. 역시나 도르트문트라는 명문팀의 선수들은 그리 쉬운 선수들은 아닌지 순식간에 내가 지나갈만한 통로를 전부 차단해버렸다.
나는 무리해서 돌파하려면 못할건 없다고 느꼈지만, 딱히 그래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지난 올림픽 기간동안 패스의 재미도 상당히 느끼고 온 터라 사이드로 쭈욱 빠져있는 제리를 향해서 로빙 패스를 전달했다.
텅!
"...!"
팀으로 복귀한 뒤에 나는 공격하고 팀 동료들은 수비하는 전술 훈련만 해서 내가 실질적으로 어떤 부분이 발전했는지를 팀 동료들은 제대로 체감을 할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연습과 실전은 너무도 차이가 나기에 연습때 경험 했더라도 실전에서는 또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고.
내가 찬 공은 일직선으로 쭈욱 뻗어나가다가 내가 원하는 위치에서 뚝 떨어진다. 내가 의도한거기도 하고, 내가 여자 축구 올림픽 대표팀에 있을 때 주로 배웠던 로빙 패스다. 이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공에 회전을 거는 감각을 극한까지 단련해야만 하는데 알다시피 내 발의 감각은 이미 보통의 사람을 초월한 정도라 내가 어느정도 스핀을 원하고 차면 대부분 비슷하게 스핀이 걸린다.
평소에는 로빙 패스를 거의 시도 하지 않았기에 제리 녀석은 당황 해보였지만 차분하게 공을 따라가는 모습이였다. 하지만 공의 높이와 속도에서 라인 아웃을 예상했는지 조금 속도를 늦추다가 갑자기 떨어지는 공에 기겁하며 달려가 간신히 트래핑을 해내었다.
"뭐야 이건!"
제리가 하얘진 얼굴로 사이드를 치고 나아간다.
'오... 새끼 꽤 빨라진 것 같은데?'
육안으로만 보아도 제리의 순간 속력이 빨라진 듯한 모습이였다. 내가 자리를 비운동안 하체 단련을 꽤 열심히 한듯하다.
"돌아가! 돌아가!"
독일어로 소리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
"확실히..."
"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아보이지만 상당히 성장한 듯 합니다."
"흐음... 큰일인데..."
"그렇죠.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웰링 유나이티드의 마스코트 알렉스 감독이 팔짱을 끼고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
"음?"
"뭐가 큰일인데요?"
옆의 벤치에 앉아있던 심슨이 수석 코치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질문을 날렸다.
"예상 보다 이쥐해의 실력 성장이 엄청나게 올라버렸어. 그건 너도 알고 있지?"
"네? 아네 물론이죠. 연습때도 느꼈던거긴 한데 실전으로 보니까 또 다르게 느껴지네요... 그나저나 그래서요?"
"일단 저길 한번 보라고"
심슨은 수석 코치의 말대로 전방을 보며 필드의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지혜의 발끝에서 엄청난 스피드의 로빙 패스가 날라간다. 확실히 패스의 퀄리티가 말도 안되게 성장해버렸다. 이미 축구계는 한 부분만 잘하는 스페셜리스트 보다는 두루 두루 잘하는 완벽주의자들을 선호하기 시작해서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를 찾는다고하지만 저 정도의 선수는 전설적인 선수들에게서만 보이는 재능일 것이다.
'음..?'
어쨌든 제리가 공을 조금 어렵게 받는 걸 볼 수 있었다. 제리는 우리 웰링 유나이티드에서 조금 과소평가가된 선수 중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조금만 실력이 늘어단다면 충분히 1부 리그 주전급까지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될 정도인지라 평소에 같이 연습할때에 윙어로써 상당히 빠릿 빠릿한 반응 속도를 보여주고는 했다.
공을 치고 나가며 선수에게 막혔지만 꽤나 간결할 드리블로 뚫어내고는 이지혜를 향해 크로스를 올린다.
"어?"
그러나 뭔가 사인이 안맞았는지 공이 이지혜에게 다다르지도 못하고 수비수에게 커팅되었다.
"흐음..."
"확실하네요. 제일 교류가 잦은 제리조차 쥐해의 페이스를 못 찾고 있습니다. 이 정도 차이이면 페이스를 찾는데에만 시간이 꽤 걸릴 것입니다."
"아! 그렇네!"
심슨은 자기가 경험한 과거의 일이 기억이 났다.
최근 팀 동료들에게 상당히 높은 성장을 이뤄냈다고 칭찬을 자주 듣고는 했는데 이 성장이 급격하게 올라갔다고는 해도 꾸준히 팀 동료들과 합을 맞춰가며 성장을 했기에 팀 동료들이 심슨 본인의 감각을 같이 공유하는 매일이였다.
하지만 이지혜는 상당히 긴 기간 팀을 떠나있는 상태라 그 상태에서 상당한 성장을 해버려서 팀 동료들이 이지혜의 성장에 대한 간극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였다.
"그래서 훈련 하는 동안 빠르게 하라고 지시를 하셨던 거구나..."
심슨이 벤치에 앉아 중얼거렸다.
"그래 맞아."
사실이다. 감독이 매일 노는 사람도 아니고 팀을 떠나있는 이지혜에 대한 데이터도 꾸준하게 수집해야 하기에 모든 경기 내용을 확인 해 보았는데 눈으로 보이는 성장이 상당했기 때문에 팀에게 더욱 빠른 템포를 요구 했던 것이다.
축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기에 팀 동료들이 한명의 에이스를 위해 맞춰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한 시련일 뿐.
"헤이! 더 빠르게!"
감독이 터치라인 까지 다가가서 크게 소리를 지른다.
제리와 캡틴이 알겠다는 사인을 보내고는 다시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데이터는 잘 모으고 있지?"
"네"
"예상보다 더 빠릅니다. 도대체가... 우리는 괴물을 영입한 것 같은데요..."
수기와 노트북으로 데이터를 모으던 분석가들이 넋이 나간 얼굴로 감독에게 말을 건냈다.
"그 정도인가? 하긴... 눈으로만 보아도 상당하니..."
다시 공격이 시작된 웰링 유나이티드 진영. 이지혜는 롤랑에게 공을 건내받고 빠르게 원투 패스로 도르트문트 미드필더진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르노가 그 뒤를 따라 백업을 붙어서 롤랑이 세명에게 싸이면 대신 공을 받아주며 전진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쥐해의 속도에 반응을 하는 선수는 롤랑과 르노뿐입니다. 아마 두 선수는 지난 시즌에 이쥐해와 호흡을 안 맞추었던 것이 크게 작용하는 듯 보입니다."
"흐음..."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을 했다. 물론 그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긴 하다. 워낙 두 선수의 기량이 상당하기에 빠른 속도에 대응 할 수 있는 점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451 체제가 제일 잘 맞아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대로 시즌을 운영한다면 분명 이쥐해에 대한 부담이 커질 건 확실합니다."
"흐음..."
원톱 이지혜 공격형 미드필더 롤랑 중앙 미드필더에 르노 윙어에 제리. 공격진은 화려하다. 확실히 2부리그는 상당히 거칠기 때문에 부담감은 커질 것이다.
"투톱 전술도 슬슬 준비해야겠지..."
"네 어차피 442와 한 끗 차이일 뿐이니까요."
공미로 박아둔 롤랑을 스위칭 형태로 공격수로 올려버리면 그나마 원톱보다는 부담감은 적어질 것이다.
"일단 입력 해놔. 지켜보자고."
알렉스 감독은 도르트문트의 감독을 슬쩍 눈짓으로 확인했다. 명장은 명장이라는 것인가, 점점 웰링의 데이터도 많은 클럽에 쌓이는게 체감이 된다는게 느껴진다. 파이브 백을 수비에 박아버리면서 이쥐해의 돌파를 직접적으로 막아 놓은게 눈에 크게 띄인다.
"라인 올리지 마!"
"거기! 너무 빨려 들어가지 마라고!"
이지혜가 상당히 화려한 드리블을 시도 할 때마다 수비수들이 달려든다. 도대체 그녀에게 어떤 점이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지는 모르지만 달려들기에 제쳐진다. 이 간단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도르트문트의 감독은 결국 안 좋은 결과를 얻고 말았다.
철썩!
와아아!!
이예쓰!!
웰링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이지혜에게 달려들어 축하 해 주기 시작했다. 프리시즌이지만 오랜만에 복귀 후 첫 골이기에.
"젠장!!"
콰앙!
도르트문트 감독이 화난 표정으로 물병을 벤치로 집어던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지혜는 수비 줄 세우기 전술에 대응해서 간결한 플릿플랩과 처음 보는 화려한 턴 기술을 사용하면서 세명이 달려들어 둘러싸는 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후에 오른쪽 골대 구석으로 밀어 넣듯 간단하게 넣어버렸다.
"...결국 본인이 해결하는군."
"그렇네요. 나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조금만 피지컬이 상승해도 드리블 스킬에 차이점이 크게 나타나는군요."
확실히 괴물은 괴물이란 것인가. 정말 보면 볼수록 경이롭기 그지없다.
"아직 손봐야 할 점이 너무나도 많군. 우리는 최대한 이쥐해가 본인이 해결하려고 시도 하는 걸 최소화 시켜야만 해. 그것이 결국 우리에게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네."
알렉스 감독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불청객들이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