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2. 늑대 소녀는 주인을 찾는다
* * *
2.늑대 소녀는 주인을 찾는다(4)
소녀의 손에는 마연이 든 걸로 보이는 낡은 주머니가 꼭 쥐어져있다.
문밖의 통로에서도 마연에 취한 이들을 잔뜩 봤으니 아마 맞겠지.
"... 저리가!"
작게 으르렁대며, 소녀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한 수인 여성의 앞에서 나를 막아서고 있다.
얼굴의 커다란 화상 자국이 눈에 띄는, 잿빛의 머리칼을 가진 늑대 수인이다.
그녀의 모친인 걸까?
하지만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피부 여기저기 일어난 발진과 특유의 지독한 냄새, 고열로 인해 고통스러운 듯 달아오른 얼굴에는 땀방울들이 맺혀 있고, 정신을 잃은 채로도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는 쩍쩍 갈라지고 있다.
오랫동안 방치한 성병과 영양실조로 면역체계가 무너져 내린 채로, 북대륙 주민이라면 열에 아홉은 가지고 있는 호흡기 질환이 악화된 상태였다.
앞도 보이지 않는 수인 여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몸을 파는 것 이외에는 없었을 테고, 거기다 오랜 기간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테니 그녀가 이렇게 쓰러지는 건 사실 시간의 문제였을 것이다.
"..."
빼앗겼던 것은 조금 구겨지기는 했어도 전부 되찾았고, 이제 이곳을 떠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으... 윽.."
인상을 찌푸리며 크게 몸을 움찔거리는 수인 여성.
그걸 본 소녀는 나를 경계하는 걸 그만두고, 황급히 주머니를 풀기 시작한다.
마연.
고통을 덜어줄 수는 있겠지만..
이제 와서는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미,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탁...!
마연 주머니를 든 소녀의 손을 붙잡아 멈춰세우자, 그 반동에 놓치게 된 주머니가 바닥에 떨어져 회백색의 가루를 바닥에 지저분하게 쏟아낸다.
쏟아지는 마연을 보고는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소녀.
"... 너..!"
"그걸 써봐야 소용없어."
"엄마... 손.. 대지 마..!"
목덜미를 붙잡힌 소녀는 아둥바둥거리며 속박에서 벗어나려 애썼지만, 내가 며칠은 굶었을 수인 소녀의 힘 하나 당해내지 못할 리 없었다.
콰작...!
힘으로는 안되겠다고 여겼는지 팔을 깨문 소녀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살점을 깊게 파고들어 핏물이 터져나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 소녀를 단단히 붙들어 두고, 나머지 한 손은 침대에 누워있는 수인 여성의 이마 위에 가볍게 얹었다.
치유의 기운.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신성한 빛무리가 그녀를 감싼다.
그리고 그 따스한 빛무리는 그녀의 화상 자국을 제외한 몸에 남아있던 모든 상처를 깨끗하게 지워내려간다.
그녀의 이마 위에 내 손이 닿자 더 격렬하게 저항하며 몸을 뒤틀던 소녀였지만, 아마 처음 볼 이 광경에 몸부림이 점차 잦아들고 소녀의 입이 팔에서부터 떨어져 통증도 잦아들어간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수월하게 치유를 끝마칠 수 있었다.
색... 색..
고른 숨소리.
열도 내렸고, 피부의 발진과, 몸 여기저기 보이던 멍자국들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고통은 덜어주었다.
다만, 그녀가 다시 일어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이건 단순히 여태 그 만신창이인 몸으로 척박한 생활을 버텨오던 그녀의 수명이 다한 것뿐이었으니까.
그래도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은 깊은 잠에 들듯 편하게 떠날 수 있을 것이다.
"..."
이젠 정말로 이곳에서 할 일을 전부 끝마쳤다고 생각한 내가 그들로부터 등을 돌렸을 때였다.
"... 시르..."
"...!"
아주 작은 목소리가,
실낱같은 목소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
"엄마..? ... 엄마..!"
정신을 차렸다고..?
아무리 신체능력이 뛰어난 수인이라고는 해도, 지금 당장 생명이 끊어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기력이 다한 상태였다.
"여기에 있구나... 시르."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도 내 생각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힘겹게 팔을 들어올려 소녀를 찾는 듯 허공을 휘젓는다.
소녀가 다가가 그 간절한 손을 양손으로 맞잡아주자 그녀는 싱긋하고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소녀의 얼굴에 그 손을 가져다 댄다.
볼 수 없는 소녀의 얼굴을 손끝으로 기억하려는 것처럼, 그렇게 한참을 소녀의 얼굴을 매만지던 그녀는 이제 소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 있다.
"더.. 아프지 않아...?"
"응, 시르 덕분인가 봐."
모녀의 모습을 나는 조금 떨어진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았다.
저 몸 상태로 그녀가 스스로의 의지로 정신을 차린 건 기적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런 만큼 지금 그녀는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씨를 불태우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조금... 졸리네...."
"또.. 잠드는거야..?"
"으응... 그렇지. 엄마는 잠에 드는 것뿐이야."
희미한 불꽃은 당장이라도 꺼질 것처럼 위태로이 흔들리고 있다.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지고, 얼굴의 혈색도 점차 파리해져 간다.
의식을 되찾고, 조금 빠르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미끝이 가까워진 것이다.
"다시... 나랑. 놀아줄 거지?"
"응... 그래야지... 우리.. 시르랑..."
"푸른 하늘... 이야기도..."
"응.. 해줄 거야..."
그녀의 대답에도, 소녀는 불안한지 그녀의 손을 꼭 붙잡는다.
직감하고 있는 걸까.
눈 앞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는 것을.
"아니야... 안놀아줘도 돼.. 이야기도.. 안해줘도 돼... 그냥.. 곁에... 내곁에...."
"......"
"곁에 있어줘....."
"..."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내린다.
마지막 숨을 내뱉은 그녀는 예정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작별 인사는 할 수 있었지만, 그뿐.
더이상 그녀는 소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
"... 거짓말... 거짓말쟁이.."
소녀는 점점 사라져 가는 그녀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기억 속에 남기고 싶은 것처럼 그녀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죽음은 변치 않는다.
재회를 약속할 수 없는 이별.
다시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다시는 그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다.
반전 같은 건 없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수인 소녀와 내가 다른 점이라면, 죽은 이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
이것은 과연 축복일까, 저주일까.
나는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그런 걸 봐버렸으니, 아무리 이런 나라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팔에 남은 핏자국을 닦아내던 도중 자조담긴 헛웃음이 작게 터져나오고야 말았다.
참 우스운 일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저런 안타까운 이별은 이 아케라 어디에서든 일어나고 있으며 또 일어날 텐데, 당장 눈앞에서 보게 된 한 수인 여성의 죽음과 이를 슬퍼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이것이야말로 위선이고, 더럽혀졌을지언정 서로를 위하는 순수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은 그들에 대한 크나큰 실례가 아닌가.
"....?"
"엄마... 이제 아프지 않아?"
인기척에 문득 고개를 돌리자양쪽 눈가가 발갛게 부어오른 소녀가 어느새 따라나와 내 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나에 대한 경계는 더 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그럴 여유조차 없는 걸까.
더 이상 자신의 엄마가 아프지 않냐는 소녀의 물음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죽음을 과연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 그래."
".. 고마워."
"......"
고맙다고...?
대체 뭐가 고맙다는 건지 내가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다시 안으로 들어간 소녀는 더 이상 깨어날 리 없는 그녀를 업어들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내 앞을 지나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그런 소녀를 뒤따랐다.
이유는 모른다.
왜 내게 고맙다고 했는지 그 이유를 묻기 위해서?
아니면 단순히 바실리카에 일찍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괜히 다른 길로 새려는 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유가 어떻든, 나는 소녀를 뒤따랐다.
소녀도 나를 한 번 뒤돌아 보았을 뿐 따라오는 내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고,
만이 끝나는 곶의 작은 해안절벽 끝에 도착하고 나서야 소녀는 자신의 엄마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나는 그 구덩이가 무릎보다 깊어졌을 때까지도 여전히 소녀의 뒤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그녀를 묻어주고, 그 위에 돌로 탑을 쌓고 나서야 소녀는 흙투성이가 된 채로 그 옆에 주저앉았다.
여태껏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소녀는 드디어 평범한 또래의 아이들처럼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으흑.... 흐윽.. 흑.."
그 서글픈 울음소리에 어깨에 닿은 쇠사슬이 피부를 파고들며 그 무게에 짓눌려 조여온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죽음이 무엇인지 소녀는 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지, 죽음 앞에 떼쓰지 않는 그 모습은 나에게조차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한다.
내가 이들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다음 보게 될 하늘은... 바라건데 푸른빛이기를.."
무덤 앞에서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는 소녀를 대신해 그녀의 명복을 빌어주고, 성호를 한차례 그은 다음에야 나는 드디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 * *