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122화. 웰링 유나이티드의 일상(1)
* * *
찰칵 !
찰칵 !
찰칵 !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 입장하는 선덜랜드 감독을 노리는 카메라들이 일제히 불빛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젠장 오늘 작정하고들 왔군'
속이 뒤틀리고 불이 붙은 듯 화끈거린다. 선덜랜드 서포터즈도 과격하기로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 오늘 경기가 끝나고 어떤 취급을 당할지에 대해 생각하니 벌써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털썩
툭 툭
준비된 자리에 앉고서 마이크를 두번 툭툭 건드리며 기자들을 쳐다보았다. 준비 되었으니 질문을 던져보라는 뜻.
"이번 웰링 유나이티드와의 경기가 상당히 실망스러웠다는 팬들의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이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크흠.. 이번 경기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저에게 있습니다. 선수들은 제 지시에 따라 열심히 플레이 했지만, 제 지휘가 부족한 탓에 이런 결과가 나와 실망스러울 따름입니다."
시작부터 상처를 쑤셔버리다니.. 선덜랜드 감독은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신중히 답변을 했다. 여기서 선수 탓을 하는 둥 남탓을 해버리는 순간 자신은 경질됨이 분명하고 서포터즈들의 화를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서포터즈들도 웰링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이긴 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워낙 네임벨류가 상당한 선수들이 즐비한 팀이기에 그저 지나가는 태풍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듯이 참사가 벌어지지 않음을 바랐음인데도 불구하고 참사가 벌어졌으니 이들이 화날만 한 것이다.
40 이번 경기의 기록이다.
"이지혜 선수가 헤트트릭을 달성 했습니다. 이번 시즌 첫 헤트트릭을 달성한 것이 선덜랜드전인데 이 점은 선덜랜드의 수비가 열악하다는 뜻인가요?"
기자들은 계속 아픈 곳을 찔러댄다. 기자들이 원하는 것은 정해진 답이 아니고 오로지 자극적인 발언만을 노리기에 항상 발언에 조심해야만 한다. 상당히 짜증이 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선수는 제 예상보다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오늘 웰링 유나이티드의 전술이 제 예상을 뒤집기도 했구요. 완전히 당했습니다."
선덜랜드의 감독은 양팔을 위로 들며 항복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찰칵 !
찰칵 !
"그 말 뜻은 다음에도 웰링 유나이티드를 상대하면 패배할 것이라는 말입니까?"
"한번 기자님이 답해 보시지요. 현재 챔피언십 리그 수준의 팀을 가지고 웰링 유나이티드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하지만 해볼만 하지 않습니까? 공은 둥글다고 하지 않습니까?"
풋 하고 선덜랜드 감독은 콧웃음을 쳤다. 공은 둥글다고? 그건 축구계에 발을 직접 담가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제 생각엔 그 팀은 미쳤습니다. 얼른 이 리그를 떠나 프리미어 리그로 가버렸으면 하는군요."
선덜랜드 감독은 머릿속에 남은 지난 경기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해서 머리를 도리 도리 저으면서 떨쳐내려고 노력했다. 스포츠는 항상 패배를 달고 살 수 밖에 없다. 항상 이길 수도 없고 패배를 겪어야하는데 패배에 익숙해져버리면 완전한 패배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다음에 웰링 유나이티드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도 쉽게 이기지는 못하도록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끈덕지게 물어질 생각입니다."
선덜랜드 감독은 그나마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각오를 다지듯이 대답을 했다. 이로써 서포터즈들의 분노는 잠재우지는 못하겠지만, 선수들에게 화살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
"이게 무슨말이지.. 라움도이터? 무슨말이야 도대체가.."
나는 골머리를 쓰며 책을 읽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냐고?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왜 공부를 하는 것이냐 하면 최근들어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항상 축구를 눈으로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축구를 몸으로 겪으며 느껴본 점이 무엇이냐면 내가 아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의 괴리감이 상당히 심하다는 것이였다.
현재 내 실력은 코치들의 평가로 들었을 때 객관적인 평가로는 이미 월드 클래스 선수들의 수준에 접해있다고한다. 그런데 요새 경기들을 하다보면 아무것도 못할 때가 상당히 존재한다. 그래 예를 들어 선덜랜드전에서도 시선을 외각으로 돌리며 몸으로 낑겨들어가 공간을 만들어내는 전술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나는 주구장창 멍때리다가 경기를 끝냈을 수도 있다. 물론 이건 결과론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나는 더욱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뜻이다. 마치 과거의 호나우두. 펠레. 메시. 호날두가 그러했듯이 그 선수를 언급했을 때. 아! 그 선수는 최고였지! 하며 모두가 떠올릴 만한 선수가 되고싶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선수들이 꾸는 꿈이겠지만..
그래서 나의 문제가 무엇이냐! 경험이 터무니 없이 적은데 아는 것도 적다는 것이다. 다른 선수들은 유소년을 충분히 거친 후에 성인 데뷔를 하니까 아는 것에 차이가 심하게 날 수 밖에 없기도 했다.
탁!
"공부는 잘되어가요?"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정장을 입은 공주님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책상에 커피잔을 올려놓고 한 손에는 상당히 비싸보이는 엔틱한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아.. 안하던 공부를 하려고 하니 머리가 다 아프네요 하하"
"후훗. 지혜씨는 공부하는 모습도 아름답네요.. 그런데 공부가 필요한가요?"
공주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공부하고 있는 책을 들여다 보았다. 이 공주님도 축구에 대한 걸 꽤나 공부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공주님도 공부하고 계시지 않아요?"
"네? 맞아요. 알고 계셨네요?"
공주님이 후훗 하고 고상하게 웃으며 책상에 올려 놓은 커피잔에 커피를 따라주기 시작했다.
"그럼 라움도이터라는거 아세요? 이게 봐도 뭔소린지 알 수가 없네요"
"아! 라움도이터요! 라움도이터는..."
공주님이 쏼라 쏼라 설명을 해주는데 말은 길었지만 상당히 간단했다. 책에서는 영어로 전술적인 용어가 그득 그득해서 알아먹기가 힘들었는데.. 그나저나 이거 알렉스 감독님이 당분간 이 역할을 수행하게 될거라고 했었는데..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토마스 뮐러라는건가..'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인 토마스 뮐러. 공주님이 한참이나 옛날 사람인 토마스 뮐러까지 아는 걸 보면 상당히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그 시기에는 워낙 뛰어난 선수가 많았던 시기라...
아무튼 공간연주자. 아니 라움도이터를 수행하려면 드리블을 최소화하고 위치선정을 완벽하게 하면서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아야한다는 이야기다.
'으음...'
알렉스 감독님의 의도는 파악이 된다. 이제 슬슬 나에게 의지할 생각이 아니라 팀의 전체적인 수준을 끌어 올리겠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내가 드리블을 자주 시도한다면, 공의 운반은 대부분 내가 차지할 것이고 공격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나에게 의존하게 될 것이란 걸 파악하신 듯 보였다.
'뭐 당장 라움도이터 역할을 하게 될 거라는 말은 아니라고 하셨으니... 공부나 하자'
"고마워요. 그나저나 요새 별일 없죠?"
"흠.. 별일이랄 것도 없죠. 모든게 순탄해요. 레베카씨가 조금 바빠보이던데.. 아마 지혜씨를 에이전트하면서 느낀게 많은가봐요 또 다른 유소년 선수들을 찾으려고 눈에 불을 키고 찾아다니는 것 같다니까요?"
"으음.. 그건..."
괜찮은 건지 잘 모르겠다. 나야 워낙 특이한 케이스라 나 같은 선수를 찾는건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그래도 뭐 워낙 능력있는 사람이라 어디선가 대단한 재능을 가진 선수를 발굴해낼지는 모를 일이지..
"최근에 어딜 자주 간다고 하시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던거군요.."
"게가다 가은씨도 공부한다고, 영상 편집한다고 방에 틀어박히는 경우가 많아서 외롭네요~"
구단을 인수하면서 구단에 대한 업무는 이전 구단주와 공주님의 비서가 대신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공주님은 물주일 뿐이니 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남아서 지혜씨 지난 경기를 다시 보거나~ 이런 저런 공부를 하다보니 점점 축구에 빠져들게 되네요"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서 이런 저런 사업을 해볼까 해요. 이대로 눌러 앉아서 지혜씨 경기만 지켜보는 것도 좋지만... 다들 뭔가 하는데 저만 따로 노는 기분이라서요"
공주님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내 옆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정장 차림에도 불구하고 고귀한 분위기가 흘러나오는게 역시나 왕가의 딸인 공주님이라는 것인가
"어떤 사업을 하실 생각이신데요?"
워낙 돈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뭔가 한다면 제대로 사고를 쳐버릴 것 같아 궁금증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흐음... 일단 시설 보수를 완료하고..."
공주님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