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일행 출신 사제의 우울-7화 (7/137)

〈 7화 〉 2. 늑대 소녀는 주인을 찾는다

* * *

2.늑대 소녀는 주인을 찾는다(2)

트라사.

북서대륙 셀틱의 서쪽 외곽. 셀틱에서 가장 커다란 만의 옆에 위치한 이 작은 해안 마을은, 한때 아름다운 해변과 석양으로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지금은 찾는 이라고는 마물과 부랑자들뿐인, 여느 곳과 다름없는 폐허로 전락해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심판의 날 이후 거세진 포르투나의 물살에도 트라사의 만 안에서라면 여전히 어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그게 모두를 배불리 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굶주림에 서로를 물어뜯는 참상을 막을 정도는 되었다는 점이다.

"..."

물론 그게 루파의 자식까지도 배불리 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털썩 턱..!

비쩍 마른 왜소한 체구의 어린 늑대 수인 하나는 자신의 발치에 떨어진 생선의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초점 없이 탁해진 징그러운 눈동자.

마물에게 잡아먹힌 생선의 사체가 그물에 함께 걸려올라온 모양이었다.

꼬르르륵...

그 작은 배에서 배고프다는 신호를 격렬히 보내왔고, 늑대 수인은 자신의 배를 감싸 안으며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그는 이 마을의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수인에게 친절은커녕 동정조차 품지 않았다.

"루파의 애새끼한테 줄 음식은 없어! 당장 꺼져!!"

"..."

"이년이..."

늑대 수인의 간절한 눈빛은 오히려 그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뻐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성의 커다란 주먹이 소녀의 얼굴을 가격했고, 그 작은 몸은 허공으로 힘없이 떠올랐다가 아무렇게나 내던져진다.

"... 으윽."

바닥에 쓰러진채 그를 올려다보는 늑대 수인에게서는 맞은 것에 대한 분함은커녕 고통스러운 기색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죽은 생선의 눈깔을 보는 것 같다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비적비적 몸을 끌어 손을 뻗은 소녀는 그가 방금 집어던진 생선의 머리통을 꼭 쥐고는 품속에 숨긴다.

"쳇, 재수 없게 시리."

차라리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기라도 했다면 그걸 핑계로 흠씬 두들겨 패줄 생각이었던 남자는 소녀의 재미없는 반응에 금세 흥미를 잃고는 어망을 들고 그 자리를 떠난다.

"... 물고기."

몸에 걸친 거적대기에 가려 보이지 않던 소녀의 반대편 손에는 제대로 몸통이 달려있는 신선한 생선 한 마리가 꼭 쥐어져 있다.

남자에게 얻어맞던 그 순간, 몰래 챙겨낸 수확이었다.

맞은 곳이 욱신욱신 아려왔지만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물고기 한 마리면 적어도 삼일은 배부르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이 아닌...

"커으윽... 퉤!"

당장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 같은 불탄 폐허의 잔해에 썩은 판자를 덧대어 그나마 집의 구색은 갖춘 자신의 보금자리 안에서 험상궂게 생긴 남성이 바지춤을 끌어올리며 걸어 나온다.

입구에서 그와 맞닥뜨린 소녀는 황급히 누더기로 만든 망토의 후드를 깊게 눌러 썼다.

그의 진득한 눈빛이 소녀의 작은 몸으로 향했지만, 다행히 방금 막 욕구를 해소하고 나온 그의 시선은 비쩍 마른 소녀의 몸에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 쯧."

그가 떠나가자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선 소녀는, 반나체로 바닥에 늘어져 있는 자신의 엄마를 발견하고는 곧장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그녀의 몸과 얼굴, 그리고 목에 시퍼런 멍이 또 늘어난 걸 보고는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생선마저 떨어뜨리고 말았다.

"..."

"아.. 왔니?"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녀는 소녀의 기척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해 선명하게 남아있는 화상 자국.

내뻗은 손으로 몇 번을 휘적거린 끝에야 겨우 소녀의 손을 맞잡은 그녀는, 아차 하고는 몸을 추스르고 옆에 미리 떠놓은 물로 자신의 하반신을 씻어내기 시작한다.

"... 아파?"

"아프지 않아요. 엄마 몸은 생각보다 튼튼하니까..."

".. 응."

소녀의 얼굴에도 파란 멍이 떠올라 있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그녀는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비틀거리면서도 늘 하던 것처럼 자신의 하반신을 씻어내고 나서야, 주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다 찢어진.. 옷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천 조각들을 걸치기 시작하는 그녀.

소녀는 그녀에게 다가가 옷을 입는 것을 도와준다.

수인의 몸이 비교적 강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대로 먹지도 못한 그녀의 몸은 지나친 성적 학대와 폭력, 영양실조와 성병으로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배고프지..?"

바닥에 놓여 있는 건, 상했는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생선 몇 마리.

수인인데다 얼굴에는 큰 화상 자국까지 나 있는 그녀가 맞아가며 몸을 팔아 얻은 대가는 이 상한 생선 몇 마리가 고작이다.

"... 물고기."

"이 냄새는..."

"엄마. 먹어."

떨어뜨린 신선한 생선을 다시 주워든 소녀는 이것을 주저 없이 그녀에게 건넨다.

이거라면 자신의 엄마가 적어도 며칠간은 배부르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소녀였지만, 이를 받아든 소녀의 엄마는 얼굴에 수심이 짙어져 있었다.

"... 또 바다에 나갔던 거니 시르?"

"아니, 약속.. 지켜."

".. 그래, 바다는 위험하다고 엄마가 그랬지? 그건 그렇고 이런 생선을 대체 어디서.."

혹여나 자신의 소중한 딸이 잘못된 방법으로 생선을 얻어온 건 아닐까 걱정하던 그녀였지만...

".. 나쁜짓. 안했어.. 사과대신... 받은거니까."

"사과...?"

"응."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뻔히 보는 앞에서 몸을 팔고 있는 자신이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시르는...?"

"배고파서. 오다가.. 먹었어."

그래서 고작 물은 건 딸의 몫이었지만, 소녀는 머리뿐인 생선사체를 그녀의 손에 올려주며 거짓말을 한다.

꼬르르륵..

".. 읏."

하지만 다시 한번 때를 모르고 울린 배꼽시계에 그만 거짓말이 들통나버린 소녀는 살코기를 떼어내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주는 그녀의 손길을 몇 차례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은 나쁜 거라고 했지?"

"... 응. 잘못했어."

소녀는 이런 삶일지라도, 단 한 번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하늘은 어두웠고,

늘 배가 고팠고,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하지만 자신의 곁에는 엄마가 있었고,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옛날이야기를 들을 때를 소녀는 가장 좋아했다.

"오늘도... 해줘."

"푸른 하늘 이야기 말이니?"

"... 응."

그녀의 품에 꼭 안긴 소녀는 두 눈을 감고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은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나갔다.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들판과, 좋은 향기를 가진 다양한 색의 꽃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따스하게 빛을 비추는 태양에 대한 이야기.

그중에서도 소녀가 가장 좋아하는 건 푸른 하늘이었다.

푸른 하늘 아래에는 먹을 게 많이 있어서,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지 않고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고 엄마가 말해주었으니까.

"... 엄마."

그래도...

역시 본 적 없는 푸른 하늘보다는 자신을 이렇게나 따뜻하게 안아주는 자신의 엄마가 더 좋다고,

언제까지고 이 따뜻함을 느낄 수만 있다면 하늘 같은 건 늘 어두워도 상관없다고..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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